동구(부산광역시)

덤프버전 :






부산광역시자치구


파일:동구(부산광역시) CI.svg

동구
東區
Dong-gu





구청 소재지
구청로 1 (수정동)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12[1]
면적
9.86㎢
인구
88,008명[2]
인구밀도
8,882.86명/㎢
구청장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김진홍 (초선)
구의회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5석[3]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석[4]
시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석[5]
국회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안병길 (초선)
상징
구가
동구의 노래
지역번호
051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인구
3.1. 행정동별 인구
4. 지역 특징
5. 교통
6. 경제
6.1. 금융
7. 관광
8. 생활문화
8.1. 교육
8.2. 공동주택
8.3. 의료기관
10. 하위 행정구역
11. 사건사고
11.1.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 사건
11.1.1. 일본 정부의 반응
11.2. 초량천 복원사업
11.3. 북항재개발 행정구역 소송
11.4. 구청장 아들 박사학위취득 축하 현수막
12.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
13. 자매도시



1. 개요[편집]


부산광역시중부[6]에 위치한 자치구. 마찬가지로 인구가 적은 서구와 같이 묶여서 하나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중구처럼 부산광역시의 중구와 동구도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파일:동구(부산광역시) CI.svg

1992년 제정된 상징마크는 東의 오른쪽 반을 쭉 뻗은 형태인데, 형태가 형태인지라 東이 아니라 車처럼 보인다.

파일:동구(부산광역시) 도시스타일 브랜드.svg
2021년 1월에는 도시스타일 브랜드가 새로 추가되었다.

2. 역사[편집]


파일:attachment/부산진구/jeedo.jpg
▲ 1963년 직할시 승격 당시의 지도.

동구는 부산이 시작된 곳이다.
부산의 이름의 유래가 된 부산진성이 남아 있다.

1957년 부산시에서 구(區)제도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최초의 6개 구 중 하나이다.

위 지도에서 보듯 부산 시가지가 구도심에 한정되어 있던 과거에는 이름 그대로 부산 시가지의 동쪽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고, 중구는 도심 중앙, 그 서쪽은 서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서면이 있는 부산진구는 '면'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6.25 이후 확장된 부분이다. 이후 부산광역시가 성장하면서 서면, 동래 쪽으로만 시가지가 확장되었고(남쪽은 영도 빼면 죄다 바다니까 확장할래야 할 수가 없다) 현재의 동구는 상대적으로 남쪽이 되어버렸다.[7] 또한 부산에서 남구는 동구보다 더 동쪽에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부산진구와 동래구에서 떨어져나가면서 남구라고 이름붙여졌기 때문이다. 다만 북구 는 나중에 신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상으로도 부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법정동은 4개, 행정동은 원래 한창 때 21개 동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도심공동화가 진행되어서 자꾸만 줄어들어 현재는 12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3. 인구[편집]


파일:동구(부산광역시) CI.svg 부산광역시 동구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236,280명}}}
1970년 244,421명}}}
1975년 10월 1일 동구 범일제3동 → 신설 남구 로 편입
1975년 230,048명}}}
1980년 217,076명}}}
1985년 196,718명}}}
1990년 183,974명}}}
1995년 154,504명}}}
2000년 127,138명}}}
2005년 109,879명}}}
2010년 101,514명}}}
2015년 92,069명}}}
2020년 88,901명}}}
2023년 10월 88,008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행정동별 인구 통계

[ 펼치기 · 접기 ]
초량제3동 12,889명}}}
좌천동 11,564명}}}
범일제1동 11,286명}}}
수정제2동 9,456명}}}
범일제2동 7,775명}}}
초량제6동 5,545명}}}
초량제2동 5,400명}}}
수정제5동 4,974명}}}
초량제1동 4,897명}}}
범일제5동 4,208명}}}
수정제1동 3,992명}}}
수정제4동 3,643명}}}
2023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3.1. 행정동별 인구[편집]


[ 펼치기 · 접기 ]
초량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3,647명}}}
1970년 13,321명}}}
1975년 13,817명}}}
1980년 10,506명}}}
1985년 10,149명}}}
1985년 12월 1일 초량제5동 말소 → 초량제1동에 관할구역 일부를 편입
1990년 10,097명}}}
1995년 8,271명}}}
2000년 6,601명}}}
2005년 5,914명}}}
2010년 5,697명}}}
2015년 5,399명}}}
2020년 4,837명}}}
2023년 4월 4,897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초량제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5,246명}}}
1970년 14,396명}}}
1975년 14,297명}}}
1980년 15,305명}}}
1985년 13,102명}}}
1990년 12,468명}}}
1995년 11,275명}}}
2000년 9,024명}}}
2005년 7,537명}}}
2010년 7,253명}}}
2015년 6,671명}}}
2020년 5,812명}}}
2023년 4월 5,400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초량제3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0,788명}}}
1970년 10,471명}}}
1975년 9,937명}}}
1980년 9,099명}}}
1985년 8,367명}}}
1985년 12월 1일 초량제5동 말소 → 초량제3동에 관할구역 일부를 편입
1990년 8,231명}}}
1995년 6,753명}}}
2000년 5,820명}}}
2005년 5,217명}}}
2010년 5,967명}}}
2015년 6,512명}}}
2020년 11,477명}}}
2023년 4월 12,889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초량제5동 인구 추이
(1966년~1985년)
1966년 475명}}}
1970년 1,107명}}}
1975년 893명}}}
1980년 902명}}}
1985년 874명}}}
1985년 12월 1일 초량제5동 말소 → 초량제1동, 초량제3동에 분할 편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천 명
1966-1985: 통계청 인구총조사}}}

초량제6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21,548명}}}
1970년 7월 1일 초량제4동 → 초량제4동, 초량제6동 분동
1970년 24,609명 (초량제4동 10,739명 + 초량제6동 13,870명)}}}
1975년 22,033명 (초량제4동 9,446명 + 초량제6동 12,587명)}}}
1980년 19,550명 (초량제4동 9,234명 + 초량제6동 10,316명)}}}
1985년 17,461명 (초량제4동 8,498명 + 초량제6동 8,963명)}}}
1990년 15,940명 (초량제4동 7,782명 + 초량제6동 8,158명)}}}
1995년 13,921명 (초량제4동 6,795명 + 초량제6동 7,126명)}}}
2000년 11,106명 (초량제4동 5,564명 + 초량제6동 5,542명)}}}
2005년 9,497명 (초량제4동 4,885명 + 초량제6동 4,612명)}}}
2008년 1월 1일 초량제4동 , 초량제6동초량제6동 합동
2010년 8,838명}}}
2015년 7,640명}}}
2020년 6,370명}}}
2023년 4월 5,545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수정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9,175명}}}
1970년 8,522명}}}
1975년 9,228명}}}
1980년 10,336명}}}
1985년 9,367명}}}
1990년 8,750명}}}
1995년 6,996명}}}
2000년 5,845명}}}
2005년 6,145명}}}
2010년 5,864명}}}
2015년 5,059명}}}
2020년 4,147명}}}
2023년 4월 3,992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수정제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31,229명 (수정제2동 13,702명 + 수정제3동 17,527명)}}}
1970년 27,329명 (수정제2동 8,654명 + 수정제3동 18,675명)}}}
1975년 28,091명 (수정제2동 9,093명 + 수정제3동 18,998명)}}}
1980년 25,132명 (수정제2동 9,496명 + 수정제3동 15,636명)}}}
1985년 22,593명 (수정제2동 7,693명 + 수정제3동 14,900명)}}}
1990년 21,543명 (수정제2동 7,121명 + 수정제3동 14,422명)}}}
1995년 18,358명 (수정제2동 5,904명 + 수정제3동 12,454명)}}}
2000년 14,541명 (수정제2동 4,836명 + 수정제3동 9,705명)}}}
2005년 11,762명 (수정제2동 3,495명 + 수정제3동 8,267명)}}}
2008년 1월 1일 수정제2동, 수정제3동 → 수정제2동 합동
2010년 10,934명}}}
2015년 9,350명}}}
2020년 10,075명}}}
2023년 4월 9,456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수정제4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6,121명}}}
1970년 11,336명}}}
1975년 15,624명}}}
1980년 14,848명}}}
1985년 14,516명}}}
1990년 13,444명}}}
1995년 10,605명}}}
2000년 8,492명}}}
2005년 6,511명}}}
2010년 5,870명}}}
2015년 5,060명}}}
2020년 4,128명}}}
2023년 4월 3,643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수정제5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7,355명}}}
1970년 17,881명}}}
1975년 18,135명}}}
1980년 16,395명}}}
1985년 15,879명}}}
1990년 14,507명}}}
1995년 12,680명}}}
2000년 9,951명}}}
2005년 8,367명}}}
2010년 7,566명}}}
2015년 6,608명}}}
2020년 5,562명}}}
2023년 4월 4,974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좌천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29,026명 (좌천제1동 11,658명 + 좌천제2동 17,368명)}}}
1970년 7월 1일 좌천제2동 → 좌천제2동, 좌천제4동 분동
1970년 30,440명 (좌천제1동 11,471명 + 좌천제2동 10,359명 + 좌천제4동 8,610명)}}}
1975년 29,157명 (좌천제1동 9,160명 + 좌천제2동 8,761명 + 좌천제4동 11,236명)}}}
1980년 29,785명 (좌천제1동 9,527명 + 좌천제2동 8,539명 + 좌천제4동 11,719명)}}}
1985년 27,584명 (좌천제1동 8,711명 + 좌천제2동 7,822명 + 좌천제4동 11,051명)}}}
1990년 24,314명 (좌천제1동 7,733명 + 좌천제2동 6,409명 + 좌천제4동 10,172명)}}}
1995년 19,848명 (좌천제1동 6,406명 + 좌천제2동 5,346명 + 좌천제4동 8,096명)}}}
1998년 9월 17일 좌천제1동, 좌천제2동 → 좌천제1동 합동
2000년 15,981명 (좌천제1동 9,265명 + 좌천제4동 6,716명)}}}
2005년 14,337명 (좌천제1동 9,161명 + 좌천제4동 5,176명)}}}
2010년 13,474명 (좌천제1동 8,765명 + 좌천제4동 4,709명)}}}
2015년 7월 1일 좌천제1동, 좌천제4동 → 좌천동 합동
2015년 12,019명}}}
2020년 11,087명}}}
2023년 4월 11,564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범일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28,877명 (범일제1동 7,170명 + 범일제4동 21,707명)}}}
1970년 7월 1일 범일제4동 → 범일제4동, 범일제6동 분동
1970년 34,497명 (범일제1동 8,457명 + 범일제4동 10,834명 + 범일제6동 15,206명)}}}
1975년 37,284명 (범일제1동 9,338명 + 범일제4동 12,213명 + 범일제6동 15,733명)}}}
1980년 34,378명 (범일제1동 7,809명 + 범일제4동 10,550명 + 범일제6동 16,019명)}}}
1985년 30,712명 (범일제1동 6,838명 + 범일제4동 9,474명 + 범일제6동 14,400명)}}}
1990년 30,583명 (범일제1동 6,701명 + 범일제4동 8,620명 + 범일제6동 15,262명)}}}
1995년 24,656명 (범일제1동 5,385명 + 범일제4동 6,910명 + 범일제6동 12,361명)}}}
2000년 21,093명 (범일제1동 6,475명 + 범일제4동 5,406명 + 범일제6동 9,212명)}}}
2005년 17,645명 (범일제1동 5,688명 + 범일제4동 4,877명 + 범일제6동 7,080명)}}}
2008년 1월 1일 범일제4동, 범일제6동 → 범일제4동 합동
2010년 15,968명 (범일제1동 5,170명 + 범일제4동 10,798명)}}}
2015년 13,747명 (범일제1동 4,741명 + 범일제4동 9,006명)}}}
2016년 1월 1일 범일제1동, 범일제4동 → 범일제1동 합동
2020년 12,009명}}}
2023년 4월 11,286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범일제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2,129명}}}
1970년 9,918명}}}
1975년 10월 1일 범일제3동 → 신설 남구 로 편입[범일제3동]
잔여 관할지 → 범일제2동, 범일제5동에 분할 편입
1975년 11,561명}}}
1980년 12,851명}}}
1985년 11,400명}}}
1990년 10,428명}}}
1995년 8,716명}}}
2000년 7,134명}}}
2005년 5,909명}}}
2010년 8,533명}}}
2015년 9,335명}}}
2020년 8,723명}}}
2023년 4월 7,775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3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범일제3동 인구 추이
(1966년~1970년)
1966년 13,976명}}}
1970년 15,618명}}}
1975년 10월 1일 범일제3동 → 신설 남구로 편입[범일제3동]
잔여 관할지 → 범일제2동, 범일제5동에 분할 편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6만 명
1966-1970: 통계청 인구총조사}}}

범일제5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6,928명 (좌천제3동 7,166명 + 범일제5동 9,762명)}}}
1970년 20,569명 (좌천제3동 11,345명 + 범일제5동 9,224명)}}}
1975년 20,605명 (좌천제3동 10,009명 + 범일제5동 10,596명)}}}
1975년 10월 1일 범일제3동 → 신설 남구 로 편입[범일제3동]
잔여 관할지 → 범일제2동, 범일제5동에 분할 편입
1980년 18,498명 (좌천제3동 7,963명 + 범일제5동 10,535명)}}}
1985년 15,219명 (좌천제3동 6,719명 + 범일제5동 8,500명)}}}
1990년 14,045명 (좌천제3동 6,448명 + 범일제5동 7,597명)}}}
1995년 10,297명 (좌천제3동 4,759명 + 범일제5동 5,538명)}}}
2008년 9월 17일 좌천제3동, 범일제5동범일제5동 합동
2000년 6,499명}}}
2005년 4,817명}}}
2010년 5,550명}}}
2015년 4,669명}}}
2020년 4,574명}}}
2023년 4월 4,208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1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4. 지역 특징[편집]


부산항[8]부산역 등이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서, 북항 재개발의 주요 개발지역이기도 하다. 8조 원에 가까운 사업비가 투입되므로 구 차원을 넘어선 전반적인 정비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시철도가 지나는 중앙대로 인근을 제외한 지역의 대부분이 지형적 문제로 달동네다. 대충 꼽아보면 범일1/4동 일부, 수정 4/5동 일부, 좌천동 증산로 기점 윗 지역, 초량1/2/3/6동 정도가 있다.

사실 몇년 전만 해도 부산 시민들에게 주거지로서 동구의 이미지는 옛날에 조성된 산동네의 이미지가 강해 크게 좋지 못하였으나, 북항재개발로 인해 범일동이나 초량동, 수정동 쪽으로 고층 대단지 아파트들과 초고층 레지던스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주거지로서 이미지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북항쪽 고층 아파트 단지들의 시세는 꽤나 비싼 편이다.

원도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시세(市勢)가 확장되면서 오히려 동구는 점차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과소 자치구에 대한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대 총선에서 동구와 중구의 선거구가 쪼개지게 되자, 동구와 중구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관련 기사 그러나 동구와 중구가 통합되면 중구는 동구에 흡수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구는 통합을 반대하는 입장인 데다가, 현재 동구와 중구는 북항 재개발 지역 경계 문제로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서 관련 기사 통합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이다.


5. 교통[편집]






경부선 부산역이 있으며 부산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관문이다.

  • 파일:Busan1.svg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초량역, 부산진역, 좌천역[9], 범일역[10]
  • 경부선: 부산역, 부산진역


6. 경제[편집]


부산의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범일동에 소재하였던 한국거래소였으나 남구로 이전하였다.[11] 그 외에도 메리츠화재 빌딩[12], DGB생명 본사[13] 등등 부산의 대표적인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주부산 일본총영사관도 이 구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시 최대 프로젝트인 북항재개발중구, 동구 일대에서 진행중이다. 개발이 완공되면 낙후된 부산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6.1. 금융[편집]


부산 동구에 위치한 금융기관[괄호]
제1금융권[괄호]
국가기관
동부산우체국 (5)
국책은행
중소기업은행 (2)
특수은행
농협은행(중앙회) (2)
시중은행
신한은행 (2)
우리은행 (2)
SC제일은행 (1)
하나은행 (2)
국민은행 (3)
지방은행
부산은행 (6)
경남은행 (1)
제2금융권(상호금융)[괄호]
농업협동조합
부경양돈농협 (1)
새마을금고
초량새마을금고 (2)
초량4동새마을금고 (1)
초량3동새마을금고 (1)
수정새마을금고 (1)
수정2동새마을금고 (2)
동구중앙새마을금고 (3)
범곡새마을금고 (3)
부산동구새마을금고 (2)
부산진시장새마을금고 (1)
부산자유시장새마을금고 (1)
신용협동조합
부산장우신용협동조합 (1)
청십자신용협동조합 (1)
맥켄지신용협동조합 (1)
부산동부신용협동조합 (1)
부산택시신용협동조합 (1)
부산은행신용협동조합 (1)
철도노조부산지부신용협동조합 (1)


7. 관광[편집]


초량동

수정동
  • 정란각 [14]
  • 수정전통시장

좌천동
  • 좌천동 가구거리
  • 증산공원 - 전망대
  • 부산진 일신여학교
  • 매축지마을
  • 경사형 엘리베이터

범일동
  • 부산진시장
  • 이중섭 전망대
  • 조선통신사 역사관
  • 친구의거리 [15]
  • 범일 골목시장
  • 안창마을


8. 생활문화[편집]



8.1. 교육[편집]






파일:동구(부산광역시) CI.svg 부산광역시 동구 고등학교

[ 펼치기 · 접기 ]
※: 자사고, ⊙: 자공고, ▣: 특목고, ◈: 특성화고, 이외 일반고

남자고등학교
,
여자고등학교
,
이외 남녀공학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고등기술학교 ·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 틀 둘러보기



초등학교 개수가 7개로 극히 적은데 이마저도 2021학년도에 좌성초등학교가 범일초등학교와 통폐합되어 6개로 줄어들게 된다.원도심의 비애… 졸업식이 폐교식 된 좌성초등 이는 유·소년층 인구 비율이 낮아 학령인구가 적은 동구 지역이며 학교 대부분이 수정동 산복도로 인근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중앙대로 연선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초량초등학교 단 한 곳 뿐이다.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큰 학교가 범일초등학교로 이마저도 산복도로 초입 부분에 위치해 있다.

중학교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모두 단성학교로 남녀공학 중학교가 하나도 없다. 본래 여자중학교 3개, 남자중학교 3개가 있었지만 부산금성중학교의 폐교로 남자중학교가 2개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학생 수가 적은 학교를 남녀공학으로 형간전환시키라는 요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네 곳이 모두 단성학교로 남녀공학 일반계가 단 하나도 없다. 때문에 남녀공학 일반계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다른 구에 위치한 학교로 가야 한다.[16] 동구의 고등학교 배정구역이 남구, 부산진구와 통합되어있다 보니, 남구나 부산진구쪽 고등학교로의 배정도 가능하다.

대학교로는 한국해양대학교 다운타운캠퍼스(초량동 국제오피스텔)가 있지만 계약학과 및 평생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라 일반학생과는 상관없다.


8.2. 공동주택[편집]


1960년대 준공된 수정아파트, 좌천시민아파트, 문화아파트가 있다. 이후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북항재개발로 인해 범일동, 초량동, 수정동, 좌천동 일대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대거 건설되고 있다.

자세한 건 공동주택/목록/동구(부산) 참고.


8.3. 의료기관[편집]


김원묵기념봉생병원(417병상)이 구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부산 특성상 대학병원이 아닌 중견 규모 종합병원이 상당히 많은데, 그 중 하나이며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다. 동구를 지역구로 5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직을 역임한 정의화 전 의원이 이 병원 김원묵 설립자의 사위이자 의사로서 이 병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이사장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부인이자 병원 설립자의 딸이 하고 있다.

이 외에 좋은문화병원(293병상), 일신기독병원(151병상) 등이 있다.


9. 정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동구(부산광역시)/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하위 행정구역[편집]


파일:attachment/동구(부산)/map5.jpg[17]


10.1. 초량1동, 초량2동, 초량3동, 초량6동[편집]


관할 법정동은 초량동이다. 부산역과 그 맞은 편 산자락에 있는 동네이다. 1동과 2동에 걸쳐 차이나타운과 러시아인 밀집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 초량1동: 인구 4,876명,[P] 초량차이나타운, 초량초, 부산화교중/고
  • 초량2동: 인구 5,371명,[P]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텍사스거리
  • 초량3동: 인구 12,745명,[P] 경부선 부산역, 재부산일본총영사관, 부산과학체험관,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메리츠타워, 아스티호텔 부산, 부산국제영화고
  • 초량6동: 인구 5,529명,[P] 부산중, 선화여중, 부산고, 부산컴퓨터과학고


10.2. 수정1동, 수정2동, 수정4동, 수정5동[편집]


관할 법정동은 수정동이다. 동구 달동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
  • 수정1동: 인구 3,996명,[P] 동구노인종합복지관, 동일중앙초, 경남여중, 부산서중
  • 수정2동: 인구 9,393명,[P] 동구청, 부산동부경찰서, 부산진세무서, 수정산가족체육공원, 수정초
  • 수정4동: 인구 3,604명[P]
  • 수정5동: 인구 4,948명[P], 수성초, 부산동여중, 경남여고


10.3. 범일1동, 범일2동, 범일5동[편집]


관할 법정동은 범일동이며, 범일5동은 법정동 좌천동(일부)도 관할한다. 경부선을 기준으로 서쪽에 1동이 있으며, 2동이나 5동과는 생활권이 다소 다르다.
  • 범일1동: 인구는 11,251명.[P] 경부선 서편에 있으며 전형적인 동구 산동네 느낌이 난다. 한때 범일동 판자촌에 살았던 이중섭을 기리는 이중섭거리가 있다. 수정산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창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학교는 범일초, 데레사여고가 있다.
  • 범일2동: 인구는 7,689명.[P] 자유시장, 현대백화점 부산점, 부산시민회관, 부산진성공원, 좋은문화병원이 있고 동 남쪽에 미군의 55보급창이 있다. 범일교차로에서 범일역까지 동천을 따라 업무지구 역할을 하고 있어서 기업들의 부산지사가 많이 있다. 학교는 성남초가 있다.
  • 범일5동: 인구는 5,882명.[P] 주거지가 자성대교차로의 서남쪽 블럭에 조금, 경부선 부산진역 뒷쪽에 조금 있고 나머지는 다 항만과 공장시설이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이 있으며 부산항 자성대부두(허치슨포트)가 있다.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2,040세대)가 2023년 5월 준공되면서 인구가 반등하고 있다.


10.4. 좌천동[편집]


관할 법정동은 좌천동(일부)이다. 인구는 11,525명.[P]

수정터널부산진구중앙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일신기독병원, 김원묵기념봉생병원 등 동구 주요 병원들이 좌천동에 있다. (단 좋은문화병원 제외. 이쪽은 범일동이다.) 중앙대로를 제외하고는 죄다 산복도로에 왕복 4차선 도로가 하나도 없는 동네. 증산공원 내 증산왜성이 있다. 학교는 금성고가 있다.


11. 사건사고[편집]



11.1.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 사건[편집]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동구(부산광역시) CI.svg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l_2017021901002513600207101_99_20170219133103.jpg
파일:external/blogfiles1.naver.net/20170219000174_0.jpg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28090107_DSC_8065.jpg
출처 민중의소리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6122818276493650.jpg
출처 중앙일보 부산 동구청 직원들이 강제 철거 하고 있는 현장

원래 무허가 불법 설치로 인해 구청에서 철거했으나, 강제 철거를 강행하자 이에 친일 매국 행위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겉잡을수 없는 반발 여론이 발생하여 철거 반대 시위와 항의가 계속되었고, 이후 동구청에서 인근에 위치한 정발장군공원에 건립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반발 여론이 걷히지 않아 결국 동구청장이 소녀상 건립을 막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합법 설치되었다.


2016년 12월 28일에는 서울 대사관에 이어서 또다른 주한 일본국 외교공관인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도 설치를 추진했으나, 박삼석 동구청장의 지시로 대치 끝에 소녀상이 다시 철거되고 관련자가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관할지인 부산 동구청에서는 소녀상이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설치되어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소녀상을 철거되었다고는 하지만 반응은 좋지가 않다. 이전부터 시민단체가 2016년 1월부터 꾸준히 주장을 하고 설치 허가를 받으려 했지만 동구청은 ‘도로를 점용할 수 있는 공작물과 시설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계속 불허하였다가 결국 해당 단체에서는 기습적으로 설치와 제막식을 하게된것이 지금의 사건을 낳았다. 물론 시민단체가 법을 어기고 기습적으로 법적 허가 없이 설치를 하게 된 것은 잘못이지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산 동구청은 반년전 이렇게 인도를 점유하고 있는 625 피란민 행렬 조각상 설치를 허가하였다는 거다.[18] 물론 불법적 조각상 설치를 관례로 삼아 또 다른 사전에 허가를 득하지 아니한 고로 불법적인 영조물의 설치를 정당화 하는 행위는 명분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지양 되어야 한다. 이와 별개로 동구청은 하루 종일 시민들의 비난 전화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고 홈페이지까지 다운되었다. 게다가 공무원 노조 또한 자신들을 일본에 부역자로 만들었다면서 강하게 분노했다.#, # 분노의 문의글들여기서 새올전자민원을 클릭하면 나온다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0161228120857753984.jpg
출처 노컷뉴스

다음날인 12월 30일에도 항의가 폭주하자 견디지 못한 동구청은 기자회견을 열었고 거기서 박삼석 동구청장이 '이 문제는 자치단체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밝히며 사과하고 소녀상을 다시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31일에 소녀상을 다시 설치했다. 이 사건의 후폭풍 중 하나로 동구에서는 당시 현직이던 박삼석 구청장이 낙선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최형욱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19]


11.1.1. 일본 정부의 반응[편집]


#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소녀상 설치 이후, 일본 정부는 한일 통화 스와프 협의를 전면 중단하고 주한 일본 대사와 일본 영사관장을 일시 귀국시키는 초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20]

통상 외교적으로 유감스러운 사안이 발생할 경우 주재국 정부가 대사 등 해당국 외교사절 책임자를 불러 항의하는 초치(招致)를 하곤 한다. 그런데 초치 단계를 건너뛰고 곧 바로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은 예상 밖의 강경 조치란 게 외교부 반응이다.[21]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각료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에 소녀상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했지만 현 시점에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았다. 재작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준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규정한 영사 기관의 위엄을 침해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는 소녀상을 조기에 철거하도록 계속 한국 정부 및 관계 자치단체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말한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규정한 영사 기관의 위엄을 침해하는 것'은 아래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22조 2항' 에 따른 내용으로 해석된다. (dignity 는 일반적으로 '위엄'으로도 번역된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 22조

2.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하여도 공관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

2. The receiving State is under a special duty to take all appropriate steps to protect the premises of the mission against any intrusion or damage and to prevent any disturbance of the peace of the mission or impairment of its dignity.


이는 한일간 합의한 아래 내용과 서로 상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中

②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역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전화 통화하여 부산 소녀상과 관련해 "한·일 정부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며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시행해 나가는 것이 계속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날 새벽 워싱턴에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며 착실하게 이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로, 나가미네 대사와 모리모토 부산총영사는 1월 9일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였다. 그리고 아베 신조의 동남아 순방 이후 17일 이후 귀임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보류했다. 그리고 조기대선이 확정되고 북한의 핵실험이 현실화가 되고 있고, 이번 행동으로 인해 아베의 지지율도 나름 올라서 4월 4일에 다시 귀임했다

그러나 일본도 그렇게 외교적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가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소환과 관련해 아베 신조 총리 등 관저의 판단을 비판했다고 하며, 이 같은 행동이 한국측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해 문제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통상적인 인사 절차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사석에서 한 문제 될 것 없는 발언을 언론사 기자가 "정권비판"이라며 왜곡해 고위 당국자에게 알린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1.2. 초량천 복원사업[편집]


2010년 5월, 동구는 서울의 청계천 복원사업을 벤치마킹하여 초량천 구간 중 하류구간인 하나은행 초량동지점~동일중앙초등학교 구간을 복원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최초 계획을 수정해 하나은행 초량동지점~부산고등학교 구간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설물 이전, 보상 및 건물철거를 진행 후 2015년 4월 공사를 시작하여 2018년에 완공하기로 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공사가 장기화 되었다. 결국 동구는 사업을 2단계로 나누어 2021년 9월, 1단계 구간인 하나은행 초량동지점~초량육거리 구역을 우선 완공하고 2단계 구간인 초량육거리~부산고등학교 구간은 예산이 확보되는데로 공사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이 장기화되고 코로나-19로 인해 초량천 일대 상인들은 몇 년째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있다고 항의를 하고 있으며 부산고등학교 회전교차로는 설계가 잘못되어 다시 설계를 해야하는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구의 무리한 하천복원을 진행하여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1.3. 북항재개발 행정구역 소송[편집]


최초 행정구역을 결정할 때 중구는 영주고가도로를 기준으로 반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 동구는 북항재개발 내 모든 구역[22]은 동구로 편입을 해야한다고 주장을 했다. 이 때부터 동구와 중구간의 행정구역 조정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동구는 여론을 의식하여 2부두를 기준으로 중구와 동구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수 차례 법정 다툼 끝에 중구의 안이 최종 반영되어 영주고가도로를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어졌으나 동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강력 항의하여 다시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밝혀 대법원으로 갔다. 하지만 결국 패소하여 중구의 행정구역 안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1.4. 구청장 아들 박사학위취득 축하 현수막[편집]




구청장 아들의 의학박사학위취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서 논란이 되었다.


12.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편집]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곳 출신의 정치인들과 스포츠 선수가 월등히 많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1980년대의 명문고 부산고등학교 (야구 명문) 와 경남여자고등학교 (배구 명문) 가 바로 이 동구에 있기 때문.

대표적으로 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유명해진 3허 중 허삼수, 허문도가 이 곳 출신이며, 육군 대장 신말업과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진영 등 군부 인맥도 상당하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를 비롯해 롯데 자이언츠의 양대 인맥도 형성하고 있고, 마해영, 장원준, 손민한, 정근우, 주형광, 진갑용, 손아섭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선수들도 즐비하다.



13. 자매도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21:41:36에 나무위키 동구(부산광역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4개 법정동, 12개 행정동[2] 2023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3] 동구 가선거구 (초량제1동, 초량제2동, 초량제3동, 초량제6동, 수정제1동, 수정제2동, 수정제4동): 김재헌, 이상욱
동구 나선거구 (수정제5동, 좌천동, 범일제1동, 범일제2동, 범일제5동): 허근형, 안종원
비례대표: 김미연
[4] 동구 가선거구 (초량제1동, 초량제2동, 초량제3동, 초량제6동, 수정제1동, 수정제2동, 수정제4동): 이희자
동구 나선거구 (수정제5동, 좌천동, 범일제1동, 범일제2동, 범일제5동): 김희재
[5] 동구 제1선거구 (초량제1동, 초량제2동, 초량제3동, 초량제6동, 수정제1동, 수정제2동, 수정제4동): 강철호 (초선)
동구 나선거구 (수정제5동, 좌천동, 범일제1동, 범일제2동, 범일제5동): 황석칠 (초선)
[6] 왜 동부가 아니라 중부인지는 바로 아래의 '역사' 문단 참조.[7] 비슷한 예로 인천의 동구가 있다.[8] 신항이 아닌 북항[9] 동해선 좌천역기장군에 있다.[10] 동해선 범일역부산진구에 있다.[11] 엄연히 여기가 본사다. 서울 여의도는 지점. 그러나 한국거래소 본사는 2014년남구 문현동 문현금융단지(부산국제금융센터)로 이전하였다.[12] 27층으로 산복도로 방향으로 서울역 앞 우빌딩과 같이 건물 전면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13] 과거 부산에서 설립된 럭키생명이 LIG생명, 우리아비바생명등을 거쳐 현재는 DGB금융지주에서 인수. 근데 여기는 다들 알다시피 부산이 아니라 대구 연고 그룹이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4] 일제강점기 지어진 고급 일본식 주택, 아이유 밤편지 뮤직비디오 촬영지[15] 영화 친구 촬영지[16] 그나마 가장 가까이 위치한 학교가 부산진구에 위치한 가야고등학교나 남구에 위치한 분포고등학교, 서구에 위치한 부경고등학교다.[17] 위 지도에서 좌천4동과 범일4동은 각각 좌천1동(현, 좌천동), 범일1동과 통폐합이 된 상태이다.[P] A B C D E F G H I J K L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18] 거기에 경찰을 1개중대씩이나 투입하여 설치자측을 강제 연행하고 이전부터 관용차까지 동원하여 1인 시위를 하는 시위자를 가리는 등 동구청 측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또한 법대로 철거하였다면서 반환 요구는 묵살했고 소녀상은 야적장 한켠에 거적에 씌워서 방치해 버렸다.[19] 물론 이 사건만의 영향은 아니고 2018년 당시 선거 판세는 범여권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최형욱 본인도 원래 한나라당 출신이었다.[20] '대사 귀국' 은 '국교 단교'의 직전단계에 해당한다.[21]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조치로, 우리도 이 정도 수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22] 중구에 위치한 1부두, 2부두, 연안여객터미널, 부산세관, 부산항만공사 포함[23] 지역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