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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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動
국악의 한 곡으로 향악에 속하는 악곡이다. 고려시대부터 동동무(動動舞)에 쓰였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관악합주곡으로 연주된다.
악보는 《대악후보》, 가사는 《악학궤범》에 전하고 있다. 악보와 가사가 따로 전해지기에 가락은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으나 가사 배치는 완벽하게 복원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음계가 林이 으뜸음이 되는 계면조 선율이라서 세가락 정읍[三指井邑]이라고도 불린다. '세가락(삼지, 三指)'은 악학궤범에 나오는 조(調)의 이름으로 林이 으뜸음이 되는 계면조 선율을 뜻한다. 반면 똑같이 정읍(井邑)이라는 이름을 지닌 악곡 수제천의 경우에는 빗가락 정읍[橫指井邑]으로 南이 으뜸음이 되는 남려계면조이다.
장단은 총 8장단이며 한배가 불규칙하게 연주된다. 악기 편성은 수제천과 같이 피리, 당적, 대금, 해금을 비롯하여 아쟁, 장구, 북, 박을 갖춘다. 또한 수제천과 같이 피리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쉬는 동안 나머지 악기들이 선율을 이어가는 연음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악기 편성이나 여음은 두 곡이 같다고 대악후보에 전한다. 또한 악보에서 북 2회의 연타(連打)가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 북소리를 의성화하여 동동(動動)이라 불렀다는 설도 존재한다.
고려가요로써의 동동은 전편 1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머리의 서장(序章)을 제외하고는 임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을 달거리 형식, 즉 한 해 열두 달의 순서에 따라 노래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느 민요의 달거리가 그렇듯, 동동에서도 달마다 당시의 세시풍속을 노래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만 4월령, 10월령, 11월령과 같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확실한 달도 있어 다른 민요의 달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동동이 본래는 정초에 그해 매달의 운수를 점쳐보는 달불이[月滋]와 같이 그 달의 운수를 점치는 의식의 일종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존재한다.
[각주]
動動
1. 개요[편집]
국악의 한 곡으로 향악에 속하는 악곡이다. 고려시대부터 동동무(動動舞)에 쓰였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관악합주곡으로 연주된다.
악보는 《대악후보》, 가사는 《악학궤범》에 전하고 있다. 악보와 가사가 따로 전해지기에 가락은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으나 가사 배치는 완벽하게 복원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음계가 林이 으뜸음이 되는 계면조 선율이라서 세가락 정읍[三指井邑]이라고도 불린다. '세가락(삼지, 三指)'은 악학궤범에 나오는 조(調)의 이름으로 林이 으뜸음이 되는 계면조 선율을 뜻한다. 반면 똑같이 정읍(井邑)이라는 이름을 지닌 악곡 수제천의 경우에는 빗가락 정읍[橫指井邑]으로 南이 으뜸음이 되는 남려계면조이다.
장단은 총 8장단이며 한배가 불규칙하게 연주된다. 악기 편성은 수제천과 같이 피리, 당적, 대금, 해금을 비롯하여 아쟁, 장구, 북, 박을 갖춘다. 또한 수제천과 같이 피리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쉬는 동안 나머지 악기들이 선율을 이어가는 연음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악기 편성이나 여음은 두 곡이 같다고 대악후보에 전한다. 또한 악보에서 북 2회의 연타(連打)가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 북소리를 의성화하여 동동(動動)이라 불렀다는 설도 존재한다.
고려가요로써의 동동은 전편 1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머리의 서장(序章)을 제외하고는 임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을 달거리 형식, 즉 한 해 열두 달의 순서에 따라 노래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느 민요의 달거리가 그렇듯, 동동에서도 달마다 당시의 세시풍속을 노래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만 4월령, 10월령, 11월령과 같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확실한 달도 있어 다른 민요의 달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동동이 본래는 정초에 그해 매달의 운수를 점쳐보는 달불이[月滋]와 같이 그 달의 운수를 점치는 의식의 일종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존재한다.
2. 가사[편집]
3. 여담[편집]
- 동동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요,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제의가로 보는 견해,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가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복합적 성격에서 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본래 민속과 관련된 단순한 민요 혹은 제의 때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 궁중악으로 채택되면서 서정적인 노래로 변모했다고 보기도 한다.
-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해설이 실려 있다.
춤추는 대열[舞隊]과 악관(樂官) 및 기녀의 의관(衣冠)과 항차(行次)는 앞의 의례와 같다. 기녀 2인이 먼저 나가서 북쪽을 향하여 좌우로 나누어 서서, 두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떼어 춤을 추다가 절을 하고 나서 엎드린다. 일어나서 꿇어앉아 아박(牙拍)을 받들고 「동동사(動動詞)」의 첫 번째 구(句)를 창(唱)한다.【때로는 아박이 없기도 한다.】 모든 기녀가 따라서 합창하고, 향악(鄕樂)으로 그 곡을 연주한다. 두 기녀가 꿇어앉아서 아박을 띠 사이에 꽂고 음악의 1강(腔)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어나서고, 음악의 2강이 끝나면 두 손을 모으고 춤을 추고, 음악의 3강이 끝나면 (띠 사이에 꽂았던) 아박을 뽑아서 한 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뒤로 물러났다 하는데, 한 번은 마주보고 한 번은 등지며, 음악의 절차에 따라 왼쪽을 보기도 하고 오른쪽을 보기도 하고, 혹은 무릎으로 혹은 팔로, 서로 치면서 춤을 춘다. 음악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두 기녀는 앞에서 했던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떼어 춤을 추다가 절을 하고 나서 엎드렸다가 일어서서 물러난다.비록 간략하긴 하지만 고려시대 동동무(動動舞)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동동이라는 놀이는 그 가사에 경사를 기리고 축하하는 말이 많은데, 대개 선어(仙語)를 본떠 지은 것이나 가사가 이어(俚語)이므로 싣지 않았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 中 동동(動動)
- 가사는 쌍화점, 만전춘같은 다른 고려가요보다는 수위가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전히 남녀 간의 사랑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남녀상열지사로 비판받기도 했으며, 결국 중종 대에 와서 정읍사와 함께 폐기되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의 '소호동동다리'는 이 고려가요의 후렴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고려사》 〈악지〉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후기 소호동동다리의 인근 지역인 장생포에서 시중(侍中) 유탁(柳濯) 장군이 왜구를 무찌르자, 군사들이 기뻐하며 〈장생포곡(長生浦曲)〉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는 군사들이 부른 노래를 〈동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다리의 이름을 확정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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