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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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4. 여담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4년 11월 25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뭘 했는지 이력이 거의 추적되지 않는다. 그나마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에 따르면 원래 조선인민군 지휘관으로 일하다가 제대한 이후 림업 테크노크라트로 당정에서 경력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1980년 1월, 로태석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82년 10월 2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보낸 림업로동자절 20주년 축하문 전달모임에서 김봉주와 함께 '관계부문 일군'으로 등장했다. 1982년 7기 최고인민회의가 출범했을 때는 림업부가 없었는데 1982년 말부터 림업부의 존재가 보도되는 것을 보면 초대 림업부장에 임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림업부장 재임 중이던 1984년 2월 11일 8시에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서 소련으로 가던 조선민항기가 추락해서 죽은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검증되진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부고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었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김원빈 사고사보다는 믿을 만하다.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은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민광동지는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동지는 다년간 인민군대의 지휘관으로 조국과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으며 림업부장의 중책을 맡은후 당의 림업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 사업하였다. 동민광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괜찮게 평해주었다. 후임 림업부장에는 부부장 김재률이 임명되었다.

이후 시신은 림업부장 직함으로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


4. 여담[편집]


광천 동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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