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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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공(盧光公)을 교조로 하여 창시된 기독교계 사이비 종교. 성경 외 노광공을 신격화하는 경화록(慶和錄)이라는 경전이 있다.


1. 발생[편집]


노광공은 1914년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면서기를 하다가 경찰이 되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등 민족 반역자였다. 광복 후 몇 달 되지 않아 월남하여 교사, 군인 등 몇몇 직업을 전전하다가 천부교 박태선을 따르게 되었다. 천부교 신자로 지내다가 1956년 천부교를 탈퇴해 세칭 동방교라는 사이비종교를 조직했다.


2. 설명[편집]


이 종교는 창립 초창기부터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거나 과도한 헌금을 요구[1]하는 등 사이비 종교다운 행태를 일삼았다. 1959년에는 교주 노광공이 미성년자 간음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었다. 1967년 교주 노광공이 사망하고 교단 내 전체의 지지를 받지 못한 양학식이 제2대 교주가 되면서 잠시 분열이 일어났으나 노광구의 차남 노영구[2]가 1968년 제3대 교주로 추대되면서 내분을 수습했다. 노영구는 1969년에는 교단 이름을 '기독교대한개혁장로회'로 변경하고 재단법인으로 문공부에 인가받았다.

실제 그리스도교와는 교리상 거리가 멀면서 기독교를 참칭하는 이런 행태는 당시 개신교계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관련 대책위원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이렇게 60-70년대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며 나름 유명세(?)를 떨쳤지만 1978년 개신교계 대응운동의 성과로 대법원으로부터 재단법인 인가취소를 받았고 지하로 잠적했다. 이렇게 세간에서 잊혀지고 제3대 교주 노영구는 도피하듯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노영구는 미국에서 계속 교단을 원격지휘했고, 어느새 다시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세는 1970년대에 비해 크게 줄어서 신자 대부분은 장·노년층이다. 교단 운영도 폐쇄적이어서 소속 교회는 주일에도 문 앞이나 옆의 벨을 누르고 누구인지 신원을 확인하고서야 들어갈 수 있다. 신자들로부터 '치성'받은 돈으로 청남[3]문화관 등 건물을 여럿 지었다.


3. 참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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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로서는 거액의 헌금을 신도들에게 요구했는데 이를 '치성'이라고 불렀다 한다.[2] 2003년 미국에서 사망[3] 제1대 교주 노광공의 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