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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董白
?[1]~192년
1. 소개
2. 생애
3. 미디어 믹스



1. 소개[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자 동탁의 손녀로 양주 농서군 임조현 사람.

보통 고대에는 여성 인물은 기록에 남더라도 성씨 외에 이름은 언급이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사정으로 정사에선 손부인으로만 언급되고 후대 경극에서 '상향' 이라는 이름을 창작한 손상향이나, 마찬가지로 여포의 딸이라는 것 외에 이름이 불명인 여씨코에이여령기라는 이름을 붙인 사례와 다르게, 드물게도 실제로 정사에서 '동백' 이라는 본명이 언급되는 당대 여성 인물 중에 한 명.


2. 생애[편집]


190년,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하고 나서 친족들에게 미친듯이 관직을 함부로 뿌리면서 잠깐 언급된다.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로부터 위양군에 봉해져 영지를 하사 받았다.

동탁의 시첩(侍妾)들이 품에 안고 있는 자식들(갓난아기)이 모두 후(侯)로 봉해지니 금자(金紫)를 가지고 놀았다. 손녀의 이름은 백(白)으로 아직 비녀를 꽂지 않았으나 위양군에 봉해졌다. 미성 동쪽에 단을 세우니 너비 2장 남짓에 높이 5~6척이었다. 동백을 금화청개거에 타게 하고 도위, 중랑장, 자사와 1천석 관원으로 미성에 있던 자들을 각기 수레에 타고 붓을 머리에 끼워 동백을 위해 앞뒤에서 수종하게 하고는, 단 위로 올라가서 형의 아들인 동황을 시켜 사자가 되어 인수를 주게 했다.
- 삼국지 위서 동탁전 주석 영웅기

비녀를 꽂는다는 것은 여성의 성인식인 계례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계례를 치르는 나이는 원칙적으로 15세. 즉 동백은 당시 15세도 안 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여러 미디어믹스에서 어린 나이로 묘사되는 건 일리가 있는 편. 금자는 금인자수 즉, 금 관인과 자주색 인끈으로 열후가 하사받던 것으로 나이가 워낙 어리다보니 열후임을 증명하는 권위의 물건인 도장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소리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동백도 이렇게 열후에 봉해져 기록에 이름을 남겼는데 정작 동백의 아버지, 그러니까 동탁의 아들은 이름조차 어디에도 안나오는 것으로 볼때 이 시점에서 이유는 몰라도 이미 죽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92년,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고 삼족이 멸해진다.(〈동탁전〉) 한나라의 법률상 반역죄로 연좌될 때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참수하는 만큼 동백도 다른 동씨 일족들과 함께 참살된 것으로 보인다.


3. 미디어 믹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동백/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조부 동탁에 의해 작위를 받았던 190년 당시 '비녀를 꽂지 않았다', 즉 계례(여성의 성인식)를 치르지 않았다는 기록을 통하여 176년 이후 출생일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계례는 통상 15세 무렵에 치렀으니, 190년 당시 동백이 15살이 안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