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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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제작 배경
3. 한국판 성우진(KBS)
4. 기타



1. 개요[편집]




한국 비디오테이프 예고편(...)

동성서취 (射鵰英雄傳之東成西就: The Eagle Shooting Heroes, 1993)

제작 왕가위, 감독 유진위에 한 번 놀라고, 당대 홍콩의 톱스타들을 총망라한 화려한 캐스팅에 한 번 더 놀라고, 영화를 직접 보고 나서는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한 번 더 놀라게 되는 전무후무한 막강 멤버막장 홍콩 코미디 영화. 설날 특수를 노려 제작되었다.

제작팀의 본 작품에 해당하는 동사서독과 비교하자면, 동사서독은 황약사와 구양봉이 예술적으로 궁상 떠는 영화고, 동성서취는 코미디를 하면서 궁상 떠는 영화다. 하지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정반대로 동사서독의 고급스러운 영상과 무겁고 난해한 이야기를 보다가 동성서취의 쌈마이스러운 화면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보면 누구라도 정신이 탈출할 것이다.


2. 제작 배경[편집]


1988년 개봉한 왕가위의 첫 작품 열혈남아가 흥행에 성공하자, 그를 발굴한 홍콩 영화계의 큰손이자 삼합회의 간부인 등광영은 엄청난 제작비와 더불어 장국영, 양조위,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홍콩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을 구상하고 왕가위에게 감독을 맡겼다.

하지만 제작자인 등광영이 사사건건 간섭하며 찍은 자신의 데뷔작을 못마땅해 했던 왕가위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을 자신만의 예술영화로 연출했고, 흥행에 참패했다(...)[1] 아비정전이 실패하자 제작자 등광영은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등광영이 '조직은 영화판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칙을 깨고[2] 제멋대로 영화를 만든 왕가위를 손봐주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등광영은 1993년 영화판을 떠났고 2011년 과체중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아비정전으로 홍콩 영화계의 거물 등광영을 물먹인 상황에서,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한 왕가위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제대로 선보이고자 영화계 입문 시절부터 친구였던 각본가이자 감독인 유진위, 아비정전의 촬영감독을 맡은 유위강[3] / 크리스토퍼 도일, 미술감독 장숙평, 무술감독 홍금보 등과 손을 잡고 평소 삼합회에 반감이 있었던 홍콩의 톱스타들과 함께 인기 무협 소설가 김용사조영웅전을 바탕으로 동사서독이라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2년부터 시작된 동사서독의 촬영은 제작비 부족과[4] 왕가위 특유의 계획성 없는 제작 방식 때문에 계속 중단되곤 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배우들이 다작(多作)을 하던 시기인지라 스케쥴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각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5][6] 이에 양가휘가 대표로 나서서[7] 참고 참았어도 계속되는 이런 제작방식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상당수 배우들은 하차를 생각할 정도로 촬영장 분위기가 아주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유진위 감독은, 동사서독 촬영 때문에 모인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사막 벌판에서 허망하게 촬영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이렇게 계속 배우들을 대기 상태로 놔둘 수는 없었는지[8] 1993년 설날 특수를 노려서 동사서독의 제작비도 충당할 겸 그들을 데리고 한 달 동안 명절날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 한 편을 서둘러 만들어냈다. 이렇게, 동성서취는 날림으로 제작되었고 석 달만에 개봉했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 영화를 보면 열혈남아, 아비정전,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에서 영상미의 절정을 선보인 왕가위를 비롯하여 왕가위 사단의 유위강[9]이 제작 편집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영상 수준이 터무니 없다. 1980년대 일본특촬물을 보는 느낌이 날 정도. 의상 역시 동사서독화양연화의 미술과 의상을 담당한 미술감독 장숙평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어린이용 연극 의상 수준을 보여 준다. 그 와중에 무술신은 어마어마한 고퀄리티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결투를 벌이는 등, 홍금보가 지휘한 호쾌한 홍콩식 와이어 액션을 실컷 볼 수 있다.

캐스팅과 연기도 그야말로 막장이다. 장학우(홍칠공)은 공주병 환자인 왕조현(소사매)한테 못생겼다고 차인 뒤에 죽겠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렸고[10], 남자만 보면 찝적대는 음란마귀남 유가령(주백통)[11]에 정혼자 임청하(삼공주)가 있음에도 인연을 강조하고 여장쇼를 선보이며 장국영(황약사)에게 들이대는[12] 양가휘(단황야), 온갖 굴욕과 몸개그짤방공장 수준으로 뽑아내는 양조위(구양봉)까지 보다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특히 스스로 자진하여 더욱더 망가뜨려 달라고 사전에 요구한 두 명의 양씨 성을 가진 배우그간 쌓아온 섹시하고 진지한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진심을 다해 망가지는 열연은 이 영화의 백미![13] 게다가 모든 배우들은 대사를 일부러 조잡한 후시녹음으로 한 번 더 더빙했다.

하지만 애초에 컨셉부터가 일부러 날림으로 낄낄대며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영화였던 만큼, 동사서독의 스태프와 배우들은 동사서독 촬영이 중단된 동안 동성서취를 놀면서 촬영하며 동사서독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풀었고[14], 그렇게 만들어진 동성서취는 흥행에 대성공했으며 심지어 본편이라 할 수 있는 동사서독흥행으로 이겼다. 뭐, 동사서독 자체가 매우 난해한 작품이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15] 흥행성적은 그해 상반기 개봉작들 중에서는 수위에 들지만, 1993년 개봉작 중에서는 총 수입액이 2300만 홍콩달러로 박스오피스 20위권내에 들었다. 출연진의 지명도를 생각하면 흥행성적은 다소 아쉬운 수준.[16]

동성서취가 대성공한 덕분에 왕가위 감독을 비롯한 동사서독 제작팀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고 동사서독은 끝까지 제작될 수 있었다. 만약 동사서독의 촬영이 끝내 엎어졌다면, 왕가위홍콩 영화판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만들고 충무로에서 사라진 장선우 감독 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왕가위 입장에서도 동성서취의 성공은 다행이라고 해야할 일이 아니었을까?

한편, 동사서독의 지지부진한 촬영과 편집에 스스로도 지친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 촬영을 잠시 접고 홍콩에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 심심풀이 삼아(?) 영화 한 편을 따로 찍었는데, 그게 왕가위의 글로벌 출세작인 중경삼림이다.

더 재미난 사실은 동사서독의 난해함 때문에 중경삼림과 동성서취가 대중들에게 더 유명하다는 점. 동사서독에 캐스팅되었지만 유부남과의 스캔들로 결국 하차했던 왕조현동사서독 제작이 멈춘 동안 만들어진 동성서취에는 출연했다.

3. 한국판 성우진(KBS)[편집]




4. 기타[편집]


1993년 동사서독 제작이 완료된 후, 대중들에게 그저그런 코미디 스타로만 비춰지는 것과 삼합회의 간섭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당시 최고의 코미디 스타 주성치가 그의 코미디 데뷔작이자 히트작인 도성을 감독한 유진위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동사서독을 보고 자극받은 유진위가 주성치를 지원해 줄 겸 자신의 커리어를 변화 시킬 야심으로 주성치와 그의 여자친구 주인을 캐스팅하여 서유기를 바탕으로 코믹과 멜로를 섞은 영화를 만들게 된다.

이후에도 왕가위 감독이 영화 2046을 제작하던 중 이전처럼 촬영 기간이 길어져 출연 배우들이 지치자 결국 유진위 감독은 양조위, 왕페이, 조미, 장첸 등의 출연배우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역시 막장 코믹 무협인 천하무쌍이라는 영화를 제작해야만 했다.

개봉당시 홍콩에서는 평가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으나 그래도 코미디 영화의 본분에 충실했다는 호평이 있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저질 3류 영화'라는 악평이 자자했다. 이는 명절용으로 반쯤 일부러 조악하게 급조한 코미디의 맥락을 이해받는 홍콩 현지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런 것 없이 왕가위 사단이 제작, 촬영, 감독했다는 점에만 주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8] 아울러 코미디 장르 자체가 문화의 벽을 넘기 힘든 탓도 있다.[19]

무협영화 붐 끝물에 등장한 이 영화는 정말이지 유치찬란하다. 조악한 괴물 캐릭터, 하나도 우습지 않은데도 무척 우스운 영화를 보여준다는 표정의 배우들, 역겨운 양가휘 여장연기까지 너무너무 괴롭다.

이동진, 1998년 6월 27일자 기사[20]


그래도 홍콩영화팬들에겐 더 없는 선물과 다름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저 정도 위치에 있는 배우들을 지금 배우들 중 대체할 배우가 전무하고 당시 배우들을 모아서 다시 찍고 싶어도 한명은 20년 전 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두 명의 여배우들은 이미 은퇴를 했다.

양조위와 왕조현은 코믹연기가 너무 어려워 주성치식 코미디 연기를 차용했었어야 했다.[21] 특히나 양조위는 이미 몇 편의 작품에서 코믹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미디 연기를 어려워했는데, 그만큼 코미디 연기가 연기하기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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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당시 홍콩 영화의 흥행 성공 조건이 1000만~1500만 홍콩달러인지라, 960만 홍콩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여 크게 실패한편은 아니다.[2] 평소 영화 애호가이던 등광영은 홍콩 영화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다른 삼합회 간부들과는 달리 자신의 조직이 절대로 홍콩 영화판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무명이던 왕가위를 지원해 준 것도 왕가위의 재능에 감명을 받아서였다고 한다.[3] 유위강은 훗날 자신의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그 작품이 무간도 시리즈다.[4] 사실 제작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기보다는 왕가위가 구상하고 영화로 옮긴 동사서독의 스케일이 터무니 없이 컸던 탓이었다. 실제로 이후에 완성된 동사서독을 보면 그 영상미가 그 당시 기준으로 굉장한 수준이다. 맨 위에 주요 출연진들이 기자회견에 응한 시기는 이미 제작비가 줄어들어 촬영에 지장이 가던 시기이기도 하다.[5] 배우들의 1991년~1993년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간 출연작 수가 10편 정도다. 그래서 스케줄 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동사서독' 한편 때문에 머나먼 사막까지 왔다갔다 하는 강행군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동사서독' 촬영지가 비행기로 쉽게 왔다갔다 하는 지역도 아니고, 비행기가 자주 있는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여 헬리콥터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아주 먼 거리였다. 임청하는 당시 동방불패의 히트로 다른 대역연기자가 동사서독을 촬영하기도 할 정도로 아주 바빴다고 한다. 심지어 몇 년간 집에 못 들어간 배우도 속출했다.[6] 더 큰 문제는 왕가위 감독의 계획성 없는 제작방식과, 잘 나온 컷을 뽑기 위해 수십번이나 반복한 촬영이었다. 그 횟수가 '최소' 40회 이상이었다. 양가휘는 한 컷 당 60회 이상 반복 촬영해야 했고, 다른 배우들도 평균 4,50회는 반복 촬영해야 했다. 그래서 양가휘를 포함한 일부 배우들은 학을 뗐는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왕가위와 다시는 협업하지 않았다.[7] 양가휘와 유진위 감독과는 '92 흑장미 대 흑장미'로 배우-감독으로 협업한 적이 있어서 말이 통했던지라 본인을 포함한 배우들이 촬영 중 불편하거나 힘든 상황이 있으면 몰래 상의하고는 했는데, 왕가위 감독의 제작 방식 때문에 유진위도 전전긍긍 했었다고 한다.[8] 실제로 홍콩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이 영화 한 편 때문에 연락도 제대로 안 되는 사막에 오랜기간 갇혀지내며 살다보니 '홍콩영화판이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았었다.[9] 동사서독의 촬영담당인 크리스토퍼 도일은 이 영화에서는 빠졌다.[10] 한국식으로 치환하면 손예진정우성한테 '너 못생겨서 싫어'라고 깐 셈.[11] 양조위와 불굴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하신 그 분이며 심지어 원작에서 주백통은 주정뱅이 아저씨다. 동성서취 에서는 남자역할이다[12] 신선이 되고 싶으면 가슴에 6자 무늬 3개가 찍힌 황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세번 들어야한다는 조언을 얻었는데 그 대상이 하필이면 남자인 황약사였다.[13] 게다가 양가휘는 1인 2역이고 그의 바로 전작이 세계구급으로 유명세를 얻은 프랑스 영화 '연인'이다. 그 전에도 코믹연기를 했었고, 금상장 두번째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도 '92 흑장미..'라는 마이너 코미디영화였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다.[14] 정확하게 말하자면 낮에는 '동성서취'찍고 밤에는 '동사서독'을 찍었다.[15] 이 부분은 2015년 8월 1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뤘다.[16] 당시 홍콩영화 흥행성적 여부는 1000만~1500만 홍콩달러를 넘어야지만 성공한걸로 간주한다.[17] 삼공주, 황약사, 소사매의 사부[18]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왕가위' 이름 석자만 들어갔다 하면 무조건 고평가를 하는 안 좋은 습관이 강하다.[19] 미국의 B급 코미디 영화가 보통 한국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문화적으로 가깝다는 일본이나 중국의 코미디 장르의 작품조차 한국에서 쉽게 흥행하거나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정작 한국 코미디도 자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든데, 이는 '코미디 장르'를 너무 쉽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정서 때문이다.[20] 조선일보 재직 당시[21] 사실 이 영화에서 양가휘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 모두 주성치식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