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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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몽골 팽창기.jpg
1215년의 동북아시아. 금나라가 몽골의 공격을 받아 많이 축소되었고, 요동과 남만주 일대에는 야율유가의 동요, 북만주와 연해주에는 포선만노의 동하가 성립되었다.

대진→대하
大眞→大夏
[1]
존속기간
1215년 ~ 1233년
이칭
동진(東眞)→동하(東夏)
위치
만주 동부, 연해주, 한반도 동북부
수도
함평(咸平), 남경(南京)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천왕
언어
여진어
문자
여진 문자, 한자
종족
여진족
통화
동진흥보(東眞興寶)
성립 이전
금나라
멸망 이후
몽골 제국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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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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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 개요
3. 그 외 군벌 세력들
5. 역대 천왕
6. 문화와 사회
7. 같이보기



1. 개요[편집]


1215년에서 1233년까지 존재했던 만주 및 한반도 동북부의 나라.

금나라의 장수이자 요동선무사(遼東宣撫使)였던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세웠던 나라로 '천태'(天泰)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개국했다. 포선만노는 처음에 금나라 조정의 명령을 받아 거란족 반란군을 토벌하려 했으나 패배한 이후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동진을 세우면서 천왕을 칭하고, 독자적인 여진족 세력이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금나라도 멸망했으므로 나름 여진족 부흥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호가 좀 복잡한데 포선만노는 원래 '대진'(동진)을 국호로 세운 뒤 몽골에 항복하고 아들을 인질로 보냈다가 다시 독립해서 나라 이름을 '대하'(동하)로 바꿨다가 다시 몽골과 화친하거나 멸망 당시에는 괴뢰국화가 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고려측 기록에서는 그냥 '동진'이라고 불렀다.

2. 건국[편집]


금나라가 몽골 제국과 싸워서 참패한 이후, 1214년 금 선종이 수도를 남경개봉부로 천도했다(정우의 남천). 이에 분노한 몽골은 계속 금나라를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았다. 때마침 만주에서도 야율유가를 비롯한 거란족들이 지난날 자신들을 정복한 금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동요(東遼)를 세웠다.

이에 금나라의 요동선무사 포선만노완안호사(完顏胡沙)는 금나라 황제의 명령을 받고 동요와 싸웠으나 참패를 당했고, 재차 동요를 공격했지만 또 패배했다. 두 번이나 패전한 포선만노는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독립해서 나라를 건국하니 이것이 바로 대진(동진)이었다. 포선만노는 동진을 건국하기 전에도 동경을 거점으로 두고 북진했다가 동요의 습격으로 동경이 털리기도 했고, 이때 포선만노의 아내도 약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다시 동경으로 회군해서 거점을 새로 구축했다.

이후 1218년 카치운이 이끄는 몽골군이 접근하자 몽골에 항복하고, 아들을 인질로 보냈다가 다시 독립해서 나라 이름을 대하(동하)로 바꾸고, 다시 몽골과 화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포선만노가 세운 나라의 최초의 수도는 함평(咸平), 즉 현재 랴오닝성의 카이위안(开原) 시였다.[2] 당시 영토는 요동과 연해주, 남만주와 한반도 동북부에 걸쳐 있었다.


3. 그 외 군벌 세력들[편집]


한 때 포선만노는 고려, 몽골, 야율유가의 동요[3]와 동맹을 맺고, 거란의 후요[4]를 진압했다. 그러나 이후 몽골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고려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지만 고려는 간만 볼 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순(韓恂)과 다지(多智)의 반란이 진압된 후인 1222년 그 휘하 잔당들의 도움을 받아 고려 영토에 쳐들어오기도 했다.

한편 포선만노처럼 우가하(亏哥下), 가불애(哥不愛), 가유(賈裕) 등의 옛 금나라의 여진족 장수들도 압록강 북부에서 군벌 세력이 되어 고려나 동진, 몽골 등 주변 국가에 약탈을 목표로 쳐들어가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사이가 나빴으며[5], 가유의 경우, 황색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황기자'(黃祺子)라고도 불렸는데 이 가유라는 장수는 거란 유민들과 손을 잡고 고려를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군에 패배하여, 대부영(大夫營)에 진을 친 상태에서 연회로 취해있던 가유는 붙잡혀 목숨을 잃었고, 가유와 원수지간이었던 우가하는 고려에게 감사하다며 고려와 친해지려고 시도했다. 포선만노와 싸우다가 패배하여 압록강을 넘어 고려로 망명한 우가하는 1219년 고려에서 한순과 다지의 반란이 터졌을 때 반란군의 대장이었던 한순과 다지를 불러내 목을 베고는 이 사실을 고려에 알렸고, 이에 고려는 보답으로 많은 공물을 내려주기도 했다. 거만해진 우가하는 몽골군 복장을 하고 고려 국경을 약탈했다. 결국 우가하도 1226년에 고려에게 제대로 혼쭐나서 그 이후에는 약탈을 벌이지 않았다. 가불애 역시 우가하와 더불어 압록강 유역에서 약탈 및 침략을 일삼던 군벌 세력 중 하나였는데 1231년 몽골 장수 살리타이(ᠰᠠᠷᠢᠳᠠᠭ, 撒禮塔)의 공격을 받고 몰락했다. 참고로 언급했던 여진족 잔당 중에서 '황기자' 가유를 제외하고, 동하와 이들 중 한 세력이 여몽전쟁의 빌미가 되는 저고여 피살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일단 피살 위치가 동하의 땅인데다가, 마침 이들이 동하의 군벌들이기도 해서 그 관련 세력을 범인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많다.


4. 멸망[편집]


하지만 포선만노는 1227년부터 몽골과 적대하게 되었다. 1233년, 몽골은 구유크를 보내 동하를 침략했다. 포선만노는 동하의 남경(현재의 연길)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대항했으나 결국 몽골에 멸망하고 말았다. 후일담은 포선만노가 이때 사망했다는 이야기와 패망 이후 몽골의 부하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갈린다.


5. 역대 천왕[편집]


대수
묘호
시호
연호

재위기간
1
-
-
천태(天泰)
포선만노(蒲鮮萬奴)
1216 ~ 1233


6. 문화와 사회[편집]


동하국 시기의 요새, 성

금나라에서 갈라지고, 나름 초기에 금나라 부흥운동에 가까운 모습도 보이기도 해서 금나라의 문화랑 비슷하다. 물론 여진족의 고향 지역에 세워졌다 보니 중원의 금나라에 비하면 여진 문화가 금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아있었다. 다만 금나라의 한화 정책이 한동안 이어졌던데다가 만주 또한 그 영향을 받았다 보니 한족들의 문화도 있었다.


7.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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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眞과 真은 이체자이다. 현재 한자문화권에서 대한민국만 眞을 표준으로 쓰고 있고, 다른 나라들은 전부 真을 사용한다. 당시 이 나라 스스로는 '대진'(大眞)이라 칭하다가 '대하'(大夏)로 국호를 바꾸었는데 후자의 경우는 탕구트족의 서하(西夏)와 구별하기 위해 동하라고 불린다.[2] 선양시 북쪽 90km 지점에 있는 도시.[3] 거란족의 부흥운동으로 세워진 거란의 나라. 1212년 금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1213년에 건국되었다가 몽골에 복속되었고, 그 이후 1269년까지 간신히 이름만 유지되다가 몽골 제국에 완전히 흡수되었다.[4] 대요수국이라고도 불린다. 야율유가의 동생 야율시불을 중심으로 한 거란족이 몽골에 대한 복속에 저항하여 동요에서 이탈해 세운 나라였다. 1216년~1219년까지 3년간 존속했으며, 야율시불 - 야율걸노 - 야율금산 - 야율통고여 - 야율함사로 이어졌다. 수도는 등주(澄州, 오늘날의 랴오닝성 안산). 연호는 천위(天威) - 천우(天佑) - 천덕(天德)이었고, 1216년부터 1217년까지 사용했다.[5] 단, 가불애의 경우 다른 세력들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