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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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age.edaily.co.kr/PS05111900032.jpg[2]
1. 개요
2. 특성
3. 시대별
4. 여담
5. 관련글


1. 개요[편집]


한복겉옷. 말 그대로 '두루 막는다'는 의미다. 서양 복식 문화에서는 점퍼코트 등에 해당한다.

한민족을 상징하는 의복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오랫동안 입어온 복식으로, 근본을 따져 올라가면 까마득한 삼국시대까지 올라가야 할 정도이다.


2. 특성[편집]


이런 통짜 겉옷을 입는 것은 북방 유목민족 계통의 유구한 전통이다. 북방 유목민족의 의복형식은 윗옷과 바지가 나뉘어진 투피스에 통짜 겉옷을 입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입었으며 이는 단령이나 치파오의 형태에서도 잘 나타난다. 중국의 한족들의 복식인 한푸에는 원래 이런 통짜 겉옷이 없었지만, 선비족 같은 북방민족들의 영향을 받으며 심의단령 같은 같은 통짜 겉옷이 생겨나게 된다.

일반적인 호복의 경우 말을 타기 위해 옆트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민족은 정주한지 2천 년이 넘었기 때문에 옆트임이 없는 겉옷도 많아졌다. 하지만 단순 정주민족의 특징이라기엔 기마민족이던 고구려도 두루마기를 입었던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신 말을 탈 땐 ''라는 짧은 저고리를 입었다. 만주족은 정주한 이후에도 옆트임이 있는 겉옷을 주로 입었던 것을 보면 트임 없이 두루 막힌 겉옷을 입는 문화는 한민족의 고유한 특징이라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한복을 생각하면 사극에서 자주 나오는 도포두루마기를 바로 떠올리고~~ 김구, 정지용 등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릴 만큼 다른 포 종류의 옷들 중에서는 그나마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1895년 을미개혁고종은 관리와 백성의 차별을 두지 않겠다며 양반과 백성 모두에게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였고, 흰색 옷은 때가 잘 찌들어 자주 빨기 때문에 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검은 두루마기를 장려하였다. 심지어 흰 두루마기를 입으면 먹을 뿌려서라도 검게 했을 정도.

해방 직후의 현대 사회에서는 어르신 세대들이 많이 입기는 했다. 1960년대 이전 서울특별시 송파구 장지동, 문정동, 가락동, 잠실동, 풍납동이나 강남구 대치동, 수서동 같은 곳에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기 쉬웠다. 또 중절모와 조합이 되면 근현대,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키는 근대적 패션이 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두루마기를 입는 사람들이 많이 감소되어 길거리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 옷이 되었다. 다만 어르신들은 현대 서양 복식의 코트를 두루마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복용 한복업계에서는 은근히 찬밥 취급받는 옷이기도 하다. 결혼 사진이나 예를 차리는 사진을 찍을 때 대부분의 한복을 저고리바지, 배자, 마고자를 주로 선택하는데 여기서 두루마기는 잘 선택되어지지 않은다. 이유는 다자인적으로 단색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격도 다른 한복에 비해 비싸게 불리는 까닭에 많이 꺼린다고 한다. 현대식으로 두루마기를 갖추지않은 이런 예복이 옛 어르신들이 보기엔 이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장차림이라면서 와이셔츠(저고리)만 입고 외투(두루마기)은 안입었기 때문에 한복 기준으론 예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상적인 패션쪽으로는 자주 활용되고 궁합도 잘 어우러지는 것이 두루마기이다. 성격상 코트와 비슷하기에 일반적인 서양식 옷위에 걸쳐입어도 큰 어색함이 없고 이래저래 디자인하기에도 좋아서, 남성용 한복을 찾아보면 두루마기를 기본 베이스로 한 한복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2010년대 들어 각종 한복 브랜드에서 코트처럼 입을 수 있도록 울 재질의 두루마기를 제작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가격은 기성품 코트만큼 비싸지만 현대 기성복과도 별 무리 없이 조화되는 모습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다. 참조, 참조2

사대부 여성들이 외출할 때 입었던 쓰개치마는 두루마기와 다르다. 쓰개치마는 말 그대로 치마 형태의 소매가 없는 옷으로 두루마기 위에 두르던 망토에 가깝다. 두루마기와 같은 종류의 옷은 장옷이라고 하는데, 이는 쓰개치마와 용도가 같지만 소매가 달린 두루마기 형태이다.


3. 시대별[편집]



3.1. 삼국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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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접객도에 묘사된 고구려의 남성용 포. (왼쪽의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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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무용도에 묘사된 고구려의 여성용 포. (왼쪽에서 2번째, 3번째 인물.)

현대 두루마기의 직계조상이다.

삼국시대의 포는 (현대의 한복과 비교해서) 섶과 고름이 없고 소매, 깃, 도련에 검은색 선이 둘러져 있는 등 고대 한복 저고리인 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지만 밑단이 훨씬 길기 때문에 한눈에 구분 가능하다. 고구려무용총 벽화 중 '접객도'와 '수렵도'에 그려진 복식이 유(저고리)고 '무용도'에 그려진 복식이 포(두루마기)다.


3.2. 고려[편집]


삼국시대의 포는 고려시대 들어 백저포(白紵袍)로 진화했는데, 고려 중기를 지나며 좀더 활동이 편한 형태로 바뀌었다.

고려도경 등의 기록을 보면 고려인들의 패션은 검은색 문라건+흰색 백저포 조합이 가장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흑립+도포 조합이 가장 흔했고 삼국시대에도 검은색 조우관+흰색 포 조합이 가장 흔했던 것을 볼 때 한민족에게 있어서 이런 모나미 검은색 쓰개+흰색 통짜 겉옷의 조합이 가장 익숙하고 편한 조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삼국시대 포 특유의 검은색 선들이 사라지고 점점 조선시대의 두루마기처럼 단순하고 (현대인에게) 친숙한 디자인이 되어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 복식인 고려양은 원나라의 양식이 아닌 몽골 침략 이전 고려의 양식에 가장 가까운 형태임에도 동정깃의 존재나 깃, 무, 섶 부분들의 천을 몸통 부분과 따로 재단해 붙이는 등 조선시대의 한복과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은 이 복식이 지들 꺼라고 우긴다

이후 고려의 포는 여말선초에 장옷으로 발전해 조선시대 두루마기의 원형이 되었다.


3.3. 조선[편집]



여말선초~18세기까지는 백저포가 발전한 장옷이라는 의복을 흔하게 입었는데, 문반의 상징이 도포라면, 무반의 상징은 장옷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장옷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18세기 이후엔 여성들의 쓰개용으로 이상하게 용도가 변질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의 현대적인 두루마기는 조선 후기에 장옷이 발전하며 등장하게 된다. 이 '현대적인' 두루마기의 용도는 계급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용도랑 별개로 조선인들이 가장 흔하게 입는 복식이었다. 조선 양반들에게 있어서 두루마기는 두루마기 위에 입는 고급 겉옷의 각을 잡아주는 의 역할을 하였는데, 조선의 양반들은 외출시 중치막, 도포 등의 고급옷들을 입기 전에 두루마기를 먼저 입음으로서 품을 키우고, 비단으로 만들어져 하늘하늘하게 날리는 옷을 잡아주도록 하였다. 반대로 백성들은 고급옷을 입지 못하였기에 겉옷으로 두루마기 만을 주로 입었다. 결국 양반이건 백성이건 다 입던 국민 패션은 맞네


3.4. 개화기 ~ 일제강점기[편집]


고종의 의복 개혁에 의해 포 종류는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금지되어서 그전까지의 도포, 소창의, 중치막, 대창의 등은 착용이 불가해지고 대신에 제조가 비교적 쉬워 싸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두루마기가 양반들의 밑받침 옷에서 겉옷으로 바뀌었다. 두루마기가 복식 규제를 비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도포나 창의와 달리 아무런 트임이 없고 소매를 넓히지 않아 원단을 아낄 수 있는데다 금지된 옷들에 비해 만들기도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을미개혁과 함께 만민평등 사상을 주창하며 남녀 구분없이 백성들이 입던 두루마기를 양반들도 같이 입도록 하였다.

아무튼 조선 전기까지 한민족이 가장 흔하게 입던 두루마기 복제가 조선 후기엔 (양반 한정) 다른 겉옷의 밑받침으로 쓰이며 외면당하다 구한말이 되어서야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개화기 이후 두루마기는 양복과 동격의 정장으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양복 재킷의 재료인 모직으로 두루마기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옆구리에 무가 달려 있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의 형상으로 퍼져나가며, 끝자락의 넓이가 평균적으로 어깨를 약간 벗어난 만큼의 크기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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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남학생들의 교복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주로 검은색이나 흰색 두루마기로 색상을 통일하고 학생모를 쓰는 식이었다. 신발도 구두부츠를 신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양복이나 가쿠란 위에 양장 코트 대용으로 두루마기를 입기도 했다. 광복 이후인 20세기 후반까지도 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어르신들이 정장 위에 코트 대신 두루마기를 입는 일이 흔했다. 또한 전통적인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다는 경우도 있었다.

3.5. 현대[편집]


파일:현대식 두루마기.png
파일:두루마기4.png
(현대식과 전통식의 두루마기 비교모습)

재료도 가볍고 하늘하늘한 합성천을 사용하기도 한다.

거기다 높은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비싸고 초라창렬한 행사용 한복중에서 비싼 두루마기보단 그나마 싼 배자저고리를 선택하는 한복업계가 어느정도 이해된다.

물론 3번째 사진처럼 조선시대에 현대한복처럼 품이 작고 몸에 딱 맞는 두루마기가 없던것은 아니지만, 전통방식과 비교했을 때 더 낫다는 평가를 받기란 어려울 것이다.

현대한복계에선 두루마기가 코트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이용하여 다양한 의복디자인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4. 여담[편집]


요한의 묵시록 한국어 번역(개역개정, 공동번역 공통)에는 뜬금없이 "두루마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6장 11절, 22장 4절), 원문에 사용된 해당 어휘는 στολή(스톨레)로서 그냥 "의복, 예복"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현지화인 셈.

간혹 휴지 두루마리와 혼동되기도 한다.


5. 관련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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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사회학자, 기업인, 선교사 시드니 D. 갬블(Sidney D. Gamble, 1890 ~ 1968)이 1917 ~ 1919년에 한국 선교에 가면서 찍은 사진 중 하나이다.[2] 2005년 APEC 정상들이 입은 두루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