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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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무지2.png
수메르의 점토 도장에 나오는 목자(牧者) 두무지의 모습

1. 개요
2. 행적
3. 특징
4. 여담


1. 개요[편집]


Dumuzi

수메르 신화의 성장-풍요의 신. 인안나의 남편이자 형제이다.[1]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탐무즈(Tammuz)라고 불렀으며, 이때는 이슈타르의 남편이자 형제이다. 문헌에 따라서는 엔키의 아들로 나오는데, 이 경우 이슈타르엔키의 형제 엔릴의 아들 난나의 딸이기 때문에 두무지가 이슈타르의 당숙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무지 자체는 풍요를 가져오는 신이 아니다. 인안나와의 관계가 있을 때만 그 힘을 발휘하는 신이다.


2. 행적[편집]


본래는 양치기(의 신)였다고 한다. 인안나의 사랑을 받으며, 천상의 동물과 지상의 동물을 길렀다. 후에 인안나가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저승의 여왕 에레시키갈에게 붙들려 그녀를 대신하여 죽을 사람을 바쳐야 살아올 수 있다는 조건이 내걸렸다. 그 사이 아내가 어디갔는지도 모르고 아내를 걱정하지도 않고 참 편하게 있는 모습을 본 인안나가 자신을 대신해서 두무지를 바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저승의 옥졸들이 그를 저승으로 끌고가버린다. 다행히도 자애로운 누나, 포도주의 여신 게슈틴안나(게슈티난나)가 같이 벌을 받겠다고 해서 지하 세계에 있는 시간이 감형되었다.

참고로 이러한 신화를 기록한 온전한 판본이 발견된 것은 20세기 중후반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이 신화의 전모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조각난 문서 파편만으로 신화를 재구성해야했던 그 이전에는 두무지가 저승에 끌려간 것을, 인안나가 구출하기 위해 저승에 내려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온전한 문서가 발견되어 사실은 정반대라는 게 밝혀졌지만.

아무튼 두무지는 성장과 풍요의 신이기 때문에 계절의 현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두무지가 지상 세계에 있을 때는 봄, 여름에 해당되며 이때는 모든 생물들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그러다가 두무지가 지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때는 가을과 겨울에 해당되며 이때가 되면 만물의 성장이 멈추는 사계절의 특성을, 신화로써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두무지를 보면 매우 순정남인걸 알 수 있는데 인안나를 짝사랑 하여 그녀를 따라 다니기도 했고 인안나가 자신의 어머니와 있을때도 집 밖에서 두무지는 인안나의 어머니에게 인안나와 결혼하고 싶다며 크게 외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두무지를 집에 들였고 결국 인안나도 두무지에게 호감이 생겨 결혼하게 되었다.


3. 특징[편집]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와 같이 씨앗을 상징하는 신격이다. 바빌로니아의 탐무즈, 그리스 로마 신화아도니스, 아나톨리아아티스처럼, 한번 죽어서 지하로 내려가 새로운 삶(식물)으로 지상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남성적인 힘을 상징한다.

1955년 국제표준 성서백과사전에는 두무지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여기 에스겔서 8:13, 14[2]

에 기록된 이 신(탐무즈)은 천주교 성서에는 아도니스로 기록되었다. 그리스에 아도니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주God의 명칭은 바로 다름 아닌 페니키아의 아도나이인데, 이 이름은 히브리어에서도 같은 것이다. (중략) 이 신은 근본적으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이슈타르의 남편 두무지라 불리는 수메르 또는 바빌로니아의 태양신[3]이었다. 이 신들의 예배가 일찍이 시리아에 탐무즈와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인에게는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신화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이집트의 만신전에 나오는 오시리스이시스와 동격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졌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에는 겨울을 상징한 들곰에게 살해당한 아름다운 목동 두무지로 묘사되었다. 여신 이슈타르는 그를 생각해 오랫동안 몹시 슬퍼한 나머지 죽음에 사로잡힌 그를 구원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4]

탐무즈를 위한 이 애도가 바빌로니아에서는 탐무즈의 칭호를 받은 넷째 달 둘째 날이면 여인들로 인해 축제 분위기로 성황을 이루어버린다. (중략)

게발의 여성들은 하지가 되면 아도니스 또는 탐무즈의 죽음을 찬미하기 위해 그의 신전에 가는 판례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경축제식과 관련해 욕정스러운 음분한 행사가 행해졌는데 그 제식의 풍속이 음탐하고 너무나도 추잡스럽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마그누스[5]

가 철폐해 버렸다.”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방에 아도니스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레바논 산지를 지나면서 모래에 포함된 산화철을 안고 흘러내린다. 매 4월이 되면 장마로 인해 강이 붉게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아도니스 또는 바알이 죽어 이 강물이 피에 물들어 붉어 보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따라서 이 강을 아도니스의 강이라고 부른다. 봄이 되면 엘에게 탄원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신전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러한 관습은 그의 부활절을 찬미하기 위해 부활절이 되면 이곳의 신부와 수녀들이 그들의 복식을 입은 채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 강에 와서 애도하는 관습으로 남아있다.

이슬람권의 기록에 따르면, 11세기까지도 이라크 지역에서 두무지를 애도하는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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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문 일이다만 과거에는 도무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계몽사 만화세계사 1권에서는 제사장이 신전에서 제물을 바치고 한쌍의 선발된 남녀를 인신공양할 때 "도무치 신이시여, 이안나 여신이시여"하고 제를 지내는 것으로 표기했다.[2] 그리고는 "이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또 보아라" 하시며 나를 야훼의 성전 북향 정문 문간으로 데리고 가셨다. 거기에서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즈신의 죽음을 곡하고 있었다.(공동번역성서)[3] 이건 오류로 고대 수메르-바빌로니아의 태양신은 이슈타르의 형제 우투-샤마쉬였다.[4] 이것도 오류로, 실제로는 이슈타르가 저승에 가 에레시키갈에게 당해 지상이 황폐화되자 엔키가 이슈타르를 살렸는데, 이에 에레시키갈이 가루다를 보내 추적하고 두무지가 이슈타르가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이슈타르가 두무지를 대신 저승에 보내버렸다. 다만 당시에는 판본해석이 되지 않아 잘못 알려져 있었다.[5]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공의회를 처음으로 연 황제로, 이스탄불을 만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