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원(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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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瑗 | 두원

두(杜)
이름
원(瑗)

도언(道言)
생몰
327년 ~ 410년
출신
교지군(交阯郡) 주원현(朱䳒縣)
조부
두원(杜元)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동진의 관료로 자는 도언(道言)이다. 두원의 열전은 없고 아들인 두혜도의 열전에서 두원의 행적이 언급된다.


2. 생애[편집]


두원의 집안은 본래 경조(京兆) 두씨(杜氏)였으나, 두원의 할아버지인 두원(杜元)이 영포군(寧浦郡) 태수로 부임하면서 집안이 교지군(交阯郡) 주원현(朱䳒縣)으로 이주했다. 두원은 327년에 태어났다.

두원은 일남군(日南郡), 구덕군(九德郡), 교지군의 태수를 역임했다. 당시 구진군(九眞郡) 태수 이손(李遜) 부자가 교주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는데, 380년 조정에서 등둔지(滕遯之)를 교주 자사로 파견하자 이손은 두 아들을 보내 수륙의 요충지를 차단하며 조정의 결정에 반발했다. 이에 두원은 군사들을 이끌고 이손을 참수하여 용양장군(龍驤將軍)으로 제수되었다.

이후 교주 자사로 부임한 등둔지는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참파와 여러 차례 교전했다. 399년, 등둔지가 조정으로 돌아갈 때 참파의 국왕인 범호달(范胡達)이 교주로 침입하여 일남군, 구덕군, 구진군을 공격하고 교지군을 포위하자, 두원은 3남인 두현지(杜玄之)와 함께 교지군을 사수했고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인 뒤 범호달을 물리쳤으며, 참파에 함락된 일남군, 구덕군, 구진군을 수복했다. 두원은 응양장군, 교주 자사로 임명되었다.

404년, 유유가 환현을 토벌한 뒤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되었다. 407년, 범호달이 다시 일남군을 침공하여 장사를 죽이자, 두원은 완비(阮斐)를 파견하여 범호달의 침공을 막았다. 한편 노순이 광주(廣州)에 할거하며 두원에게 사자를 보내 연락을 취했으나, 두원은 노순의 사자를 참수했다. 두원은 410년에 사망하여 우장군(右將軍)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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