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음법칙 및 한글 맞춤법 통일안 식민국어학 주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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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장과 전개
3. 궤변인 이유


1. 개요[편집]


이덕일이 2010년 10월 10일 칼럼에서 두음법칙에 대한 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책[1]인『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나오는 궤변이다.

제목처럼 두음법칙과 2010년 10월 10일 기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일본과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건 중립을 떠나 그 자체가 왜곡이다. 이걸 만든 것이 조선어학회이니까.

이덕일이 처음 주장한 내용은 아니다. 원조는 경상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인 려증동 교수#라고 한다.

2. 주장과 전개[편집]


이덕일은 중앙일보에 연재한 글에서부터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이런 절름발이 훈민정음을 만든 줄 아느냐? 왜인들이 우리 말글을 말살하려던 1940년에 경상도 안동에서 내가 만든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세종 28년 발간)』이 발견된 것이 우연인 줄 아느냐? 나는 우리말과 다른 겨레의 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적으라고 병서(竝書)와 연서(連書) 원칙을 만들었다. 초성을 두 개 이상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것이 병서(竝書)다. L은 ‘ㄹ’로 적고 R은 ‘ㄹㄹ’, 또는 ‘ㅇㄹ’ 등으로 적으면 두 발음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B와 V, P와 F는 모두 입술소리인 순음(脣音) 아니냐? 그중 하나를 입술가벼운소리인 순경음(脣輕音)으로 표기하는 것이 연서(連書)다. B를 ‘ㅂ’으로 적으면, V는 ‘ㅸ’으로 적고, P를 ‘ㅍ’로 적으면, F는 ‘ㆄ’으로 적으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만 사용해도 영어는 물론 세계의 거의 모든 발음을 대부분 적을 수 있고 발음할 수 있다.

왜인(倭人)들이 너희를 점령하고 2년 후(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면서 내가 만든 훈민정음을 난도질했지 않느냐? 누가 다양한 모음을 내는 아래아(·)를 없애라고 했느냐? 누가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의 열 가지만 받침으로 인정하라고 제한했느냐? 누가 설음 자모 ‘ㄷ, ㅌ’ 등과 ‘ㅑ, ㅕ, ㅛ, ㅠ’를 결합하지 못하게 했느냐? 누가 ‘ㄹ·ㄴ’이 어두(語頭)에 오면 강제로 ‘o’으로 발음하게 하는 두음법칙(頭音法則) 따위를 만들어 우리 아이들을 반벙어리로 만들라고 했느냐?

모두 왜인들과 그에 붙은 역도(逆徒)들의 짓거리가 아니냐? 왜인 지배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나라를 되찾았으면 나의 훈민정음 창제 원칙대로 돌려놔야 하지 않느냐? 이런 절름발이 글자를 가지고 내가 만든 훈민정음이라고 우기려면 내년부터는 한글날을 없애라. 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 문제가 바로 잡힌 이후에야 후손들이 바치는 제사를 흠향(歆饗)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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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세종의 꾸짖음", 중앙일보, 2011.10.10 00:26}}}
이후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 이걸 실으며 이런 주장을 했다.

필자가 대한민국에서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는 학문들에서 말하는 나라 국國이 어디인가에 의문을 갖는 것은 절대 과도한 의심이 아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국문학자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이인직을 선각자로 가르치는 학자들이나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극복하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는 제안을 거부하는 학자들에게 나라 국國자가 어디를 뜻하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ㄹ·ㄴ'이 어두에 오면 강제로 'ㅇ'으로 발음하게 하는 두음법칙 따위를 갖고 있는가? 일단 한국인의 발음 능력을 크게 퇴화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습득에도 크게 불리하니 지금 같은 세계화 시대에도 전혀 맞지 않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이 절대로 자발적으로 식민사관을 폐기하지 않는 것처럼 식민국어학자들도 절대로 자신들의 식민국어학을 폐기하지 않는다.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보는 것처럼 식민국어학자들도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어를 본다. 이런 말을 듣고 자신들이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면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체제와 두음법칙 따위를 폐기하면 된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발적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타율적 개혁의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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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5, 47~48쪽.}}}


3. 궤변인 이유[편집]


이덕일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서 처음 두음법칙이나 받침 표기법을 정리하였는데 이건 일제와 친일파들이 한국어를 왜곡한 것이라는 내용이다.[2]

엄밀히 말해서 이 내용은 이덕일이 처음 주장한 게 아니다. 원조는 경상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인 려증동 교수인데, 두음법칙에 대해서 이러하게 주장함은 물론, 국어학계 내에서 유명 환빠로 자리 잡은 사람이다. 여담으로 이 사람은 국어학이나 국어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교수 시절에도 국어교육학이나 문학을 가르쳤을 뿐이다. 려증동 교수는 심지어 훈민정음 해례본이 일본 학자 오구라 신페이가 만든 위서인데 전형필이 낚인 것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한자음에 두음 법칙이 적용된 표기는 표기에 현실한자음을 반영하기 시작한 16세기의 문헌에서부터 일찌감치 확인된다. 참고로 17세기에 쓰인 하멜 표류기에서는 "羅州를 "Naedjoo", 靈巖을 "Jeham"으로 둘 다 두음 법칙이 반영된 발음으로 적고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성씨 를 로마자로 Yi, Ye 등으로 적은 사례도 발견된다(예: 독립신문니건하 Yi Kön Ha, 니한용 Yi Han Yong.[3] 이완용도 자기 이름을 Ye Wan Yong으로 적었다).

그리고 어두의 유음을 피하는 현상은 우리말뿐만이 아니라 알타이 제어[4] 전반에서 발견되는 특징으로 거론되며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운운할 거리가 못 된다. 이를테면 몽골어에서는 어두의 ㄹ을 피하기 위해 모음을 첨가한다. '러시아'의 경우 '어러스(Oros)'로 표기.[5]

아래아도 인위적으로 없앤 것이 아니라 근대 국어 시기에 걸쳐 그 음가가 먼저 자연스럽게 소실되었고[6] 오히려 이를 표기법 차원에서 뒤늦게 반영한 것이다.[7] 또한 공식적으로 아래아를 폐지하자고 주장한 사람 중에는 주시경이 있다.

게다가 이는 두음법칙이라는, 어두 초성에 ㄴ과 ㄹ을 피하는 음운 구성상의 제약, 즉 음운 현상과 두음법칙을 반영한 표기의 관계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학계에 두음법칙을 반영한 표기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두음법칙이라는 음운 현상 자체는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전제하는 가운데, 본래의 형태를 살리는 표기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두음법칙의 존재가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례가 류씨들의 호적예규 개정 요구.[8]

심지어 두음법칙을 논할 만큼의 음운 지식도 없다고 여길 만한 부분이 있다. "ㄹ·ㄴ이 어두에 오면 강제로 'ㅇ'으로 발음하게 하는"이라고 운운하는 부분인데, 한글 표기에서 초성에 적히는 ㅇ은 음가가 없다. 당연한 얘기인 것이, 음운 현상으로서의 두음법칙의 핵심은 ㄴ, ㄹ을 ㅇ으로 '대신'해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ㅣ[i], y[j] 앞의) ㄴ, ㄹ이 '탈락'해서 발음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로 'ㅇ'으로 발음하게 하는"이라는 오류를 "강제로 탈락시키는"으로 정정하더라도, (ㅣ[i], y[j] 이외의 모음 앞) ㄹ은 탈락하는 게 아니라 ㄴ으로 대체되는 것이며(래일(來日), 락하(落下) → 내일, 낙하), 정말 탈락하는 것은 ㅣ[i], y[j] 앞의 ㄴ, ㄹ이다. (니토(泥土), 녀성(女性) → 이토, 여성; 리해(理解), 략칭(略稱) → 이해, 약칭) 엄밀히는 ㄹ 뒤에 ㅣ[i], y[j]가 오는 경우, 우선 ㄴ으로의 교체를 거친 후 다시 탈락을 겪는 것이다. 즉 리해(理解), 략칭(略稱)→니해, 냑칭 → 이해, 약칭.

두음법칙과 무관하게 문제되는 부분도 많지만 맞는 내용을 찾기 힘들 정도로 틀리는 내용이 많아서 이것을 적기 위해 문서를 따로 분리해야 할 정도이므로 따로 적지는 않는다. 아주 진지하게 말해 인용문 첫 문단에서 말하는 현 세대가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을 잘못 쓰고 있다는 논지의 내용은 국문과 학부 수준에서도 모조리 논파된 내용이 가득하다. 좆문가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아주 처참한 수준이다.

당장 일본 혐한들이 한국인을 폄하할 때 "한국인은 어두에서 ら행을 발음하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덕일은 두음법칙을 역도들(친일반민족행위자)의 짓거리라고 했는데, 대한민국은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에 따라서 두음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남한은 분단 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에 따라 두음법칙을 철저히 적용해왔다. - 연합뉴스, <겨레말큰사전 두음법칙 "절충 불가">, 2006-11-28

이는 당시 한글/한국어 학자이자 한글맞춤법통일안 구성에 기여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의 당사자인 최현배, 이희승, 이극로 같은 사람들까지 '역도'(친일반민족행위자)로 모는 역사왜곡을 한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해당 문서들에 들어가서 보자.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9] 한글과 한국어를 지킨 학자들이다. 이덕일이 한국어의 역사에 대해 기본만 조사했어도 이런 글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건 이덕일의 전공이다. 물론 국어학 자체는 아니지만 이덕일은 근현대 독립운동사를 공부했다는 사람이며, 조선어학회 사건을 보듯 조선어학회는 독립운동에도 포함된다. 또 일제강점기의 민족 탄압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러니까 자신의 전공에서조차 이런 엄청난 오류를 범한 것이다[10].

[1] "필자는 중앙일보 2010년 10월 10일자에 '세종의 꾸짖음'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한글 날 다음 날에 훈민정을 만든 세종의 목소리를 빌어서 현재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별로 길지 않으니 인용해보겠다."-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45~47쪽.[2] 생각해보면 이상한 주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식민제국의 언어 정책은 식민본국 언어의 이식 또는 강제나 식민지 현지 언어 사용의 탄압 등으로 흔히 나타나는데 식민지 언어의 일부 문법 규칙을 왜곡(?)해서 얻을 수 있는 기대 이득은 거의 없으며, 언어에서 특정 문법 규칙을 왜곡하거나 강제한다고 해서 정말로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만약 두음법칙이 정말 기존의 한국어에 없었다면 언중의 엄청난 저항과 반발에 부딪혔을 것이다.[3] ㅓ를 ö로 적는 건 과거에 독일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쓰던 방식이다.[4] '어족'으로까지 성립되는지는 논란이 있다.[5] '아라사(俄羅斯)'라는 한자 음차어와도 연관이 있다. 중국이 러시아와 처음 교섭할 때 몽골계 부족이 중개했기 때문이다.[6] 소실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으나, 모음 추이로 인해 그 발음이 힘든 후설 원순 저모음 자리로 밀려나며 자연히 사라진 것으로 본다. 제주 방언에 아래아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7] 본래 표기에 대한 손질은 실제 발음의 변화보다 늦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 발음은 없어져도 문자로 쓸 때는 외워서 쓰는데 이를 문자의 보수성이라고 한다.[8] 려증동 교수 역시 이런 이유로 여씨가 아니라 려씨라고 주장한다.[9]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이들과 함께 한 학자인 이윤재, 한징은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옥사했으며, 이극로는 8.15 해방으로 풀려날 때 들것에 실려서 나올 정도로 큰 고통을 당했다.[10] 굳이 변호를 하자면, 독립운동사 전공이라도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해 깊이 모를 수는 있다. 독립운동사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세세하게 나뉘고, 이덕일의 석사논문은 조선공산당에 대한 것이고 박사논문은 동북항일연군이 주제인데 둘 다 공산당하고 관련이 있지 한글하고는 비교적 관계가 없기 때문. 다만 이 경우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하면서 어딜 조선을 건드리고 고대사를 건드리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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