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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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鄧光榮 (Alan Tang, 1946.9.20.~2011.3.29. (향년 64세),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출생)

홍콩의 배우, 가수, 제작자.


2. 생애[편집]


1946년 9월 20일, 중화민국 광동성 광저우(현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에서 태어났다.

1963년에 영화《학생왕자(學生王子)》로 데뷔했으며 이소룡, 적룡보다 홍콩에서 한때 인기가 더 많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린 1960~1970년대 홍콩의 톱스타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OST를 부르는 등 가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열혈남아, 아비정전 등 초기 왕가위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배우로 출연한 작품도 적지 않다. 2011년 심장문제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지난 2018년 남결영이 증지위와 등광영이 자신을 성폭행 했다며 미투를 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남결영이 폭로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은 죽었고, 나머지 한 명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 말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죽은 쪽이 등광영이다.

막연하게 왕가위 초기작을 제작했다고 하면 뭔가 뛰어난 재능을 발굴한 거물 제작자 느낌이지만, 사실 등광영은 왕가위에게 홍콩 느와르 만들라고 제작지원을 했는데 왕가위가 자신의 스타일이 듬뿍 가미된 예술 영화를 두 번 연달아 찍고 아비정전은 심지어 흥행에 실패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 투자했던 삼합회측이 왕가위를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왕가위는 이 때문에 동사서독 촬영을 핑계로 몇 년간 삼합회의 입김이 없는 중국에 도피생활을 했고... 삼합회와 커넥션이 있던 등광영은 삼합회를 말리느라고 진땀뺐다고 한다. 이후 금상장에서 아비정전이 상을 받으면서 등광영이 올라와 소감으로 "왕가위를 용서해주겠습니다." 라고 했다.

1993년 자신이 제작한 홍콩영화 흑표천하가 정말 압도적인 실패를 하면서 1994년을 기점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영화계 은퇴 후 한동안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가 2011년 3월 29일 홍콩 구룡반도 호만틴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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