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 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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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조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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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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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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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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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대, 67대, 6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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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렌티나
63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자친토 파케티
(1966~1977)

디노 조프
(1977~1983)


마르코 타르델리
(1984~1985)


디노 조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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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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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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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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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1980



1973 Ballond'or
수상
요한 크루이프
2위
디노 조프
3위
게르트 뮐러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디노 조프의 기타 정보





이탈리아의 前 축구 감독


파일:Zoff.jpg

이름
디노 조프
Dino Zoff
출생
1942년 2월 28일 (82세)
이탈리아 왕국 마리아노 델 프리울리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신체
182cm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선수
우디네세 칼초 (1961~1963)
AC 만토바 (1963~1967)
SSC 나폴리 (1967~1972)
유벤투스 FC (1972~1983)
감독
유벤투스 FC (1988~1990)
SS 라치오 (1990~1994)
SS 라치오 (1996~1997)
이탈리아 대표팀 (1998~2000)
SS 라치오 (2001)
ACF 피오렌티나 (2005)
국가대표
112경기 (이탈리아 / 1968~1983)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5.3. 수훈
6. 기타



1. 개요[편집]


골키퍼는 와인처럼 시간이 오래 지나야만 숙성된 맛을 낼 수 있다.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축구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

현역 시절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총 9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유로 1968 · 1982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월드컵에서 총 67회의 세이브를 기록했고, 이 기록은 월드컵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이다.[1]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1961년 우디네세 칼초에 데뷔한 조프는 ACF 피오렌티나전에 데뷔했으나 5실점이나 허용하며 결국 5:2 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대패, 데뷔전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결국 우디세네는 강등되었고 결국 조프는 AC 만토바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조프가 만토바에 합류한지 2년 후 만토바는 강등당하였고 조프는 2번이나 강등당하는 등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조프는 주전 골키퍼로 활약해 팀을 다시 세리에 A로 승격시켰다. 이후 만토바에서 맹활약한 조프는 1967년 SSC 나폴리로 이적했고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으나 143경기에 출전하여 든든한 방어력으로 슈퍼스타가 되었다.

파일:유벤투스의 전설 디노 조프.png}}}
비안코네리의 수문장
1972년 유벤투스로 이적한 조프는 견고한 방어를 선보이며 유벤투스에게 스쿠데토를 안겨주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유러피언컵 결승까지 인도하나 AFC 아약스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만다. 하지만 이 맹활약으로 1973년 발롱도르 2위를 차지했다.

이후 유벤투스는 마르코 타르델리, 로베르토 베테가, 프랑코 카우시오 등 스타플레이어들과 함께 조프는 4번의 스쿠데토를 안겨주었으며 1976-77 UEFA컵 우승을 이끌었고, 마지막 시즌인 1982-83 시즌에 유러피언컵 결승을 이끄나 결승전에서 함부르크 SV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고 결국 1983년 은퇴를 선언한다.


2.2. 국가대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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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리 군단의 수문장

조프는 유로 1968에서 아주리 군단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해 소련을 상대로 좋은 선방을 선보였고 동전던지기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매직 드라간이 이끄는 유고슬라비아를 쓰러트리고 유로 1968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엔리코 알베르토시에게 밀려 서브 골키퍼로 기용되었고,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에게 패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했다.

그후에는 이탈리아의 주전골키퍼로 활약하였고 1977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4위 등극을 이끌었고, 유로 1980에서 맹활약을 펼치나 벨기에에게 골득실에서 밀려 아쉽게 탈락, 3·4위전에서 승부차기에서 9:8이라는 대접전 끝에 체코슬로바키아에 패해 4위에 그친다.

파일: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디노 조프.png}}}
월드컵 우승을 자축하는 디노 조프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위기설이 돌았는데 40세가 다 된 조프가 아직까지 이탈리아의 주전 골키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파올로 로시의 부진으로 가까스로 1차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를 2:1로 격파, 지쿠-소크라치스-호베르투 파우캉-토니뉴 세레주가 버티고 있는 황금의 사중주의 브라질을 상대로 파올로 로시해트트릭을 달성하며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고 이후 준결승에서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가 이끄는 폴란드를 2:0으로 격파, 결승전에서 서독을 3:1로 격파하며 조프는 마침내 주장으로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2000년, 팀의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축구 관련 인물로는 최초이자 현재로는 단 세 명뿐인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대장군장[2]을 수훈받았다.[3]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디노 조프는 신장이 여러 다른 골키퍼들에 비하면 키가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물같은 반사신경만으로 여러 슈퍼세이브들을 보여줬다.

그 작은 키에도 팔을 쭉 뻗어서 사각지대로 빨려들어려가 사실상 들어가는 슛도 쳐냈다. 때문에 중거리슛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제공권에서는 약점을 보였다. 하지만 공격수와의 1대1 상황에서 다리를 뻗어 이용해 막아내는 모습이 많았다. 사실 골키퍼의 플레이스타일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딱히 설명할게 없다.

그러나 기량을 40세까지 유지하며 월드클래스 소리를 들었으니 어마무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기록들이 설명한다. 세리에 A 1142분 무실점 기록과 역대 최다 클린시트 기록자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당시 수비수였던 클라우디오 젠틸레가에타노 시레아의 몫도 컸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때가 있을텐데 이를 완벽히 커버했다. 또 유벤투스의 명 수비수였던 클라우디오 젠틸레가 기량하략을 이유로 30세에 팀을 떠나야 했을정도인데 40세 가까이 뛰었으니 누구처럼 정치로 팀의 주전을 차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잔루이지 부폰과 많이들 비교하지만 둘 다 40세까지 계속 주전을 차지하고 그에 맞는 활약을 했다. 부폰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 평가의 잣대는 애매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클럽의 커리어는 부폰이 앞서고 국대 커리어의 다양한 트로피는 조프가 앞선다고들 이야기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골키퍼가 나이의 제한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적더라도 월드컵 우승을 가져갔다는것은 그의 클래스를 입증한다.


4. 지도자 경력[편집]


1988년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년 동안 팀에 코파 이탈리아 1회, UEFA컵 1회를 안겼다. 이후 SS 라치오 감독을 2번 거친 뒤, 1998년 체사레 말디니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서 튀르키예, 벨기에, 스웨덴, 루마니아, 네덜란드를 차례로 꺾고 32년 만에 결승에 진츨한다. 결승에서도 1998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를 맞아 델베키오의 선제골로 우승 문턱까지 가지만 94분 실뱅 윌토르에게 동점골을 얻어맞고 연장 전반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골든골까지 내주며 통한의 역전패,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대회 직후 조프는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되지만 유로 준우승의 업적을 인정받아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다.

2005년 ACF 피오렌티나 감독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5. 기록[편집]



5.1. 선수[편집]



5.1.1. 대회 기록[편집]





5.1.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2위: 1973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GK 5위)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68, 1980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68, 1975
  • 옹즈 드 옹즈: 1982
  • 베를린-브리츠 10년의 골키퍼 (1970년대)
  • FIFA 100: 2004
  • FIFA 공로장: 1984
  • UEFA 주빌리 어워드: 2003
  • 골든풋: 2004
  • IFFHS 세기의 이탈리아 골키퍼: 1999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이탈리아 드림팀 B팀: 2021
  •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2011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2
  • 이탈리아 스포츠 명예의 거리: 2015


5.2. 감독[편집]



5.2.1. 대회 기록[편집]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8~2000)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준우승: 2000[4]


5.2.2. 개인 수상[편집]


  • 세미나토레도로: 1990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00


5.3. 수훈[편집]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3등급: 1982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2000


6. 기타[편집]


파일: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pn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1위에 이름을 올렸다.

[1] 선방률 부문 1위는 89.1%의 선방률을 기록한 잉글랜드의 고든 뱅크스.[2] Grande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3] 다른 두 명은 레스터 시티를 2015-16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으로 만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 UEFA 유로 2020에서 이탈리아의 53년 만의 유로 우승을 이끈 로베르토 만치니.[4] UEFA 유로 2000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역전패를 당하고 대회 직후 경질되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데, 결국 경질 직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조반니 트라파토니 선임이라는 악수초강수를 두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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