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칙스

덤프버전 :

더 칙스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The Chicks
더 칙스[1]

파일:20190925_DIXIE-CHICKS.jpg}}}
멤버
나탈리 메인즈 (Natalie Maines)
에밀리 스트레이어 (Emily Strayer)[2]
마티 맥과이어 (Martie Maguire)[3]
소속
Crystal Clear Sound, Monument, Columbia Nashville
활동
1989 ~ 현재
장르
컨트리, 포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활동
2.1. 데뷔와 초기
2.2. 성공
2.4. 사건 이후
2.5. 현재
3. 현재 멤버
4. 수상 이력
5. 기타



1. 개요[편집]


미국컨트리 밴드이다. 원래 이름은 딕시 칙스(Dixie Chicks)였으나,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영향으로 이름에서 딕시를 지웠다.[4]

컨트리 장르의 인기가 높지 않은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미국에서 레전드 급 대우를 받는 밴드이다. 앨범을 두 장 연속 천만 장 이상 팔아치운 유일한 여성 그룹으로, 빌보드 선정 올타임 여성 아티스트 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그래미가 정말 사랑하는 그룹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지금까지 무려 13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그래미 주요 부문 세 개를 싹쓸이하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5]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자랑했으나,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전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미국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반발에 직면했다. 해당 전쟁이 시작된지 10여년 가까이 지났고,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 2020년 대에도 해당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2. 활동[편집]



2.1. 데뷔와 초기[편집]


1989년 로라 린치, 로빈 린 메이시, 마티 맥과이어[6], 에밀리 로비슨[7] 네 사람이 딕시 칙스를 결성했다. 마티와 에밀리는 자매 사이다.

멤버 마티 맥과이어가 미국의 'Walnut Valley Festival'[8] 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면서[9] 이름을 알렸고, 덕분에 당시 상원 의원의 딸로부터 후원을 받아 그들의 데뷔 앨범 'Thank Heavens for Dale Evans'를 발매했다. 해당 앨범은 인디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컨트리포크, 블루그래스 장르를 아우른다. 멤버들이 카우걸 복장을 하고 나름 열심히 홍보를 뛰었음에도 인디 밴드의 한계로 큰 인지도를 얻지 못했다.

1992년 5월 1일, 정규 2집 'Little Ol' Cowgirl'을 발매했다. 1집과 다르게 네오트레디셔널 컨트리 음악을 시도했는데, 이를 원치 않던 로빈 린 메이시가 결국 밴드를 떠난다.

1993년 정규 3집 'Shouldn't a Told You That'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을 바탕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소니와 계약에 성공한다. 그리고 멤버 로라 린치가 밴드를 떠나게 되는데,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마티와 에밀리 자매가 로라 린치를 쫓아낸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 로라 린치의 탈퇴에는 보다 젊은 밴드 이미지를 원했던 두 사람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로라 린치를 대체할 멤버로 당시 나이로 21살이었던 나탈리 메인즈[10]를 영입한다.


2.2. 성공[편집]


밴드의 재편 이후에는 본격적인 컨템포러리 컨트리를 시도한다. 1997년 10월 새 앨범의 리드싱글 'I Can Love You Better'를 공개했으며, 1998년 1월 27일 그들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자 첫 번째 메인스트림 데뷔 앨범인 'Wide Open Spaces'를 발매했다.

해당 앨범으로 초대박을 치게 된다. 어느 정도였냐면, 딕시 칙스의 1998년 한 해 CD 판매량이 같은 해 나머지 컨트리 가수의 CD 판매량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리고 1998년 그래미 어워드 Best Country Album 부문을 비롯해 CMA(Country Music Association Award) 등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에 성공한다.

1999년 8월 31일 다섯 번째 정규 앨범 'Fly'를 공개했다. 'Wide Open Spaces'에 이어 이번 앨범도 1,000만 장 넘게 팔아치웠고, 다시금 그래미 상 수상에 성공하는 등 컨트리 계 최고의 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이후 소니 레코드 측과 소송을 벌인다. 소니 측에서 로열티를 과소 지급했다는 문제였다.[11] 분쟁 끝에 여전히 소니와 음반을 발매하는 대신 로열티 비율을 조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 와중인 2002년 8월 27일 정규 6집 'Home'을 발매했다. 앞의 두 앨범 만큼은 아니지만, 이 앨범도 빌보드 200 1위에 오르고 6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2.3. 이라크 전쟁 비판[편집]


그야말로 딕시 칙스 최대의 위기였다.

이라크 전쟁의 비판으로 미국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지금의 시각에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2003년 이라크에 침공을 감행하던 당시의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는 매국노 취급 그 이상이었다. 9.11 테러 이후 아랍권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극에 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딕시 칙스 뿐만 아니라 마돈나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 숱한 논란에도 꿈적 않던 그 마돈나도 결국 한발 물러섰을 정도로 미국 사회의 이라크 전쟁 지지는 엄청났다.

게다가 딕시 칙스가 컨트리 가수라는 점이 타격을 키웠다. 심지어 많은 방송국들이 딕시 칙스의 노래를 송출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딕시 칙스의 앨범과 싱글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나탈리는 두 번에 걸쳐 사과문을 공개한다. 그럼에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등 여론과의 전면전에 나선다. 또 Entertainment Weekly의 표지도 장식하는데, 이 표지에 대한 파장도 거셌다. 멤버들의 몸에 "Traitors(반역자)", "Proud Americans(자랑스러운 미국인들)", "Free Speech(자유로운 발언 기회)" 등의 멘트가 적혀 있는 누드 사진이었기 때문. 아래는 해당 표지인데, 수위가 상당하니 주의.

더 칙스가 장식한 당시 Entertainment Weekly의 표지
[ 펼치기 · 접기 ]
파일:Dixie Chicks EW.jpg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딕시 칙스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안좋아졌다. 그럼에도 2003 그래미 어워드에서 Best Country Album을 수상하는 등 음악적으로는 계속 인정받았다.


2.4. 사건 이후[편집]


2006년 3월 16일, 새 앨범의 리드싱글 'Not Ready to Make Nice'를 발매하였다. 이때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그 덕분인지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 4위까지 올랐다. 참고로 노래 가사에는 딕시 칙스가 받았던 살해 협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12]

같은 해 발매된 정규 7집 'Taking the Long Way'의 수록곡 일부에는 조지 부시와 이라크 전쟁 반대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한 본인들의 생각이 녹아있다. 해당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데뷔하고, 미국에서 250만 장 이상 팔렸다. 이전에 비하면 아쉽지만, 꽤 괜찮은 성적이다. 그러나 라디오, 특히 컨트리 계열 방송국의 딕시 칙스 보이콧이 계속되었고, 이 때문에 발매된 싱글들의 Hot Country Songs 순위가 저조했다. 또한 2006년 7월 시작된 투어의 경우, 미국에서 표가 잘 안팔리는 바람에 공연장을 작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13]


2.5. 현재[편집]


이후 긴 공백기를 가졌다.

2016년 비욘세와 함께 CMA(Country Music Association Award)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공연 이후 온라인에서 이에 대한 비난글이 폭주했다. 가뜩이나 이라크 전쟁 사건 후폭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딕시 칙스에, 당시 'Formation' 뮤직비디오와 슈퍼볼 하프타임 쇼 의상으로 인해 일부 백인 층의 공격을 받고 있던 비욘세의 조합 때문으로 보인다. CNN의 관련 기사 딕시 칙스가 아직까지도 이라크 반전 사태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셈.

2019년 발매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7집 Lover의 수록곡 'Soon You'll Get Better'에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2020년 6월 25일, 밴드의 이름을 딕시 칙스에서 더 칙스로 고쳤다.

2020년 7월 17일, 14년 만에 정규 8집 'Gaslighter'가 발매되었다.[14] FUN. 출신의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15] 해당 앨범은 메타크리틱 82점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상업적 성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빌보드 200 최고 순위는 3위이고, 빌보드 핫 100에는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3. 현재 멤버[편집]


  • 나탈리 메인즈 (Natalie Maines)
1974년 10월 14일 생

더 칙스의 리드보컬이다.
  • 에밀리 스트레이어 (Emily Strayer)
1972년 8월 16일

본래 이름은 에밀리 어윈(Emily Erwin)이다. 결혼하면서 현재의 성으로 바꿨다.

1999년 Charlie Robison과 결혼했다가 2008년 이혼했고, 2013년 Martin Strayer와 재혼했다.

  • 마티 맥과이어 (Martie Maguire)
1969년 10월 12일 생

본래 이름은 마티 어윈(Martie Erwin)이다. 결혼하면서 현재의 성으로 바꿨다. 원래의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에밀리와 마티는 자매 관계다. 마티가 동생이다.
1995년 Ted Seidel과 결혼했다가 1999년 이혼했다. 2001년 두 번째 남편 Gareth Maguire와 결혼했고, 2013년 이혼했다. 덕분에 활동했던 이름이 무려 세 개가 되었다.


4. 수상 이력[편집]


레전드 가수 답게,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 Grammy Awards: 22회 후보 지명 총 13회 수상
    • (1999) Best Country Album - Wide Open Spaces
    • (1999)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 There's Your Trouble
    • (2000) Best Country Album - Fly
    • (2000)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 Ready to Run
    • (2003) Best Country Album - Home
    • (2003) Best Country Instrumental Performance - Lil' Jack Slade
    • (2003)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 Long Time Gone
    • (2005)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 Top of the World
    • (2006)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 I Hope
    • (2007) Album of the Year - Taking the Long Way
    • (2007) Best Country Album - Taking the Long Way
    • (2007) Record of the Year - Taking the Long Way
    • (2007) Song of the Year - Not Ready to Make Nice
    • (2007) Best Country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 - Not Ready to Make Nice

  • American Music Awards]: 7회 후보 지명 총 4회 수상
    • (1999) Favorite New Country Artist - Dixie Chicks
    • (2001) Favorite Country Band, Duo or Group - Dixie Chicks
    • (2003) Favorite Country Band, Duo or Group - Dixie Chicks
    • (2003) Favorite Country Album - Home

  • Billboard Music Awards: 8회 후보 지명 총 7회 수상
    • (1999) Country Artist of the Year - Dixie Chicks
    • (1999) Country Duo/Group of the year - Dixie Chicks
    • (1999) Country Duo/Group of the year - Dixie Chicks
    • (2000) Country Artist of the Year - Dixie Chicks
    • (2000) Country Duo/Group of the Year - Dixie Chicks
    • (2000) Country Albums Artist of the Year - Dixie Chicks
    • (2000) Country Album of the Year - Fly

  • Country Music Association Awards: 17회 후보 지명 총 10회 수상


5. 기타[편집]


  • 애니메이션 퓨쳐라마 극장판 'Bender's Big Game'에서 당시 활동명인 '딕시 칙스'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텔레포터 오작동으로 세 명이 엉겨붙은 상태로 나온다. 충공깽. 엄청 아프다고.... 나중에는 사회자마저 그들에게 흡수된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해설하고 있는 사회자의 모습이 개그.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14:42:49에 나무위키 더 칙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구 딕시 칙스(Dixie Chicks). 2020년 활동명을 변경하였다.[2] 원래 성은 Erwin. 결혼하면서 현재의 성으로 바꿨다.[3] 원래 성은 Erwin. 결혼하면서 현재의 성으로 바꿨다.[4] 딕시라는 명칭은 미국 남부 주들과 주민들을 상징하는 용어이지만, 유래 및 사용과 관련해 미국, 특히 흑인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5] 그래미 어워드의 주요 부문은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 총 4개이며, 이 중 신인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신인상'을 제외한 세 부문을 타는 것이 사실상 최고 기록이다. 이 세 부문을 모두 타면 '싹쓸이(Sweep)'라고 표현되는데, 이렇게 그래미를 타간 가수는 2021년까지 그래미 역사상 10명에 불과하다.[6] 당시 이름은 마티 어윈(Erwin)[7] 당시 이름은 에밀리 어윈(Erwin)[8] 미국 캔자스 주에서 열리는 블루그래스 음악 축제이다.[9] 1987년 2위, 1989년 3위[10] 미국의 레전드 급 컨트리 가수 Lloyd Maines의 딸이다.[11] 소니 레코드는 $ony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소속 가수들과 돈과 관련된 논란이나 분쟁을 많이 겪었다.[12] Saying that I better shut up and sing Or my life will be over.[13] 티켓 판매에는 라디오 방송국의 홍보가 꽤 큰 역할을 하는데, 방송국들의 딕시 칙스 콘서트 홍보 거부가 타격을 주었다.[14] 본래 2020년 5월 1일 발매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밀렸다.[15] 잭 안토노프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지속적으로 앨범 프로듀싱을 같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