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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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등장인물
2.1. 설까치 가족
2.1.1. 설까치 부자
2.1.2. 설까치 가족으로 들어온 등장인물
2.2. 해동중학교 학생
2.3. 그 외
3. 시놉시스
4. OST
5. 무대탐방
6. 1980년대 요소
7. 기타



1. 개요[편집]




만화가 이현세 원작 떠돌이 까치를 원작으로 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TV판 애니메이션으로 달려라 호돌이와 함께 한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대원동화, 세영동화, 신원프로[1].

그 이전에도 한국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단막 애니메이션이나 극장판 애니메이션 재방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TV 정규편성 애니메이션은 톰과 제리, 마징가 Z와 같은 것들로 전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한 작품이다. TBC에서 제작한 황금박쥐요괴인간이 한-일 합작 형태를 띠긴 했으나 주요 스토리나 연출은 전부 일본제작진이 짜왔기 때문에 작화 하청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순수 국산 TV애니메이션을 제작하자는 계획은 이 당시부터 있었지만, 자금문제와 노하우 부족 등 여러 사정으로 미뤄졌다고 한다. 국산 TV 애니메이션이 제작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것은 1986년도부터로 1988 서울 올림픽과 시청료 거부운동이라는 사정이 겹치면서였다. 1985년 12대 총선을 기점으로 KBS 수신료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KBS에서 그 동안 계획서만 있었던 만화영화 제작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1986년 말부터 작업에 들어갔던것이었다.

떠돌이 까치는 1987년 5월 5일KBS 1TV에서 방송되었다. 국산 TV 애니메이션의 최초 방송이다. 이후 KBS에서는 아기공룡 둘리가 1987.10.7 / 아기공룡 둘리 2가 1988.5.5일에 방영되었으며, MBC에서는 독고탁과 비둘기합창, 달려라 호돌이 등이 방영되었다. 참고로 정규 편성 국산 애니메이션으로는 달려라 하니가 최초다.

후속작으로 '까치의 날개'가 있는데 이현세의 다른 작품들처럼 캐릭터만 공유하는 독립적인 작품이다. KBS 유튜브 옛날티비 채널에서 까치의 날개와 함께 공개되었다.

2. 등장인물[편집]



2.1. 설까치 가족[편집]



2.1.1. 설까치 부자[편집]


이 작품의 주인공. 트럭 운전수인 아버지의 직업상 전국을 떠돌면서 살다 서울에 올라와 해동중학교에 전학을 온 후 야구부로 들어오게 된다. 집은 아버지가 모는 트럭이고 이 트럭을 공터에 세워놓고 생활하고 있다. 이 때 육상부 소속의 소녀 엄지를 만나게 되고 첫 눈에 반하게 되고 야구부 주장인 마동탁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와중에, 아버지 설대포가 데려온 재혼 상대인 오여인과 딸 달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잠시 방황한다. 하지만 이후 새 가족을 받아들이고 야구부 승리의 주역이 된 뒤 가족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난다.[2] 해녀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설까치에게 유품으로 남겨준 주먹만한 크기의 흑진주를 갖고 있다.
  • 설대포 / 성우 : 조명남[3]
설까치의 아버지. 자신의 아내(즉 까치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트럭에서 먹고 자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장. 딸의 치료비때문에 곤욕을 치루는 오여인의 고생하는 모습에 동정심을 느껴 오여인을 도와주게 되고 오여인과 재혼까지 하게 된다. 이후 의붓딸 달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데 해동중학교 야구부 전국대회 결승전 당일에 귀국해서 4가족이 다시 뭉치게 된다. 직업이 트럭 운전수라지만 집이 없고 그래서 가구가 트럭의 탑재공간 안에 있다. 트럭은 대형 카고트럭에 탑차처럼 컨테이너가 얹혀져 있다. 이후 오여인과 결혼하여 집이 생기고 외국으로 떠나면서 이 트럭을 처분한다.

2.1.2. 설까치 가족으로 들어온 등장인물[편집]


달이의 어머니. 하반신이 마비된 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고생하는 와중에 설대포와 인연을 트게 되면서 재혼하게 되고 설까치의 계모가 된다.
오여인의 딸. 소아마비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휠체어에 타고 있다.


2.2. 해동중학교 학생[편집]


해동중학교 야구부 주장. 다른 작품에선 주로 적이자 라이벌로 등장해서 각종 졸렬한 짓거리도 마다 않는 마동탁이지만, 이 작품에선 설까치의 좋은 선배이자 승부욕을 불태우는 선의의 라이벌로 등장한다. 야구를 그만 둔 까치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이끌어 줄 정도니 보기 드문 케이스.
해동중학교 야구부의 포수.
해동중학교 육상부의 여학생이며, 마동탁의 여자친구. 전학을 온 설까치가 첫 눈에 반하게 된 여학생. 다른 작품에서는 까치가 간도 쓸개도 다 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지만 여기서는 쿨하게 마동탁과의 관계를 인정하고 떠난다. 이 또한 드문 케이스.


2.3. 그 외[편집]


  • 해동중학교 야구부 감독 / 성우 : 김태연
  • 결승전주심 / 성우 : 노민[4]
  • 아나운서 / 성우 : 백진


3. 시놉시스[편집]


해동 중학에 입학한 까치는 꿈꾸어 오던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야구부에 입단한다.

매일 지기만 하던 해동 야구부는 까치와 동탁의 활약으로 점차 막강한 팀이 되어간다.

한편 아버지는 오 여인의 딱한 사정과 고운 마음씨에 감동하여 결혼을 결심한다.

까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죽은 어머니의 그리움에 방황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4. OST[편집]


작품의 전체 OST의 음악 감독은 김도향이 맡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오프닝곡이며 주제가이기도 한 아래 노래의 원제는 '까치까치'이다.[5] 다만 이 제목보다는 이 작품의 제목과 동일한 '떠돌이 까치' 라는 제목으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6] 이성희가 작사ㆍ작곡을 맡았고, 김진희가 노래했다. TJ노래방에 '떠돌이 까치'라는 제목으로 5591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TV Ver. 여는 노래, 21초 부분에서 나오는 잡음에 주의



앨범판


라이브 버전(영상의 1:41부터)[7]
노래
김진희
작사
이성희
작곡
이성희
푸른 날에 우리 꿈은 미래의 우리들의 힘
두 손을 굳게 마주잡고 내일을 향하여 가자
작은 용기라도 좋아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미래를 향하여 가자
까치 까치 까치 우리들의 까치 (까치 까치)
까치 까치 까치 우리들의 까치 (까치 까치)
까치 떠돌이 까치
‘까치까치(떠돌이 까치)’ 가사


5. 무대탐방[편집]


198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생각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 양재동 톨게이트[8]
까치가 아버지와 서울에 들어오던 톨게이트이다. 당시에 있던 '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와 같은 문구 팻말까지도 실제처럼 잘 재연했다.1980년대 양재동 톨게이트 사진
까치가 육상부인 엄지를 따라 잡는 장면을 연출한 장소이기도 하고, 나중에 서로 정겹게 대화를 나누던 인도가 있는 한강변의 장소는 다리의 모습이나 63빌딩으로 볼 때 한강대교동작대교 사이의 노들길이다.

6. 1980년대 요소[편집]


  • 초반부에 트럭으로 서울에 입성하며 까치가 아버지인 설대포에게 또 술마시고 이리 쾅 저리 쾅 사고 내실거냐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지금처럼 음주운전을 살인에 준하는 행위로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 까지의 아버지가 오락실에서 했다는 디오 디오 하면서 파리가 떨어진다는 게임은 갤러그. 당시 이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없는 국민게임이었다.
  • 경기장에서 나오는 응원가는 정수라아 대한민국이다. 역시 당대의 사람들에게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응원가로 많이 씌였다. 또한 결승전에서 경기 시작할 때 응원가로 나오는 멜로디는 상브르와 뫼즈 연대가이다. 이 멜로디가 당시에 굉장히 익숙한 멜로디인 이유는 80년대에 MBC의 스포츠중계 오프닝 시그널로 씌였기 때문이다.
  • 소아마비 환자 설정이 있는데, 2020년대 시점에서는 전 세계에서 1000명 미만일 정도로 희귀해진 상황이다. 그리고 만화가 나온 1980년대의 경우도 한국에서 완전히는 아니나 박멸되어 가는 중이라 거의 희귀질환 정도로 가는 중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전 세대에서 소아마비는 굉장히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넘아있었고, 이 시대를 사는 성인들은 이 공포를 겪고 자라난 사람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에 1980년대에 이 만화를 보는 성인들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설정이었다.

7. 기타[편집]


파일:R414x0.jpg
  • 비공식 포스터. 80년대풍 한국영화 포스터로 패러디하여 그려진 것. 실제 포스터에 가까운 것은 이 이미지이다.
  • 그리스에서 'Ο ΕΞΥΠΝΟΣ ΚΑΤΣΙ'라는 이름으로 정발된 모양.
  • 까치 역을 맡은 김순원 성우는 이후 제작현장을 촬영한 '방송의 현장' - 떠돌이 까치 제작현장 편에서 아나운서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까치의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김순원은 까치의 목소리를 중학생 1학년 목소리라서 변성기를 지난 소년과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중간 목소리를 설정했다고 하고, 그리고 성격을 개구장이면서도 사춘기 소년의 아픔을 가진 양면성을 가진 소년으로 설정하여, 높낮이를 조절했다고 했다.
  • KBS에서 방영한 중학생 운동선수로서 아버지만 있는 편모이고, 계모와 살게된 뒤, 계모보단 친모를 그리워한다는 측면에서 1년 뒤에 장편 애니로 방영된 달려라 하니와 유사한 점이 있다. 다만 달려라 하니가 굳이 떠돌이 까치의 스토리를 모방했다기보다는 이렇듯 불우한 가정사를 가진 이의 성공이야기가 당시 관객들의 공감을 많이 산 스토리 구조라서, 이러한 타입의 작품이 많았다. KBS '방송의 현장' - 떠돌이 까치 제작현장 편에서 성우 조명남 역시도 자신이 더빙하는 이 만화의 스토리가 수입 만화에 비해서, 한국 정서에 맞는 스토리라고 평했다.
  • 코미디언 유세윤이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하는 아이디가 바로 까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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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새한 프로덕션으로 추정[2] 작 중 오여인과 설대포의 대사를 보면 다음 목적지는 경상남도 마산(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3] 해당 성우의 유일한 애니메이션 출연작.[4] 오프닝 노래 중에 나오는 크레딧 상으로 '덕태'라는 캐릭터가 나오기는 하는데, 작품 상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5] 오프닝 곡이 나오는 크레딧에서 확인 가능.[6] KBS에서 1992년 2월 2일 방송하여 김진희가 직접 라이브로 부른 노래는 내친구 - 만화영화 주제가와 함께 편에서는 '떠돌이 까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해당영상의 1:41부터)[7] KBS '노래는 내친구'- 만화영화 주제가와 함께 편(92년 2월 2일 방송)[8] 지금의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가 개업한 것은 1987년 10월 5일의 일로, 떠돌이 까치가 방영되던 1987년 5월 당시에는 서울 톨게이트가 지금의 양재동 서울만남의광장휴게소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