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 돔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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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의 사업 계획은 본래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유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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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기획
3. 뚝섬 돔 프로젝트
4. 건립 배경과 논란
5. 무산
6. 이후 반응



1. 개요[편집]


1990년대 중반 LG그룹 산하의 LG돔이 계획했던 다목적 돔 경기장.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처음으로 제시된 돔 경기장이었으나, 경제적인 원인으로 인해 건설이 무산되었다.


2. 기획[편집]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이뤄냈다. 한편 모기업 LG그룹은 그룹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변경했으며, 구자경 명예회장이 장남인 구본무에게 회장직을 넘기면서 3세대로 경영권이 승계되었다.

구본무 회장은 생전 해외 출장같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저녁 시간에 반드시 LG 트윈스의 경기를 지켜봤고, 팀 성적이 부진하면 선수단 전체에 회식 자리를 마련해 침체된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등, 야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골수 야빠였다. 또한 그룹 내에서도 단기간의 2번의 우승을 이뤄내는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구 회장의 열정은 돔구장 계획으로 구체화되었고, 북아메리카일본 출장을 갔을 때 주변에 돔구장이 있으면 꼬박꼬박 방문 일정을 잡았을 정도였다.

허나 당시 대한민국에서 돔 경기장은 너무 생소한 물건이었다. 지금처럼 해외야구 마니아가 드물었던지라 돔구장은 문자 그대로 상상 속의 물건이었고[1], 구기종목을 대상으로 한 대형 돔경기장에 대한 건축 노하우를 가진 국내 전문가는 더욱 찾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돔구장으로 거둘 이익보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업이었다. LG그룹 내부 차원에서 진행한 경제성 검토에 의하면, 처음에는 '건설하는 데 들어간 자금회수는 최소 50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는 보고[2]가 나왔지만, 나중에 실무진들은 '회수될 가능성은 영원히 없음'이라는 절망적인 전망을 냈다. 그러나 그룹 회장부터 굉장히 의욕을 가지고 이 사업을 독려했기 때문에 LG그룹은 향후 발생할 적자를 그룹 홍보비 차원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20년대인 현재도 선진국에 지어진 돔 경기장은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30년 전이던 당시에는 홍보 효과가 대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3. 뚝섬 돔 프로젝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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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구상 당시 경기장 조감도[3]
1995년 3월 LG스포츠가 뚝섬에 야구,축구,농구등이 가능한 다목적 돔구장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다..[4] 비슷한 시기 추진되었던 롯데그룹의 잠실 제2롯데월드, 삼성그룹난지도 재개발과 함께 '서울 시내 3대 개발 계획'으로 꼽혔다.[5]

1996년 LG그룹 전략사업단 산하에 40여 명 정원의 돔 팀이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돔구장 계획이 착수되었다.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 3,500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돔을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한 돔 팀은, 1989년 한국마사회과천시경마장을 옮겨 공터가 된 성동구 뚝섬 일대 골프장 부지 9만 평 중 1/3을 매입하여, 6만석 규모의 돔경기장과 컨벤션 센터, 생태공원 등을 포함한 대규모 체육공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조순에게 밝혔다.[6]

1997년 1월, 서울시는 3만 3천여 평의 뚝섬 부지를 민간에 입찰을 붙여 매각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해당 부지를 녹지에서 체육시설로 용도변경을 했다. 그리고 동년 3월 말에 이루어진 2차 입찰에서 LG는 995억 300만 원을 제출하면서, 850억 원을 써낸 대림산업을 제치고 뚝섬 경기장 부지를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1996년 12월19일 서울시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결승 이상의 경기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6만 5천 명 수용의 개폐식 돔구장으로 한다."라는 전제 조건을 붙인다.

이후 돔 팀도 세계 곳곳에 위치한 돔구장을 방문해 돔구장 운영과 마케팅 기법을 배워 적자를 최소화할 수익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LG건설 등의 토목 관련 계열사에서도 직원을 돔 팀에 파견하고. 1997년 9월 착공을 목표로 독립법인 'LG돔'이 세워졌다.


4. 건립 배경과 논란[편집]


1992년 10월, 서울시는 '정도(定都) 6백년 사업'의 하나로 서울의 5대 전략지역의 개발구상을 발표하면서 뚝섬지구를 레저.문화.스포츠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기본계획 아래 1994년 12월 뚝섬의 돔구장 건설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뚝섬 돔구장은 시민체육시설로 구상하고 있었다.

1995년 4월 17일 LG는 서울시에 전용구장 건립 의향서를 제출했으며 LG는 서울시에 제출한 계획서를 통해 ▲서울의 상징적 구조물 건설▲2002년 월드컵 경기장 활용▲서울시민의 건전한 문화공간 제공▲지역경제 발전에 기여 ▲야구 전용구장 확보 등의 목적으로 총 공사비 3천8백억원(돔구장 2천6백억원,부대시설 1천2백억원)을 투입해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구 경마장부지일대에 최대인원 6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5만5천여평(주차장포함) 규모의 돔구장을 2000년까지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뚝섬 돔 구장을 2002 월드컵 경기장으로 활용할 것임을 밝힌 첫 사례[7]이자. 주 용도는 야구 전용구장으로 사용 할 것임을 밝힌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LG의 건립 의향서에 LG의 건의내용은 충분히 검토할 예정이고, 사업 시행방법 및 사업자 선정은 장래 별도에 통보하겠다고 회신한다.[8] 서울시도 뚝섬에 돔 경기장을 짓겠다는 발표는 했지만 언제 시행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권오호 서울시 내무국장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뚝섬에 돔구장을 계획 한 것은 틀림이 없으나 다만 그 시기를 그냥 가만히 두었으면 2005년에 할지 도시 계획으로 하는 것이니까 3000년에 가서 사업을 시행할지 그 시기는 모르는 것이었으나 월드컵 개최로 인해 시기가 결정되었다 밝혔다.[9]

이렇게 서울시는 뚝섬 돔 경기장 개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으나 1995년 5월 29일 "LG가 서울시와 협의중인 축구전용구장 건설계획을 서울시가 동의하면 유치신청서에 후보경기장으로 추가 결정하겠다"는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공문[10] 이 서울시에게 내려오고 이후 뚝섬 돔 경기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할 유치신청서에 뚝섬 돔구장을 보조.연습경기장으로 기입되면서 서울시는 뚝섬 돔 부지의 매각을 추진한다.

결과적으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메인으로 하고 뚝섬 돔을 비롯한 동대문운동장은 보조 연습경기장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11] 유치신청서에 올라가게 되었으며관련기사, 관련기사 서울시도 유치신청서에 잠실이 서울의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올라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관련기사

그러나 이후 잠실에 있는 올림픽 주 경기장의 개.보수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오자 월드컵 조직위측은 축구전용구장 신축을 주장하였지만 서울시는 야구장을 겸한 다목적 형태의 뚝섬돔을 서울의 월드컵경기장으로 고집하여 조직위와 마찰을 일으킨다. 당시 월드컵 유치위의 요청에 대해 지금도 몇몇 야구팬들은 당시 FIFA 회장이였던 주앙 아벨란제를 앞세운 일본 축구계의 파상적인 유치활동으로 인해 월드컵 개최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크게 불리한 시기였고, 이 때문에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 유치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주 경기장도 아닌 연습경기장에 불과했던 뚝섬 돔구장이 불리해보이는 정세를 뒤집을만한 획기적인 카드도 아니었기에 그러한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다목적 돔 구장이 월드컵 유치에 유리한 카드였다면 일본측도 후술할 나고야 돔을 배제시키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유치활동 당시 일본보다 유치활동이 3년이나 뒤쳐져 있어서 불리하다는 평은 있었으나 1995년 5월 당시만 해도 한국이 유치활동에서 일본을 대등하게 따라잡았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고,당시 관련보도 일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던 FIFA 집행부는 당시 한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자 2002 월드컵 개최지를 일정보다 앞서 결정하자는 조기결정론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유치단은 이러한 FIFA 시도에 강력히 반발하였고 결국 개최지 선정은 원래 일정대로 하게됐다. 당시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4회 진출한 아시아 최다 본선 진출국이었던 반면 일본은 한번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을 홍보할 정도였다.[12] 당시 월드컵 유치의 성공요인은 1990년대 중반 당시에는 분명 일본보다 앞서던 축구실력과 월드컵 본선진출 경험, FIFA의 부당함에 맞선 유치위 활동이 큰 역할을 했지만 당시 유치신청서에 보조경기장으로 올라간 뚝섬돔이 월드컵 유치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울시는 그 후 공청회를 거쳐 1995년 10월 다목적 돔구장 건설을 내용으로 한 뚝섬 개발 기본 계획을 확정했고 이듬해인 1996년 7월 돔구장 건설사업자 선정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시의회 의결을 거쳐 1996년 12월 한 차례의 유찰을 거친 뒤, LG와 999억 3백만원에 부지매각 계약을 맺었다. 관련기사 1996년 12월 건설사 선정원칙을 만들고 1997년 3월에 LG상사를 뚝섬 돔구장 건설사로 선정한다.

1997년 5월 6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2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에 월드컵 개최도시를 1998년 2월2일까지 선정하여,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13] 이에따라 월드컵조직위원회는 당시 16개 후보도시에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현황자료를 요구하였고, 5월27일에 서울시측은 관련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뚝섬돔의 자료는 5만석의 밀폐식돔으로 표기되어 제출된다. 월드컵 개막전과 준결승을 하려면 6만석 이상이 되어야하고, 개폐식이 아닌 밀폐식 돔은 천연잔디가 자라는건 불가능하기에 뚝섬 돔은 월드컵 경기장으로 부적절했다. 그리고 당시 이 자료에는 프로야구의 정규 및 포스트시즌 경기와 기획경기, 시범 경기등을 개최한다고 적혀있어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인들의 반감을 산다.관련기사

FIFA는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 현황과 계획을 파악하기 위해 실사단을 파견하게 되고,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과 뚝섬돔은 FIFA의 규정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14]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FIFA의 요구조건으로 보수를 하면 1,000억 가까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외의 보수까지 합하면 신축비용을 능가할 가능성도 제기됐다.관련기사 결국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1997년 6월에 서울 방이동에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거부한다. 서울시와 조직위가 월드컵 주경기장을 어디로 할지 의견차를 보이자 , 월드컵 개막전이 수도권에서 열리기 희망했던 정부는 잠실과 뚝섬돔이 경제성도 떨어지고 FIFA 규정에도 맞지않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개최도시에서 서울을 제외를 검토하고 수도권 개최후보도시인 인천시와 수원시에 접촉한다.관련기사

정부에서도 축구전용구장에서 2002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걸 원했기에 인천시는 삼산택지지구에 있는 삼산종합운동장 예정부지에 축구전용구장을 신축하거나,[15]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인천문학경기장의 설계를 변경하여 아예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문체부에 내놓았으며 문체부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월드컵 개막식과 3/4위전을 치를 6만석 이상의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할 경우 추가비용을 검토, 제출할것을 경기도와 수원시에 요구한다.

1997년 8월 13일 조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대선출마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 재정으로는 월드컵 전용구장을 건설할 예산이 없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뚝섬 돔구장이나 잠실주경기장을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발언은 축구 전용구장 건립의 포기를 뜻하는지라,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대한축구협회는 이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뚝섬 돔 경기장은 당초 축구전용구장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서울시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야구장 위주의 다목적 구장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의혹을 제기하였고, "운동장 시설부지이지만 주변 땅값의 3분의 1 수준인 995억원이라는 낮은 가격에 매각했고, 1,700억원의 비용을 들여 돔구장 진입로까지 서울시가 건설하기로 한 것은, 국가사업인 월드컵 축구전용구장이라는 공공성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실제로 조순 서울시장은 1997년 8월11일 "월드컵 축구장을 한다고 해서 뚝섬 부지를 싸게 팔았다"며 땅값이 싼 이유가 월드컵 축구 때문임을 인정했다.관련기사

당초 이 뚝섬 부지는 구평회 월드컵유치위원장의 주선아래 축구전용구장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매각한 것으로 조직위와 대한축구협회는 생각해 왔었으나관련기사[16] 서울시가 “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와의 협의에서 뚝섬 돔구장은 축구 전용구장이 아닌 다목적 구장으로 건설키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대목에서 당시 유치위원장 구평회씨가 LG그룹의 고문이었고 서울시가 LG의 프로야구 돔 구장 설립계획을 받아들여 축구전용구장에서 다목적구장으로가 바뀐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관련기사

그리고 당시 서울시의 한 실무담당자가 사업신청 과정에서 관중석 규모가 줄어드는 등 당초 입찰내용과 어긋나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당시 월드컵유치위의 협조공문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결재해주었다 밝히는데, 이 협조공문도 유치위에서 정식 논의과정 없이 보내진것으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뚝섬경기장 관중석 축소 논란 이후에 LG측은 6만5천석으로 짓겠다 발표한 반면, 서울시는 개막전은 잠실에서 하고 조별예선 경기는 뚝섬에서 치르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는데, 잠실 보수에 1천억원 정도가 들고 뚝섬 경기장의 경우 서울시가 1천7백억원 되는 돈을 들여 진입로를 건설해주기로 했던점을 생각하면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에서는 2천억원의 신축비용이 예상되는 축구전용구장이 재원문제로 인하여 불가하다 밝힌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축구계의 반발이 거세고 정부와 월드컵 조직위의 서울시 개최도시 제외의 움직임까지 나오자, 다급해진 서울시는 소규모 축구전용구장을 짓는선에서 축구계를 설득하려 했으나 당연히 이에 응할리가 없고, 목동에 4만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지을테니 경기는 목동에서 하고 개막식 행사는 뚝섬이나 잠실에서 따로 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1997년 8월 22일 서울시는 뚝섬이나 잠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 6만5천석 이상의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 발표한다.그렇지만 이후에도 조직위에 뚝섬 돔을 월드컵경기장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했고 새로짓게 될 서울의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재정분담을 어느정도 하냐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1997년 8월 29일 서울시가 뚝섬 돔구장의 사용여부를 묻는 공문을 조직위에 발송했고,9월1일 조직위가 뚝섬에 월드컵 경기를 열지 않을시 위약금과 손해배상을 서울시가 LG에 하고 월드컵 입장수익을 차압하는등 조직위측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 밝힌다. 관련기사 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강경대응은 많은 비난을 불러왔으며 관련기사 결국 서울시는 구상권 청구 보도는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고, 뚝섬돔이 밀폐식과 5만석 관중석 축소로 바뀐경위는 미확정된 기본 설계안을 서울시가 그대로 조직위측에 넘겨주어 일어난 의사전달 과정의 착오라고 해명한다.관련기사[17]

당시 서울시는 유치위원회가 보조경기장으로 유치신청서에 기입하겠다고 해서 부지를 매각한건데, 월드컵 본선경기장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이로인한 손해배상을 조직위에 청구하고 월드컵 본선 입장수입의 차압을 검토한다 밝히지만 서울시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게된다. 유치신청 당시에 연습을 위한 보조경기장으로 기입한것이고 뚝섬에서 왜 본선경기를 열지않냐는 서울시의 항의는 일리가 없었다.

뚝섬돔구장 논란으로 서울의 월드컵 경기장이 결론을 내지못하며 아까운 시간만 보내게 되자, 당연히 공동개최국 일본의 준비상황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고,[18] 1997년 여름에 일본의 요코하마 국제 경기장등이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이러한 소식들이 보도되며 여론은 LG 프로야구장과 월드컵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 없었다. 관련기사

LG측은 야구장에서 월드컵을 할 수는 없다는 월드컵 조직위와 축구계의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뚝섬 경기장을 FIFA 규정에 맞게 건설하고,월드컵 후에는 투자비 회수를 위해 축구,야구를 겸하는 다목적으로 활용하게 설계했다" 밝힌다.[19][20]관련기사

9월 4일 조직위는 "뚝섬 돔구장의 보조경기장 또는 대체경기장 사용 여부는 본경기장이 선정 된 후에 논의 되는 것이 순서"라는 답을 보내와 뚝섬 돔구장이 연습,보조경기장의 성격이었음을 분명하게 한다.관련기사

1997년 10월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돔구장 특혜의혹이 제기되었으며 관련기사 1997년 12월 서울시 의회는 서울시가 싼 가격에 뚝섬부지를 매각한것은 LG에 대한 특혜라는 결론을 내렸다.관련기사 당시 서울시 의회의 뚝섬지구 돔구장 부지매각 의혹에 따른 행정사무조사 결과보고

서울시의회에서는 LG그룹이 서울시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일부 시의원은 당시 LG전자 상무로 재직하던 조순 시장의 장남 때문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의혹이 불거지자 조 시장의 장남인 조기송[21] 상무는 LG그룹과 아버지 조순 시장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이후 거의 그룹에서 활동하지 않고 수년간 칩거생활을 했다고 스포츠2.0에서는 기사를 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기송씨는 이후 LG전자 부사장에 까지 올랐고 LG-필립스의 공동대표까지 맡게되고 이후에는 LG를 떠나 강원랜드의 대표로 재직했다.

10월 10일에는 상암지구로 서울의 월드컵 주 경기장 신축이 결정되면서 월드컵 용도로 부지가 매각된 뚝섬 돔구장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서울시는 당초 계약대로 6만5천여석의 개폐식으로 지으면 문제가 없으며 보조경기장으로 사용하면 되기에 월드컵 개막식,준결승 개최와는 무관하게 뚝섬 돔 구장의 건설을 계속 진행할것이라 밝혔다. 관련기사 이러한 뚝섬 돔구장의 의혹에 대해 당시 LG그룹 전략사업개발단의 소속이자 뚝섬돔구장 추진 팀 돔팀의 일원이었던 김영수는 "대지 매입가가 특혜라면 특혜였을 것이다. 평당 290만 원이었으면 많이 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땅이 상업용지였나? 체육시설 용도로만 쓸 수 있는 땅은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대지 매입가를 특혜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월드컵경기장을 핑계로 엄청난 부동산 투자 이익을 취한다는 것도 말이 되느냐. 그럼 LG그룹이 그 비싼 경기장을 월드컵이 끝나면 헐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당시 잠실종합운동장은 자연녹지지역이고 목동운동장은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해있으며 당시 서울시 관계자의 답변은
건물의 규모를 생각해서라는 준주거지역으로 지정하였다 했지만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과 용적율이 적용되어도 건물의 규모는 문제가 없다는 서울시의회의 지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당시 LG그룹이 계획 중인 뚝섬 돔구장이 당초 계약(6만 5천 석)과는 달리 FIFA(국제축구연맹) 규격 미달인 5만 석 이하로 축소 설계돼 월드컵 개막식을 그곳에서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 당시 뚝섬 돔구장 터를 항의방문했던 전 축구협회 인사는 "축구계도 LG그룹에서 6만 5천 석으로 설계를 변경할 수 있고[22] 돔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23]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그렇게 떼를 써서라도 정부와 서울시에서 축구전용구장을 지어주기를 바랐다. 거기다 야구에 대한 축구인들의 누적된 소외감과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24]

그러나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경우 1994년 나고야시가 월드컵 후보도시로써 당시 공사중이던 나고야 돔을 제시했으나 일본 축구협회로부터 야구장에서 개최하는 것은 월드컵이후의 축구진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승인을 내주지 않았었다. 관련기사 뚝섬돔구장을 바라보는 대한축구협회와 조직위를 비롯한 한국 축구계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는 않았다.

LG측이 축구계와 조직위의 의견을 반영해 밀폐식 돔을 개폐식으로 변경하고 관중석도 5만에서 6만5천석으로 늘린다 했는데도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당시 월드컵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는 월드컵을 일회성으로 치르고 이후에 야구장으로 사용되는 돔 경기장을 원했던게 아니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후 한국축구 인프라와 축구진흥에 도움이 되는 축구전용구장을 원했던것이었다. 그러나 LG측은 밀폐식 돔에서 축구가 가능하다는 해명(?)과 설계를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당시 1996년 12월 서울시의 사업자 선정 입찰공고 내용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결승 이상의 경기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6만 5천명 수용의 개폐식 돔구장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2007년 스포츠2.0 기사에서는 당시 이 공고에서 6만5천석 다목적 개폐식 돔이라고 명시돼 있지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축구경기장으로 쓰라는 문구는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으나 이 입찰공고에 따르면 뚝섬구장을 5만명 수용의 밀폐식돔으로 추진한 LG측의 계약위반이고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다. 당시 LG측에서 뚝섬 돔을 야구와는 무관한 축구전용구장으로 짓겠다고 했으면 2002 월드컵 개막식과 준결승전은 뚝섬에서 열렸을것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LG트윈스의 야구장을 지으려는 목적으로 뚝섬 돔 사업을 시작한 LG였기에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자 김정남 당시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1998년 1월 동아일보 기고에서, 서울종합운동장과 뚝섬 돔 경기장 두 경기장을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쓰는 것에 대해서 불가하다는 방침을 서울시에 통고했으며, 또 돔구장이 야구전용구장이라는 것을 구단 관계자나 관련 서류에 밝혔고, 돔구장의 부지매매는 월드컵을 빌미로 내세워 축구인들의 분노를 샀으며, 월드컵 유치위나 축구협회 어느 기관에서도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 경기에 사용할 의사를 공식적으로 정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관련기사




5. 무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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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백지화 직전 뚝섬 돔구장 공사 부지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1997년 11월 26일 서울시의 승인으로 본격적인 돔구장 착공에 들어갔다.[25] 그러나 정부는 5일전인 11월21일에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으로 요청했음을 밝혔고, 12월 3일에 정부와 IMF가 구제금융 협상안에 사인함에 따라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외환 위기가 시작되었다. 6~7%였던 금리가 45%까지 치솟았고, 6~7천억원이 들어가는 돔 구장 사업이 LG그룹 전체에 유동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 중단했음을 밝혔다. 이후 서울시가 LG측을 설득했으나 LG는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26] 1998년 1월에 서울에 축구전용경기장 건설을 위한 재정분담까지 확정이 됐으나 1998년 2월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월드컵 경기장 신축에 대해 반대를 분명히 했고, 이후 새 정부에서 월드컵 주경기장을 어디로 할지 재논의하게 되는데, 서울시의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개.보수방안과 인천문학경기장 방안, 상암동주경기장 신축방안 3가지를 놓고 격돌하게 되지만 뚝섬 돔 구장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신축안이 결정되고 20여일뒤 서울시는 뚝섬 돔구장의 백지화를 발표한다. 서울시는 서울 축구전용구장 신축안이 확정되었으므로 월드컵을 전제로 했던 뚝섬 돔구장 계약이 무효가 됐기 때문이라 밝혔지만, 이미 월드컵 조직위가 뚝섬돔구장은 월드컵과 무관하다고 밝힌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다가 외환위기 이후에 중지했기 때문에 당시 서울시의 보도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결국 돈 문제로 보는 시선이 우세했다. 축구계와 서울시의회의 압력에 결국 서울시와 LG가 굴복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민윤기 씨는 돔구장 건설 무산 이유를 "LG그룹과 서울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밝혀 IMF 외환위기가 직접적인 위기임을 밝혔다.


6. 이후 반응[편집]


야구계에서는 첫 돔구장이 무산되었다는 것에 굉장한 아쉬움을 표했고, 이후 모 前 야구 해설위원이자 現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돔드립을 연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후 20년간 돔구장 계획만 나오다가 실행되지 못하며 돔구장 자체는 팬들 입장에서 상상 속의 존재 취급을 받았었다. 고척 스카이돔이 2015년 하반기에 완공이 됨으로써 국내에서도 돔구장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고척돔은 본디 아마추어 야구장으로 추진되었던 사업이[27]2008 베이징 올림픽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연이은 맹활약으로 인해 야구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어른들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계획이 수정되다보니 갈수록 사업추진 비용이 늘어났고, 규모도 일반 돔구장에 비해 협소한지라 프로야구를 치를 수 있는 진정한 돔구장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한편 고척 스카이돔과는 별도로, 민자유치를 골자로 하는 잠실 돔 야구장 사업의 추진이 2013년 말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또한 여러가지로 문제점이 많이 있어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에는 꽤나 진척된 상황이다. LG 역시 못내 아쉬웠던지 잠실 돔 야구장 사업에 적극적인 투자 의향을 밝히고 있다.

야구팬과 야구계 일부에서는 축구때문에 돔구장 건립이 무산되었다며 축구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축구계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처음부터 축구 월드컵이라는 이벤트와 연관짓지 말고, LG그룹 독자적으로 야구 전용 돔구장이란 컨셉으로 건설 관련 비용이 아무리 비싸게 나가더라도 밀어붙였으면 건설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야구장은 IMF 사태 때문에 LG그룹 스스로 건설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훗날 브라질처럼 '나라 살림에 맞지 않는 무리한 국제대회를 유치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논리가 성립하면 축구계를 비판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당연히 아니고.

한편로는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조순이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서울 월드컵 경기장 신축에 여론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신축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월드컵 주경기장의 신축은 1997년 9월 청와대 보고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지시한 것으로[28], 실제로 서울시장 선에서 개인적 야망으로 결정할 정도의 가벼운 사안도 아니었다.

뚝섬 돔 취소가 10년이 다되어가던 2007년 12월에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은 2008년 새해 소감을 밝히면서 뚝섬 구장에 관한 사건의 내막을 공개한다.

경기장을 지을 것이냐 말것이냐와는 별도로, 특정기업에게 돔구장을 짓도록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유치위의 책임자가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특정기업에 뚝섬의 서울시 부지를 팔고, 그 회사는 그 부지에 돔구장을 지은 후 월드컵 이후에는 야구장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었는데, 서울시는 이런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은 파기되기는 했지만, 조순 서울 시장은 대학시절의 은사이신데 결과적으로 그분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한 마음이었다. 관련기사[29]

결과적으로는 LG는 싸게 야구장을 지을 욕심으로 월드컵을 이용하려했고 이로인해 서울시와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행정력을 낭비하며 2002 월드컵 준비에 차질을 빚은 셈으로 오히려 야구계가 축구계로부터 비판받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산이유를 축구계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뚝섬 돔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선정이 되었다면, LG가 발을빼도 서울시가 책임지고 뚝섬 돔구장을 지었을것이고 결국 무산의 책임은 축구계에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있다.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이 뚝섬 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30] 뚝섬돔은 공사비가 무려 6천억원에 달하는 사업으로,(최대 8천억원) 2002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이 된다면 관련법령에 따라 건설비의 30%가 정부지원이 가능했는데,뚝섬 돔의 공사비 30%는 1천8백억원으로 당시 서울의 축구전용경기장 신축이 2천억원이 예상됐는데 무려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80%에 달하는 금액으로 경제성이 매우 떨어졌다. 뚝섬 돔 하나 지을 돈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 3개를 지을 수 있는것이다.

1998년 4월 새 정부가 재정부담을 이유로 서울월드컵경기장 신축을 백지화했었지만 LG돔은 결국 LG와의 관계등 여러가지를 고려할때 후보군에서 빠진다 밝힌다. 서울시의 경우 축구전용구장 신축은 미온적이었고 뚝섬 돔 구장 신축은 호의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월드컵경기장으로 뚝섬돔구장을 추진한것도 있지만 축구전용구장이 건설된다면 그 비용을 서울시가 모두 떠맡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실에 있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매년 적자를 보고 있어, 또 다른 경기장을 짓는것이 부담이었다. 그러나 LG는 뚝섬 돔 경기장을 전액 부담한다 밝혔기에 서울시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것이다.

결과적으로 LG가 외환위기로 뚝섬 돔 신축을 사실상 포기했을때 LG로부터 건립을 종용했지, 서울시의 재원을 투입하여 이어서 건설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에 뚝섬 돔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선정된 상태에서 LG가 발을 빼서 서울시가 떠맡게 된다면 서울시는 홀로 5천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서울시는 정부 보조금 30%(1천8백억원)를 지원받더라도 3천2백억여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차라리 상암동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30%(6백억원)를 부담하기로 했으니 서울시도 이 경우 상암 축구전용구장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거나 상암 축구전용구장이 무산되더라도 차라리 경제성이 떨어지는 잠실의 올림픽주경기장을 사용했으면 했지 더 경제성이 떨어지는 뚝섬 돔구장의 건설을 강행하지는 않았을것이다.

또 다른예로 삼성이 짓기로 했으나 외환위기로 포기하고 수원시와 경기도가 이어 건설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사례를 들어 뚝섬돔도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됐다면 건설이 가능했을거라는 주장인데, 수원월드컵경기장의 건설비는 무려 3,107억원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보다 1천억원이 더 들었지만 이 역시 뚝섬돔에 절반에 그치는 액수이다. 2002 월드컵 10개 경기장을 짓는데 들어간 돈은 총 1조8100여원으로 뚝섬 돔 건설비 6천억원은 이들 10개 경기장 총 건축비에 33%에 달한다.

뚝섬말고 대안이 없던것도 아니고 LG가 사업비를 전액부담하지 않는 이상 애초부터 실현되기가 어려운 사업이었던것이다. 참고로 월드컵경기장들도 건설중이나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건설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울산의 경우 원래는 종합경기장으로 건설하려 했으나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건축비가 종합보다는 싼 축구전용구장으로 전환해버렸고, 부산아시아드의 경우 원래 개폐식 돔으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당초 255억이 들것으로 예상된 지붕공사비가 외환위기 이후에 환율폭등과 원자재값 인상으로 622억까지 상승하면서 결과적으로 개폐식 지붕 방식은 폐기하게 된다. 그리고 수원의 경우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원래 삼성의 재원으로만 지으려던 경기장이었으나 삼성이 외환위기를 이유로 발을 빼면서 경기장 건설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성금으로 좌석비용을 마련하고 북쪽과 남쪽에 지으려던 지붕은 계획을 바꿔 삭제 할 수 밖에 없었다. 월드컵 경기장들도 당시 국가 경제상황으로 건설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월드컵 경기장보다 무려 3배(최대 4배)의 건축비가 들어가는 돔 경기장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되었으면 LG가 건설을 포기 했더라도 뒤이어 서울시가 책임지고 나서서 온전하게 건설했을거라는 주장은 얼마나 터무니가 없는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무산의 이유를 축구계로 돌리는것은 당연히 말이 안되는 것이다.

현재 뚝섬 돔 경기장 부지에는 훗날 도심 속 녹지 공원을 주제로 한 서울숲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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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나마 한일 슈퍼게임이 열렸던 도쿄 돔이 국내 야구팬들과 야구인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2] 그러나 LG돔 팀의 김경수씨는 자금회수에 47년이 걸린다고 서울시 의회에 답변한다.[3] 모티브가 된 구장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사용하고 있는 개폐식 돔 구장인 로저스 센터였다.[4] LG,돔구장 건립 추진-뚝섬 경마장에 완공후 서울시 기부 - 중앙일보[5] 이후 난지도 재개발은 월드컵경기장 건설 계획을 제외하고는 1996년 서울시에서 개발 계획을 폐기했고, 제2롯데월드는 서울공항의 활주로를 비트는 난리법석을 부린 끝에 건설에 착수하면서 최종적으로 완공되었다.[6] 당시만 해도 서울시청을 뚝섬 부지로 이전할 계획이 잡혀 있었다고 전해진다.[7] 뚝섬 돔 경기장이 19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요청으로 인하여 2002 월드컵 유치신청서에 기입되며 야구전용구장에서 축구,야구 겸용구장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축구계나 서울시가 아닌 LG가 먼저 뚝섬 돔을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하자 한 것이다.[8] 제97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재무경제위원회 회의록 1호(1997년 9월1일)[9] 제97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재무경제위원회 회의록 1호(1997년 9월1일) 72-73페이지[10] 후술하겠지만 이 공문은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치위원장이 마음대로 보낸 공문이었다.[11] 1995년 당시에 뚝섬 돔을 서울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한다는 방안은 유치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바가 없기 때문에 결국 보조,연습경기장으로 격이 낮아진채로 유치신청서에 올라건것이다.[12] 월드컵 개최국이 조기탈락한다면 대회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최국의 축구실력도 중요하다.[13] 유치경쟁 당시 대한민국은 16개의 후보도시를, 일본은 15개의 후보도시를 제출한 바 있다.이 모든 경기장에서 경기 하는것은 불가능하므로 국제축구연맹이 한.일 양국에 재량권을 부여한것이다. 일본은 96년말에 개최도시 10개를 선정했다.[1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서울특별시 리포트 1509일의 대장정》 p.13 [15] 이 부지는 지금의 삼산월드체육관 부지이다.[16] 유치위원회 시절에 공문에 축구전용구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서울시에 뚝섬 부지 매각을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17] 그러나 10년뒤인 2007년 7월16일 스포츠2.0 60호에 LG돔은 왜 사라졌나 기사에서는 당시 LG측이 NBBJ사의 현상설계를 채택하였고 원래부터 밀폐식돔이었다 밝혔다 당시 LG는 거짓말을 한것이다.[18] 1997년 8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구장은 부산,인천,대구 이렇게 3개 구장에 불과했다. 부산은 아시안게임 유치로 1995년부터 준비에 들어간거였고, 인천도 체전용으로 1994년에 착공한 거였다. 그나마 월드컵 용도로 대구가 막 착공에 들어간 상태였다.(대구의 경우 유니버시아드 용도로 짓는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원래는 2002 월드컵을 위해 축구전용구장으로 계획된 경기장이었다.)[19] 실제로 이 발표 이전에 LG측은 이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 경기를 치른 뒤, 야구장으로 사용할 것을 밝혀왔었었다.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에 결정권이 있는 조직위와 축구계가 뚝섬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자 이런 해명을 내놓은것이다. 그러나 2007년 7월 16일 스포츠2.0 60호에 'LG돔은 왜 사라졌나' 기사에서 당시 LG 관계자가 월드컵 이후 야구장으로 쓰려는 목적은 수지타산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표였다고 밝히면서 1997년 당시 LG의 해명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당시 월드컵을 일회성으로 개최하고 장기적으로 축구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안되는 야구장을 건설하려 한다는 축구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일이다.[20] 2010년대 들어 야구전용구장으로 기획되던 뚝섬 돔구장이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요청으로 축구.야구 겸용 다목적 구장으로 바뀌었다는 왜곡주장이 나오고 있는데,그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이시기에 LG는 뚝섬 돔은 다목적구장으로 축구,야구 둘다 할 수 있다는 말 뿐만 아니라 축구계로 인하여 야구장에서 다목적구장으로 바꾼건데 이제 와서 무슨소리냐?라는 말이 같이 나와야 한다.[21] 스포츠 2.0 기사는 조기성으로 표기하였다. 단순 오타라 보기에는 두 차례나 조기성으로 적힌것으로 보아 박동희 기자가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걸로 보인다.[22] 서울시가 입찰공고 내용으로 6만5천여석을 내건것은 FIFA 규정에 따라 개막전과 준결승전을 하기위해서 이 정도의 규모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뚝섬돔이 순수하게 월드컵 경기장으로 추진했다면 이 부분이 변경된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일이었다. 이는 FIFA 규정 위반으로 관중석수가 5만여석으로 축소된다면 서울은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구에 개막전과 준결승전 개최권을 내줘야 한다. 당시 이 관중석 축소는 뚝섬 돔구장은 월드컵 경기장이 주목적이 아닌 야구장이 주목적으로써 추진된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었다. 또한 조별예선도 아니고 개막전과 준결승을 치르는 주 경기장을 짓겠다는 곳이 FIFA 규정조차 숙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월드컵 조직위와 대한축구협회는 LG측을 신뢰하기 어려웠다.[23] 밀폐식 돔 구장에서 축구는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1994 미국 월드컵 당시에 폰티악 실버돔으로 천연잔디를 임시로 그라운드에 입혀서 경기를 치뤘다. 일부 야구팬들은 일본 나고야돔의 축구장 변환을 이유로 당시 축구계에서 밀폐식 돔에서 축구가 가능한데, 억지를 부린다 주장하지만 나고야 돔 역시 밀폐식 돔이라 천연잔디가 자라지 못하고 축구장으로 공식 경기를 열려면 폰티악 실버돔처럼 임시로 천연잔디를 입혀야 한다. 나고야 돔은 인조잔디이기에 일본축구협회에서 승인을 내주지 못해 축구 경기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24] 보통 축구 때문에 뚝섬 돔 구장이 무산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포츠 2.0 기사의 이 부분을 인용하여 축구계를 비난하지만 IMF 때문에 무산됐다는 같은 기사의 결론은 말하지 않고 있다.[25] '용도논란'뚝섬 돔구장 착공 - 경향신문[26] 결국 서울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뚝섬구장에 월드컵 경기 배정을 요구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축구전용구장 신축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계속 뚝섬에 월드컵 경기 배정을 요구하자 서울시가 LG와 별도의 이면계약을 채결한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관련기사 [27] 착각하기 쉬운데 고척 스카이돔은 동대문구장의 대체가 아니라 별도 사업이었다.[28] "결국 이 문제는 1997년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월드컵대책 보고회의에서 대통령이 축구전용구장을 서울시에 건립하되 총리가 그 방안을 강구하도록 한 연후에야 해결의 가닥을 잡기 시작하였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서울특별시 리포트 1509일의 대장정》 p.13 [29] 이 기사는 2007년 12월 당시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2008년 새해소감글을 스포탈코리아가 그대로 옮겨 기사화 한 것이다.[30] 뚝섬돔구장 설계경기가 한창이던 1997년 7월에 왜 문체부가 나서서 인천과 수원을 주경기장 후보로 고려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