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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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힐라 모스크 이라크.jpg
대사원 전경

아랍어 ٱلرَّمَادِي
영어 Ramadi

1. 개요[편집]


이라크 중부의 도시. 수도 바그다드 서쪽으로 70km, 카르발라에서 서북쪽으로 80km, 사마라에서 서남쪽으로 70km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50만명으로, 안바르 주의 주도이다. 바그다드, 티크리트와 함께 이라크 순니 삼각지대의 한 축을 이룬다. 본래 작은 마을이었다가 1869년 베두인 둘라미 부족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오스만 제국의 바그다드 왈리인 미드하트 파샤에 의해 근대의 도시가 세워졌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 덕에 근현대 시기 많은 전투의 장이었고, 21세기 들어 이라크 전쟁이슬람 국가 토벌전 시에 크게 파괴되었으나 현재 복구 중이다.

2. 연이은 전쟁[편집]


이웃한 팔루자와 함께 바그다드의 서쪽 관문으로써 전략적 요충지이고, 여러 전투가 벌어졌다. 1차 대전기인 1917년 두 차례의 전투에서 7월의 1차 전투는 오스만 군이, 9월의 2차 전투는 영국군이 승리하였다. 이후 영국군은 인근 합바니야 기지에 주둔했는데, 1941년 영국-이라크 전쟁 시에 이라크 군이 포위했으나 팔레스타인 주둔 영국군이 동진하여 기지를 구원하고 이라크를 평정하였다. 20세기 중반 비교적 온건하고 세속적인 도시로 발전하던 라마디는 바트당의 간부들을 배출하였으나 1995년 사담 후세인이 그 장교들 중 일부를 처형하자 반정부 시위가 일기도 하였다.

이라크 전쟁 후 라마디는 바트당 군대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전투 끝에 약 130명의 미군이 전사하였다. 2011년 미군이 철수한 후 2014년 들어 이웃 도시 팔루자를 점령한 다에시가 지속적으로 라마디를 공격하였고, 마침내 2015년 5월 점령하였다. 반격에 나선 이라크 군은 11월 들어 도시를 포위하였고 12월 28일 수복에 성공하였다. 다만 교외 지역에서의 전투는 이듬해 2월까지 이어졌고, 약 1년 반에 걸친 시가전 끝에 라마디는 시가지의 90%가 파괴되는 피해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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