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쉬드 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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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쉬드 월러스의 수상 이력




파일:라쉬드월러스.jpg

라시드 압둘 월러스
Rasheed Abdul Wallace

출생
1974년 9월 17일 (49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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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학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신장
211cm (6' 11")
체중
104kg (230 lbs)
신장
224cm (7' 4")
포지션
파워 포워드 / 센터
드래프트
199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워싱턴 불리츠 지명

소속 팀
워싱턴 불리츠 (1995~1996)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96~2004)
애틀랜타 호크스 (2004)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4~2009)
보스턴 셀틱스 (2009~2010)
뉴욕 닉스 (2012~2013)
지도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코치 (2013~2014)
찰스 E. 조던 고등학교 (2019~2021)
멤피스 대학교 코치 (2021~)
등번호
30번 - 워싱턴 / 포틀랜드 / 디트로이트 / 보스턴
36번 - 애틀랜타 / 뉴욕

1. 개요
2. 커리어
3. 수상 내역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전 NBA의 농구 선수. 별명은 '쉬드'(Sheed)


2. 커리어[편집]



2.1. 워싱턴 불리츠 시절[편집]



2.2.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편집]



2.3. 애틀랜타 호크스 시절[편집]



2.4.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시절[편집]


2004년 시즌 중간 애틀랜타에서 한게임만 뛰고 3자 트레이드를 통해 피스톤스로 이적한다. 당시 배드 보이즈 2기를 구상중이었던 피스톤즈에게 월러스는 매우 적합한 선수였다. 팀단장이었던 조듀마스가 이전부터 월러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실제로 월러스가 들어오긴 전 피스톤즈는 34승22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합류한 후 20승6패로 뛰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평균 득점이 13점대로 줄어들긴 했으나 공수양면으로 파이팅을 불어넣는 플레이로 배드 보이즈 2기가 완성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피스톤즈는 그대로 승승장구하여 2004 NBA 파이널까지 진출한다. 상대는 절정의 기량이었던 코비와 샤크가 버티는 골밑, 그리고 반지 구하러 온 말년의 칼말론과 게리 페이튼까지 합류한 레이커스였다. 모든 사람들이 레이커스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피스톤즈는 시리즈내내 질식수비로 레이커스를 4-1로 누르며 우승을 거머쥔다. 특히 월러스의 4차전의 활약(26 득점/13 리바운드)으로 팀이 3-1로 앞서가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다. 우승 후 팀과 5년 $57 mil 계약에 성공하며 2009년 보스턴으로 이적전까지 팀이 매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일조한다.

2005년에는 평균 스탯 14.5득점 8.2리바운드로 팀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은 다시한번 플레이오프 파이널에 진출한다. 이번 상대는 또다른 최강 수비팀인 스퍼스, 그러나 치열한 접전끝에 시리즈 스코어 4-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다만 운명의 5차전에서 월러스가 수비 판단미스로 마지막 로버트호리의 3점슛을 놓친 장면은 매우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1]


2.5. 보스턴 셀틱스 시절[편집]



2.6. 뉴욕 닉스 시절[편집]



3.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004)
파일:NBA-Allstar2021.pngNBA 올스타 4회 (2000~2001, 2006, 2008)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세컨드 팀 (1996)


4. 플레이 스타일[편집]


공수 밸런스가 좋았던 올스타 빅맨

공수에서 모두 진가를 발휘할 수 있던 빅맨이다. 공격에서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했다. 점점 외곽에서 논다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골밑에서 창출해내는 득점이나 미들레인지 점퍼, 3점슛 모두 준수했다.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픽앤롤, 픽앤팝 등에 모두 능했다.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평균 20득점을 넘긴 적은 없지만, 그 바로 아래 급의 준수한 득점력을 가진 빅맨이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악동이라고 불렸던 그를 영입한 이유도 이에서 찾을 수 있다. 벤 월러스, 앨든 캠벨 등은 골밑에서의 존재감은 뛰어났지만 득점력은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 이 상황에서 상대 빅맨의 수비를 뚫고 우격다짐 득점을 해줄 수 있는 월러스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포스트업 후 던지는 미들레인지 점퍼는 성공률과는 별개로 블록슛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성공률 자체도 매우 높았다. 슛감이 없을때도 고집스럽게 난사하는 버릇이 있어서 성공률을 깎아먹을 때도 있지만, 타점이 워낙 높아 블럭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슛을 쏠 수 있는 선수 중 하나이다보니 기본적인 슈팅력 자체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수비에서도 생각보다 뛰어났던 선수다. 비록 올 디펜시브 팀 경력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활약을 펼쳤다. 현재 뛰고 있는 마커스 모리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생각하면 좋다. 월러스가 좀 더 빅맨에 가깝기는 하지만, 상대의 포스트업을 악착같이 수비하고 상대를 괴롭히는 모습은 그와 비슷하다. 그리고 림프로텍팅과 블록슛 능력 또한 뛰어났다. 숀 매리언과 같이 올 디펜시브 팀 경력이 없는 게 아쉬운 선수다.[2]

선수로서의 최악의 단점은 바로 멘탈.[3] 이 멘탈만 없었으면 던가노웨 급으로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있다. 그야말로 재능 덩어리였는데, 파울 항의 과정에서 쌓는 무수한 테크니컬 파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다.

테크니컬 파울 관해서는 넘사벽의 기록을 세웠는데, 그는 00-01 시즌에 77경기를 뛰면서 테크니컬 파울을 41개 받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기가 막힌 건 역대 2위 기록인 38개도 월러스 것으로, 99-00 시즌에 세웠다.[4] 즉, 미친 페이스로 신기록을 세운 뒤 한 시즌 뒤에 자기 기록을 자기가 깼다는 소리. 심지어 2001년 4월에 월러스가 미네소타에서 테크니컬 39개와 40개째를 받아 퇴장당한 뒤 ESPN에서 낸 기상에 따르면 저 테크니컬 파울 40개가 33경기 동안 나온 것이라고 한다.[5]

이 기록이 더욱 깨지기 어려운 이유는 쉬드가 기록을 세운 이후인 2006년에 규정이 바뀌어서 현재는 시즌 16개째 테크니컬 파울을 받으면 바로 한 경기 징계, 그리고 그 이후는 두개를 받을 때마다 추가로 한 경기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한 선수가 테크 41개를 한 시즌에 받으려면 순수하게 테크니컬 파울로 인한 징계로만 13경기를 징계로 결장해야 한다. 실제로 이 때문에 2020년 현재 역대 커리어 테크니컬 파울 순위를 보면 역대 탑10이 모두 00년 이전에 드래프트된 선수들이다. 의외로 쉬드는 역대 테크니컬 파울 1위는 아닌데, 3위로 317개이다. [6] 테크니컬 파울 대부분은 심판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받은 것인데 실제로 그는 심판에게 가장 항의를 많이 하는 선수였고 이 때문에 심판들과 사이가 안 좋아 그냥 좋게 넘어갈 것도 테크니컬 파울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7] 이게 극명하게 드러난게 쉬드가 유행시킨 "Ball don't lie! (공은 거짓말을 안 해!)"인데, 쉬드가 보기에 자기가 테크니컬 파울 받은게 불공정했는데 이후 상대팀이 받은 자유투를 놓치자 이렇게 소리친 것. 요즘 표현으로는 "정의구현" 정도가 되겠다. 참고로 이 멘트 이후 바로 두번째 테크니컬을 받아 출장 1분 26초만에 광속 퇴장.

기량면에서 라쉬드 월러스가 슈퍼스타가 되지 못하게 발목을 잡은 건 바로 그의 기복. 그날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기량이 상당히 널뛰기 했다.

사실 라쉬드 윌러스는 큰 키에 긴 팔, 뛰어난 기동력에 높은 점프력, 센터까지 무난히 소화가능한 파워까지 지녔고, 득점스킬 면에선 좋은 슈팅터치에 슛거리도 길고, 골밑 마무리 감각도 좋은 선수였다. 스킬셋만 보면 평득 20은 무난한 수준으로, 올드팬들 중에서도 라쉬드가 한번도 20-10이 없다는 걸 알고 놀라는 팬들이 많다. [8] 득점스킬도 좋지만 워낙 사이즈가 좋고 점프력이 좋아 그가 점프슛을 쏘면 안 들어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가 긁히면 대단히 막기 힘든 선수였으나 안 들어갈때도 많은 널뛰기 기량을 가진 선수였자는 점. 대표적으로 00 서부 결승 7차전. 사실 이 시리즈에서 라쉬드는 49.6%란 준수한 야투율로 23.3점을 올려, 25.9점을 올린 샤킬 오닐 다음으로 고득점을 했다. 7차전에서도 5할 야투율로 30점 득점. 그러나 운명의 4쿼터에 그는 야투 9개를 던져 3개 성공하는데 그쳐 거짓말같은 역전을 당하게 된다. 물론 4쿼터에 야투 0개에 그친 피펜, 5개중 1개 넣은 스티브 스미스, 아예 등도 패배에 책임이 있지만, 라쉬드는 공격에서 에이스였다.

이듬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의 유일한 올스타이자 에이스라는 것에 걸맞지 않게 야투율 3할대에 16점에 그치며 무적함대 레이커스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스윕당했다. 1차전을 24점 (야투율 5할)로 시작한 그는 2차전에서 17점을 42.9%로 넣으며 그래도 중간은 해주다가 3차전에서 야투를 19개 던져 4개 넣으며 (21.1%) 9점하는 등 거하게 똥을 싸며 팀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9] 특히 전반에는 야투를 10개 던져 1개 성공하는 끔찍한 부진에 시달렸다.

라쉬드 본인은 상당히 승부욕도 강하고 승부처에서 쪼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경기가 안 풀린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는게 아니라 고집스럽게 같은 방식을 될때까지 하는 식. 사실 라쉬드 월러스 정도 깡다구와체격과 실력이면 슛이 안 들어가면 골밑을 적극 공략해서 자유투를 얻어낸다던지 할 수 있다.[10] 그러나 위 01년 3차전의 경우 전반에 슛이 계속 안 들어갔음에도 그가 던진 자유투는 3쿼터에 쏜 2개가 전부. 즉, 잘 풀릴때는 슈퍼스타처럼 경기를 하지만 안 풀릴때는 경기를 말아먹을 때가 많았다. 이처럼 기복이 심했기에 당대 최고의 파워포워드들과 대등하게 매치업할 수 있는 선수임에도 끝내 그 선수들의 수준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선수로서의 클래스는 몰라도 당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들인 팀 던컨,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등과 매치업해도 전혀 무리가 없던 선수다.[11] 그가 현대에 뛰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또한 좋은 리더를 만나야 하는 선수기도 했다. 라쉬드가 전성기를 보낸 포틀랜드는 팀 분위기가 안 좋기로 악명이 높은 팀이었고, 감독 마이크 던리비 시니어도 딱히 리더쉽이 부각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던리비가 있을땐 그나마 나은 편으로, 그가 떠난 이후 블레이저스는 Jail Blazers 전설이 시작된다. 라쉬드는 자존심이 강하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스타일의 선수이기 때문에 고삐를 풀어주기보다는 옆에서 잡아줄 리더가 있을때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그가 존경하는 노스캐롤라이나 대선배 래리 브라운의 피스톤즈에 간 이후 라쉬드는 큰 사고를 치지 않았다. 또한 벤 월러스와 좋은 케미를 자랑해 그가 이적한 이후에도 다른 팀 소속으로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팔을 X자로 교차시키는 인사를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플레이스타일 면에서도 디트로이트는 라쉬드의 고삐를 풀어주기보다는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잘 짜여진 팀공격을 하는 스타일이기에 기복이 심한 라쉬드를 제어할 수 있었다. 사실 디트 이적 이후 라쉬드는 오히려 야투율이 하락했으나, 예전처럼 무리하게 삽질하다가 날려먹는 경기 수는 확연히 줄었다.

즉, 감정기복이 심하고 장단점이 명확하기에 옆에서 확실하게 잡아주는 리더와 시스템이 있으면 가장 빛을 발하는, 어찌보면 데니스 로드맨 스타일의 선수라고도 할 수 있다. [12]

사실 재능에 비해 커리어가 아쉽다 보니 체감상 위력에 비해 실제 스탯이 많이 낮고, 그에 따른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공존하기도 한다. 일단 재능 자체는 슈퍼스타급이 확실하고, 경기력이 잘 풀릴 때 한정으로 위에 언급된 7피트 언저리의 특급 파워포워드들과 대등하게 매치업이 가능한 건 맞다. 그러나 공격에서 경기의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요령은 라이벌들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예를 들어 경기를 하다보면 가자미 모드가 되어 동료들 위주로 플레이하며 전원을 흐름에 참여시켜야 할 때가 온다. 전성기 시절 팀 던컨토니 파커에게 공격롤을 가끔 양보하는 건 그가 공격력이 딸려서가 아니라, 공격의 시발점인 파커가 살아나야 팀공격이 훨씬 활기를 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러스는 이런 면이 전성기 때 부족했다.
또한 NBA농구는 48분에 달하고, 농구 자체가 누적이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번뜩이는 플레이보다 꾸준히 공헌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면에서 라쉬드 월러스는 한 쿼터 내내 천재적인 플레이를 하다가도 한 쿼터 내내 무리한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플레이 자체는 슈퍼스타급이었으나, 전반적인 공헌도는 잘해봐야 올스타 수준으로, 하일라이트만 보면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기 쉬우나 전반적인 평가를 하면 그 이하로 볼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과소평가하는 경우는 스탯만 보고 화려한 플레이밖에 못하는 속빈 강정으로 평가하는 것. 분명히 실력 자체는 뛰어난게 맞다. 또한 수비력 자체는 말년까지 진국이었다.

사실 쉬드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시절만 해도 굉장히 효율적인 선수였다. 그는 NBA진출 직전인 94-95 시즌, 같은 2학년이던 제리 스택하우스와 함께 팀을 파이널 4로 이끌며 스택하우스(19.2점)에 이어 팀내 득점 2위(16.6점)을 올리며 무려 야투율 65.4%라는 굉장히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효율적인 선수였다. 또한 3점슛 역시 대학에서 69경기를 뛰며 단 네개 밖에 안 던지는 등 효율적인 공격을 중시하는 선수였는데, 이는 잘 짜여진 팀공격과 팀플레이, 기본기를 중시하는 감독 딘 스미스의 철학이기도 했다.[13]

00년대 초반만 해도 라쉬드는 효율적인 공격수였으며, 2년차 때는 15.1점을 55.8% 확률로, 3년차 때는 53.8%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경기당 3점슛을 네개나 던진 01-02 시즌을 기점으로 점점 외곽으로 빠지기 시작하는데, 사실 수치상으로 보이는 하락은 플레이스타일 변화에 있지만 00년대 초반 에이스가 되기 시작한 이후 제멋대로 하는 플레이가 늘었다는게 문제였다. 당시 포틀랜드는 Jail Blazers 시절이었고,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쉬드를 제어할 만한 감독이 없었다. 즉, 그가 한창 성장하던 00년대 초반에 제대로 된 시스템과 감독을 만났다면 슈퍼스타급으로 스텝업할 수도 있었으나, 늘어난 공격롤을 효율적으로 팀농구에 녹아내지 못하면서 공격수로서 한계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시절은 수치상으로 보면 득점도 더 낮고 야투율이 포틀랜드 시절보다 훨씬 안 좋았지만, 이때는 팀을 헤치는 제멋대로 플레이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이 때 올스타에 두번이나 올랐다. 즉, 기량은 전성기에 비해 다소 하락했지만 상대 수비를 벌려주고 팀 공격이 막혔을때 활로를 뚫거나 수비수로 공헌하는 등, 팀 시스템 내에서 공헌하는 방법을 완전히 익혔기에 실력이나 스탯이 줄었는데도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만약 이런 시스템을 전성기에 만났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 부분.

이런 면에서 농구가 5대5 스포츠가 아니라 1대1 스포츠였다면 더욱 위력을 발휘했을 선수이기도 하다. 자기 공격만 신경쓰면 되고 어차피 모든 득점이 1대1 상황에서 나온다면 위에 언급된 단점들이 의미가 없기 때문.

[1] 연장 종료 9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플로어 위에 있던 스퍼스 선수들 중 외곽득점력이 가장 좋은 마누 지노빌리에게 인바운드 패스가 가자 더블팀을 했는데, 지노빌리가 바로 오리에게 빼주며 와이드오픈샷을 넣었다. 정말 아쉬운 판단이었던 것이 당시 피스톤즈가 2점차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2점슛까지는 먹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지노빌리가 전문슈터 수준도 아니었고... 게다가 오리는 빅샷으로 유명한 선수인데다 지노빌리는 리딩이 가능할 정도로 시야가 넓은 선수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없는 판단미스이다.[2] 다만 그들을 대신해 올 디펜시브 팀에 선정된 선수들을 보면 납득되기는 한다.[3] 소심하거나 유리멘탈이란 얘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흥분을 많이 하고 고집이 세다. 테크니컬 행진은 순수히 이 다혈질 성격 때문에 나왔으며, 기복이 심한 것도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한 몫했다.[4] 기존 기록 보유자는 찰스 바클리로 32개였다.[5] http://www.espn.com/columns/ratto_ray/1166079.html 저 미네소타전은 쉬드의 시즌 70번째 경기였다. 즉, 나머지 37경기에선 테크니컬을 아예 안 받았다는 얘기.[6] 역대 1위는 칼 말론으로 332개, 2위 찰스 바클리는 329개, 3위는 라쉬드 월러스로 317개, 4위 게리 페이튼은 250개, 5위 데니스 로드맨은 212개이다. 비율로 따지면 바클리가 3.26경기에 하나 꼴, 쉬드가 3.5경기에 하나 꼴이고, 말론은 4.45경기, 로드맨은 4.3경기, 페이튼은 5.34경기에 하나 꼴이다. 말론은 테크니컬 파울 역대 1위임에도 테크 누적으로 인한 퇴장이 통산 5번이고 03-04전까지 18 시즌 동안 총 8경기만을 결장했는데 누적 테크 퇴장 규정 이전에 은퇴하기도 했고 심판 판정에 항의를 할 때도 어느 정도는 자제했기 때문. 쉬드는 커리어 테크니컬 파울이 317개인데 테크 누적으로 무려 26개로, 이 정도면 말 그대로 노빠꾸로 항의하는 수준이다.[7] 심지어 그는 경기 이후 심판을 찾아가 협박해 7경기 징계도 받았는데, 이 심판이 경기결과를 두고 도박을 한 걸로 드러난 범죄자 팀 도너기였다.[8] 또 다른 예는 숀 켐프. 이쪽은 10리바운드는 여러번 넘겼고 20점도 한 시즌 넘겼지만 동시에 넘긴 적은 없다. 올NBA 세컨팀에도 오른 슈퍼스타 빅맨이고 수비보다 공격이 장점이란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인데, 켐프는 파울관리에서 약점을 보여 출장시간이 기량보다 적은게 문제였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보다 훨씬 많이 뛰던 90년대에 출장시간 35분을 넘긴 적이 딱 한번밖에 없다.[9] 옆에서 같이 똥을 싼 선수가 슈퍼스타이지만 득점기복이 은근히 심한 스카티 피펜으로 야투 13개 중 3개 넣어 23.1% (3점 슛 6개 던져 모두 실패.[10] 실제로 가드인 마이클 조던도 98년 동부 결승 7차전 당시 야투율이 36%로 부진하자 적극적으로 돌파를 하며 자유투를 무려 15개나 얻어내고, 공격리바운드를 5개나 잡으며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며 승리를 이끌어냈다.[11] 실제로 05년 파이널 당시 피스톤즈 최고의 수비수 벤 월러스는 키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없는 센터 포지션의 로버트 오리 등과 매치업하면서 전방위 수비를 하고, 던컨의 주 매치업은 체격이 비슷한 월러스가 맡았다.[12] 다만 라쉬드는 쾌활하고 외향적이고 친목질도 적극적으로 하는 선수라, 은근히 마음이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로드맨과는 좀 다르다.[13] NBA에서 비효율적인 공격수이자 커리어 40.9%의 야투율로 악명이 높은 스택하우스는 이때 51.7% 야투율을 기록했다. 스택하우스는 NBA에선 한번도 야투율이 46%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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