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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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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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2.1. 오스트리아
2.2. 동독
3. 여담



1. 개요[편집]


라인강과 루르 지방의 경제기적(Das Wirtschaftswunder an Rhein und Ruhr)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 이후 폐허 상태와 다를 바 없었던 서독1950년대에 보여준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서독을 관통해 흐르는 라인강에 빗댄 것이다.[1] 넒게 포함하면 오스트리아도 포함이 된다.

독일에서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경제기적(Wirtschaftswunder)이라고 표현하는 편이다. 사실 독일에선 자국 일이므로 굳이 '독일'을 나타내는 '라인강과 루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기는 하다. 영미권에서는 'miracle on the rhine'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는 하지만 보통 독일어 'Wirtschaftswunder'를 그대로 차용해서 쓴다.


2. 내용[편집]


나치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5월 9일, 이른바 0의 시간(Stunde Null) 직후 서독은 말 그대로 전국토가 황폐화된 상황이었다. 다행히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대국 중 하나였던 만큼 숙련된 노동력과 기술력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이 노동력과 기술력의 아웃풋을 만들어 줄 산업기반과 자본이 전쟁으로 싸그리 날아간 상황이었다. 여기에 연합군 군정이 가격 통제와 같은 커다란 일들을 저지르는 바람에 독일의 경제 회복은 더욱 지지부진했다. 사실 이건 독일을 재기불능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쯤은 의도적으로 이런 정책을 실시한 면도 있었다.[2]

이런 상황은 1948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해소되었다. 라이히스 마르크 대신에 독일 마르크가 도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했고 당시 서독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시장경제의 신봉자' 루트비히 에르하르트가 소득세 인하, 가격통제 철폐를 지시하면서 소비와 투자가 서서히 촉진되기 시작했던 것. 여기에 냉전으로 인해 마셜 플랜이 진행되면서 독일의 경제 복구는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만 처음에 미국은 서독에도 마셜 플랜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지만 서독도 경제적으로 부흥해야 연쇄적으로 서유럽 전체에 이득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려서 서독을 지원했다.

마셜 플랜이 서독이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다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학자간에도 여러 의견이 있는 편이다. 이견을 제시하는 쪽에선 '그러면 왜 영국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아놓고는 독일보다도 경제적으로 뒤쳐지게 되었느냐?'라는 의문을 표한다. 이에 대해, 냉전시대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인 역사가 토니 주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국토가 폭격을 맞아 석기시대로 돌아간 덕분에 전후 깔끔하게 최신 시설로 리빌딩을 할 수 있어서 독일이 영국을 공업력에서 앞설 수 있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3] 심지어 일부에서는 '마셜 플랜보다는 당시 독일에 주둔 중이었던 미군이 쓴 돈이 더 도움이 됐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미국이 도움이 됐다.

다만 서독에서도 문제가 없진 않았는데 우선 1945년 종전 직후 연합군이 소위 페이퍼클립 작전이라고 불리는, 독일 내의 각종 기술자와 특허를 마구 훔쳐가면서 발생한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가 있었다.[4] 물론 애초에 독일에 원죄가 있었던 만큼 속으로 불만만 품고 겉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포츠담 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연합군이 루르 지방의 각종 광공업 산업 시설을 해체한 것도 한동안 서독의 골치를 썩혔지만 애초에 독일이 자원이 풍부했던 국가도 아니었던만큼 큰 문제는 되지는 않았고 결정적으로 1956년 풍부한 석탄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르 보호령이 주민 투표를 거쳐 독일의 영토로 복귀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오히려 독일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2차 대전으로 인한 추축국 이미지였는데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급해진 연합군 측이 '일단 독일산 제품이라도 쓰고보자'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손쉽게 해결되었다. 단례로, 물자가 부족해서 한국군에 나치 독일 독일군 군복을 보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걸 본 소련이 나치당이 한국전쟁에 왜 참전했냐고 미국에 따지기도 했다.


2.1. 오스트리아[편집]


의외라면 의외로 오스트리아도 혜택을 받은 나라이다. 오스트리아도 마셜 계획에 포함되었고, 따라서 뷔르츠하프트 전투의 모든 고려사항에 포함될 수 있다. 주요 산업(VOEST, AMAG, Steyr-Puch)의 국유화와 더 긴 노동 시간을 통해, 완전한 경제 능력에 도달했다. 서독을 기준으로, 실링이 라이히스마르크를 대신하여 재도입되었을 때 통화는 안정화되었다. 이 경제 정책은 1953년 오스트리아의 총리 율리우스 라브와 그의 재무 장관 라인하르트 카미츠의 이름을 딴 라브-카미츠-쿠르스로 언론계에서 알려졌다.

카프룬 수력 발전소나 서부 아우토반과 같은 국가의 주요 프로젝트에 의해 실업률이 감소하고 사회 평화가 보장되었다. 1950년대에 남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온 가스트아르바이터(Gastarbeiter)가 처음으로 도착했는데, 이는 경기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수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2. 동독[편집]




3. 여담[편집]


민주화 이전 한국의 경제 발전을 비유하는[5] 한강의 기적도 이 말에서 따온 것이다. 시기상으로는 라인강의 기적이 20~30년 더 빨랐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정작 독일에서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다 보니 그게 뭐냐고 도리어 되묻는 독일인들도 있다. 2023년 독일 총리가 방한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도 라인강의 기적이란 말을 썼으나 정작 독일인 입장에선 뭔 소린가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라인강도 그렇고 한강도 그렇고 엄밀히 따지면 일부 지역만 대표하는 강이기 때문에 나라 전체의 성장을 표현하기에 딱 맞는 단어는 아니다.[6]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성장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다른 나라에도 제법 있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의 '영광의 30년'이나 스웨덴 타게 엘란데르 총리 시절의 '기록 시대', 멕시코의 '멕시코의 기적(Milagro mexicano)' 등이 대표적이다.

[1] 오늘날의 통일된 독일 기준으로는 서쪽 지방을 종단해 흐른다.[2] 이렇게 독일을 재기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이 2차 대전의 종전 직전에 제시한 것이 바로 모겐소 계획이다. 내용은 대략 독일 점령지에 있는 산업 단지를 철거하고 나치 독일이 침략해서 피해를 입힌 러시아에 배상으로 주는 것. 거기에다 독일 유수의 루르 공업 지대는 독일에서 영구히 분리하여 국제령으로 전환하는데 이유는 상술한 대로 독일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밟아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여론이 안 좋았으므로 루스벨트가 포기, 트루먼 때는 아예 없던 얘기가 되었다. 루르에 설치되었던 루르 국제 통치령도 3년만에 해산되었다.[3] 이는 단순히 토니 주트의 개인 의견이 아니고, 전후 영국의 수상이었던 해럴드 맥밀런도 '우리도 2차 대전때 미국이랑 싸워서 공업단지 싹다 갈아엎었어야 했는데..'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사실 그런거 떠나서 독일 인구가 영국보다도 많은 등 자체 역량이 원래부터 앞섰던 것도 있긴 했다.[4] 2000년대 초반에 독일이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인한 자국의 손해를 추산했는데 그 금액이 100억 달러에 달했다.[5] 이후 경제발전도 포함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쓰는 뉘앙스를 보면 군사독재 시절 경제성장을 뜻하는 뉘앙스가 더 강한 편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가 발전하긴 했다. (이때의 경제발전은 IT 강국, 정보화, 벤처붐, 반도체, 한류 신화 등으로 네이밍되는 경우가 더 많다.) IMF 경제위기 이후에도 파이 자체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커져 많은 개도국들이 겪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21세기 들어선 선진국에 진입했다.[6] 당장 한국 수출 산업에 많은 역할을 한 부울경 지역만 해도 한강과는 많이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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