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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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
1.1. 개요
1.2. 행적
1.3. 외부 링크
1.4. 기타등등
2. 루가(누가)복음서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
2.1. 개요
2.2. 내용
2.3. 해석


1. 요한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편집]


  • 히브리어: אֶלְעָזָר(el'azár)(엘아자르)[1]
  • 그리스어: Λάζαρος(Lazaros)
  • 라틴어/영어/독일어: Lazarus
  • 이탈리아어: Lazzaro
  • 한국어: 나사로(개신교 성경)/라자로(공동번역)/라자로(가톨릭 성경)
  • 세르보크로아트어: 라자르
  • 생몰 연도: ? ~ 1세기 중반


1.1. 개요[편집]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 공동번역 요한 복음서 11:41~45
전문 보기


성경에 나오는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 중 하나다.


1.2. 행적[편집]


베다니아(베다니/베타니아)[2][3] 마을에 살던 마리아[4]마르타(마르다)의 형제로 큰 병에 걸렸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했다.

예수는 뜻 밖의 발언으로 독자를 당황시킨다.

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더 머무르시다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제자들에게 "유다로 돌아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선생님, 얼마 전만 해도 유다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그 곳으로 다시 가시겠습니까?" 하고 걱정하자 예수께서는 "낮은 열 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 다니는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하시며, 이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11장 5~10절.


즉 예수는 이 소식에 대해 긴장이나 고심 없이 그 병은 죽을 병도 아니며 하느님과 그 아들인 본인이 영광을 받기 위한 일이라고 밝힌다. 기별을 듣고 예수는 이틀을 더 머무르던 곳에 머무른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유다 지방으로 가자 한 그 날 라자로는 죽었다.

예수는 병 들어 누워있는 라자로를 깨우러 가자고 말하고 제자들은 잠에 들었나 싶어하지만, 예수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이미 죽은 라자로를 깨우러 가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성경에는 예수는 베타니아로부터 유다 지방에 들어가기 전 이틀을 유하고, 사흘 째 날 라자로가 죽은 시점에 베타니아로 출발한다. 라자로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므로 예수가 베타니아에 들어가기까지 나흘이 걸렸다. 소식을 접한 그 날부터 총 엿새만에 베타니아에 도착한 셈이다. 사도 토마스의 발언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죽으러 가자는 결기에 차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제사장 패거리가 예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늦게 온 예수를 원망하자, 예수는 죽은 라자로가 살아날 것이라면서 그들을 위로했다. 예수가 여기 있었더라면 라자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마리아와 함께 따라온 유대인 문상객들이 울기 시작하자 예수 또한 괴로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5]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남기고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 주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 갔다.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 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마중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던 것이다.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해 주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곡하러 무덤에 나가는 줄 알고 뒤따라 나갔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 가 뵙고 그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11장 21~35절.



예수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어귀에서 마르타를 만난다. 마르다는 루카 복음서 10장 42절의 에피소드처럼 손님을 맞이하는데 노력하던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때문에 예수에게 잠잠히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시켜 나를 도우라고 하소서 요청하다가 꾸중을 듣는 일이 있었다.

역시 마르타는 마을 어귀로 나가서 예수를 만나 구하는대로 해주실 줄 믿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네 오빠인 라자로가 살아나겠다고 말하지만, 마르타는 지금이 아닌 부활의 때에 그러하리라고 말한다. 이에 예수는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유명한 말씀을 선포하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말씀을 하지만 마르타는 당신이 장차 오실 그분이심을 내가 안다고 동문서답을 한다. 라자로의 죽음 이후 예수는 마르타의 신앙을 시험한 것이다. ‘나를 믿고 죽은 네 오빠 라자로가 오늘 살아날 것을 믿느냐?’를 물은 것.

그러나 마르타는 원하는 답을 주지 못했고, 정황상 마리아를 부르라는 예수의 연락을 전한다. 예수는 여전히 마을 어귀에 서 있어, 라자로의 부활을 미룬다. 이 함의가 깊은데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어귀에서 신앙을 시험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인간을 사랑하여 찾은 하느님, 그리고 인간의 신앙을 통해 그 사랑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어귀로 도착한 마리아는 문상객들과 함께 묻기도 전에 통곡을 해버렸고(...) 예수는 이 때 눈물을 흘린다. 성경 기록에서 겟세마네 로 추정되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히브리서 5장 기록과 함께 예수가 눈물을 흘린 두 장면이다. 이 눈물은 부모 없이 의지하며 살아온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두 여동생에 대한 동정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믿음 없는 애제자 마르타와 마리아에 대한 실망의 눈물 내지는 한탄의 눈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앞선 절에서 보다시피 예수는 라자로를 살리기로 하고 이미 출발하였고, 살려주겠다고 수차 말했으나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예수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시켜 무덤 입구를 막은 돌[6]을 치우라 명하고 라자로를 불러 일으켰다. 돌을 두 자매가 치웠는지, 문상객들과 함께 치웠는지는 드러나있지 않지만, 예수를 야유하던 문상객들이 치웠을리는 없다. 정황상 두 자매가 낑낑대며 율법의 처벌을 감수하고 돌을 치웠을 것이고, 라자로는 예수의 부름에 살아나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고, 예수의 지시로 몸에 묶인 수건과 천을 풀었다.[7]

이후 예수와 제자들은 자기들을 죽이려는 대제사장 카야파와 바리사이들을 피해 에브라임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유월절 엿새 전에도 베타니아와 예루살렘으로 다시 찾아온 예수와 라자로를 죽이려 했으나, 예수를 따르는 많은 무리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이때 동생 마리아는 감사의 의미로 예수의 발에 나르드(나드) 향유[8]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다.[9]

프랑스 전승에 따르면 라자로 남매는 이후 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에서 예수를 전했다고 한다.


1.3. 외부 링크[편집]




1.4. 기타등등[편집]


현재까지도 의사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가 맥박과 혈압 따위의 움직임을 보이거나 아예 다시 깨어나 정상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하며, 이를 현대의학계에서 라자로의 이름을 따 '라자루스 증후군(Lazarus syndrome)'이라고 칭한다.

비슷한 명칭을 가진 의학 용어로는 라자루스 반사(Lazarus Reflex, 혹은 Lazarus sign, Lazarus phenomenon)가 있다.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가 갑자기 양 손을 들어올리고 가슴에 교차시키며 내리는 행위가 드물게 일어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척수에서 내린 행동으로 뇌가 부활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반사는 보통 숨을 쉬기 힘들때 일어나는 행동인데, 뇌사 상태의 환자에게 이런 반사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환자에게 가망이 없다는 의미. 마치 죽은 것 같이 꿈적도 안한 환자가 갑자기 움직인다는게 부활과 비슷해서 붙여졌다.[10]

생물학에서는 어떤 종이 기존에는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나중에 발견됨으로써 더 이상 멸종된 종이 아니게 된 생물들을 포함해서 라자로 분류군(Lazarus taxon)이라 한다.

행복한 라짜로는 이 인물의 일화에 영감을 받았다.

라자러스 핏, 라자루스 프로젝트, 라자루스(Warhammer 40,000)는 모두 이 라자로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2. 루가(누가)복음서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편집]



2.1. 개요[편집]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로 잘 알려진 성경 속 비유다.


2.2. 내용[편집]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루가 16:19-31, 공동번역



2.3. 해석[편집]


모세의 율법을 따른다면서 오히려 돈을 더 사랑하는 바리사이인들이 돈에 대한 예수의 충고[11]를 비웃자 이들을 비판하려 한 비유다. 이들은 종교와 권력 그리고 재산을 가진 이들로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나 실상은 엄격하고 복잡한 율법을 무기삼아 유대사회에서 군림한 지배층으로 말로는 하느님의 믿는다면서 뒤로는 재산과 권력 유지에 급급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는 장사꾼이나 다름없었기에 예수가 이를 비판한 것이다.

생전에 돈이 얼마나 많든 간에 세상을 떠난 뒤로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번 항목의 라자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또한 기독교에서 흔히 묘사되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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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원은 אֵל(el; ) + עָזַר(ʽâzar; 도왔다)로 '신이 도움을 준'이라는 뜻이다. 엘르아살(Eleazar)과 어원이 같다.[2]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던 마을이다.[3]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 알에이자리아(al-Eizariya)[4] 설명에 따르면 예수의 발을 머리로 닦아준 마리아이다.[5]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는 눈물이라고 여기는 해석도 있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완고함에 탄식하는 눈물이라고 여기는 해석도 있다.[6] 당시 이스라엘의 무덤은 동굴에 시체를 안장한 후 커다란 돌로 입구를 막는 형태였다.[7] 영화 더 바이블에서는 비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예수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나사로의 머리에 입을 맞춘 채 눈을 감고, 예수가 눈을 뜨자 동시에 나사로도 눈을 번쩍 뜨는 장면으로 각색되었다.[8] 결혼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값진 물건이다.[9] 이에 유다 이스카리옷이 "향유를 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낭비하는가?"라고 책망했으나, 도리어 예수로부터 꾸중을 듣는 대목이 같은 장에 나온다. 후일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는 복선이 되는 장면인 셈.[10] 이 동영상(성인인증 필요)에서 볼 수 있다. 환자는 영상을 찍기 13분 전에 뇌사 판정이 내려졌으며, 유족들이 의료적 교육 목적을 위해 해당 영상 촬영에 동의했다고 한다.[11] 루카 복음서 16: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