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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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버드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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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리치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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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 19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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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 1981-82 · 1982-83 · 19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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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exnba.com/larry-bird-legend-300x227.jpg
보스턴 셀틱스 영구결번
No. 33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www.hoophall.com/af38697d46a9cc5f8a68c7c2134aaf62_f599.jpg
래리 버드
헌액 연도
1998년

1998년 NBA 올해의 감독상
팻 라일리

래리 버드

마이크 던리비 Sr.
2012년 NBA 올해의 경영자상
팻 라일리/가 포먼

래리 버드

마사이 유지리




보스턴 셀틱스 No.33
래리 조 버드
Larry Joe Bird

생년월일
1956년 12월 7일 (67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지
파일:인디애나 주기.png 인디애나 주[1] 웨스트 베이든 스프링스
출신학교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
(Indiana State University)
신장
206cm (6' 9")[2]
체중
110kg
드래프트
1978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보스턴 셀틱스 지명

소속팀
파일:aDbIJUo.png 보스턴 셀틱스 (1979-1992)
포지션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등번호
33번
감독 경력
인디애나 페이서스 (1997-2000)
프런트 경력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3-2012 / 2013-2017.04, 사장)

1. 개요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2.2. NBA 시절
2.3. 은퇴 후
3. NBA 통산 기록
4. 수상 내역
5. 플레이 스타일
5.1. 트래쉬토킹
5.2. Next 버드?
6. 평가
6.1. 과대평가론에 대한 반박
6.2. 논란의 1981 Finals MVP 미수상
8. 기타



1. 개요[편집]


파일:Larry_Bird_Emotion_ISO.jpg}}}

''끊임없이 스스로를 밀고 나가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Push yourself again and again. Don't give up an inch until the final buzzer sounds.)


보스턴NBA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스몰 포워드중 한 명이다. 특유의 지능적 플레이와 승부근성으로 유명하며, 13년의 커리어 동안 오로지 보스턴 셀틱스에서만 뛰었다. 빌 러셀 시대부터 이어져오던 명문 구단 보스턴 셀틱스를 NBA 리그를 넘어 스포츠라는 영역에서 더 높은 위치에 올리게 만들었다. 보스턴 셀틱스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 매직 존슨과의 유명한 라이벌 구도로 90년대 마이클 조던 시대 이전 인기가 없던 80년대 NBA의 인기를 끌어올린 것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인물중 한 명이다. 흑인들이 대다수인 NBA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백인 농구선수로 평가받는다.

별명은 The Hick From French Lick, Larry Legend.


2. 커리어[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인디애나 주 웨스트 베이든 스프링스에서 5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 10살 때부터 형들을 따라 농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PTSD와 알콜중독에 시달리다가 버드가 18세때 자살했으며, 어머니가 근근이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불우한 성장 환경 때문에 버드는 꼭 농구로 성공해야겠다는 집념을 갖게 되었다. 스프링스 밸리 고등학교 2학년 때 188cm의 가드였던 버드는 3학년 들어 키가 2미터로 부쩍 자라면서 포워드로 전향했고, 평균 31점, 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974년 인디애나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3]

그러나 시골뜨기였던 버드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4], 기존 농구부원들에게 무시당하는 등[5] 어려움을 겪다가 3주만에 자퇴해 버리고 쓰레기차 몰기, 눈 치우기, 잔디깎이 등 막노동을 전전했다.(...) 1년 동안 그렇게 살다가 다시 대학에 다녀보기로 결심한 버드는 1975년 인디애나 주립대학교(ISU)[6]에 입학해 밥 킹(1923~2004)[7] 체육부장 겸 감독에게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웠다. NCAA 전학 규정 때문에 첫 1년 동안은 벤치만 지킨 버드는 2학년 때 평균 32.8점, 13.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CAA 디비전 1 토너먼트에 한 번도 올라본 적이 없었던 인디애나 주립대를 강팀으로 끌어올렸다.

4학년 때인 1978/79 시즌에 은사인 밥 킹 감독이 뇌동맥류 파열로 인해 병석에 눕자 빌 호지스 코치가 감독을 맡아 팀 분위기를 수습했고, MVC 컨퍼런스에서 33승 1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준우승을 거두며 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NCAA 전국 토너먼트 진출 후 드폴대[8] 등 쟁쟁한 대학 팀들을 꺾어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1패는 바로 매직 존슨이 이끌던 미시건 주립대에게 당한 것이었다.[9] 비록 우승에 실패했지만 버드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친 공로로 네이스미스 상, AP상, 아돌프 럽 상, 존 우든 상, 오스카 로버트슨 상 등 대학선수가 받을 수 있는 상들을 모두 휩쓸며 명실상부 최고의 대학선수로 인정받는다. 이때 버드의 기록은 평균 30.3점 12.3리바운드.

1978년 버드가 3학년을 마치고 4학년까지 대학을 다닐지, NBA에 진출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구단이 내년에 뽑지 뭐...하는 생각으로 안뽑았는데 보스턴 셀틱스가 6번픽으로 지명했다.[10] 래리 버드는 1978-79 시즌 합류를 거부했고, 셀틱스는 이 6번픽을 날려버리고 다른 선수를 뽑을 수 있었지만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지명권을 보호했으며 셀틱스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히도 1년 후에 셀틱스에 입단했다. 1979년 드래프트 1번픽은 바로 매직 존슨이었는데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버드와 매직이 79년 1번픽을 놓고 경쟁했을 것이다. 그리고 NBA에서 드래프트 6번픽 징크스의 시작이 이 선수부터였다. 그리고 매직 존슨은 버드 때문에 올해의 신인상을 날렸다


2.2. NBA 시절[편집]


1978-79 시즌 셀틱스는 29승 53패를 기록한 팀이었는데, 버드가 합류한 1979-80 시즌에는 61승 21패로 정규시즌 1위를 찍는다.(...) 루키 버드는 평균 21.3점, 10.4 리바운드, 4.5어시스트, 1.7스틸을 기록하며 셀틱스의 득점/리바운드/스틸 1위 및 어시스트 2위를 차지했고 혼자 농구하나 경쟁자 매직 존슨을 밀어내고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올스타에 선발되었다.[11][12] 그러나 셀틱스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줄리어스 어빙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패배하고, 이 해의 NBA 파이널 우승은 매직 존슨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차지한다.

그래도 될 팀은 된다고, 버드의 루키 시즌이 끝난 1980년 오프시즌 셀틱스는 트레이드를 통해 골든스테이트로부터 센터 로버트 패리시를 받아오고 1980년 1라운드 3번 픽으로 미네소타 대학파워 포워드 케빈 맥헤일을 뽑는 대박을 친다.[13] 이로써 셀틱스는 패리시 - 맥헤일 - 버드라는 NBA 역사에 남을 최강의 프론트 코트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하여 플레이오프에서 필라델피아를 3-1로 꺾으며 전년도의 복수를 하고, 파이널에서 휴스턴 로키츠에게 4-2로 승리해 NBA 파이널 우승을 맛본다. 버드는 파이널에서 평균 15.3점, 15.3리바운드, 7.0어시스트의 뭔가 묘한 성적을 올렸다.[14] 다만 이때 파이널 MVP는 동료 세드릭 맥스웰[15]의 차지.

루키 시즌부터 시작된 LA 레이커스 vs. 보스턴 셀틱스 / 매직 존슨 vs. 래리 버드의 라이벌 구도는 NBA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라이벌리로, 인기 없는 리그였던 NBA를 부흥시킨 원동력이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NBA 파이널 우승팀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1980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우승
1981년
보스턴 셀틱스 우승
1982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우승
1983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우승
1984년
보스턴 셀틱스 우승
1985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우승
1986년
보스턴 셀틱스 우승
1987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우승
1988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우승

각본을 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둘의 라이벌 관계는 대비를 이루면서도 절묘하게 맞물린다. 흑인이고 도시 출신에 항상 웃고 다니고 업템포 농구를 추구하는 서부의 매직과 반대로 버드는 백인이고 시골 출신에 표정 변화도 많이 없고 팀도 느린 페이스의 하프코트 농구를 동부에서 했다. 이런 대비와 반대로 둘은 NBA에 데뷔할 때부터 팀이 우승을 노릴 정도로 강해서(물론 카림 압둘 자바를 이미 보유하고 있던 레이커스와 달리 셀틱스는 꼴찌팀이다가 오직 버드 때문에 강해진 케이스) 각각 동서부 패권을 잡고 파이널에서도 여러번 마주쳤다. 심지어 둘은 같은 해 데뷔한데다가 대학 마지막 해에 결승에서 서로와 부딫혔다! 심지어 이 둘의 소속팀은 60년대에 이미 치열한 라이벌 관계(라기보단 매번 레이커스가 발리긴 했지만...)를 형성하기도 했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팀플레이어로 유명했으며 누가 실력적으로 앞선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대등했다. 이쯤되면 둘은 거의 신이 점지해준 라이벌로 보일 정도...

1983년 'Dr.J' 줄리어스 어빙과 센터 모제스 말론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외에는 모두 레이커스와 셀틱스가 차지했다. 서부 컨퍼런스라 1년에 정규시즌에는 단 2번, 그리고 파이널에서나 만나게 되는 LA 레이커스와는 달리 같은 동부 컨퍼런스인 보스턴과 필라델피아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항상 만나서 불꽃튀는 배틀을 벌이는 라이벌이었고. 1982년 보스턴이 필라델피아한테 시리즈를 내주었을때 보스턴 관중들이 "우리한테 이긴거 축하한다 젠장, 대신 파이널에서 반드시 레이커스를 꺾어다오" 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던 구호가 유명한 "BEAT LA!". 이 Beat LA가 이들의 라이벌리를 대표하는 챈트이며 식서스는 분전했으나, 골밑에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리즈 스코어 4-2로 패배한다.

더불어 2000년대 NBA의 경우 강팀들이 서부에 몰려있는 이른바 "서고동저" 현상으로 유명한데 1980년대의 경우 동부에 우승권을 노릴만한 강팀들이 조금 더 많이 모여있었다. 실제로 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우승을 노릴만한 팀은 필라델피아, 보스턴, 레이커스였고, 필라델피아가 점점 몰락한 후반에는 디트로이트가 떠올랐다. 심지어 81년 5할이 안되는 전력임에도 기적적으로 파이널까지 올라갔던 로키츠는 에이스 모제스 말론이 필라델피아로 이적(덕분에 안 그래도 강한 식서스가 83년 압도적인 우승을 거두었다)하면서 약팀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84년 하킴 올라주원을 1순위로 뽑은 이후 성적이 급등, 86년 파이널에 재진출하지만 또 준우승.. 그 다음 시즌에 트윈 타워의 일원이던 랄프 샘슨이 부상에 이어 트레이드되면서 90년대 초반까지 1라운드 탈락 혹은 플옵 탈락을 거듭하는 등 그저그런 팀으로 전락한다. 결국 로키츠가 우승을 노려볼만했던 강팀이었던 시즌은 후하게 봐줘봐야 세 시즌 정도였던 셈. 양강인 보스턴/LA, 그리고 후반의 포틀랜드, 초중반의 필리, 다크호스 휴스턴 외에도 위협적인 팀들인 댈러스 매버릭스, 밀워키 벅스 등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우승권 팀 중에선 동부가 더 경쟁이 심했던 것이 사실. 물론 현재처럼 동서부 불균형이 심하진 않았으며, "동고서저"라고 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일례로 1986년 플레이오프의 경우 동부 8번 시드 시카고 불스는 서부라면 꼴찌를 할만한 성적이었으나 최강팀은 67승을 거둔 보스턴 셀틱스, 이들의 라이벌 레이커스는 서부 플레이오프에서 전체적으로 로키츠에 압도당하며 업셋당했다. (이듬해는 부상에 얼룩진 셀틱스에 반해 레이커스는 역대 최고 수준의 전력을 구축한다) 종합하면 전체적으로 우승권 팀들 사이에서 경쟁은 동부가 약간 더 빡센 정도지만 동고서저 운운할 수준은 아니며, 컨퍼런스 전체적으론 비교적 균형이 잘맞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승후보팀들은 동부가 더 많았으므로 우승을 노리려면 확실히 동부가 더 빡셌다.

버드는 1984년 평균 24.4득점, 10.1리바운드, 6.6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하며 셀틱스를 정규시즌 1위로 이끌었고, MVP로 선정된다. 동시에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를 4-3으로 꺾고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고, 플레이오프 동안 평균 27.5득점, 11리바운드, 5.9어시스트, 2.3스틸, 1.2블럭, FG 52.4% 3P 41.2% FT 87.9%의 전방위 활약으로 파이널 MVP까지 석권한다.

1985년에는 평균 28.7득점 10.5리바운드, 6.6어시스트, 1.6스틸, 1.2블럭, FG 52.2% 3P 42.7% FT 88.2%로 한층 사기성이 짙은 스탯을 찍어주며 2연속 MVP를 차지하지만,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2-4로 패배한다.[16]

1986년 67승 15패의 엄청난 성적을 내며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셀틱스. 그리고 셀틱스의 리더 버드는 평균 25.8득점, 9.8리바운드, 6.8어시스트, 2.0스틸, 0.6블록으로 블록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팀내 1위를 기록하며혼자 농구하나(2)[17] 3연속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다.[18] 여세를 몰아 NBA 파이널에서 휴스턴 로키츠를 4-2로 꺾고 버드 역시 2번째 파이널 MVP를 받게 된다. 버드 본인도 이 팀에 대해 자부심과 애착이 있는지 드림팀 소속으로 패트릭 유잉과 공동으로 인터뷰할 때 "이 팀(드림팀)이 우리 86셀틱스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면 패트릭 유잉은 진짜 센터가 아니거든요"라고 장난삼아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버드가 유잉을 극딜한 건 아니고 당시 버드와 유잉은 드림팀에서 굉장히 친해졌는데, 친해진 후배를 장난스럽게 디스한 것이다.

1987년 셀틱스는 다시 파이널에 오르지만, 이번에는 숙적 레이커스에게 2-4로 패배한다. 사실 이때 셀틱스는 불운이 굉장히 잦은 팀이었다. 전 시즌에 오랜만에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한 인저리 프론 빌 월튼은 또 골골거리며 10게임만 출장했고, 시즌 전에는 오랜만에 얻은 상위픽(2픽) 렌 바이어스가 마약 관련 사고로 사망했다. 결정적인 것은 케빈 맥헤일의 부상이었는데, 이때 그는 77경기를 소화했지만 3월에 오른 발에 심각한 부상을 안고 억지로 뛴 것이었다.[19] 어쨌거나 버드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떠오르는 강팀이었던 피스톤즈를 7차전 끝에 물리치지만, 부상으로 인한 한계는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다. 여담이지만 홈에서 열린 동부 컨퍼런스 5차전 당시 종료 직전에 팀이 1점차로 지고 있었는데, 이때 버드는 돌파하다가 피스톤즈의 집중 수비에 당해 공을 뺏긴다.[20] 그런데 종료까지 5초를 남겨두고 있던 이 시점, 버드는 아이재아 토마스의 인바운드 패스를 기습적으로 스틸해 골밑으로 돌파하던 데니스 존슨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넣어 팀의 역전을 이끈다. 이 플레이는 버드 커리어 사상 최고의 플레이 중 하나로 꼽힌다.

1988년 셀틱스는 5년만에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다.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배드보이즈로 불리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그러나 이 해 버드는 평균 29.9득점 9.3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스틸, FG 52.7%, 3P 41.4%, FT 91.6%라는 남들이 몇 경기만 이렇게 해도 극찬받을 스탯을 시즌 평균으로 찍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2016년 스테판 커리가 달성하기 전까지 30점에 가까운 평균 득점으로 180클럽[21]을 달성했던 건 버드뿐이었다. 이때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은 애틀란타 호크스와 만났는데, 7차전까지 간 이 혈투에서 버드와 득점기계 도미니크 윌킨스는 지금도 회자되는 쇼다운을 펼친다. 이때 윌킨스는 무려 47점을 맹폭하며 34점을 넣은 버드를 능가하는 대활약을 펼쳤지만, 결정적인 4쿼터에 버드가 20점을 몰아넣으며(윌킨스는 16점) 경기를 접수해버린다.[22] 동부 결승에서 셀틱스는 피스톤즈와 재대결을 펼치지만, 부상과 나이로 점점 하락세에 있던 셀틱스는 최전성기를 달리던 아이재아 토마스, 터프하고 실력도 있던 빌 레임비어-릭 마혼의 골밑, 득점기계 애드리안 댄틀리와 스타로 떠오르던 슈팅 가드 조 듀마스, 야생마처럼 날뛰며 스타들을 몸을 던져 수비하던 데니스 로드맨 등이 이끄는 피스톤즈를 당해내지 못하고 6차전 만에 석패한다. 이후 셀틱스는 2002년까지 14년간 동부 결승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1989년부터 버드의 커리어는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1989년에는 뼛조각 제거 수술로 6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코트에 복귀한 후에도 고질적이었던 등 부상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며 결장 경기가 점점 늘어갔다. 이후 망가진 몸으로도 All-NBA 2nd 팀에 오르면서 클래스를 입증하기도 했지만, 이전의 기량을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선수 생활 중반부터는 계속 등에 부상을 달고 살았으며, 이때부터는 전성기의 운동 능력도 많이 잃고 만다. 결국 후에 그를 은퇴하게 만든 것도 이 부상이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오래 서있기도 힘들 정도의 부상이다.[23]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드림팀에 참가한 버드는[24] 올림픽이 끝난 후 은퇴를 발표한다.

놀라운 것은 그의 몸이 망가진 이후에도 정상급 기량을 보였다는 점이다. 6경기만에 아웃된 1988-89 시즌 이후 그는 다시는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1989-90 시즌에는 24.3점 9.5리바운드 7.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All-NBA 2nd 팀에 오르는데 이때가 그의 마지막 All-NBA 팀 선정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자유투 성공률 리그 1위에 오른 해였다. (다재다능한 선수였던 그는 득점왕같은 개인 타이틀은 없지만 자유투 성공률 1위를 4번, 출장시간 1위를 2번 했다)

1990-91 시즌 그는 등 신경이 눌린 문제로 인해 22경기를 결장했다. 이때 셀틱스는 29승 5패로 쾌조의 시작을 했지만 버드의 결장 기간에 부진을 하면서 결국 56승으로 시즌을 마친다. 이 시즌 셀틱스는 버드가 뛴 60경기에서 46승 14패, 76%에 달하는 고승률을 거두지만 그가 뛰지 않은 22경기에서 10승 12패, 고작 45%로 5할에도 못미치는 승률을 기록한다. 그가 셀틱스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존재였는지 보여주는 부분.

부상으로 부진한 버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1라운드에선 첫 경기에 트리플 더블, 최종 5차전에서 32점을 기록하는 등 20.8점 8.6어시스트 8.4리바운드로 활약을 한다. 그러나 계속된 통증으로 결국 디트로이트와 2라운드 1차전을 결장하고 팀은 11점차로 패배하고 만다. 버드는 2차전에 돌아와 팀의 6점차 승리를 이끌고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가지만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1991년 오프시즌에 그는 등 디스크 제거 수술을 하지만 그의 등은 이미 영구적으로 망가지고 만다. 1991-92 시즌 그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시즌을 마치기 위해 놀라운 정신력으로 버텨내는데, 시즌 내내 그는 경기를 치르거나 연습을 끝내고 귀가해서 "한니발 렉터스러운" 전신교정기를 착용하고 집에서 지내야했다고 한다.[25]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26] 버드는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이 교정기를 갖고 숲속으로 가 총으로 쏴 박살을 내버렸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당시 서부 최강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경기에서 49점 14어시스트 12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는데, 이중에는 4쿼터 막판에 2초를 남겨두고 적중시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간 러닝 3점슛까지 [27]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클래스 인증.


당시 만 35세, 벤치에 앉아있지도 못하고 배를 깔고 누워야만 했던 고질적인 등 통증, 양쪽 다 망가진 아킬레스 건에도 불구하고 버드의 시즌 최종 기록은 20.2점 9.6리바운드 6.8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6.6% 3점슛 성공률 40.6% 자유투 성공률 92.6%였다.[28] 비록 부상으로 4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36.9분을 뛰었다.

그러나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인디애나와의 1라운드를 통째로 결장해야 했던 버드는 2라운드에서도 4차전이 되어서야 복귀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버드는 이미 이전의 버드가 아니었고 고작 17분을 뛰며 슛 5개를 쏴 1개 성공, 4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1블럭이란 초라한 기록으로 팀의 패배를 지켜보고 만다. 5차전에서도 20분을 뛰며 슛 10개 중 6개를 넣으며 13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마크 프라이스, 브래드 도허티, 래리 낸스 트리오가 이끄는 캐벌리어스를 당해내지 못하고 패배. 6차전에서는 투혼을 발휘해 37분을 뛰며 16점 14어시스트 6리바운드로 홈에서 팀의 승리를 이끌지만, 최종 7차전에서 그는 12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에 그치며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클리블랜드 관중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전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그의 통산 성적은 24.3득점, 10.0리바운드, 6.3어시스트, 1.7스틸, 0.8블럭, FG 49.6%, 3P% 37.6%, FT% 88.6



2.3. 은퇴 후[편집]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셀틱스의 프론트 오피스로 일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1997년 그는 고향팀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감독직을 수락했고, 아버지뻘인 딕 하터(1930~2012) 코치의 도움을 받아 초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유능함을 보여주었다. 레지 밀러의 전성기 후반을 함께 하며 인디애나를 동부 컨퍼런스의 솔리드한 강팀으로 만들고 98년 플레이오프에서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를 7차전까지 몰아붙이기도 했고, 2000년에는 파이널까지 진출. 3년이 채 안되는 짧은 감독 생활 동안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는데, 버드는 NBA 역사상 MVP와 올해의 코치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나 등부상[29]과 개인 사정으로 감독을 그만두고, 2003년 페이서스의 사장에 취임하여 2012년까지 일하며 올해의 경영진상까지 수상한다.뭔가 했다 하면 상을 타는 위엄 2012년 6월,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한 후에는 NBA 관련 일에서 손을 뗐으나, 2013년부터 복귀했다. 이후 2017년 4월까지 사장직을 수행하다가 계약이 만료된 직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만 조언자 정도로 남은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래리 버드의 감독 시절 일화로, 레지 밀러가 1997-98 시즌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끝내기 3점슛을 성공 시킨 후 버드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조용히 남은 시간을 확인한 것 외에는 미동도 없었다. 소름끼치도록 냉정할 정도. 아니면 선수시절 수없이 많은 게임위닝 슛을 성공시킨 자신감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때 버드의 불안은 괜한 것이 아니었는데, 실제로 0.4초를 남기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던진 3점슛은 거의 림안으로 들어가다가 나왔다.[30]


3. NBA 통산 기록[편집]


[ 정규시즌/펼치기 · 접기 ]
시즌
경기수
시간
FG%
3P%
FT%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TS%
PER
79-80
82
36.0
.474
.406
.836
21.3
10.4
4.5
1.7
0.6
3.2
.538
20.5
80-81
82
39.5
.478
.270
.863
21.2
10.9
5.5
2.0
0.8
3.5
.528
19.9
81-82
77
38.0
.503
.212
.863
22.9
10.9
5.8
1.9
0.9
3.3
.557
22.6
82-83
79
37.7
.504
.286
.840
23.6
11.0
5.8
1.9
0.9
3.0
.561
24.1
83-84
79
38.3
.492
.247
.888
24.2
10.1
6.6
1.8
0.9
3.0
.552
24.2
84-85
80
39.5
.522
.427
.882
28.7
10.5
6.6
1.6
1.2
3.1
.585
26.5
85-86
82
38.0
.496
.423
.896
25.8
9.8
6.8
2.0
0.6
3.2
.580
25.6
86-87
74
40.6
.525
.400
.910
28.1
9.2
7.6
1.8
0.9
3.2
.612
26.4
87-88
76
39.0
.527
.414
.916
29.9
9.3
6.1
1.6
0.8
2.8
.608
27.8
89-90
75
39.3
.473
.333
.930
24.3
9.5
7.5
1.4
0.8
3.2
.546
21.9
90-91
60
38.0
.454
.389
.891
19.4
8.5
7.2
1.8
1.0
3.1
.530
19.7
91-92
45
36.9
.466
.406
.926
20.2
9.6
6.8
0.9
0.7
2.8
.547
21.0


[ 플레이오프/펼치기 · 접기 ]
시즌
경기수
시간
FG%
3P%
FT%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TS%
PER
79-80
9
41.3
.469
.267
.880
21.3
11.2
4.7
1.6
0.9
3.7
.511
18.3
80-81
17
44.1
.470
.375
.894
21.9
14.0
6.1
2.3
1.0
3.6
.532
21.8
81-82
12
40.8
.427
.167
.822
17.8
12.5
5.6
1.9
1.4
3.2
.474
17.9
82-83
6
40.0
.422
.250
.828
20.5
12.5
6.8
2.2
0.5
3.2
.478
20.3
83-84
23
41.8
.524
.412
.879
27.5
11.0
5.9
2.3
1.2
3.8
.607
26.3
84-85
20
40.8
.461
.280
.890
26.0
9.1
5.8
1.7
1.0
2.9
.536
20.9
85-86
18
42.8
.517
.411
.927
25.9
9.3
8.2
2.1
0.6
2.6
.615
23.9
86-87
23
44.1
.476
.341
.912
27.0
10.0
7.2
1.2
0.8
3.1
.577
21.8
87-88
17
44.9
.450
.375
.894
24.5
8.8
6.8
2.1
0.8
2.9
.538
20.2
89-90
5
41.4
.444
.263
.906
24.4
9.2
8.8
1.0
1.0
3.6
.539
20.7
90-91
10
39.6
.408
.143
.863
17.1
7.2
6.5
1.3
0.3
1.9
.490
15.8
91-92
4
26.8
.500
.000
.750
11.3
4.5
5.3
0.3
0.5
1.5
.514
16.4



4.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NBA 챔피언 3회 (1981, 1984, 1986)
파일:NBA-Champion.pngNBA 파이널 MVP 2회 (1984, 1986)
파일:NBA 로고.svg NBA 정규시즌 MVP 3회 (1984-1986)
파일:NBA 로고.svg 올-NBA 퍼스트 팀 9회 (1980-1988)
파일:NBA-Allstar2021.pngNBA 올스타 12회 (1980-1988, 1990-1992)
파일:NBA-Allstar2021.pngNBA 올스타전 MVP (1982)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1990)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3회 (1982-1984)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신인상 (1980)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80)
파일:NBA 로고.svg NBA 3점슛 콘테스트 챔피언 3회 (1986-1988)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감독상 (1998)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경영자상 (2012)
파일:stvstmfts.png 네이스미스협회 선정 올해의 대학선수상 (1979)
파일:HOF-Logo.png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98)
파일:오륜기(여백X).svg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5. 플레이 스타일[편집]


"버드는 그다지 스피드도 없었고 덩크슛 같은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버드는 백인들이 "블랙 게임"이라고 부르는 플레이를 할 줄 아는 극소수의 선수였다. 그를 막는 것은 컴퓨터 게임과 비슷했다. 그의 마음을 읽고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지 예측해야만 했다. 그 점이 가장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는 늘 누구보다 앞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데니스 로드맨[31]


"래리 버드를 막는 것보다는 마이클 조던을 막는 게 훨씬 낫다. 버드를 막으려면 그의 수준에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체스 게임처럼 농구를 한다."

제임스 워디[32]


아저씨틱한 얼굴처럼 발이 느렸고 점프력도 그저 그랬다. 그런데도 완벽한 선수. NBA에 3점슛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3점을 주옵션으로 활용했으며[33] 180클럽 초대 가입자이며 키작은 가드들과 일부 포워드들의 보조 득점 수단에 불과했던 중장거리슛을 농구에서 중요한 요소로 만들어낸 선구자.

우선 강골이고 힘이 좋았으며 발이 느려서 그렇지 순간적인 퀵니스만 놓고 보면 수준급이었다.[34] 슈팅, 포스트업, 페이스업 모두 능했는데 특히 슈팅에 있어서는 말할 필요없는 역대 최고의 샤프슈터 중 하나. 그런데 그의 최대 강점은 이런 스킬이 아니라 게임을 읽는 능력이었다. 부럽.. 일명 역대 최고의 BQ를 가진 남자. 가상의 최고 농구 선수로 "흑인의 신체를 가진 버드"라는 말이 나온 게 바로 이점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이 다음 플레이를 예측할 때 버드는 2수, 3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으며 이러한 예측력으로 상대를 농락하고 게임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래리 버드의 경기를 보면 누구보다도 상황 판단이 빠르고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하기 때문에 기발한 플레이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보통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플레이가 막히면 순간 판단을 멈추는 것과 달리 버드는 그 순간조차도 활용해 판단하고 새로운 동작을 한다. 발을 디딜 틈이 없는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트랩 더블팀을 당하면 대부분 선수들은 공을 뺏기거나 라인 밖으로 나가고, 기껏해야 타임아웃을 불러서 상황을 모면한다. 그러나 버드가 실제로 한 플레이로 이 상황에서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패스해줬다. 사실 플레이 자체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긴 하겠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 냉정하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저런 상황에서 수비수는 벽처럼 느껴지고 보통 돌아가거나 그 위를 공략하는데, 다리 사이를 노릴 발상을 하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버드의 경기에서 가장 빛나는 건 순간순간 천재적인 센스인데, 이걸 보면 그가 얼마나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빠른지 알수 있다.

조던과 마찬가지로 페이크의 달인이었는데, 조던이 압도적인 운동능력으로 순식간에 많은 작은 페이크를 넣어서 수비수의 타이밍을 무너뜨리고 스피드로 제쳐버린다면 버드는 조던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느렸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해서 페이크 이후 상대가 무너지는 움직임까지 계산해서 절묘하게 빈틈을 노렸다. 이 때문에 상대 수비수가 무력하게 보일 정도로 화려한 움직임을 펼치는 조던에 정 반대로, 버드가 느릿느릿 페이크를 하고 상대가 허우적대는 사이에 버드가 느릿하게 후속 움직임을 펼치는 플레이를 보면 얼핏 몸개그처럼 보일 정도로(...) 겉보기에는 화려한 포스가 없었다. 이때 낚이는 수비수들이 마이클 쿠퍼같은 초일류 수비수들이란 걸 생각하면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허접들이 몸개그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초일류 선수들의 치밀한 수싸움인 것이다. 사실 버드 과대평가론도 이런 스타일이 한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 등에 올라와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면 버드가 느릿느릿 움직여 슛을 하거나 레이업을 하는데 수비수들이 못 막아 마치 당시 수비가 허접하거나 수비수가 허접한 것처럼 보인다. 매직 존슨이 언급했다시피 특히 버드보다 운동능력은 훨씬 뛰어난 흑인선수들이 매직에게 "진짜 버드가 그렇게 잘했어요?"라도 물어보는게 이 때문. 그러나 포인트는 이 수비수들이 진짜 허접한게 아니라 마이클 조던같은 운동능력+기술 만렙들을 막아내던 수비수들이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조던과 플옵에서 만났을때 평균 득점을 8점이나 떨어뜨렸다 (물론 떨어져서 30점이지만...). 이런 미친 수비수들을 그 느린 움직임으로 따돌리기에 버드가 레전드로 불리는 것이다.

느린 선수들이 보통 수비가 안 좋은 편이지만 버드는 예외적으로 수비수로서도 일류였다.[35] 상대의 동선을 미리 읽고 패스경로를 차단하는 식으로 신체적 단점을 커버했기 때문. 또한 버드는 경기당 리바운드를 커리어 평균 10개나 잡아낼정도로 리바운드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206cm가 넘는[36] 키에다가 버드의 어마어마한 투쟁심까지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전성기 시절에는 평균 30득점에 가까웠던 시즌도 있었으며 등 부상 이후에나 20득점으로 떨어졌으니 가히 괴물이 아닐수가 없다.

버드를 애써서 평가절하하는 이들이 하는 얘기가 "80년대에는 신체능력이 전체적으로 안 좋았기 때문에 버드가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란 주장인데, 물론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전반적으로 체격이 커지고 운동능력이 좋아진 현재가 당시보다 전체적인 운동능력이 뛰어난 것은 맞다. 그러나 버드 시대에도 현재 슈퍼스타들 못지 않은 사기적인 운동능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대표적으로 줄리어스 어빙, 마이클 조던, 도미니크 윌킨스, 제임스 워디, 데니스 로드맨 등인데, 이 중 조던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드와 직접 매치업되었으며, 이들을 상대로 맹활약했다. 특히 버드는 윌킨스와 호크스를 상대로 생애 최고 득점인 60점을 넣기도 했다. 물론 현 리그의 평균 운동능력이 더 상향되었음은 명확하니 3번이라는 포지션에서 버드의 느린 발이 예전보다 부각될 수는 있겠지만, 버드는 3~4번을 자유롭게 오가는 선수였고 신체적&기술적 툴 자체가 현대농구에서는 4번에 어울리는 선수라 별 문제는 없다.

버드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요리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으며, 상대가 운동능력이 좋다고 해서 딱히 고전한 적도 없다. 게다가 버드는 느리고 점프력이 딸릴 뿐이지 퀵니스는 사이즈대비 좋은 편이라 실제 수비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힘이 좋아서 몸싸움이나 포스트에서 상대를 제압하는데 능했는데, 그도 그럴게 버드의 전성기 신체 프로필은 맨발 206cm에 110kg, 현대농구 기준으로도 건장한 4번 ~ 스몰볼 5번급의 피지컬이었기에 지금보다 마르고 가벼운 당대 스몰포워드들이 붙으면 그 힘차이가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어지간한 4번이 붙어도 당당하게 포스트 무브를 가져가며 골밑을 전투적으로 파고들었던 선수.

버드가 슛이 뛰어나며 스마트한 플레이어였다는 점, 백인이란 점 때문에 간과되지만 버드의 득점 중 3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으며 주 득점 공간은 어디까지나 골밑과 미드레인지였고, 리바운드를 통산 10개나 할 정도로 전투적으로 부딪히면서 하는 농구에 익숙한 스타일이었다. 당시 스몰포워드들은 현재와 달리 골밑에서 훨씬 가깝게 플레이했으며, 현대 농구로 치면 차라리 파워포워드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런 면에서 그와 득점면에서 가장 유사한 스타일은 페자 스토야코비치가 아닌 디르크 노비츠키, 니콜라 요키치 등의 빅맨에 가까웠으며, 실제로 현대 농구에서 뛰었다면 그의 골밑득점과 리바운드, 수비력을 살릴 수 있는 파워포워드로 뛸 가능성이 높다.[37] 지금의 Flagrant 파울로 불릴것들이 일상적이었고 스타플레이어들이 두들겨 맞는건 그 당시는 일상이었다. 확인하고 싶으면 그냥 조던 룰만 찾아봐도 된다.[38] 버드의 팀 메이트였던 맥헤일도 라이벌 레이커스의 커트 램비스의 속공을 막는 과정에서 clothesline이라는 레슬링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NBA 3점슛 컨테스트에서 1986년부터 88년까지 모두 우승, 3연패를 이루어냈다. 86년 대회 때는 옆에 있던 참가자들에게 "이번 2등은 누가 할래 ㅎㅎㅎ"라며 콩라인 드립을 쳤다;;[39] 더 대단한 사실은 버드는 3점슛을 프로에 와서 익혔다는 점. 80년대 초중반까지 NBA와 NCAA 규칙에 3점슛은 없었고, 도입 직후에도 작달막한 슈터들의 활용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도로만 여겨졌었는데 버드는 이걸 프로에 와서 마스터해버렸다. 3점슛 도입 이전의 농구 철칙은 "무조건 가까운데서 쏘라"는 것이었고, 실제로 버드나 당시 스몰 포워드들(예를 들어 줄리어스 어빙 등)의 경기를 보면 90년대 이후 스몰 포워드들보다 훨씬 더 골밑슛 빈도수가 높고 골밑플레이에도 능하다. 당연히 버드의 득점도 대학에서건 프로에서건 중거리가 가장 비중이 높고 그 다음이 골밑, 장거리 슛은 비중이 적었다. 그런데 크렉 하지스같은 전문 슈터를 제치고 3점슛 콘테스트를 세번 연속으로 우승했다는 건 그의 슈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40][41]

여담이지만 위에 나온대로 버드의 고향은 심한 깡촌이라 놀거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어린 버드는 허구헌 날 슛 연습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당시 인디애나 출신 선수들의 슈팅력은 매우 좋았다. 또한 불우했던 집안 환경 탓에 어릴 때부터 장작을 패는 등 집안일을 도왔는데, 장작패기가 악력과 손목힘을 키우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손목 감각만으로 날리는 정확한 롱패스와 장거리슛 등을 익혔다. 실제로 버드의 점프슛을 보면 거의 상체에만 의존하는데, 손목감각으로 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높은 포물선을 그린다.[42][43]

현대의 농구코치가 그의 슈팅폼을 분석한 영상에 따르면 그가 얼마나 기본기에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버드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항상 몸의 오른쪽(슈팅핸드와 같은쪽)이 골대쪽으로 향하며, 슛쏘는 쪽의 팔꿈치가 위로 향하고, 팔꿈치를 적당히 벌려 시야를 확보하도록 했는데, 자세히 보면 그가 얼마나 격렬한 몸싸움을 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슛을 쏘든지간에 항상 저 세가지는 유지하고 있다. 이 영상에도 나와있지만 60점 커리어하이 경기 당시 버드는 베이스라인의 3점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고 몸을 왼쪽으로 튼 상태에서 수비수를 향해 기대면서 어색하게 점프했는데도 공중에 있는 (점프력이 낮으니까) 짧은 시간동안 몸을 비틀어서 위에 언급된 세가지를 지키며 슛을 쐈다. 겉보기엔 괴상한 형태의 어거지슛이 운 좋게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기본기 때문에 들어간 슛인 것이다. 이 때문에 버드는 거리가 틀리는 경우는 있어도 옆으로 빠져서 놓치는 슛은 거의 없었다. 슛폼 자체가 정확히 앞으로만 날아가도록 만든 폼이고, 이 폼을 항상 지키기 때문. 60년대에 농구를 배우고 80년대에 선수생활을 선수인데도 현대에 봐도 참고가 될 정도로 엄청난 기본기를 갖고 있는 셈.

라이벌 매직 존슨 못지 않은 감각적 패싱 능력의 소유자였다. 손목만 가지고 탁탁 치는 거 같은데 어느 순간 수비진의 틈을 파고들어가는 패스는 경이적이다. 게임을 리딩하는 포인트포워드의 역할또한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러다보니 르브론 제임스처럼 탑에서 볼을 많이 만지며 리딩하는 경향의 선수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 버드의 경기를 보면 볼 소유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당시 셀틱스의 메인 볼 핸들러로는 엄연히 명예의전당 포인트가드인 데니스 존슨이 있었고 버드는 하이포스트에서 볼을 배급받아 맥헤일이나 패리시한테 찔러주는 패스에 아주 능했다. 더블더블은 기본에 트리플 더블도 자주 했고, 통산 트리플 더블 횟수는 정규시즌 59회(역대 5위), 플레이오프 10회(역대 3위)이다.
특이한 점은 이렇게 장신임에도 가드플레이가 능한 선수들, 예를 들어 찰스 바클리앤서니 데이비스 등은 포인트가드였다가 급성장하면서 포워드로 포지션을 전환하거나, 케빈 가넷같이 포지션에 얽메이지 않은 플레이를 하던 경우가 대부분인데 버드는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 때도 센터였으며, 드래프트 당시에도 빅맨으로 분류되었다. 특히 포지션 구분이 현재보다 훨씬 엄격하던 6,70년대에 농구를 배운 빅맨이었음에도 역대급 가드플레이가 가능한 특이한 선수였던 것. 버드같은 선수라면 보통 파워포워드를 맡기는게 일반적이고 실제로 데뷔 초엔 수비에서 상대 빅맨과 매치업되는 등 파워포워드에 가깝게 플레이했으나, 빌 피치 감독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공격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의 소유자라 레전드급 클러치 플레이를 여러번 보여주곤 했다. https://m.youtube.com/watch?v=jCcLwroB_rQ 이 영상에서 버드는 3점차고 지고있고, 24초 남겨둔 상황에서 클러치 3점슛을 넣는데, 슛 직전에 타임아웃을 부른 감독 K.C. 존스 때문에 무효가 된다. 웬만하면 허무해서 멘탈이 박살날 상황인데 버드는 뒤이은 공격권에서 더블팀을 제끼고 러닝 3점슛을 성공시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간다. 뒤이은 연장, 종료직전에 수비를 달고 쏜 러닝3점슛이 아깝게 빗나간다. 그러자 버드는 2차연장 종료전에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러닝3점슛을 적중시켜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또한 스몰포워드 중 최초로 중장거리 슛팅을 전략적으로 사용한 인물 중 하나이다. 물론 버드를 레이알렌과 커리와 같은 3점 슈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44] 하지만 버드는 가까운곳에서 쏜다라는 농구의 기존 원칙을 뒤바꾼 인물이다. 당시 셀틱스의 주 득점 루트를 설명하자면

1. 버드는 로우포스트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다른 한쪽과 하이포스트에 패리시나 맥헤일이 각각 자리한다.
2. 메인 볼핸들러가 탑으로 공을 몰고 온다.
3. 버드는 다른 한쪽 로우포스트에 있는 선수의 스크린을 받아 하이포스트에있는 선수와 자리를 스위칭한다. 이로인해 수비진들을 흐트러놓는다.
4. 버드가 하이포스트에서 자리를 잡으면 볼핸들러가 버드에게 볼을 배급한다. 이렇게 되면 상황에 따라 3가지의 공격루트가 생긴다.
1) 자기보다 사이즈가 작은 선수가 따라붙었을 경우 미스매치를 이용해 포스트업으로 밀고 들어간다.
2) 미스매치가 나지 않았을 경우 골밑에서 자리잡고 있는 두 빅맨에게 킬패스를 찔러 넣는다.
3) 상대선수가 새깅을 하는 경우 그대로 슛을 던진다.

현대의 기준으로 따지면 그저 수많은 전술중 하나로 보이겠지만, 당시엔 매우 혁신적인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당시까지는 포워드 중에서 중장거리에서 이렇게 슛을 잘 던지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3점라인 밖까지 나올 경우 수비는 새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스몰포워드들 중 줄리어스 어빙, 제임스 워디, 도미니크 윌킨스 모두 골밑에서 중거리슛까지가 주 득점루트였다. 게다가 찰스 바클리 역시 초창기엔 스몰포워드였다. 80년대 당시엔 수비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던 것. 물론 반대급부로 수비가 몰린 골밑, 거칠었던 트렌드와 현재와 다르게 수비에 유리한 파울콜까지 해서 골밑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버드에게는 밀착 수비를 해야 했고, 이는 골밑에 공간을 창출하는 결과를 낳아 셀틱스는 로우템포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대 농구에서 스트레치 빅맨이 갖는 이점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버드는 최정상급 PG급의 시야와 패스력을 지녀 다양한 공격창출이 가능했던 것.

사실 여기까지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버드는 당대 3번 중에서는 단연 최고로 다재다능한 선수이며 중장거리 스코어러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한편, '안쪽 플레이어'라는 당대 포워드의 색깔 자체에도 상당히 충실했던 선수이다 보니 실제로 그의 플레이를 찾아보고 빅맨에 가까운 인상을 받아 의아해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45] 때문에 르브론과 함께 '스몰포워드의 대명사'로 통하면서도 정작 현대농구라는 키워드에 한해서는 '이상적인 파워포워드'로서의 버드가 더 활발히 언급되는 부분도 있다. 일단 신장과 체중부터가 시대 불문 3번보단 4번에 더 어울림은 물론 리바운드 능력이 원체 좋았던데다, 볼핸들링과 BQ를 겸비한 다재다능한 4번, 슛이 좋은 스트레치 4번, 포스트업, 킥아웃, 팝 등의 기능도 기대할 수 있으니 만큼 요근래 4번으로는 딱 알맞는 선수.


5.1. 트래쉬토킹[편집]


NBA에서 단순히 슈퍼스타를 넘어 정점을 찍는 선수에게 요구되는 자질인 격렬한 투쟁심이 엄청난 선수였고[46], 트래쉬 토커로도 유명했다. 파이널 3경기에서 레이커스에게 지고 "우리 팀메이트들은 계집애들(Sissies)처럼 뛴다"라고 대놓고 비난, 자극받은 팀메이트들이 거친 수비를 바탕으로 결국 우승한 것이 좋은 예. 마이클 조던은 버드를 최고의 트래쉬 토커로 뽑았는데 그 이유는 더티한 말이나 욕을 쓰지도 않았고 오로지 언변과 그에 맞는 플레이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47]

그의 트래쉬 토킹 사례:

  •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버드는 줄리어스 어빙에게 "42-6"이라는 말만 끊임없이 반복했고 마침내 열받은 어빙이 버드에게 덤벼들어 난투가 벌어졌다. 42-6은 이전 경기에서 버드와 어빙이 각각 기록한 점수였다. 비밀번호 426

  • 호레이스 그랜트의 회상: "버드에게 '못넣을 걸, 이건 못넣을 걸.'하는 식으로 트래쉬 토킹을 좀 했던 적이 있었죠. 버드가 이러더군요. '이번에 내가 왼쪽으로 페이크 넣고 오른손으로 훅슛을 쏠 거야.' 그러더니 그대로 슛을 넣더군요."

  • 데니스 로드맨의 회상: "나는 버드에게 오는 패스를 차단하려고 죽을 힘을 다했죠. 그러면 버드는 자기 팀원들한테 소리치는 거에요. '나 오픈이야! 누가 나한테 수비 안 붙은 거 눈치채기 전에 패스해!' 그리고 나서 패스를 받고, 내 턱에 팔꿈치로 한방 먹이고, 면전에 대고 점퍼를 넣는 거에요. 그러면 또 우리팀 코치한테 이러죠, '감독님 수비 좀 되는 애로 바꾸셔야겠는데요. 계속 와이드 오픈이니 이거야 원.'"

  • 인디애나와의 한 게임에서 버드 혼자서 페이서스를 농락하는 경기 중 3점슛을 성공시키고 벤치에다 대고 한 말: "아놔...니들이 절실하게 날 막아야 되는건 아는데 가능성이라도 있는 애를 보내야 될거 아니냐? 비참하구만."

  • 어떤 기자의 말로 의하면 버드는 자신을 수비할 선수들한테 가서 '이 경기장 득점 기록이 뭐냐?'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상대 선수가 '...몰라 왜?' 라고 대답하면 버드는 '니가 오늘 나 막아야 되잖아?'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회상: "내가 루키 시즌에 버드를 막게 됐는데 그가 나에게 '넌 날 막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자신감 쩌시네요'라고 하니까 '자신감? 넌 루키잖아. 넌 개뿔도 몰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곤 10점을 연속으로 넣고, 전 교체됐습니다. 벤치에 앉아있는데 지나가던 버드가 절 보고 웃더군요."

  • 1986년 댈러스 원정경기에서: 작전 타임 중에 버드는 댈러스 매버릭스 벤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계속 여기 서있다가 패스 받고 클린슛으로 넣어주지." 그 말대로 한 후, 버드는 댈러스 벤치에 윙크를 하고 뛰어갔다.

  • 레지 밀러의 자서전에서: 밀러는 자유투를 쏘는 버드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하려고 옆에서 떠들고 있었다. 버드는 밀러를 보고 첫 자유투를 넣은 후 "난 리그 No.1 슈터라고. 뭐하는 짓이냐?" 그리고 두번째 자유투를 넣었다.[48]

  • 1991년 크리스마스날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3점슛을 성공시킨 후, 페이서스 벤치에 앉아있던 척 퍼슨에게 "Merry Fucking Christmas!"라고 했다. 참고로 척 퍼슨은 NBA 신인상 출신에 과거 KBL 전주 KCC 이지스 코치를 맡았다.

  • 2011시즌 기자가 버드와 덕 노비츠키를 비교하자 '영광이다. 은퇴한지 20년이 넘은 나와 비교를 하다니.'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내가 현역이였으면 내 앞에서 까불지도 못한다'라는 얘기... [49] 다만 위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노비츠키의 커리어가 완성되기 전에 나온 발언이고, 현 시점에서 노비츠키는 버드에게 가장 인정받는 레전드 중 하나이다. 오히려 훗날 노비츠키와 비교되는 것은 자신에게도 기분좋은 일이라며 그를 제대로 인정해 주었으며, 은퇴식에도 참여해 "더 나은 리그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 라며 끝까지 노비츠키를 리스펙트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코비 브라이언트의 2012년 대표팀이 92년 드림팀을 이길 수 있다는 발언에 버드가 한 말은 "그래, 걔네가 이길 거야, 우린 은퇴한 지 20년이 지났고 늙었으니까." 한 마디로 까불지 말란 말이다(...). 비단 버드 뿐만 아니라 찰스 바클리가 이 발언에 첫 번째 반박을 날렸고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 당시 드림팀 멤버들이 차례로 코비의 주장에 반격하는 등, 코비의 이 발언은 무리수였다는 평이 중론.

  • 정신력과 자신감이 대단해서 클러치 상황에서는 상대팀 선수에게 "내가 저기서 마지막 슛을 던질거야"라고 예고를 한 다음에 똑같이 그 위치에서 던지는 것을 즐기는 취미도 있었다.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Xavier Daniels에게 "저기서 공을 받은 다음 저기서 네 놈 면전에 대고 슛을 쏠 거야"라고 한 다음 진짜로 그 위치에서 위닝샷을 넣은 적도 있다. 유튜브 영상 참고로 이 때 감독인 K.C. 존스에게 한 말은 "감독님, 저에게 공을 주고 나머지는 비켜있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난 나머지 포틀랜드와의 경기(유튜브 영상)에서는 스스로 "점퍼를 제외한 모든 슛을 왼손으로 던지겠다"고 룰을 정한 다음에 진짜 그렇게 해서 이 경기에서 20점 +- 5점 정도를 왼손으로 득점했다.[50] 이 경기 최종 성적은 47점 14리바운드 11어시스트.


5.2. Next 버드?[편집]


이견의 여지 없는 최고의 백인 슈퍼스타였으니 만큼 이후 백인 스타들이 등장할때마다 꾸준히 언급된다. 근데 이게 정말 닮아서라기 보단 그냥 슛 좋은 스타급 백인선수, BQ 좋은 스타급 백인 선수, 여튼 운동능력이 아닌 나머지에 강점을 가진 특정 백인 선수가 네임드 플레이어로 올라오면 반자동으로 따라나오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그러한 선수들 중 버드와 '닮았다' 라고 할만한 선수는 굉장히 드물다. 사실 버드 정도로 똑똑하거나 슛이 좋은 선수치고 버드만큼의 힘과 피지컬로 골밑을 파고드는 유형이 지극히 드물고, 버드 이상의 사이즈나 파워를 갖춘 선수라면 사실상 빅맨이기에 버드마냥 슛과 플레이메이킹까지 고루 갖춘 유형이 되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역대급 선수들 중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후배 선수를 찾기가 가장 어려운 타입.

얼마나 비슷했는지를 떠나서 '버드를 소환했던 백인 선수'들을 얼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제 2의 래리버드' 소리를 들었던 백인 선수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영구결번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리고 버드와 함께 드림팀 1기 멤버로서 금메달을 쟁취한 크리스 멀린이다. 당대 최고의 중장거리 슈터 중 한명으로써 코트 위 어디서든 득점이 가능했고 BQ와 패싱이 좋은 선수라는 점에서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다만 체격좋은 3~4번에 나름 파워 플레이어였던 버드와 달리 2~3번 스윙맨에 스타일 자체는 꽤나 달랐던 편이다. 이 둘은 드림팀의 멤버로써 함께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한때 유럽출신 NBA 플레이어들 중 최고로 통했던 선수이자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데틀레프 슈렘프의 경우 언론으로부터 '화이트 피펜'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슛이 좋다는 점에서는 버드의 스타일과도 공통분모가 있었다. 3번 기준으로는 반칙급의 사이즈인 208cm의 신장과 이에 어울리지 않는 슈팅 능력, 준수한 포스트업 능력이 있었으며,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에 두루 능해 버드와 같은 25-10-7까진 아니어도 20-10-5 정도의 유니크한 스탯라인을 기록할 수 있었던 선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올스타였던[51] 탐 구글리오타의 경우 버드와 비슷한 체격의 다재다능한 3.5번 포워드였으며 스타일 그 자체만 보면 멀린보다도 버드와 더 비슷했던 선수였다. 버드와 같은 메인 플레이메이커는 아니더라도 포워드로썬 준수한 시야와 BQ가 있어 일정 수준의 어시스트는 뿌려줄 수 있었고, 득점과 리바운드에 두루 능했다. 다만 고점이 그리 높지는 않았고 전성기 자체도 길지 않아 올스타 1회 정도의 커리어에 그쳤다.

올랜도 매직에서 전성기를 보낸 히도 터콜루의 경우 기량 자체는 올스타급이 아니었지만 구글리오타와 함께 스타일에 있어선 가장 버드와 비슷했던 선수 중 하나로 통한다. 통산 3점 슛 성공률은 40%에 육박하고, 버드와 같은 포인트 포워드 유형으로 볼핸들링과 패스에 능했으며 사이즈가 좋아 3~4 포지션을 오가는 것이 가능했던 선수. 또한 무시못할 클러치 능력까지 보유했다. 다만 3점 슛 성공률과 별개로 슈팅이 아주 좋은 선수는 아니었고, 키는 컸지만 버드나 구글리오타처럼 터프하고 힘이 강한 타입은 아니었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래리 버드 이후 최고의 백인 슈퍼스타, 그리고 역대 최고의 유러피언 플레이어로 인정받는 디르크 노비츠키의 경우 버드처럼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하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중장거리 슈팅은 버드 이상으로 뛰어나고 엄청난 득점력, 슛 레인지, 다재다능한 득점툴, 준수한 리바운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를 논하는 클러치 능력을 자랑했다. 스타일 자체는 버드와 아주 비슷하다고 보긴 힘드나, 스타일이 버드와 그나마 비슷했던 터콜루나 구글리오타를 제치고 '버드의 향수'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인정받는 레전드.

2010년대에는 골밑 마무리, 슛, 오프 볼 무브, 볼핸들링, 패스, 수비 등에 두루 능하고 스몰볼 4번도 소화 가능한 육각형 포워드 고든 헤이워드가 셀틱스에서 세시즌 활약한 바 있다. 현 NBA에서 매우 드물어진 '미국 국적의 올스타 백인 선수'[52]였고 셀틱스 측에서도 스윙맨ver 보급형 버드를 기대하며 헤이워드를 선택했겠지만, 아쉽게도 셀틱스에서는 미미한 족적을 남긴채 이적했다.[53]

2020년대 현재의 경우 유럽을 평정하고 온 댈러스 매버릭스 소속 가드-포워드[54] 루카 돈치치가 동나이대의 버드와 심심찮게 비교되고 또 닮았다고도 하지만, 사실 스타일은 상당히 다른 편이다. 루카의 경우 포스트옵션이 거의 없는 페이스업 위주의 플레이어인 반면 버드는 포스트업이 주무기였고, 루카는 이미지와 달리 중장거리 성공률과 자유투가 그리 높지는 않은데 비해 버드는 코트 어디서든 높은 슛 성공률과 고감도 자유투를 자랑했다. 또한 시대의 차이로 돈치치는 3점을 매우 많이 던지는 반면 버드는 (3점을 잘 넣긴 했지만) 미드레인지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또한 루카는 본인이 공을 몰고 넘어와 전권을 행사하는 전형적인 헤비 볼핸들러인데 비해, 버드는 어시스트 수치에 비해 볼소유를 길게 가져가는 유형은 또 아니었다. 다만 '득점-리바-어시스트에 두루 능한 선수'라는 것 자체가 시대불문 워낙에 유니크한 유형이다 보니 이것만으로도 무시 못 할 공통분모이긴 하다.[55]

또한 거의 20년만에 나타난 센터 MVP이자 유러피언 슈퍼스타인 덴버 너겟츠 소속 니콜라 요키치센터ver 버드로 언급된다. (1) 각각 포워드와 센터의 포지션에서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가진 대신 준수한 사이즈, 강한 힘, 환상적인 시야와 BQ를 자랑하는 점, (2) 포스트업과 리바운드 등 인사이드 플레이의 기본에 있어서 매우 완성된 역량을 가졌으며, 슛레인지 역시 길어 중장거리 또한 주무기로 활용한다는 점, (3) 버드가 포워드로써 파격적인 플레이메이커라면 요키치는 센터 포지션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플레이메이커이며, 둘 다 매경기 전문 포인트가드 수준의 어시스트를 뿌리면서도 볼소유를 아주 독식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점, (4) 20-21 시즌을 기준으로 요키치가 버드와 매우 비슷한 25-10-8 가량의 역대로도 정말 희귀한 스탯라인을 기록하는 점, (5) 리그에서 손꼽히는 BQ와 강심장으로 무지막지한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는 점 등등... 버드를 소환했던 역대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공통분모가 많은' 선수로 눈여겨 볼 만 하다. 스퍼스의 포포비치 감독은 요키치를 두고 "버드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1981년부터 셀틱스의 해설자로서 버드의 전성기를 지켜본 '마이크 고먼(Mike Gorman)'이 요키치를 두고 버드를 수차례 언급하는 등 돈치치보단 요키치가 훨씬 버드와 비슷한 타입.


6. 평가[편집]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5~7위권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 선수. 2020 NBA 파이널에서 르브론이 우승과 파이널 MVP를 모두 거머쥐면서 사실상 르브론의 우세로 종결되었으나, 우열을 떠나 원클럽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버드를 더 선호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2019-20 시즌 마감 시점 기준.
  • 래리 버드: NBA 파이널 우승 3회, 준우승 2회, 시즌 MVP 3회, 파이널 MVP 2회, 윈쉐어 역대 23위, PER 역대 17위.[56] 평균기록 24.3pts 10.0reb 6.3ast
  • 르브론 제임스: NBA 파이널 우승 4회, 준우승 6회[57], 시즌 MVP 4회, 파이널 MVP 4회, 윈쉐어 역대 4위, PER 역대 2위. 평균기록 27.2pts 7.4reb 7.2ast

냉정하게 말하면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가 짧은 버드보다는 아직 커리어가 더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승 횟수와 파엠 갯수, 시엠 갯수를 모두 추월했고 기록도 월등한 르브론의 누적이 더 뛰어나다. 현 시점에선 호불호를 떠나 르브론의 평가가 버드에게 우위를 점한 것은 사실이고, 아직 르브론의 커리어가 남아있는 이상 이게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버드가 르브론보다 못하다" 라고 딱 잘라 말하길 꺼리는 분위기는 없지 않지만.[58]

다만 버드는 농구의 판도를 바꾼 레전드라는 점에서 마이클 조던이나 매직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들보다 실적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우승 이력만 따지면 버드보다 나은 실적을 낸 슈퍼스타는 여럿 있다. 4우승 3파엠의 샤킬 오닐, 5우승 3파엠의 팀 던컨, 5우승 2파엠의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그 예시. 그러나 저들이 버드보다 위라는 평을 받는가? 아니다.[59] 일차적으로는 저들이 버드만큼 MVP를 쓸어담지 못 한 것이 크지만[60] 다재다능한 장신 핸들러의 선구자였던 매직이나 스윙맨의 전성시대를 만들어낸 조던과 더불어 농구의 슈팅 레인지 향상을 상징하는 선수가 버드인 것. 물론 순수하게 선수 개인의 실적을 논하는 줄세우기에서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가 가산점이 될 수 있냐는 지적도 존재하고[61], 버드가 받는 높은 평가 역시 그의 압도적인 실력과 커리어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농구 판도에 대한 영향'이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또한 "한 시대를 양분한 선수"란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버드는 매직과 완전히 동급으로 평가받는 최강의 실력자로 80년대를 완벽하게 둘이 지배했다. 실제로 80년대 선수 중 버드보다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없으며 매직만이 그와 대등한 선수였다.

사실 선수랭킹과 별개로 시대가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우열을 명백히 말하는 걸 피하는 분위기는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다. 상황이 워낙 달랐기 때문. 여기서 유일한 예외는 절대다수의 농구인들로부터 역대 최고로 인정받는 마이클 조던 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한 시대를 완벽히 지배했던 선수는 조던 뿐이었으므로...[62]


6.1. 과대평가론에 대한 반박[편집]


2차 스탯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래리 버드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2차 스탯만으로 따지면 버드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한 '매직 존슨도 과대 평가'라는 말이 되는데, 정작 매직에 대해선 과대평가라는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또한 버드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2차 스탯만 보고 판단하는 '일부'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렇게 따지면 버드가 신인 시절부터 9년 연속 퍼스트팀에 올리고 3년 연속 MVP에 선정한 전문가들 및버드를 매직 존슨과 대등한 기량의 소유자로 인정하고 있는 동시대 NBA 내외의 농구인들 전부가 그에게 속아넘어간 바보들이란 얘기가 된다.

당장 "버드 과대 평가론"에 불씨를 피운 아이재아 토마스도 훗날 ESPN Sports Century 방송에서의 인터뷰에서 "만약 나와, 조던, 매직, 버드를 같은 방 안에 넣는다면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이는 래리 버드일 것이다"라며 그의 승부근성을 인정했고, 제임스 워디 역시 "나는 버드를 막느니 마이클 조던을 막겠다"라고 그의 실력을 인정했는데, 버드가 과대평가된 영웅이라면 동시대 라이벌들이 버드가 뭐가 이쁘다고 그를 이렇게 높이 말한단 말인가? 애초에 2차 스탯만 놓고 평가한다면 매직 존슨의 커리어 하이조차 트레이시 멕그레이디, 데이비드 로빈슨, 크리스 폴에 못 미친다. 또한 98년 MVP 마이클 조던 역시 대표적인 2차 스탯인 PER이 25 정도로, 해당 시즌의 샤킬 오닐,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보다 못 미친다. 2차 스탯만을 놓고 특정 선수가 과대 평가되었다고 친다면 놓고 따지면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 역시 과대평가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뛰어본 선수들은 절대 그가 과대평가가 된 선수가 아니라고들 평을 한다. 위에 언급된 데니스 로드맨도 그 점을 인정했고, 그 승부욕 강한 아이재아 토마스 역시 자기 자신을 항상 매직 존슨마이클 조던 그리고 래리 버드 아래에 두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플레이한 선수들은 다들 그를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뽑고 있다. 2차 스탯이나 비교적 짧았던 커리어 등에서 나오는 스택 누적 등으로 인해 과대 평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게임에서 보여준 임팩트와 실력은 단순히 "백인이라 과장되었다" 이상의 수준이다.

사실 버드를 직접 본 세대나 전문가들이야 당연히 그의 실력을 알지만, 과대 평가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그를 직접 못 본 세대들이다. 한국에서 특히 버드에 대한 과소 평가가 심했는데, 한국에서 NBA의 황금기는 90년대였고 이때 가장 인기팀이었던 불스의 스카티 피펜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높아서 그 이전 세대인 버드가 무시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예전의 이야기일 뿐이고, 현 시점에서 국내 여론은 굳이 버드에 대한 과소평가는 찾기 힘들고 오히려 피펜을 과소평가하는 여론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버드는 겉모습이나 신체스펙만 보면 도저히 농구를 잘할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스타일이기 때문에 직접 많은 경기를 보지 않으면 그의 실력을 짐작하기 힘들다. 또한 버드의 가장 무서운 점은 엄청나게 높은 농구에 대한 이해도와 여기서 나오는 감각적인 플레이인데, 이 점은 농구에 대해 많이 알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 특히 초심자들은 겉보기에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현혹되기 쉽다. 이 점은 미국에서 버드를 못 본 세대,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매직 존슨은 이를 두고 "많은 흑인 친구들이 저한테 '진짜 래리 버드가 그렇게 잘했어요?'라고 묻더군요"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매직의 대답은 "래리 버드는 너무 잘해서, 두려울 정도였어"였다. 매직 본인의 평 뿐만 아니라 대다수 농구인들의 버드에 대한 실력 평가는 매직과 정확히 동급이다.

그의 플레이오프 활약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1. 80시즌의 경우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줄리어스 어빙이 버티는 필라델피아 76ers를 상대로 패하였으나, 애시당초 당시 셀틱스는 전년도 하위권을 맴돌던 전력에 루키 버드가 들어오면서 파이널에 도전할만한 저력을 막 갖추게 된 시기였다.
2. 81시즌의 경우 파이널에서 득점 난조를 겪으며 임팩트의 차이로 Finals MVP를 동료에게 내주었지만, 우승을 해냈고 그 과정에서의 공헌도는 팀내 1인자였다.
3. 식서스에게 설욕을 당한 82시즌의 경우 득점볼륨이 18.3점으로 비교적 낮아보일 수 있으나, 그 외 나머지에선 14.1리바운드 7.3어시스트 1.9스틸 1.1블럭으로 상당한 스탯을 기록했다. 리바운드는 양팀 통틀어 최다이고 어시스트에선 식서스의 모리스 칙스[63]만이 8.9개로 앞섰을 뿐이다. 상대 에이스 어빙은 19점으로 버드와 별 차이가 없었다.
3. 83년 플레이오프에서 벅스에게 스윕당한 버드의 부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때 버드는 몸이 아파서 2차전에 결장할 정도로 컨디션이 개판이었다. 그리고 이 때 기록은 18.7점 11.7리바운드 6어시스트 3.7스틸이었다.
4. 84시즌과 86시즌은 엄청난 캐리로 우승, 우승에 실패한 85시즌과 87시즌 각 엘리미네이션 시리즈에서 23득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87시즌의 24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 활약으로 제몫을 해냈다.
5. 88시즌 동부 파이널에서는 확실히 득점에서는 19.8점 35.1%로 부진했다. 그러나 리바운드 12.2개 어시스트 6.2개 스틸 2.7개 블럭 1.8개로 다른 부분에서 맹활약했다. 버드의 앞선 활약들을 기준으로 둔다면 저 야투율 만으로도 아쉬운 활약으로 평할 수는 있으나, 나머지 스탯들을 보더라도 무기력한 패배와는 하등 거리가 멀다.

이후 88-89시즌에 시즌아웃을 겪으며 이미 쌓을건 다 쌓아둔 커리어가 내리막을 걸었고, 특히 마지막 91-92시즌은 더이상 농구를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플레이오프에 나와 예전같지 않은 몸으로 클라스를 보여준 경기들이 많으니 커리어 후반부는 비판의 소지가 되긴 어렵다.

이렇듯 버드는 커리어 전반적으로 제몫을 해냈고, 득점이 부진하면 항상 리바운드나 어시스트, 수비로 팀에 공헌했다.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득점이 좀 못하다 싶으면 팀내 1위, 혹은 양팀 통틀어 1위일 정도로 리바운드 수치가 높은 걸 볼 수 있다. 슛이 안 들어간다 싶으면 전투적으로 골밑에 들어가 싸우는 선수였단 소리. 실제로 버드의 장점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그 놀라운 투지다.

결정적인 것은 셀틱스는 버드의 합류와 함께 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가 되었고, 이후 버드의 쇠락과 함께 몰락했다는 점이다. 1979-80 시즌 당시 셀틱스에는 버드 외에 별로 굵직한 선수가 합류하지 않았다. 78년 오프시즌에 한 때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동시에 했던 레전드 네이트 "타이니" 아치볼드를 영입했지만 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나있었고 셀틱스는 29승에 그쳐 리그 전체 꼴찌에서 두번째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루키 버드의 합류로 한 시즌만에 61승을 거두어 NBA 전체 1위팀이 되는데, 이는 1997-98 시즌 스퍼스, 2007-08 시즌 셀틱스에 이어 전 시즌 대비 승수가 세번째로 높은 수치이다.[64] 그리고 루키 케빈 맥헤일과 베테랑 로버트 패리시가 합류한 다음 시즌에는 NBA 챔피언을 따냈다. 즉, 원래 디비전 최하위팀을 일개 루키가 NBA 전체 1위 성적을 내는 팀으로 만들고, 다소의 전력 보강을 더한 그 다음 해에는 곧바르 챔피언 타이틀까지 따냈으며, 파트너들이 성장한 이후에는 역사에 남을 강팀이 되었다는 것이다.[65]

또한 보스턴 셀틱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버드가 전성기 실력을 유지하던 88시즌까지 셀틱스는 이 해 동부 챔피언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아깝게 패하고 57승을 할 정도로 강팀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 그가 부상으로 아웃되자 바로 42승으로 추락하고 1라운드 탈락했다. 물론 맥헤일의 부상도 결정적인 요인이었지만, 둘의 실력차와 팀내 비중차이를 생각하면 버드의 공백이 가장 치명적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당장 그가 은퇴직전이고 전성기 기량에 비해 훨씬 떨어진 91시즌만 해도 버드가 뛰는 동안엔 46승 14패로 76% 승률, 나머지 기간엔 10승 12패로 4할대에 그쳤다 .

결국 버드는 그의 존재만으로 팀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는 선수였다. 정리하자면 버드가 과대 평가되었다는 논란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일부 팬들 사이에서나 나오는 말, 혹은 현역 시절에 그의 라이벌들이 제기했다가 나중에 허세였다는 걸 인정한 정도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득점-리바-어시부터 스틸, 특정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선 블락가지 쏠쏠하게 찍어내는 등 여러 부문에서 장점을 발휘했고, GmSc로 봤을 때 버드는 플레이으프에서 역대급 캐리로 팀을 우승시킨적이 2번이나 있는 선수다. 84는 24.4, 86은 24.6으로 각각 9, 10위이며, 지금과 같은 초 다득점 양상이 아니었던 환경에서 이는 매우 대단한 수치이다.

  • 19-20 기준 컨퍼런스 파이널 이상 진출자들의 플레이오프 GmSc 순위
1위 90 조던 29.1 (컨파)
2위 18 르브론 28.3 (준우승)
3위 17 르브론 28.2 (준우승)
4위 89 조던 27.8 (컨파)
5위 91 조던 27.4 (우승)
6위 93 조던 26.2 (우승)
7위 92 조던 25.1 (우승)
8위 00 오닐 25.0 (우승)
9위 86 버드 24.6 (우승)
10위 84 버드 24.4 (우승)


6.2. 논란의 1981 Finals MVP 미수상[편집]


버드가 해낸 세번의 우승 중 첫번째인 1981 파이널의 경우, 버드가 정규시즌 MVP 2순위에 퍼스트팀을 수상하며 팀의 명백한 1옵션으로서 팀을 결승 무대까지 견인했다. 그러나 정작 파이널에서 버드가 아닌 팀 동료 세드릭 맥스웰이 파이널 MVP를 수상하며 적잖은 논란이 되었다.

이 점이 논란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맥스웰이 당시 팀내 최다인 17.7점을 올리긴 했지만 나머지 스탯에서 '9.5 리바운드, 2.8 어시스트 0.2 스틸 1 블락 vs 15.3 리바운드 7 어시스트 2.3스틸 0.5블락'으로 버드에게 크게 밀렸다는 것, 그리고 그가 올스타 경력도 없는 평범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2015 NBA 파이널에서 우승팀인 골든스테이트의 에이스 스테판 커리가 동료인 안드레 이궈달라에게 밀려 파이널 MVP 표를 단 한표도 얻지 못한 것 만큼이나[66] 당시에는 논란이 되었다. 당시 셀틱스의 빌 피치 감독은 버드가 시즌 MVP를 줄리어스 어빙에게 밀려 2위에 그치고 파이널 MVP를 맥스웰에 내준 것에 대해 불평을 하며 "둘 다 버드가 탔어야 했다"라고 한 적이 있다. 다른 팀 선수인 어빙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자기 팀 선수인 맥스웰을 사실상 디스하면서 버드가 받았어야 한다고 한 걸로 봐서 그가 진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물론 맥스웰이 못한 것은 아니다. 버드가 15.3점/야투율 41.9%(46TS%)에 그치며 공격에서 부진한 것과 달리 맥스웰은 팀내 1위인 17.7의 득점을 야투율 56.8%/66 TS%으로 해내며 어마어마한 고효율을 보여주었다. 당시 리그 평균 TS%는 리그 0.534%였기에 버드는 15.3점 밖에 올리지 못하고 야투율도 리그 평균에 못 미친 버드는 공격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집중 견제를 받는 에이스에게 평균치를 그대로 대입하긴 어려우나 그걸 감안해도 명백히 아쉬운 효율. 볼륨을 보더라도 효율의 하자를 납득할만한 어마어마한 득점량이 아닌 겨우 15점대의, 한 팀의 슈퍼 1옵션이라기엔 매우 어정쩡한 득점량에 그친 것도 사실이다.[67] 초창기 버드는 초고득점을 마구 올리는 '슈퍼에이스' 타입이 아니었다곤 하나[68], '그걸 감안하더라도' 루키 시즌부터 준수한 효율로 평득 20점을 넘긴 선수가 바로 버드였다. 그러한 에이스가 특정 시리즈에서 TS%가 4할대로 내려앉으며 볼륨이 15점 정도에 그쳤다면 이는 득점면에서의 명백한 부진이 맞다. 이 점 때문인지 당시 파이널 MVP 투표는 6 vs 1로 맥스웰에게 몰렸다.

물론 득점 외 나머지 부문들을 고려하면 버드를 맥스웰 아래에 두긴 힘들다. 단적인 예시로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야투율/자유투성공률/공격/수비리바운드/스틸/블럭/파울/턴오버까지 전체적인 스탯을 전부 계산한 Gamescore로 보면 파이널 당시 버드의 평균 게임스코어는 15.9, 맥스웰은 14.76으로 버드가 근소하게나마 앞선다

위에서 지적된대로 버드의 득점스탯만 보면 저효율 저볼륨이 맞다. 실제로 Gamescore의 경우 맥스웰의 스탯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 버드의 야투율과 자유투성공률/득점을 넣는다면 10.3의 낮은 수치가 나올 정도로 버드는 공격에서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버드는 득점에서 한껏 깎아먹은 수치를 나머지 항목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함으로서 만회했고, 맥스웰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리 말해두자면 Ts%는 분류상으로만 2차 스탯일 뿐 실질적으로는 1차 스탯, 즉 FG%와 eFG% 등의 사실상의 대체 스탯이니 당연히 우선 언급 된 것이다. 득점스탯 뿐 아니라 모든 스탯을 대입해 계산하는 Gamescore의 경우[69] 버드가 맥스웰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70]

추가로 당시 래리 버드는 리바운드와 골밑 가담률이 높은 선수였다. 버드는 고등학교 시절 센터 포지션에서 평균 31점 21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대학시절 통산 30.3점 13.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공격시에는 슛거리가 길고 다재다능한 버드가 골밑과 내외곽을 오가며 플레이하고 인사이더에 가까웠던 맥스웰이 골밑에서 뛰었지만, 상당한 장신인데다 터프했던 버드는 카림 압둘자바같은 센터와 매치업되기도 했다.[71]

즉, 버드는 당시 공격에서 스몰포워드 역할을 했지만 수비에서는 키가 작은 맥스웰을 대신해 파워포워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81년 파이널 당시 휴스턴은 센터 두명을 세운 트윈타워를 돌렸는데 휴스턴의 211cm 센터 빌리 폴츠와 매치업된게 바로 버드였고, 버드는 폴츠와 모제스 말론을 번갈아가며 막으면서 보스턴의 골밑을 지켰다. 그가 1,2차전 연속으로 21리바운드씩을 기록하고 매경기 두자리수 리바운드(최소 12개)를 잡아내며 평균 15.3개란 높은 리바운드 수치를 기록한게 바로 이 때문이다. 파이널 당시 그는 단순한 득점원이 아니라 셀틱스에서 가장 믿음직한 골밑요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버드가 수비리바운드를 단단히 지키고(시리즈 평균 12.7개), 맥스웰이 저돌적으로 공격리바운드를 잡아내며(5.7개) 보스턴이 골밑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다. 또한 팀에서 가장 시야가 넓고 패스가 좋은 버드가 수비 리바운더로 가담한 덕분에 그가 수비 리바운드를 잡고 즉시 아웃렛 패스를 연결하면 셀틱스의 속공으로 바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스몰포워드 위치에서 수비하다가 속공에 가담했던 맥스웰에게 많은 오픈 찬스가 날 수 있었다.

1981년 파이널의 전개를 보면[72], 1,2차전에서 팀의 득점리더였던 버드는 3차전에서 슛이 안 들어가자 패스에 집중하며 1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시야와 패스가 뛰어난 버드와 타이니 아치볼드를 필두로 보스턴이 패싱게임을 하며 전반적으로 고른 활약을 한 보스턴 선수들 중 맥스웰이 19점을 기록했다.[73] 4차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버드는 12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보다 다른 분야에서 조력자 역할을 했으며 맥스웰이 24점을 올렸고, 5차전에서 버드는 12점 12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동안 맥스웰이 28점 15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6차전에서 버드는 27점 13리바운드 5어시스트(야투율 55%)로 제 모습을 찾았고, 맥스웰은 19점(야투율 63.6%)를 올렸다.

즉, 맥스웰은 3~5차전에서의 맹활약이 매우 컸다. 반면 버드의 경우 해당 세 경기에서 그는 13.3리바운드 8.3어시스트를 올리며 보스턴의 메인 리바운더&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으며, 실제로 셀틱스는 이를 기반으로 모든 팀원이 고르게 활약할 수 있었다. 그 중 슛감이 좋았고 저돌적으로 골밑에서 득점했던 맥스웰이 가장 높은 야투율과 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문제는 해당 구간에 버드 본인의 득점이 8-8-12에 그친 것. 아무리 본인이 팀에 대한 조력을 자처했고 팀 차원에서 고른 득점을 해냈다곤 하나 에이스로썬 너무나도 저조한 볼륨이었고, 맥스웰은 '에이스의 공격 적극성과 슛감이 내려앉은', 그리고 전력상으로는 스윕이어도 이상할게 없던 시리즈의 첫단추가 1-1로 맞춰진 상황에서 이어진 3~5차전에 적어도 득점만큼은 버드와 완전히 반대되는 활약을 펼친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득점에 대한 얘기일 뿐, 애시당초 수비, 리바운드, 패스 등 농구선수가 코트에서 행하는 역할군을 종합적으로 보면 버드가 81년 파이널에서 팀 내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1) 맥스웰의 공헌도 역시 만만치 않았고, (2) 시리즈 전적 1-1이라는 시점에서 버드의 득점 부진이 시작된 반면, (3) 해당 구간(3~5차전)에서 맥스웰이 버드와 정반대의 득점력으로 터져주며 대비를 이루면서 투표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파이널 MVP 투표의 경향을 보면 에이스의 활약처럼 '상수에 가까운 요소'보다 변수에 가까운 'X팩터'가 플러스 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클 조던이 의심의 여지 없이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데니스 로드맨이 무려 세 표나 받은 96 파이널, 팀 던컨을 두고 마누 지노빌리의 파엠설이 나왔고 실제로도 정말 탈 뻔 했던 05 파이널, 팀의 no.1 핵심 플레이어는 역시나 던컨이었지만 당시 올스타급으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은 토니 파커가 공격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파엠을 거머쥔 07 파이널[74], 에이스는 이견의 여지 없는 스테판 커리였으나 르브론을 견제하고 득점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준 안드레 이궈달라가 파엠을 수상한 15 파이널 등.. 그렇다면 81 파이널의 투표 결과는 왜 맥스웰로 나왔느냐, 이는 88년 파이널 당시 워디가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근소 우위 말고 거의 모든 스탯에서 매직에게 밀렸는데도 파이널 MVP를 타간 이유와 같다. 수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단, 애시당초 투표자들이 임팩트에 높은 가산점을 주는 수상이라는 것.[75]

Finals MVP 자체가 임팩트 수상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파엠의 시작은 미친 활약을 펼쳤음에도 준우승에 그친 제리 웨스트의 임팩트를 칭송하기 위함이었고, 설계 자체가 이러하니 임팩트의 가중치가 공헌도의 가중치를 넘어서는 사례가 일어날 수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수상이라는 것. 다시 언급하자면 버드의 종합적인 공헌도가 맥스웰보다 못하다는게 아니라, 수상의 주요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임팩트에 있어선 맥스웰이 상당히 경쟁력있는 활약을 펼친 만큼, 그저 버드의 트로피를 맥스웰이 훔쳐갔다고만 표현하기엔 꽤나 복잡한 문제.

맥스웰이 득점효율 면에서 버드를 생각외로 크게 앞섰다는 것, 버드는 버드대로 전체적인 활약 자체는 더 우월했다는 것, 이 두가지를 모두 알아둔다면 '버드의 공헌도는 1옵션의 그것이었지만 맥스웰이 투표자들을 사로잡을만한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깔끔하다.

실제로 SB nation의 셀틱스 커뮤니티에선 '어떻게 버드가 1981년 플레이오프와 1981/82년 정규시즌 MVP를 도둑받았는가'란 글이 올라오기도 했으며, 오래 전 일이어서 언급이 잘 되지 않을 뿐 현지 팬들 사이에선 당시부터 현재도 종종 '왜 버드가 81년 MVP를 타지 못했는가'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그만큼 많은 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여러 논의가 오갔던 수상 결과인 것이다.


7. VS 매직 존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매직 존슨 vs 래리 버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편집]


  • 위에 서술했듯 매직 존슨과의 라이벌 관계가 아주 유명하다. 실제로 매직과 버드가 NBA에 입단하기 전, 결승전이 녹화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바닥을 기던 NBA는 둘이 경쟁 구도를 형성하자 다시 뜨거운 인기를 누리게 된다. 서로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여 매직은 "1년 스케줄 표를 받으면 먼저 셀틱스전 2경기만 크게 표시했다. 나에게는 1년이 2경기의 셀틱스전과 나머지 80경기였다."고 말했고, 버드는 한술 더떠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매직의 기록부터 확인했다."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지만 버드의 은퇴식에서 매직은 레이커스 츄리닝 안에 셀틱스 유니폼을 받쳐입고 등장해 그의 새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승부욕은 둘 다 뛰어났지만 인간으로서는 서로 좋아하고 존중한 그런 관계.[76]

  • 90년대 시카고 불스가 잘 나가고 있을 때 한국 NBA 팬들은 피펜을 최고의 SF로 생각했으며 버드는 듣보잡(...)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데니스 로드맨은 "버드는 백인이라서 스타 대접 받는 거다"는 투로 말해서 80년대 NBA를 모르는 팬들은 그렇게 여기기도 했었다. 물론 로드맨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버드가 당시 백인선수들의 구세주로까지 여겨진 것에는 70년대를 거쳐 80년대로 오면서 NBA에 스타급 백인 농구선수들이 거의다 사라졌던 게 어느정도 원인이 되기는 했다.[80] 그럼에도 백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스타로 만드는게 가능했으면 굳이 그 대상이 버드가 아니더라도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기록을 보자. 거의 평균 30점을 넣으면서 180클럽, 거기다가 리바운드 10개에 어시스트도 5개씩 하는 괴랄한 기록은 조던이나 매직도 못했던 것이다. 버드가 백인이라 스타 대접받는 거였으면 저런 무지막지한 경기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리하자면 버드가 백인이었지만 그만큼 엄청난 실력을 갖춘 선수였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로드맨은 훗날 본인의 자서전에서 버드가 위대한 선수였다고 칭찬하며 자신의 버드 폄하 발언은 그를 이기기 위해 일부러 했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 당시 사태에 대해 설명하자면, 87년 플레이오프에서 접전끝에 셀틱스에 피스톤즈가 패배한 직후 로드맨은 라커룸에서 기자들에게 "버드는 매우 과대평가되었다. 그가 백인이기 때문에 3연속 MVP를 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아이재아 토마스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에 동의한다면서 "버드는 매우 뛰어난 농구선수지만, 만약 그가 흑인이었으면 리그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 그냥 잘하는 선수 정도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하면서 불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사실 로드맨이 한 말이었으면, 듣보잡 루키가 한 철없는 소리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슈퍼스타 토마스가 이에 한 술 더 뜨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이후 언론의 포격 대상이 된 건 로드맨이 아니라 토마스였다. 토마스는 이후 이에 "농담이었다"며 수습을 시도했으며, 로드맨 역시 "패배 직후 감정적이 되어서 한 말"이라며 버드에게 사과했다. 정작 버드는 사건 직후,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극적으로 패한 경기 이후엔 그럴 수도 있다고 쿨하게 넘겼다. 버드는 이후에도 이에 대해 별 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버드가 이런 숱한 폄훼 발언에 시달렸음에도 별 대응을 한 적이 없다는 점, 버드의 위상이나 실력이 로드맨은 물론 토마스보다도 훨씬 위로 인정받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신경 안 썼을 가능성이 높다. #[77] 사실 로드맨이 그런 발언을 한 것도 운동 실력으로 거의 모든 에이스들을 꽉꽉 틀어막았던 로드맨이 그정도로 농락당한 적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78][79]

  • 86년 시카고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마이클 조던에게 63점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기에서는 승리하는 등, 버드가 이끌던 셀틱스는 초창기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가로막던 큰 장벽이었다. 물론 이 경기에서 조던의 퍼포먼스는 역대 플레이오프 최고의 퍼포먼스를 꼽을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고, 버드 역시 이 경기가 끝난 후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변장한 것 같다(I think it's God disguised as Michael Jordan)."라고 말할 정도로 극찬했다.[81] 이 버드의 발언은 순수하게 조던의 엄청난 기량에 감탄하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또한 이 당시 버드는 조던의 활약에 대해 얘기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82]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던게 80년대 셀틱스(특히 86년 팀)는 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라인업이었으니 초창기 조던의 원맨팀에 가까웠던 불스가 힘겨워했던 것도 당연하다. 참고로 이때 불스는 조던이 시즌 초에 큰 부상을 당해 무려 64경기나 결장, 게다가 복귀 이후에도 한동안 출장시간이 제한되어 고작 7경기에서만 주전으로 출전하는 바람에 고작 30승 52패에 그쳤다. 이게 얼마나 처참한 성적이냐면 당시 동부 7위 네츠보다 9승, 서부 8위인 스퍼스보다 5승이나 낮았고 서부 꼴찌인 워리어스와 동률이었다. 23개팀 중 16팀이나 플레이오프에 나갈 정도로 널널한 기준이 아니었다면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꿀 성적. 당시 기준으로 역대 2위였던 67승의 무적군단이었던 셀틱스와 붙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무자비한 미스매치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 때 셀틱스는 홈에서 40승 1패를 기록했는데 이 성적은 지금까지 역대 최고 기록이다. [83] 근데 이 철옹성 같은 셀틱스의 홈 보스턴 가든을 30승이나 거둔 한심한 전력의 팀이 2차 연장까지 몰고 가며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 당시 보스턴은 팀 전체가 화려한 개인기보다는 팀워크와 몸을 던지는 허슬플레이를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만큼 팀원들 대부분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터프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만큼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 팀은 아니었지만 거친 몸싸움을 많이 했고 싸움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주전 슈팅가드 대니 에인지는 다혈질로 유명했으며 (팀을 옮긴 후의 일이지만) 조던과도 한판 붙은 적이 있고, 로버트 패리쉬는 역대 최고의 더티플레이어 빌 레임비어와 거의 일상적으로 맞붙었으며 케빈 멕헤일은 1984년 파이널 당시 LA레이커스의 커트 램비스에게 프로레슬링 기술을 연상케 하는 하드파울을 한 적이 있다.[84] 물론 리더인 버드도 카림 압둘자바와 몸싸움을 하다가 싸움이 날 뻔하거나, 신경전을 벌이던 레이커스의 마이클 쿠퍼를 인바운드 패스하면서 짜증스럽게 엉덩이로 밀어 넘어뜨리거나, 레이업 과정에서 위에 언급된 레임비어가 자기를 깔아뭉개자 머리를 때리면서 난투극을 시작한 적도 있다. 또한 레임비어가 악명이 높았던 게 상대 선수가 공중에 떠있을때 그 밑에 발을 슬쩍 집어넣는건데[85], 버드가 하도 당하는게 짜증나서 딱 한번 레임비어에게 역으로 이걸 시전했더니 다시는 자기한테 이 짓을 안 하더라고...

  • 여담이지만 86셀틱스는 플옵에서 홈 전승을 거두며 시즌을 통틀어 홈에서 단 한번 졌다. 당연히 역대 최고 기록이며 2위는 정규시즌 홈에서 2패했으며 마찬가지로 플옵에선 홈 전승이었던 96시카고 불스. [86]참고로 이 시즌의 유일한 홈 패배는 의외로 최대 라이벌인 레이커스도, 레이커스를 업셋하며 결승에 올라온 휴스턴 로키츠도, 셀틱스를 집요하게 괴롭힌 잊혀진 80년대의 강호 밀워키 벅스도, 예전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력했던 필라델피아도 아닌, 40승 42패에 그쳤으며 1라운드 광탈하게 되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게 당했다. (https://www.basketball-reference.com/boxscores/198512060BOS.html) 이때 스탯을 보면 주전라인업에선 래리버드가 슛난조에 시달리며 (20점, 필드골성공률 34.6%) 부진했지만 전체적으로 주전싸움에선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였는데, 보스턴 벤치는 총합 25점을 합작하는데 그친반면 포틀랜드 벤치에선 스티브 콜터가 22점, 제롬 커시는 7할대의 성공률로 역시 22점을 올리는 등 총 53점을 올리는 바람에 벤치싸움에서 완패해 18점차로 패했다는 걸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버드의 셀틱스는 당시까지만 해도 원맨팀이었던 불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여러번 탈락시킨 전적이 있다.[87]

  • 애틀란타와 붙은 88년 컨퍼런스 파이널 시리즈 6번째 게임에 관해 훗날 윌킨스가 토크쇼인 "Open Court"에서 밝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날 래리버드의 총 득점은 34점으로 3쿼터까지는 14점으로 래리 버드 답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윌킨스는 "순조롭게 진행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동료 케빈 윌리스가 래리 버드를 가리키며 "이 XX가 더 이상 득점 못하게 해"라고 조롱하는 것을 목격했다. 윌킨스는 그 동료를 보면서 "어...너 지금 무슨짓이냐?(Uh....What are you doing??)" 라고 했는데, 그때 래리 버드가 상당히 열 받은 걸 느끼고 "아 망했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슈퍼스타들은 자극하면 안된다는 걸 보여준다. 링크 결국 버드는 4쿼터 동안 20득점을 기록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윌킨스의 기억에 따르면 그 중 하나는 왼손으로 쏜 3점슛이었다고...[88]

  • 조던을 수차례 좌절시킨 아이재아 토마스 역시 버드 때문에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1987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에서, 경기종료까지 5초를 남기고 107 - 106으로 디트로이트가 앞서있던 상황에서 토마스가 던진 패스를 버드가 그대로 스틸, 공을 받은 데니스 존슨이 레이업으로 역전에 성공하면서 토마스와 피스톤즈는 쓰라린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89] 그리고 하킴 올라주원도 버드에게 당한 적이 있다. 랄프 샘슨과 트윈타워를 이루던 시절, 플레이오프에서 버드는 올라주원의 블럭을 피해 3점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적이 있다. 결국 휴스턴은 패배. 이 때 일이 한이 되었는지 올라주원은 몇 년 후 뉴욕과의 결승 6차전 종료 직전 비슷한 상황에서 존 스탁스의 3점을 블럭해 버린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푼 격..

  • 노력과 정신력의 화신으로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미국산" 자기 개발서들을 보면 버드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 버드는 악력과 손목힘이 좋은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성장환경과도 관련있다. ESPN Sports Century에서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깡촌인 프렌치 릭에서 자란 버드는 놀게 없어서 하루종일 슛만 던졌다고 한다. 또한 인디애나는 전통적으로 농구를 즐기는 주기 때문이 이 시기에 인디애나 출신 선수들 중엔 기본기가 뛰어난 백인 선수들이 꽤 있다. 대부분 운동능력의 한계로 대성하지 못했지만 [90] 손목힘의 경우 당시 버드 일가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소위 말해 white trash라고 불리는 집안이었다. 그러다보니 버드도 어렸을때부터 여러 종류의 일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장작패기.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손아귀 및 손목힘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버드의 악력과 손목힘은 NBA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으로, 버드가 잘하는 플레이 중 한 손으로 공을 잡고 세게 패스를 하는 척하다가 빼서 드리블/슛/다른 방향으로 패스가 있는데 이 역시 악력이 강해야 가능한 플레이다. 아무리 손이 커도 살짝 잡으면 놓칠수 있는데 버드는 악력이 워낙 세다보니 절대 볼을 흘리는 일이 없었다.

  • 앞서 나온대로 성격도 장난아니게 괄괄한 탓에 줄리어스 어빙과 코트에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는데, 어빙과의 난투극 당시에는 줄리어스 어빙의 팀 동료가 뒤에서 래리 버드가 못 움직이게 껴안는 바람에 날린 주먹보다 맞은 주먹이 더 많다. 당시 어빙의 팀 동료는 다름 아닌 루키였던 찰스 바클리. 그가 말하길 보통 싸움이 나면 누군지 볼 거 없이 주변 선수를 말리기 위해 일단 붙잡고 보는데 그게 하필 버드였고, 그 틈 사이 래리 버드가 흠씬 맞았다고 한다.(...)[91] 나름대로 좋은 의도였는데 출장정지에 벌금까지 물어서 억울했다고.

  • 이 선수 때문에 NBA 연봉 체계가 엄청 복잡해졌다. 지금 NBA 연봉에 대해 쓸려면 A4용지로 50페이지는 넘게 써야 된다.(...) 자세한 건 샐러리 캡 항목 참조. 사실 NBA의 샐러리 캡은 소프트 캡이라 (소비 한도 이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여러 예외규정이 있어 원래 복잡하다. 근데 래리 버드의 경우, 재계약 할 시점에서 셀틱스가 이미 샐러리캡을 전부 소진한 상태라,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강제로 이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클레임을 걸어서 예외조약을 신설하게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복잡한 연봉 체계가 더 복잡해지게 한 것. "래리버드 예외조항"이라고 불리는 이 조항은 한 팀에서 3년 이상 뛴 선수는 원소속팀이 샐러리캡을 이미 넘긴 상태라도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래리버드 규정의 첫 적용자가 버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버드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기 1년전인 1983년에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협상 당시 이 규정이 결정되었는데, 당시 NBA는 1983-84 시즌에 각 팀이 쓴 돈에 따라 새로운 샐러리캡을 정하기로 했다. 이를 이용해 셀틱스는 1983년 오프시즌에 버드에게 당시론 어마어마한 액수였던 7년 1천2백6십만달러를 질러버린다. 이 덕분에 셀틱스는 버드가 자유계약선수로 풀릴 걱정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작 셀틱스에서 "래리버드 예외규정"을 처음 쓴 선수는 그의 동료 세드릭 맥스웰[92]

  • 웨슬리 스나이프스, 우디 해럴슨 주연의 농구 코미디 영화 덩크 슛(원제: White Men Can't Jump)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단 본 영화에 나오는 백인 & 흑인 콤비는 그냥 길거리 농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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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수능특강 영어영역에 그와 관련된 지문이 나오기도 했다.
[1] NBA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투리를 쓰는 인물 중 하나이다. 중부지역과 남부지역 출신 백인들은 twang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말투가 두드러지는데, 도시 출신들은 말투가 훨씬 덜하다. 그래서 깡촌 출신 백인인 버드만큼 사투리가 심한 사람은 미국에서도 흔히 만나기 힘들다. 흑인 중에서 남부 사투리가 제법 강한 선수는 칼 말론 정도.[2] 똑같이 6피트 9인치로 표기되는 매직 존슨보다 명백히 크다. 그 당시만 해도 NBA 드래프트 직전 신체검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았다. 버드가 표기신장 6피트 9인치 ~ 6피트 10인치를 오가는 빌 러셀과 키가 비슷했고, 208cm로 표기되던 케빈 맥헤일과도 키자이가 그다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직의 키는 착화 신장, 버드는 맨발 신장일 가능성이 크다. 즉 버드는 착화 기준이라면 208cm까지도 표기가 가능했다는 것.[3] 후술되는대로 버드의 고향은 인구가 2천명도 되지 않는 깡촌이었는데, 전국구 선수인 버드가 경기를 할때면 주변 도시로부터 팬들이 몰려들어 경기장에는 마을 인구 전체보다 많은 관중들이 모였다고 한다.[4] 그의 고향인 프렌치 릭은 2010년 기준으로도 인구가 1,807명에 불과한 깡촌 오브 깡촌이었다. 그런데 그가 입학했던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는 교직원 수만 2천명이 넘으며, 학생수는 학부 대학원 합쳐서 현재 5만명에 가깝다. (물론 이는 2010년대 수치였지만 70년대 당시에도 수만명에 달했다) 자기 고향 전체보다 10배가 넘는 학생수가 있는 학교에 다녀야했던 것.[5] 이 때 그를 특히 괴롭혔던 켄트 벤슨은 NBA에서 버드를 다시 만나 처절하게 복수를 당했다고 한다. ESPN Sports Century에 따르면 당시 버드의 룸메이트 옷장에는 좋은 옷이 가득했는데, 버드 옷장에는 셔츠와 청바지 한벌 씩 뿐이었다고 한다.[6]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는 상위권 주립대 중 하나이고, 인디애나 주립대학교는 인디애나 대학교와는 전혀 별개의, 그저 이름만 비슷한 하위권 주립대학교로, 약칭도 다르다. IU는 팀명이 '후지어스'고, ISU는 '시카모어스'이며 소속 컨퍼런스까지 다르다.[7] 그는 1962년부터 10년간 뉴멕시코 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지내며 훗날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스타가 될 멜 다니엘스를 배출했다.[8] 당시 팀 주전 중에 훗날 댈러스 매버릭스 주전이 되는 마크 어과이어가 있었다.[9] 당시 인디애나 주립대에는 버드 외엔 탁월한 선수가 없었고, 미시건 주립대는 버드가 공을 잡자마자 노골적으로 더블팀을 했다. 버드는 비록 13리바운드 5스틸을 기록하긴 했지만 스파르탄즈의 끈질긴 수비에 슛 21개 중 7개만을 성공시키며 19점에 그쳤고 (매직은 24점), 주득점원이 봉쇄된 인디애나 주립대는 75-64로 패배하고 만다.[10] 참고로 NBA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을 안 했더라고 해도 일정 자격을 갖는 선수들은 자동으로 드래프트 대상이 되어 선수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지명될 수 있다. 그 자격요건은 (미국인 선수의 경우) 1. 4년간 대학에서 뛰었을 것. 2.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국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고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났을 것. 3. NBA 외의 프로리그 팀과 계약을 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외국인 선수의 경우) 4. 드래프트가 열리는 해 기준으로 만 22세 이상일 것 (즉, 드래프트가 2015년 6월 25일에 열린다면,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만 22세가 되는 1993년 12월 31일생까지 자동 참가대상이 되는 것이다) 5. NBA 외의 미국 리그의 프로팀과 계약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당연하지만 뽑혔다고 해서 강제로 NBA에 끌려와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수가 훗날 NBA에서 뛰기로 마음을 먹었을 경우에는, 그를 지명한 팀이 그를 트레이드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이 팀과 계약을 해야 한다. 추가로 NBA 구단 입장에서는 "데뷔 안한 선수에 대한 권한" 역시 자산으로 취급되어 트레이드할 수 있다.[11] 이때부터 버드는 부상으로 6경기 밖에 못나온 1989년을 제외한 커리어 12년 내내 올스타에 선발된다.[12] 사실 이때 매직과 버드의 위상은 좀 차이가 있었다. 버드는 리그 베스트5에 해당하는 All-NBA 1st 팀에 오르고 MVP 투표 4위에 올랐지만, 매직은 올스타에만 선발되었을 뿐 All-NBA 2nd 팀에도 못 올랐다. 매직과 버드는 80년대를 양분한 라이벌이지만 굳이 기량이나 리그 내 위상으로 비교하자면 버드가 3연속 MVP를 차지한 86시즌까지는 버드의 우세, 이후부터는 매직의 우세라고 볼 수 있다.[13] 참고로 이 과정이 결과적으로 보면 어이가 없는데, 당시 셀틱스는 자기가 가진 1픽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하면서 "당신들이 가진 평범한 센터인 패리시와 3번 픽을 달라"고 한다. 당시 패리시는 부상 경력 때문에 오래 못 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워리어스에서 뛰는 동안 별다른 임팩트도 없었다. 물론 결과는 패리시와 맥헤일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반면 (심지어 패리시는 20년 넘게 뛰었다!) 워리어스가 1픽으로 뽑은 조 베리 캐롤은 꼴랑 1회 올스타에 그친다.[14] 현대 농구에서 스몰포워드의 역할을 생각하면 묘하게 보일 수 있는 스탯이지만 당시 버드는 수비에선 종종 빅맨들과 매치업되기도 했으며 리바운드 가담율이 높은 선수였다. 이 시리즈에서도 공격에선 골밑공략도가 높은 맥스웰이 파워포워드/ 버드가 스몰포워드의 역할을 하면서 반대로 수비에선 버드가 파워포워드 역할을 하며 빅맨들을 막았다. 그런데 슛감이 안 좋은 버드가 3~5차전부터 슛을 자제했기에 저런 스탯이 나온 것이다. 당시 휴스턴은 원래 센터인 빌리 폴츠를 모제스 말론과 함께 출장시키는 트윈타워 라인업을 썼는데, 버드는 폴츠의 주 매치업이었고 가끔 말론을 막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논란의 1981년 파이널 MVP' 참고.[15] 셀틱스의 영구결번 중 한명이다.[16] 레이커스가 셀틱스를 파이널에서 꺾은 건 이때가 사상 처음이었다.[17] 루키 시즌과는 달리 이때 셀틱스에는 명예의 전당급 파워 포워드 - 센터 라인인 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시, 역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데니스 존슨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이때 셀틱스는 72승을 차지한 96시즌 불스, 87시즌 레이커스, 33연승을 차지한 72시즌 레이커스 등과 함께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힌다.[18] 여담이지만 버드는 81~83년까지 3년 연속으로 MVP 2위에 올랐다.콩라인?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정말 어쩌면 6연속 MVP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 MVP 행진이 끊긴 87, 88시즌에도 괴물스탯을 찍은 걸 보면 부상당하기 전의 버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수 있다. 스탯만 보면 88시즌이 사실상 커리어하이인데, 이때는 무서운 신예 마이클 조던이 괴물같은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때라 MVP를 뺏긴다. 참고로 NBA 역사상 3년 연속으로 MVP를 수상한 선수는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래리 버드 뿐이다.[19] 맥헤일은 당시 생애 최초로 All-NBA 1st 팀에 오르는 등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우승할 적기라는 생각에 "선수 생활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사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억지로 뛴 것이었다. 결국 맥헤일은 이후 이때 기량을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20] 당시 버드에게 릭 마혼이 붙었는데 (아직 로드맨은 2년차 애송이여서 베테랑 마혼이 붙은 것), 버드가 그를 제치고 레이업을 하려던 찰나에 아이재아 토마스, 데니스 로드맨까지 셋이 그를 한꺼번에 공중에서 막아서고, 로드맨이 높이 점프해 블럭해버린다. 게다가 셀틱스의 시스팅이 공을 잡으려다 밖으로 나가버려 공격권까지 잃은 상황.[21] FG 50+%, 3P 40+%, FT 90+%를 기록하는 선수를 일컫는 표현. S급 슈터의 지표라고도 하지만, 실제로 이 기록을 1시즌이라도 달성한 선수는 래리 버드, 마크 프라이스, 레지 밀러, 스티브 내쉬, 더크 노비츠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밖에 없긴 하다.[22] 호크스 입장에선 결코 웃지 못할 비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윌킨스는 3쿼터까지 31점 vs. 14점으로 버드를 압도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센터 케빈 윌리스가 버드를 가리키며 윌킨스에게 "이봐! 이 XX가 더 이상 득점 못하게 해!"라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를 본 윌킨스는 "이봐...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라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드의 눈에 불이 켜졌고, 결국 버드는 호크스를 4쿼터에 박살내고야 만다. 이때 두 선수의 매치업은 유튜브에 남아있는데, 4쿼터 들어 버드는 파울당해 넘어지면서 왼손으로 던진 슛까지 다 들어가는 등 신들린 활약을 선보인다.[23] 버드가 인디애나 페이서스 감독으로서 1997-98 시즌에는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고 1999-2000 시즌에는 팀을 3시즌만에 NBA 파이널에 올릴만큼 뛰어난 성적(3시즌 통산 147승 67패)을 냈음에도 감독직을 그만 둔 가장 큰 이유가 코트에서 서서 작전 지시를 내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등부상 때문이었다.[24] 버드는 이때 이미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로 참가했고 실제 경기는 별로 뛰지 않았다. 실제 드림팀 비디오를 보면 틈만 나면 누워있는(...) 그를 목격할 수 있다.[25]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가 옴짝달싹 할 수 없도록 묶여있던 교정기를 의미하는데, 이런 끔찍한 장비를 차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몸을 움직일때마다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26] 그때의 주치의는 표현하기를 손가락에 문에 끼어서 이미 아픈데 그 문을 누가 계속해서 미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27] 사실 러닝 3점슛은 점프해서 얻은 추진력을 손목까지 전달해야 하는 점프슛의 메커니즘상 추진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데다가 슛을 하는 도중 계속 타점이 움직인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으로 피해야하는 터프슛이다. 그러나 버드는 유독 러닝점퍼가 안정적이었는데 이는 버드가 슈터치곤 특이하게 하체힘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손목힘만을 거의 이용해 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 점프슛을 보면 점프를 크게 하지 않고 폴짝 뛰어 손목만 까딱해서 슛을 하고, 커리어 중반 이후론 정자세에서 슛과 동시에 점프해 쏘는 슛을 쐈는데 이때도 최소한의 점프만 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손목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슈터들은 슛 포물선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버드는 상당히 높고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버드의 극강의 손목감각과 손목힘이 부각되는 부분.[28]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보통 엘리트 빅맨의 지표로 20점 10리바운드가 거론되고 여기에 5어시스트를 넘기면 "다재다능한 엘리트 빅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이 20-10-5에 고작 0.4리바운드 모자라고, 특급 슈터의 지표로 필드골 성공률 5할/3점슛 성공률 4할/자유투 성공률 9할인 "180클럽"이 거론되는데 이 180클럽에도 살짝 모자란 것이다. 몸이 아직날 대로 아직난 노장 선수가 마지막 시즌에 낸 기록이 이 정도.[29] 선수시절 얻은 고질적 부상으로 이 때문에 오래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감독직을 유지하기엔 너무나 치명적인 부상이었다.[30] 이 슛은 기가 막힌데 0.4초만에 던져서 잡자마자 점프해 던진데다가 인디애나의 집중수비 때문에 공중에서 더블클러치한 뒤 균형을 완전히 잃은 엉거주춤한 포즈로 손목힘만으로 던졌다. 근데 이게 림 안으로 들어갔다가 쭉 흝고 나온것.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밀러는 당시 자신이 골대 밑에 있어서 올려다봤는데 "...이거 들어가잖아??"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31] 참고로 데니스 로드맨은 DPOY를 2년 연속으로 받은 선수이다.[32] 당시 버드는 레이커스의 주전 스몰 포워드였던 워디와도 매치업이 되었지만 버드의 저격수 역할을 한 것은 1986-87시즌 당시 식스맨으로 27.5분만 뛰었음에도 (80년대 당시엔 웬만한 주전들은 40분 가까이 뛰었기 때문에 상당히 적은 출장시간이다) 올해의 수비수 상을 수상한 역대급 수비수 마이클 쿠퍼였다. 쿠퍼는 버드가 "나를 막은 수비수 중 최고"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수비수였다. 물론 버드를 완전히 봉쇄한 수비수는 없었다.[33] 하지만 현대농구처럼 주구장창 3점만 쏴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버드는 경기당 3점슛 횟수가 평균 1개가 안되던 시즌도 꽤 있다.[34] 생각보다 빠르다는 거지 특급은 아니다. 버드에 대해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He wasn't fast, he wasn't quick and couldn't jump."였다. 다만 버드의 경우 슛이 워낙 좋고 시야가 넓어서 상대가 기습적인 슈팅과 패스를 견제하다가 돌파를 허용하는 경우가 잦았다.[35] All-Defensive 2nd 팀에 3회 선정되었다.[36] 똑같이 206cm로 표기되는 매직 존슨보다도 2cm가량 더 크다.[37] 실제로 바스켓볼 레퍼런스에서는 83-84시즌까지 버드의 포지션을 파워포워드로 분류하고 있는데, 둘 다 주 포지션이 스몰포워드였던 두 선수의 포지션은 딱 잘라서 분류하기 애매한 감이 있다. 맥스웰은 슛거리가 짧고 몸싸움이 강하며 골밑에서 득점을 잘하는 '80년대식 포워드'였는데 버드는 슛거리가 길고 리딩까지 되는 선수라 공격에선 버드가 스몰포워드 역할을, 맥스웰이 파워포워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수비에선 키가 더 크고 골밑에서 더 강했던 버드가 빅맨을 막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버드는 버드-맥헤일-패리쉬 라인업이 완성된 80년대 중반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센터와 매치업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버드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였다. 만약 몸싸움이 80년대보다 훨씬 적어지고 센터들의 골밑대결이 적어진 2010년대라면 스몰라인업의 센터로서도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선수다. 그는 80년대 센터, 파워포워드들과 골밑싸움을 할 정도로 골밑에서 전투적이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38] 물론 조던이 예외적으로 피스톤즈에게 린치당하다시피 맞긴 했지만 80년대에는 저런 수비가 그냥 flagrant도 아닌 파울로 불리던 시절이다.[39] 그리고 당연히 1등. 심지어 87년도 대회에선 겉에 입은 점퍼도 벗지 않은 채로 던졌다(...).[40] 참고로 하지스는 버드가 콘테스트에 안 나오기 시작한 다음 해부터 3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대회에서 삼점슛 19개 연속 성공이라는 기록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86년 대회에서 버드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하지스인데, 버드의 심리전에 밀려 결승을 완전히 망쳤으나 정작 버드는 22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버드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재밌는 후일담이 있는데 훗날 버드가 참가하지 않은 대회에서 하지스가 연전연승을 하자 기자들이 "버드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를 붙혀야 되는 거 아니냐?"(특수한 상황이나 페널티가 있는 기록이 아닌 기록에 *표가 붙는다. 레전드급 기록을 남겼으나 영구제명된 야구계의 피트 로즈의 기록이 대표적.)라고 묻자 하지스는 "그가 날 어디서 찾을지 알고 있을 겁니다.(꼬우면 찾아와서 한번 붙자는 말)"라고 패기 넘치게 말했다. 그러자 버드는 이에 대해 "잘 알죠. 불스 벤치 끄트머리에 앉아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41] 삼점슛 콘테스트에서도 특유의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는데, 88년 대회 결승에서 버드는 명성에 맞지 않게 첫 15개(2점짜리 공까지 다 성공시켰을시 18점)를 던지는 동안 겨우 7점만 넣은 상태였다. 그러나 막판에 불이 붙어 획득 가능한 12점 중 10점을 얻었으며, 마지막 공을 남겨둔 상태에서 동점이었는데 극적으로 이 슛을 적중시키고 우승했다. 이 때 마지막 슛을 던지자마자 들어가는지 확인도 안하고 당연히 들어간다는 듯이 당당히 한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리를 떴는데, 이 슛이 림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간다. 버드의 실력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으며, 커리어 하이라이트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42] 80년대에 레드 아워벡과 래리 버드가 발매한 레슨 비디오 "Winning Basketball with Red Auerbach & Larry Bird"란 영상에서 보면 올바른 슈팅 자세를 가르치면서 레드가 "(슈팅핸드를) 너무 뒤로 제끼면 어떻게 되지?"라고 묻자 버드가 "그러면 공의 방향이 없는거죠.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고요. 그냥 던지는 것에 가깝습니다."라고 하고 대충 오른쪽으로 공을 올린 다음 한껏 손을 뒤로 제낀 다음 대충 던졌는데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서 깔끔하게 들어가자 "물론 저야 ㅋㅋㅋ"하기도 했다. 손목감각이 워낙 뛰어났기에 평상시 슛폼으로 던지지 않아도 넣을 수 있었던 것.[43] 여담이지만 저 정석에서 완전히 벗어난 슛폼으로 쏘는데도 존 스탁턴처럼 뛰어난 슈터도 있다. 스탁턴의 슛폼을 보면 공이 오른쪽 어께쪽으로 너무 넘어가는데다 팔꿈치가 위가 아닌 바로 앞을 향하는데, 코치들이 보면 뒷목을 잡을 자세다. 정석에서 거리가 먼 슈팅폼을 쓰는데다 팔로스루가 엉망인데도 역대 최고의 슈터 중 하나였던 레지 밀러처럼 달인의 경지에 달한 슈터들에겐 정석폼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케이스. 뒤집어 말하면 아마추어들이 달인이 아닌데도 스탁턴이나 밀러, 스테픈 커리같은 비정석 슈터들이 멋있어보인다고 따라하다간 큰일 날 수 있단 소리다. 저 선수들은 각각의 이유가 있어서 저런 폼이 만들어졌고, 그 방향으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달인이 된 것이기 때문.[44] 능력치면에서 당시 최정상급 슈터들은 현재 3점슈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3점슛 콘테스트에서 크렉 하지스가 세운 한 라운드 최다 3점슛 성공과 연속 성공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그런 하지스를 3년 연속 물먹이고 우승한게 버드였다.[45] 앞서 언급하였듯이 4번도 또하나의 주 포지션으로 문제없이 소화하는 선수였고, 당대 3번과 현대의 3번의 색깔이 많이 다른 부분도 있다.[46] 심지어 85년 올스타전에는 돌진하는 에이드리언 댄틀리를 커버수비하다가 팔꿈치에 맞아 피가 났음에도 그대로 뛰었다. 물론 당시 올스타전은 동서부간 자존심 싸움이라 지금과 달리 치열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선경기였다. 올스타전에서 부상투혼을 보이는 선수는 그때도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해설자들은 "버드는 어디서 뛰든 치열함 (intensity)를 불어넣습니다"라고 지적했다.[47] 이는 레이커스의 선수였던 바이런 스캇도 인증한 부분. 욕은 절대 안하고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생각해보면 열받고, 실력으로 뒷받힘하는니라 환장할 노릇이라 문제지...[48] 그리고 나중에 이 양반이 레지 밀러 의 감독이 된다.[49] 노비츠키와 버드는 시대가 다른 선수라 1대1 비교가 어렵고 노비츠키 역시 명예의 전당행이 예약된 레전드지만, 버드와 비교하면 거의 모든 항목에서 떨어진다. 노비츠키는 올 디펜시브 팀에 오른 적도 없으니 수비에서는 당연히 뒤지고 리바운드에서도 노비츠키는 시즌 평균 10리바운드를 넘긴 적도 없지만 버드는 커리어 평균이 10개다. (플레이오프에선 노비츠키도 10개 넘긴 적이 있지만 어차피 플옵 평균도 버드가 앞선다.) 노비츠키의 최고 장점인 득점에서도 커리어 하이 26.6점으로 29.9점의 버드가 우세하다. 참고로 노비츠키가 26.6점을 기록할 때는 리그 7위였고, 버드는 리그 3위였다. 패스와 게임리딩은 두 선수 사이에서 가장 격차가 큰 항목이다. 노비츠키는 빅맨치고 패스가 상당히 뛰어난 선수지만, 버드는 다른 PG도 아니고 매직 존슨에 비견되는 시야와 패스, 센스를 갖춘 선수다. 수치로 봐도 노비츠키는 어시스트가 커리어 평균 2.5개, 커리어하이가 3.5개인 반면 버드는 커리어평균이 6.8개고 커리어하이는 7.6에 달한다. 다만 클러치 능력의 경우 양측 모두 당대 최강급이었기에 우열을 가리긴 힘들다.[50] 왼손 점퍼는 없었지만 왼손으로 장거리 훅슛과 중거리슛 위치에서 플로터 등 고난도 기술을 썼다. 물론 버드는 역대급 슈터답게 왼손으로도 점퍼를 잘 쐈지만, 이 경기가 친선경기도 아닌 정규시즌 경기였고 연장전까지 갔기 때문에 완전히 장난치듯 경기를 치르진 못한 듯. (사실 포틀랜드는 젊고 역동적인 팀이라 그런지 전력에 비해 보스턴에 강한편이었다. 86시즌 당시 유일한 홈경기 패배가 당시 중위권팀에 불과한 블레이저스에게 당한 것) 참고로 왼손으로 쏜 이유가 걸작인데, 오른손은 이틀 뒤 레이커스전을 위해 아껴놓으려고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asketball&category=760166425&document_srl=1102945381&search_keyword=right&search_target=title&page=1). 그 덕인지 레이커스전에서는 아껴둔(?) 오른손으로 22점 18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리를 거뒀다.[51] 지금은 울브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자리잡은 케빈 가넷과 함께 선정되었다.[52] 근래에는 백인 선수들로만 한정하면 오히려 유럽에서 넘어온 선수들이 더 강세를 보인다.[53] 첫시즌에는 개막전에서 끔찍한 부상으로 시즌아웃, 둘째 시즌에는 부상 후유증과 공백으로 인한 부진, 셋째 시즌에는 팀내 4옵션으로 밀려난 입지 하에서 제법 좋은 활약을 펼치긴 했으나 또다시 부상으로 플레이오프 상당기간을 결장했으며, 결국 바로 다음 시즌에 샬럿 호네츠로 이적했다. 전성기에 큰 부상을 겪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지만, 냉정하게 셀틱스에서의 커리어는 거액의 연봉을 받아먹는 먹튀 + 악성계약에 가까웠던 편.[54] 포지션이 정말 애매한 선수였으나 현재 포지션은 가드로 정립되었다.[55] 20-10-5, 20-7-7 정도만 해도 상당히 희귀한데, 돈치치는 28-8-8 가량의 정말 유니크한 스탯라인을 자랑한다.[56] 버드는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적스탯인 윈쉐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겨우 13시즌밖에 뛰지 못했다.[57] 통산 파이널 전적 22승 33패, 승률 0.400[58] 물론 기량이 비슷한데 팀동료가 더 좋았건 대진운이 좋았건 간에 실적이 더 뛰어나다면 선수랭킹에서 더 높게 위치하기 마련이다. 다만 매직과 버드처럼 리그 내 위상 자체가 완전히 동등했는데 실적 면에서만 갈린 경우는 "매직이 버드보다 더 뛰어나다"고 잘라 얘기하기를 보통은 꺼린다. 실제 기량에서 우열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하물며 버드와 르브론은 실력적으로 크게 처질 것이 없는데다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완전히 다르다.[59] 다만 매체에 따라선 저들 중 누군가를 버드 위로 두는 경우가 없는건 아니다.[60] 샤크와 코비는 네임벨류에 비해 아쉬운 1회 수상에 그쳤고, 던컨 역시 2회에 그쳤으며, 저 셋 모두 쉐어로 따지면 유의미하게 큰 차이가 난다.[61] 대표적인 예시로 스테판 커리의 경우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을 근거로 오스카 로버트슨이나 케빈 듀란트 등에게 딱히 우위를 가져가진 않는다. 저들보다 높은 순위로 두는 매체도 물론 있긴 하지만 얼추 비슷한 티어로 묶인다는 것.[62] 윌트 체임벌린빌 러셀은 서로 개인기록/우승 면에서 완벽한 우위라 누가 더 뛰어나다고 잘라 말하기 힘들다. 카림 압둘 자바는 개인기량이 절정이었던 70년대엔 1회 우승에 그쳤고, 5번 우승할 당시엔 매직 존슨의 존재가 워낙 커 팀내 절대적인 에이스가 아니었다. (1980년 우승 당시엔 절대적인 에이스였지만 아이러니하게 부상으로 빠진 사이 매직이 파이널 MVP를 가져갔다) 매직과 버드는 서로가 있었다. 그리고 샤킬 오닐은 절대자로 군림한 세월이 짧았고, 팀 던컨이나 코비 브라이언트는 조던만큼 절대적인 리그 최강으로 군림한 적은 거의 없다.[63] 필리 프랜차이즈의 어시스트 리더이며 영구결번, 구단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통한다.[64] 게다가 스퍼스는 전 시즌에 뛰지 않은 데이비드 로빈슨이 건강하게 복귀했기 때문에 루키 팀 던컨과 함께 사실상 슈퍼스타 빅맨 두 명이 합류한 효과였으며, 2008년에는 다들 알다시피 케빈 가넷, 레이 알렌이 합류했다. 그러나 보스턴에 합류한 굵직한 선수는 버드 뿐이었다.[65] 물론 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시는 NBA 명예의 전당까지 들어간 명선수들이 맞다. 하지만 당시 패리시는 부상과 사적인 문제들로 은퇴까지 고려하던 한물간 선수 취급을 받고 있었고, 이후 선수 생활 중에서도 평균 득점이 20점을 넘었던 적이 없다. 맥헤일도 당시 루키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스타팅 멤버가 되기까지 몇년 더 기다려야 했다. 결국 팀의 주 공격옵션은 버드 하나라고 해도 무관했다. 사실 이렇게 따질 것도 없이 결정적으로 멕헤일과 패리쉬는 이미 셀틱스가 60승팀이 된 이후에 합류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훌륭한 선수였던 타이니 아치볼드는 셀틱스가 29승팀일때 이미 팀의 일원이었다. 즉, 29승팀과 61승팀과 차이점은 단 하나, 버드였다.[66] 11표 중 무려 4표가 준우승임에도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준 르브론 제임스에게 가고, 그 르브론을 어느정도 제어해내는 동시에 공격에서도 좋은 활약을 힐 이궈달라에게 7표가 갔다.[67] 패리쉬와 맥헤일이 성장하기 전이라 2옵션이 약했다곤 해도, 당시 셀틱스가 다른 선수들을 버려두고 버드 하나만 때려잡으면 되는 그저그런 원맨팀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68] 오히려 적당히 20점 언저리를 꾸준히 올려주다가 슛감이 좋으면 30점 이상 넣어주고, 슛감이 안 좋으면 슛을 자제하는 선수였다. 실제로 80-81시즌 버드는 평균 21점을 올리면서 30점을 넘긴 적은 단 7번에 불과했으며, 단 한 경기도 40점을 넘긴 적이 없다. 버드가 볼륨스코어로서 면모를 보인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로, 84-85년 시즌에는 30점대 경기가 28번, 40점대 경기가 8번에 시즌하이는 커리어하이이기도 한 60점 경기였다. 득점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87-88시즌엔 30점대 경기 28번, 40점대 11번이었다. 즉, 80-81시즌의 버드는 저런식으로 슛감이 안 좋으면 슛을 자제하고 패싱게임을 하는게 익숙한 선수였던 것이다.[69] 물론 게임스코어가 요근래에 그리 잘 쓰이는 지표는 아니지만, '득점을 더 잘한 맥스웰'과 '득점을 제외한 나머지에서 두루 활약한 버드'를 두고 본다면 있어선 꽤나 심플하고 직관적인 비교 스탯이 될 수 있는 편이다.[70] 평균 게임스코어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고 경기당 게임스코어를 보면 1차전은 버드 20.7 맥스웰 6.5, 2차전은 버드 18.4, 맥스 0.4, 3차전은 버드 14.6 맥스웰 13.4, 4차전은 버드 7.8 맥스웰 21, 5차전은 버드 9.9 맥스웰 31.7, 6차전은 버드 24, 맥스웰 15.6이었다.[71] 이런 역할은 케빈 맥헤일이 성장해 주전 파워포워드로 슈퍼스타가 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실제로 버드는 데뷔 후 6년 연속으로 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했으며, 맥헤일이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으로 올라선 85년 플레이오프, 그리고 이듬해인 85-86시즌에 정규시즌에 처음으로 리바운드가 한자리수 (각각 9.1개/9.8개)로 내려왔다. 당시 206cm-208cm-216cm인 버드/맥헤일/패리쉬가 버티는 셀틱스는 역대 최고의 프런트코트로 불리며, 이 3인방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72] 당시 보스턴은 동부 최강이자 NBA승률 1위팀이었고, 40승에 그치며 플레이오프에 턱걸이로 진출했으나(당시는 12강 체제였다), 상위시드를 연이어 업셋한 휴스턴을 순살시킬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모제스 말론을 필두로 한 휴스턴이 괴력을 발휘하며 2승을 따낸 것.[73] 버드는 슛이 안 들어가면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공헌했다. 이 시리즈에서 슛이 부진했던 버드는 경기당 평균 15개의 야투만 던졌고, 3차전에서는 슛을 11개 던져 8점에 그쳤지만 10어시스트 13리바운드 5스틸 2블럭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패싱게임에 힘입어 보스턴은 무려 6명이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 반면 휴스턴에선 에이스 말론이 23점을 올렸지만 그 외에 두자리수 득점을 한 선수는 한명 뿐이었다.[74] 단, 파커의 경우 임팩트도 임팩트지만 파이널 시리즈에 한해선 공헌도 자체는 던컨에게 꿇리지 않았다.[75] 해당 시리즈에서 매직 존슨이 21.1점 13어시스트 5.7리바운드 2스틸 0.1블럭에 야투율 55%를 기록했으나 22점 4.4어시스트 7.4리바운드 0.7스틸 0.6블럭 49.2%를 기록한 제임스 워디가 mvp를 수상했다. 매직은 시리즈 내내 레이커스의 가장 중요한 선수였으나 7차전에서 트리플더블 맹활약을 한 워디의 임팩트에 밀렸기 때문이다. 차전까지 매경기 존슨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음에도 워디가 득점스탯에서 근소하게 앞섰고, 특히나 7차전에서 36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 야투율 68.2%/게임스코어 35를 기록한 워디의 임팩트가 이를 이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시리즈의 공헌도는 버드가 더 높았고 이 점을 당시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으나, 득점스탯이 더 높고 5차전에서 28점 15리바운드 (야투율 76.9%/게임스코어 31.7)를 기록한 맥스웰의 임팩트가 이를 이긴 것.[76] 사실 이 둘은 1984년 결승까지는 둘이 진심으로 서로를 싫어했다. 그러나 1984년 시즌이 끝난 후 컨버스 농구화 광고를 찍으며 둘은 버드의 고향인 인디애나에서 온종일 함께 촬영을 하게 되면서 서로 잘 알고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버드의 고향집에서 매직을 초청해 식사를 같이 할 정도였는데, 이때에 대해 버드는 "나는 그때 '매직 존슨'이 아닌 '어빙 존슨(매직의 본명)'을 만났다"라고 설명했다.[77] 은퇴후 환한 미소와 상냥한 말투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현역 시절 토마스는 그야말로 독종이었다. 릭 마혼이 필리로 이적 후 친정팀과 시비가 붙었다가 생뚱맞게 레임비어와 바클리의 싸움으로 마무리된 그 경기 당시, 마혼에게 가장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퇴장당한게 바로 토마스다. (마혼은 무대응해 퇴장당하지 않음) 한번은 빌 카트라이트의 팔꿈치에 맞아 눈두덩이가 찢어지자 사람 죽일 듯한 눈빛으로 겨우겨우 참고 있다가 피스톤즈 코치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자 목을 움켜쥐고 머리를 바싹 갖다대고 위협적으로 말을 했다. 토마스는 배드보이즈의 분위기를 주도한 리더였으며, 패배 당시 한 말도 악이 받혀서 한 말에 가깝다. 특히 본인의 실수가 크게 작용하기도 했으므로...[78] 그당시 리그 최고의 공격수였던 마이클 조던을 전담하는 피스톤즈 선수는 조 듀마스였지만, 경기 막판에는 조던과 비슷한 체격에 그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운동능력을 지닌 로드맨이 그를 1대1로 마크했다. 물론 조던은 그를 기가 막히게 따돌리고 결승점을 올린 적도 많았지만 천하의 조던도 로드맨의 찰거머리 수비는 버거워했다.[79] 실제 Bad Boys 비디오에서 로드맨의 회상에 따르면 그 당시 루키였던 로드맨은 "내가 한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조차 알지도 못했다." 라고 하였으며, 그 비디오 안에서 여러 기자들도 아마 로드맨이 저리 철저히 농락당한 건 그가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로드맨이 악의적으로 폄하했다기보다는 자기가 이길 수 없는 벽에 한계를 느끼고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에게 걸었던 일종의 정신적인 최면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80] 당시 닉스가 최초로 팀전원을 흑인선수로 구성하는 등 흑인의 비중이 커지자 "Is NBA too black" 이란 컬럼이 나올 정도였다.[81] 국내 웹에서만 '그런데 우리가 이겼네? ㅋ' 라는 뉘앙스로 비꼰 거라는 해석이 퍼져 있는데 지나치게 버드의 발언을 꼬아서 듣는 셈이다. 앞뒤 문장을 살펴봐도 비꼬는 발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때 인터뷰는: "마이클이 우리한테 한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기가 막힌 선수였습니다. 그냥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변장한 것 같았습니다." 원문[82] 1년후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 패하고 "매직은 내가 본 최고의 선수였다"고 할 때도 이렇게 고개를 흔들면서 인터뷰했다.[83] 16시즌 스퍼스가 타이기록을 세웠다.[84]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더티플레이다.[85]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며, 매우 심한 비매너다.[86] 위에 언급된 스퍼스는 정규시즌은 홈 1패에 그쳤으나 오클라호마시티를 상대한 플옵 2라운드에서 홈에서만 2패하며 6차전만에 탈락하고 말았다. 고로 시즌통합 3패.[87] 그리고 이 장벽의 역할은 아이재아 토마스가 이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이어받게 된다.[88] 다만 이건 윌킨스가 재미를 위해 과장한 것으로, 당시 버드의 득점 중 왼손 슛은 분명 있었지만 3점슛은 아니었다.[89] 토마스는 자기의 역사중 가장 창피했던 순간을 뽑으라고 하면 이 순간을 뽑는다. 경기 후 굉장히 실망한 토마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토마스가 후일 얘기한 걸 보면 아직도 보스턴 출신 팬들을 마주치면 "고마워요 ㅋㅋㅋㅋ 나도 그 경기에 있었어요!"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있다고...[90] 대표적인 케이스가 레지 밀러 대신 페이서스 랜들이 뽑으라고 성화였던 홈타운 보이 스티브 알포드.[91] 영상을 보면 속공 중 버드와 어빙의 팔이 엉켰고, 어빙이 뿌리치는 과정에서 의도치않게 손이 버드의 얼굴을 가격하며 버드가 넘여졌다. 분개한 버드가 다가가 트래쉬토킹을 하자 어빙은 진정시키려는 듯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는데(어빙은 매너가 좋은 편이었다) 버드가 그의 어깨를 밀어내자 어빙도 화가 나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버드가 그의 목을 쥐려고 하자 어빙도 맞대응하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빙에 비해 버드가 덩치도 크고 힘도 훨씬 셌는데 버드가 가격을 하는 순간 뒤에서 바클리, 옆에서 모제스 말론까지 두 덩치가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버드가 날린 펀치는 허공만 갈랐고, 그 사이에 어빙이 연달아 펀치를 먹인 것. 버드는 빌 레임비어이나 카림 압둘자바 등 자기보다 큰 선수들과도 곧잘 주먹다짐을 하던 싸움닭이었지만, 어빙은 성격이 워낙 점잖아 버드하고 한 판 붙은 것 외에는 싸운 적이 거의 없다.[92] 또 하나의 연봉 관련 규정으로 사치세 부담없이 한 선수를 방출할 수 있게 해주는 사면룰 역시 당시 먹튀로 유명했던 "앨런 휴스턴룰"이라고 불리는데, 정작 소속팀인 뉴욕 닉스는 휴스턴이 아닌 제롬 제임스에 이 규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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