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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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taff_ryang.jpg
파지아노 오카야마 코치
량규사
梁圭史 / Ryang Kyusa
[1]
생년월일
1978년 7월 3일 (45세)
국적
조선적/북한
국가대표팀
파일: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6경기 3골
출신지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
신체조건
178cm
포지션
스트라이커
프로 클럽
베르디 가와사키 (2000)
울산 현대 호랑이 (2001)
자스파구사츠 군마 (2003)
파지아노 오카야마 (2005~2006)
지도자 생활
파지아노 오카야마 (2007~현재)

1. 소개
2. 클럽 경력
3. 여담
4.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량규사는 일본 태생의 북한 국적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일본 위키피디아 문서


2. 클럽 경력[편집]


히로시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일 조선 축구단에서 활약했다.

2000년 3월 북한 국가대표로 아시안컵 축구대회 예선전에 차출되었고, 대만과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해 맹활약했다.

그 후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에 입단해 프로 데뷔를 하는데, 그 당시 베르디 가와사키에는 총감독 이국수를 비롯해, 장외룡 감독이 스태프로 있었으며,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전남 드래곤즈의 레전드 김도근이 선수로 뛰고 있었다.

후에 베르디 가와사키가 울산 현대와 가진 교류전에서 교체 출전하게 되고 이를 눈여겨 본 김정남 감독에 의해 K리그로의 이적을 추진하게 된다.

관련 법을 개정해서 이적이 가능해진 량규사는 결국 울산 현대이적하게 되었다. 다만, 울산에 합류한 직후 북한 대표팀의 독일 전지훈련에 차출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 싶었는데... 1경기도 뛰지 못하고 퇴출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은퇴 직후인 2007년부터 마지막 소속팀이자 고향팀인 파지아노 오카야마의 코치로 오랜 기간 활동을 하고 있다. 유스팀과 1군팀을 오고가며 코치생활을 장기간 하는 것으로 봐서는 팀에서도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부터는 클럽 1군팀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3. 여담[편집]


  • 사안이 사안이었던지라 이적 과정이 좀 복잡했다. 일본 내 조총련의 영향하에 있던 재일조선인 축구단김광호 단장이 "남북 화합 차원에서 공문을 보내면 이적을 협조하겠다."라는 말을 했었고, 결국 이적이 이루어졌다. 계약은 7,500만원에 연봉은 3,500만원. 그 당시 관여한 기관들이 제법 된다. 문화관광부를 필두로 하여 국가정보원, 외교부, 법무부가 이 문제에 대한 유권해석에 관여했다.[2] 기사에 따르면 남한방문증서라는 증서를 발급받으면 K리그에서 활동이 가능하게 되며 이 법 개정이 후일 안영학정대세 등이 K리그에 뛰는 데 일조한다.[3] 현재 이 규정은 2021년 확대되어 북한 태생의 인물도 남한방문증명서를 받게 되면 북한 클럽에서의 이적 형식으로도 K리그에 데뷔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해졌다.

  •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북한의 한국어표기 정서법상 '량규사'가 맞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두음법칙 적용으로 '양규사'로 불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량규사'라고 불러주길 희망했다.[4]


4. 관련 문서[편집]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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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어 음독의 로마자표기인 '료 케이시(Ryo Keishi)'가 아닌 한국어/조선어 로마자표기로, 영어 공식명칭은 이쪽이 맞다.[2] 대한민국 헌법상 제3조 영토와 제4조 평화통일 조항에 따라 북한 국적 및 조선적 동포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이라는 반드시 수복해야 하는 영토 내 불법정부 국적 하의 국민이라는 점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무국적자 포함) 외국인으로도 볼 수 있는 법적 충돌이 있다. 안보와 국가 간의 관계는 국가정보원과 외교부가, 국적 문제는 법무부가 담당하는 업무인지라 이들 행정기관의 조율이 필수적이었다.[3] 다만, 정대세의 경우 북한 국가대표팀을 선택한 것과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적자인 재일동포로서 K리그에서 외국선수가 아닌 한국선수임을 규정한 이른바 '박강조룰'(2000)을 적용받을 수도 있는 매우 특이한 사례였다.[4] 량규사의 성(姓)으로 쓰인 '량'은 대들보 량(梁) 자로, 상량식의 그 '량' 맞다. 애초에 '량'이기 때문에 두음법칙에 따라 표기법이 달라질 수 있다.[5] 단, 상기에 설명했듯, 량규사는 외국인선수가 아닌 단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뛰었기에 해당 문서에 기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