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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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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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 고대
2. 중세
3. 근세
4. 나폴레옹 전쟁과 19세기
5. 20세기
6. 소련 시기
7. 러시아 연방 시기
8. 관련 문서



1. 고대[편집]


러시아인이 속한 슬라브족은 게르만족이 훈족의 압박을 받아 서부로 이동한 틈을 타서 동유럽으로 들어왔다. 동유럽은 곧 슬라브족의 천하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되는 동슬라브족들은 대체로 현재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슬라브족은 게르만족과 다름없는 유목민족이었고, 고대부터 게르만족과 전쟁이 잦았다. 그런데 스스로를 루시[1]라고 부르는 바이킹 북게르만족의 일파인 노르드인은 슬라브 지역에도 자주 출몰하였고, 이들이 동슬라브족을 지배하면서 동슬라브족의 첫번째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세워진다.[2] 키예프 공국은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여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2. 중세[편집]


13세기에는 서쪽으로 쳐들어온 몽골에게 대패하여 키예프 공국은 무너지고, 러시아인들은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는 이에 흡수되지 않고 반독립상태를 유지하였다. 오히려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킵차크 한국에 복속과 반항을 반복하였으며 가톨릭을 퍼트리려고 침입한 튜튼기사단을 페이스푸스 호수에서 격퇴했고 스웨덴 왕국의 침공도 네바 강 전투에서 격파하는데 성공했다.[3]

이후 기술적으로 앞섰던 몽골군에게 군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점점 힘을 길러서 도리어 몽골 제국이 붕괴한 이후에는 러시아인들이 유럽쪽의 몽골족을 흡수하게 되었다. 러시아 귀족 중의 15%는 이런 몽골 세력에서 유래한다고. 심지어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할머니도 몽골 계통인 칼미크인 출신이라는 말이 있다. 어쨌든 몽골이 쳐들어온 경로로 초원의 길의 존재를 알게 된 러시아인들은 16세기부터 팽창을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시베리아의 유목민들을 복속하고 영토를 넓히면서 동진하여, 1640년에는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4] 현재의 거대한 영토를 이루게 되었다. 극동 방면으로의 영토 확장 과정에서 조선 효종대에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파병한 조선군과도 두 차례 군사적으로 충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나선정벌이다.


3. 근세[편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매우 후진적인 사회였으며, 특히 서유럽과 교류가 단절되어 발달하는 서구의 군대와는 달리 중세에 머물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급진적인 서구화로 개혁한 것이 표트르 대제(1672-1725)이다. 표트르 대제 시절에 군제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있었으며, 특히 이전에는 전무하다시피한 강력한 해군을 당시 해양강국이던 영국의 도움으로 건설하였다.[5]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 10여년에 걸친 북방전쟁을 벌여 승리했고[6], 러시아는 이제 발트해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서유럽에서 무시 못할 군사강국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자주 서유럽 국제정세에 개입하였다.

게다가 당시 강대국으로 간주되던 오스만 제국이 약체화되자 기회를 잡은 러시아는 이에 자주 싸움을 걸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했다.

이때 알렉산드르 수보로프(1729-1800)라는 먼치킨급 명장이 나와서 유럽에 원정, 한번도 패하지 않고 유럽에서 벌어진 여러번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에 귀환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4. 나폴레옹 전쟁과 19세기[편집]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에 병력을 자주 파견하였는데, 당대 명장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은 폴란드 봉기군과 프랑스 혁명군을 상대로 무쌍을 펼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수보로프가 죽고 나폴레옹이 본격적으로 프랑스군을 이끌게 되면서 부터는 일방적으로 깨졌다. 그래도 초반에는 본토가 침공 당하진 않았던 시기라 져놓고도 나름대로 위엄을 잃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였다. 나폴레옹 역시 러시아를 굳이 적으로 돌리고 싶어하지 않았으므로, 싸우다 화해하는 것을 반복하였다.[7] 그러나 결국 대륙 봉쇄령을 지키지 않던 러시아에게 나폴레옹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럽 전역에서 긁어모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감행했다가 러시아군에 대패했고, 자신의 몰락을 자초하였다.

파일:G9Bs8oj.jpg
리처드 케이튼 우드빌 作, 경기병 여단의 구원
러시아군 기병대가 아군 포병들을 공격한 영국 기병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후 러시아군은 약체화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계속 전쟁을 하며 남하했고, 크림 반도까지 먹으려 했으나, 더 이상 러시아의 팽창을 묵과하지 않는 서유럽 연합국(영국, 프랑스, 사르데냐)은 오스만 편을 들어 참전했다. 이렇게 벌어진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이들에게 떡실신당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스만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5. 20세기[편집]


1904년,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일본 제국대결하였다. 러시아는 당시 일본보다 국력이 우세했고, 병력도 더 많았으나, 아무래도 유럽이 아니라 일본에 훨씬 가까운 만주가 주전장이다 보니 일본군에게 고전했다. 거기다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전반적으로 공세에 소극적이었고, 무능이 판쳤다.[8] 만주와 요동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대규모 회전에서 러시아군은 일본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결판이 안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발트 함대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오다가 대한해협에서 일본군의 매복에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 굴욕을 당한다. 결국 러시아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조선과 만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fenders_NGM-v31-p369-A.jpg
파일:external/klimbim2014.files.wordpress.com/the-last-projectile-russian-army-ww1.jpg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러시아군은 발칸 반도의 슬라브 소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했다. 러시아군은 삼국 동맹의 일원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떡실신시켰으나, 독일 제국을 공격해 들어갔다가 프로이센독일 제국군에게 대패하고, 오히려 수세가 된다.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이를 타개한답시고 자기가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으로 나갔는데, 군사적 문외한인 이 사람이 전선을 지도하니 더욱 더 상황은 악화되었다.


6. 소련 시기[편집]


이 때문에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이 공화국 수장을 맡은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는 당장 휴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그동안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계속한다고 했다. 문제는 러시아는 더 이상 전쟁을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러시아군은 계속 패하며 부대 전체가 탈영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이때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키당은 쿠데타를 벌여 정권을 잡았고, 동맹국과 단독강화를 맺었다. 이로서 러시아군은 모두 해체.그리고 케렌스키는 조국을 떠나 망명해야 했고 53년을 외국에서 살다가 끝내 죽어서도 런던에 묻혀져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러시아 제국군의 장교들이 자발적으로나 위협으로 공산정부의 붉은 군대에 들어가 지휘관이 되었고, 소련군은 러시아 제국군의 인적-물적 유산을 계승하며 발전했기 때문에 소련군은 제정 러시아군의 후계자라고 봐도 된다.

자세한 내용은 소련군 문서 참조

7. 러시아 연방 시기[편집]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막강했던 소련군은 소련 붕괴 이후 해체되었고, 각 자원들은 새로 독립한 여러 공화국이 나눠가졌으나 그래도 새로 생긴 러시아 연방군이 소련군의 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제정 러시아군-소련군-러시아 연방군은 사실상 후계-계승 관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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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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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말이 "러시아"의 어원이 된다.[2] 후에 이 바이킹의 후예들은 모두 슬라브족에게 동화되었는데, 나치의 언플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이를 슬라브인이 게르만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근거로 써먹었다. 그래서 소련시절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며, 현재도 러시아는 바이킹 설을 부정하는 분위기이다. 사실 괴벨스의 말은 순 역알못 헛소리인게 게르만 대이동 당시 떠나지 않고 그냥 북유럽에 쭉 남아 있다가 11~12세기 무렵에나 진출하기 시작한게 노르드족(바이킹)이며 그보다 한참 먼저 로마로 내려가 로마문명에 동화되어 형성된게 중세의 독일인이다. 즉, 바이킹 인베이전 한참 이전에 독일인은 이미 혼혈이 진행될 대로 진행되어 원시 게르만족과 전혀 다른 민족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노르드족을 독일민족과 동족으로 여기는건 어불성설이다. 사실 나치의 인종관 자체가 본인들에게 그대로 돌아가는 부메랑인데, 세계 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독일민족 역시 이미 중세 초기부터 켈트,라틴에 슬라브까지 다 섞인 잡종혼혈민족 이기 때문에 순혈 아리아인 운운하는 나치 인종관 대로라면 독일인들 부터가 인구 대다수가 자살해야한다.[3] 이는 나치 독일의 위협이 가중되던 1930년대에 세계적 감독인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영화화하였고, 소련은 이를 이용하여 안보의식을 고취시켰다.[4] 아시아를 넘어 베링해협도 넘어서 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알래스카까지 손에 넣었으나 당시로서는 그다지 이득이 없어서 헐값에 미국에 팔아넘겼다. 물론 지금은 그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있지만(...).[5] 영국은 러시아 해군의 성장속도가 무시무시하자 러시아를 잠재적 적국으로 여기고 군사교류를 중단했다.[6] 그러나 아직까지는 러시아의 힘이 약해서 오스만 제국, 심지어는 중앙아시아 유목국가들에게 털리기도 했다.[7] 나폴레옹은 그 누구보다도 러시아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아일라우 전투에서 고초를 겪고 난 후로 더욱 경계하였다. 그는 러시아군을 무식하다고 까면서도 한편으론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도망가지도 않고, 겁에도 질리지 않는', 말그대로 모든 군사지도자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군인들이라며 두려움 반 경외심 반의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8] 다만 상대인 일본군도 이상한 짓을 많이 했는데 특히 기관총으로 요새화된 언덕으로 정해진 날짜마다 알람시계를 맞춘 듯이 병력을 밀어넣어서 첫 전투에만 15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다만 일본군이 러시아군보다 무능한 짓을 조금이나마 덜 했기에 그나마 이긴 것.[9] 사실 장기전으로 갔다면 러시아가 이겼다. 애초에 러시아의 전략은 극동 주둔병력으로 일본군을 묶어놓고 유럽주둔 병력들은 몰고와서 물량으로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이 전략은 막 실행되던 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도 자신들의 역량을 뛰어넘는 전쟁을 벌이는 통에 경제가 막장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으므로 몇개월만 있었다면 만주의 일본군은 보급을 못받아 자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불완전했던 시베리아 철도 사정과 피의 일요일 사태로 인해 국내사정이 악화되고, 쓰시마 해전이 결정타를 먹인 것. 그나마 러시아 협상단이 자신들은 아직 진게 아니라고 빡빡 우겨대서 보상금 지불 없이 군대만 빼는 체면상 무승부로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