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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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 | 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
[1]


규모
약 1억명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 (제17대)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비판
5.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모스크바 총대주교좌를 보유하는 그리스도교 교단. 전 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러시아의 그리스도교 교단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신자 수는 약 9,000만 명에서 1억 명 수준으로 추정한다.

제정 러시아국교(國敎)로서 전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자치 교회였고, 한국 정교회19세기 무렵 선교가 이루어진 러시아 정교회가 시초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국가 무신론을 표방한 소련 치하에서 수많은 성직자수도자들이 순교하거나 투옥되고 예배가 금지되었으며 각지의 성당들이 파괴되고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다. 독소전쟁 이후로는 탄압이 완화되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제들을 대놓고 투옥하거나 성당을 파괴하는 행위는 없어졌다. 그럼에도 국가무신론이 여전히 주요시책이었기 때문에 정교회 사제들에 대한 대우는 야박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에는 보리스 옐친이 정교회를 복권시켰고, 이러한 기조는 블라디미르 푸틴도 이어받아서 러시아 정교회의 위상은 구 러시아 제국 시절에 버금갈 정도로 커졌다. 오죽하면 통합러시아의 지지기반 가운데 하나가 정교회 신도로 손꼽힐 정도이다. 다만 그러다보니 타 국가에서는 어용종교 집단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 중이다.

정교회 자치교회 서열로 따지면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이어 다섯 번째 총대주교 관할교회였다. 그러나 2022년 현재 러시아 정교회는 2018년 정교회 분열[2]로 세계총대주교좌와의 일치가 끊어진 상태이므로 이러한 순위는 현재로서는 유명무실하다.


2. 역사[편집]


러시아 정교회는 988년 그리스 정교회의 선교로 블라디미르 1세가 세례를 받으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1589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로부터 독립교회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현재의 총대주교좌(總大主敎座)는 모스크바에 있다.

17세기 중반에는 토착화된 전례를 동로마 전례 양식을 참고해서 바꾼 니콘 총대주교의 전례 개혁에 반발한 세력이 구 전례를 따르는 고의식파(古儀式派)로 독립했다.[3] 표트르 대제 치세에서는 신성통치종무원[4]에서 총대주교좌 업무를 대신하다가 러시아 혁명 때 신성통치종무원이 폐지되면서 성 티혼이 총대주교로 선출되어 착좌했다. 하지만 곧바로 소련정교회를 박해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소련의 박해를 피해 해외로 탈출한 해외 러시아 정교회와 소련에 남은 러시아 정교회로 분리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본토 정교회와 2007년에 재일치했고, 러시아 정부에서도 정교회를 밀어주면서 정교회는 러시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교회 인정 문제로 일방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등과 성사 교류 단절을 선언함으로 인해 정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자기네 신도들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 및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산하 정교회 성찬예배성사 참여를 금지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가 상호 성사 참여가 특수상황을 제외하고는 불법이듯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및 아테네 대주교 산하 정교회와 별도 교단으로 분리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 내 우크라이나 정교회마저 본교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3. 특징[편집]


정교회권 밖에서는 그레고리력을 따라 크리스마스12월 25일로 정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잡는 정교회 전례력에 따라 1월 7일이다.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키릴 총대주교는 동성결혼이며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정교회의 관할지역은 구 동구권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서유럽 등 과거 제1세계 지역에 속했던 나라들까지도 포함하는데, 소련 성립 직후 많은 정교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망명했기 때문이다.

4. 비판[편집]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있던 비판이지만,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 및 독재정권과의 유착 같은 부정적인 모습들로 인해 현재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대외적 인식은 다소 곱지 않다. 특히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함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의 타 종파 신자들은 물론이고 정교회 분열 당시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지지하지 않았던 타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상황이다.

소련 해체 이후 아노미 상태에 빠진 러시아인들에겐 정신적, 국가적 구심점이 필요했다.[5]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소련 시절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파괴된 성당들을 재건하며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등 러시아 정교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러시아 정교회 또한 소련 해체 이후 종교에 대한 박해가 사라지자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에 지지와 감사를 보내며 손을 잡기 시작했다.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적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성스러운 투쟁이라는 논평을 내놓자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세계 보편교회 지도자들 다수로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2018년 정교회 분열 사태에서 사실 러시아 정교회의 우군은 적지 않았다. 세계총대주교는 정교회에서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인물이지 로마 교황처럼 실질적 수위권을 행사하는 존재는 아니었고, 러시아 정교회 관할에 속하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관구를 환수하고 독립시킨다는 행동을 다른 정교회에서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부 및 군부를 지지하며 이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기 시작하자, 모스크바를 지지하던 다른 정교회들이 돌아서서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정교회 내에서 연쇄적으로 모스크바로부터의 이탈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발생했는데, 러시아에 인접한 교구들은 모두 독립을 준비 중이고 라트비아 정교회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 한 신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응원했다고 고백성사(고해성사)[6]를 했는데, 그걸 들은 신부가 그대로 경찰에 찔러넣어서 논란이 되었다. 원래 정교회나 가톨릭이나 고해성사를 할 때 비밀유지가 원칙인데, 그걸 일러바쳤으니 신부로써의 자격을 다하지 못한 것.

5. 같이 보기[편집]



[1] Rússkaja pravoslávnaja cérkovʹ. 약칭은 에르페체(РПЦ).[2] 201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본디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독립교회 지위를 부여한 것에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반발하여 일방적으로 세계총대주교좌와의 성사 교류 단절을 선언한 사건이다.[3] 고의식파는 성직 인정파와 성직 부정파로 다시 분리되었고, 일부는 20세기 후반에 다시 러시아 정교회와 일치했다.[4] Святейший правительствующий синод(1721-1918). 소련 해체 후에 신설된 신성종무원과 달리 신성통치종무원은 총대주교 없이 황제가 직접 관리했다.[5] 이 무렵에 옴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들이 러시아에서 교세를 불리기도 했다.[6]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로 정교회에서는 고백성사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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