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아르메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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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8세기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2.4.1. 2010년대
2.4.2. 2020년대
3. 군사 교류
4. 문화 교류
5. 경제 교류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 연방아르메니아 공화국과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공식적으로는 정치적으로서 친하며 국민들도 호감도가 더 높다. 오늘날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다음으로 제일 많이 거주하는 국가가 바로 러시아다.[1]

아르메니아는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 흑해경제협력기구에 가입돼 있으며 2002년에 창설되어 러시아판 NATO로 불리는 집단안보조약기구에도 설립멤버로 참여하였다. 또 아르메니아에는 러시아군의 기지가 설치되어 러시아군 병력이 약 3천~5천명 가량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의 이런 호의적인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2]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8세기[편집]


근세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카자르 왕조)의 지배를 받아 왔다. 아르메니아인들 중 일부는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었던 크림 칸국에서도 활발한 무역을 펼쳤는데 1778년 러시아 제국예카테리나 대제크림 칸국을 멸망시킨 후 크림 칸국에서 무역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제국의 신민으로 흡수되었다.


2.2. 19세기[편집]


오늘날 아르메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고대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주로 거주하였으나 중세 튀르크인들의 침공 이래 근대까지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1826~1828년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 일대에서 이란카자르 왕조 세력을 축출하면서 아르메니아 고원 일대를 점령함에 따라 상황이 변한다. 당시 러시아 제국 측에서는 아르메니아 고원 일대에 아제르바이잔계 주민들에 의해 조방적인 목축업이 주로 이루어져 생산성이 낮다고 보고 이란과 아나톨리아 일대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초청하여 정착시켰다. 카자르 왕조에서 박해받던[3] 아르메니아인 상당수가 오늘날의 아르메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아르메니아 고원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주 인구 구성은 아제르바이잔인 위주에서 아르메니아인 위주로 바뀌게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중세부터 수완 좋고 약삭빠른 상인들로 유명하였는데 러시아에 유입된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 외에도 러시아 제국 각지에 자리를 잡고 유대인 상인들과 경쟁하였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러시아 제국 측으로부터 적잖은 차별을 받았던 반면 아르메니아인은 '아시아 무슬림들로부터 핍박받는 불우한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심한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러시아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몽골-타타르의 멍에 혹은 서유럽인들과 자신들 사이의 이질감과 관련하여 자신들을 "아시아의 이슬람으로부터 유럽의 기독교를 보호하는 방파제"라는 식으로 자신들을 정의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런 정체성을 자랑하던 상황에서 이슬람 국가와 관계가 밀접한 기독교인 집단인 아르메니아인들을 탄압하기는 어려웠다.


2.3. 20세기[편집]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고향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하기 시작하였고 그 빈자리는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이 채우는 상황이 이어졌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유대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자리잡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에서 유대인 상인들이 독일계나 아르메니아계 상인들과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한편 1915년부터 1923년까지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 일어나면서 더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제국로 이주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활약한 아르메니아인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러시아에 저항했던 아르메니아인들도 있었다. 특히 아르메니아 고원지대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의 완전 독립을 요구하면서 러시아 제국에 저항하였다. 1918년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 및 이후 독립한 아르메니아 민주 공화국이 있었지만 결국 러시아에 다시 점령당했고 소련 시절에는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여기서 갈라진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소련 시절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소련에서 출세한 아르메니아인들은 대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출신보다는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출신, 그 중에서도 트빌리시 출신이 많았다.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인구만 많은 낙후된 변방 지대 취급을 받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영산으로 받들던 아라라트 산을 터키에 넘겨주기도 했다. 여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소외감을 느끼면서 소비에트 중앙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소련 시대는 한편으로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전성기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 수난사가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인을 중앙아시아 서투르키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적도 있었다.

소련 초기 스탈린은 레닌 시대에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을 중단시키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나히체반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 넘긴 적이 있다.

냉전 말기에는 고르바초프나고르노 카라바흐 문제를 포함한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분쟁 때 아르메니아를 편들기도 했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는 각각 수교했다.

1994년에 발생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러시아프랑스와 함께 이 전쟁을 중재하여 아르메니아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아르메니아는 러시아를 가장 지지하는 동맹 중 하나가 되었고 러시아의 각종 행보에 함께 발을 맞춰왔다.


2.4. 21세기[편집]


정치적 이유로 아르메니아는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와 여전히 친선관계를 유지했으며 대체로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물론 상술했듯이 러시아가(정확히는 소련 시절이긴 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을 편든 적도 있었고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친선 관계를 맺었음에도 몇몇 아르메니아 주둔 러시아군들이 아르메니아인에게 민폐를 저지르는 사례가 속출하는 데다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약소국이라고 앝보는 경향도 어느 정도 있어서 아르메니아 주민들 입장에서는 반러 감정도 일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터키 및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보다 훨씬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계속되는 분쟁에 러시아도 어느 정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비판하는 만큼 친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2.4.1. 2010년대[편집]


2014년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옹호하기도 했다. 다만 러시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보내는 송금액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대러시아 관계는 감정적인 호감과 의존에 가까운 것으로서 장기적으로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친러 국가로 유명한 세르비아벨라루스보다도 더 러시아를 좋아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감정적으로는 러시아가 싫지만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러시아와 교류해야 했던 조지아 같은 나라들과 대비해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 업체 갤럽이 2011년경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국민 4명 중 3명은 러시아에 대한 강한 호의적인 감정(Strong Pro-Russian Sentiment)을 품은 으로 조사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을 대표되는 러시아 지도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국민은 7%에 불과하며 75%의 아르메니아 국민은 푸틴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갤럽이 조사한 104개국 중 아르메니아 국민보다 러시아 정부에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나라는 불과 4개[4]에 불과하다. 즉, 아르메니아는 세계에서 5번째로 러시아 정부를 좋아하는 나라다. Global Poll Finds Strong Pro-Russian Sentiment In Armenia, RFEFL, 2011.8.9)

파일:crimea.png

2015~2016년경 미국의 싱크 탱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돈바스 전쟁으로 상징되는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책임이 있다(29%), 서방 국가들에게 책임이 있다(29%)로서 과반 이상의 아르메니아 국민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와 서방 진영을 탓하는 러시아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

또 2013년경 조사된 바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국민의 약 86%가 러시아 주도의 관세 동맹에 가입하는 것을 찬성하였으며# 2015년경 갤럽 아르메니아 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르메이나 국민 중 과반수(54.4%)는 러시아와 함께 가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EU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응답(11.1%)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파일:sovietStalin.webp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대러 감정은 러시아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까지 이어지는데 2015~2016년경 퓨 리서치 센터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련의 해체는 나쁜 일이었다'는 질의문항에 대해서 아르메니아는 과거의 소련 구성국 중 가장 높은 비율(79%)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이는 러시아 국민의 동의 비율(69%)보다도 높은 수치다. 또한 아르메니아 여론에서 특이한 점은 소련을 경험한 적이 없는 젊은 세대(74%)까지 중장년 세대와 비슷한 비율(82%)로 소련 체제를 긍정한다는 점에 있다. 다른 국가들은 소련의 황금기를 경험한 중장년 세대 위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다른 점이다. # 갤럽의 2013년 조사에서도 아르메니아는 소련 구성국 중 가장 높은 비율(66%)로 소련의 해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2018년 5월에는 친러 성향의 세르지 사르키샨 총리가 꼼수로 3선을 시도하다가 반정부 시위로 물러났고 친EU성향의 니콜 파시냔이 총리로 취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친러 기조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와는 긴밀한 외교가 진행 중이며 왕래와 교류도 여전하다.

실제로 니콜 파시냔은 선거기간 중에는 '아르메니아의 외교정책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면서 러시아를 비판한다든가 유라시아 경제 연합집단안보조약기구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식의 언급을 하였지만 막상 총리가 되고 나서는 "아르메니아 외교정책에 U턴은 없다(There will be no U-turns in Armenia’s foreign policy)"면서 말을 바꾸었고 유라시아 경제 연합집단안보조약기구에서의 탈퇴 입장도 번복하였다. 또 총리 취임 직후인 2018년 6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면담한 이후에는 그의 재임기간 중 아르메니아-러시아 관계는 더욱 특별할 것("more special")이라면서 과거 정부의 친러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시하였다#.[5]

니콜 파시냔이 집권한 2018년경 러시아 외교부장관이 발표한 성명서에도 이런 점이 드러나는데 러시아는 2018년에 일어난 정권교체 이후 아르메니아의 내정과 외교 면에서 미국의 간섭(Washington’s interference)이 증가하고 있으며 니콜 파시냔 내각에게 미국의 그런 협박과 압박(external blackmail and pressure)에 굴복하지 않고 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미국에 당당하게 저항할 것을 요구하였다#. 사실 말은 점잖게 했지만 사실 러시아 정부의 이런 발표는 니콜 파시냔에게 친서방 정책을 취하지 말라고 위협하는 경고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르메니아가 취할 수 있는 외교적 행보가 매우 좁다는 것을 방증하는 예.

파일:irl.jpg

2019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러시아에 대한 호감도가 여전히 미국 및 유럽에 대한 호감도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의 공화당 계열 비영리단체인 IRI(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가 조사한 보고서 Public Opinion Survey: Residents of Armenia#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국민이 러시아를 정치적 파트너(88%)로 느끼는 비율은 정치적 위협(12%)이라고 느끼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참고로 EU를 정치적 파트너로 느끼는 비율은 41%(정치적 위협은 1%), 미국을 정치적 파트너로 느끼는 비율은 39%(정치적 위협은 8%)에 불과했다.

아르메니아 국민이 러시아를 경제적 파트너(72%)로 느끼는 비율 역시 경제적 위협(19%)이라고 느끼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동일 조사에서 EU는 아르메니아 국민에게 경제적 파트너로 31%, 경제적 위협으로는 2% 가량 느껴진다고 조사되었으며 미국은 아르메니아 국민에게 경제적 파트너로 23%, 경제적 위협으로는 6% 가량 느껴진다고 조사되었다.


2.4.2. 2020년대[편집]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측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러시아군 헬리콥터 1대가 격추된 사건이 발생되면서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서도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와 달리 국경을 바로 접한 나라도 아니고 바다도 없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아르메니아를 도울 방법이 부족하다. 아르메니아를 둘러싼 나라 중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은 당연하고 조지아와 이란도 러시아 및 서유럽 국가들이 영토를 통과해 아르메니아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7일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니콜 파시냔 총리와 회담하고 양자 및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4월 24일에 푸틴 대통령과 니콜 파시냔 총리가 전화통화를 통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2022년 2월 말에 시작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두고 아르메니아는 기권했다. 터키랑 아제르바이잔이 찬성표를 던진 거랑 대조적. 정부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시민사회와 국민들도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차라리 침묵을 택하였다. #

2022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분쟁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가을 공세 때문에 자기 처지가 바쁘다는 이유로 아르메니아 본토가 아제르바이잔에게 공격당하던 상황을 방관하고 도움을 거절하였다. 이는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에게 약속한 안보 보증에 어긋나는 조치였으며 우크라이나에게 패퇴를 거듭하며 자기 앞마당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쇠퇴한 러시아의 모습에 실망한 아르메니아는 EU의 도움을 받아 영토분쟁을 마무리지은 뒤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 동원령에 놀란 많은 러시아인들이 해외로 도주했는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아르메니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뒤 아르메니아에 남겨나 경유지로 삼아 다른 나라로 빠지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심지어 처음 아르메니아로 도망칠 때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국경분쟁을 벌이던 중이었음에도 그랬다. 탈출한 러시아인들의 입국을 허락한 몇 안 되는 나라이기에 러시아인들은 도주를 받아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고마워했다. 정부와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지만 민간에서의 우호관계는 유지될 것으로 추측된다.

11월 23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집단 안보 조약 기구(CSTO) 회의에서 집단 안보 조약 기구가 회원국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한 편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하여 유럽연합에서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고,[6] 이는 2022년 아르차흐 봉쇄, 2023년 아르차흐 분쟁 당시 아르메니아 측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2023년 4월 8일 아르메니아가 나토 국가들 간의 군사 훈련 프로그램인 Defender 23에 참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아르메니아는 CSTO가 아제르바이잔 비판을 거부하자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했다.#

심지어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CIS 국가안전이사회 회의에 불참하였다. #

계속되는 아르메니아의 친서방, 반러 행위로 인해 패스코프는 서방이 러시아의 친구 아르메니아를 빼앗어 가려고 한다고 말하였다. #

그리고 푸틴을 영장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 가입에 이르기 한다.#

2023년 11월 20일에는 아르메니아가 우크라이나에 탄도미사일과 방공무기 등을 넘길 수 있다 하였다. #

3. 군사 교류[편집]


아르메니아는 독립 직후부터 캅카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 외교군사정책의 최전선으로 활동하였다.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직후인 1995년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는 정식 국교를 체결하였으며 당시 체결된 조약에 따라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인 귬리(Gyumri)에는 러시아군 남부군관구 일부 병력이 상주하는 제102군사기지가 설치되었다. 또한 예레반 인근 에레부니(Erebuni) 군사공항도 러시아 공군 전용 공군기지가 되었다. 2010년에는 해당 조약을 더욱 심화시켜 러시아군의 주둔이 2044년까지 연장되었고 그 대가로 러시아는 아르메니아군의 현대화를 도와주는 등 러시아군과 아르메이나군은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

아르메니아는 1997년에 러시아와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을 체결하였으며### 2001년에는 러시아군의 고문관을 받아들이는 추가 조약을 체결하였다 # 또 아르메니아는 2002년에 러시아가 창설한 집단안보조약기구의 설립 멤버이기도 하다.

물론 둘 사이에 트러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귬리에 상주하는 러시아군 제102군사기지에서 일부 러시아군 병사가 벌이는 일탈이 있으며 특히 러시아군 병사가 술에 취한 채 귬리시민을 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아르메니아에서는 반러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군 군사기지를 포기할 수 없다. 실제로 2015년 1월에는 러시아군 병사 발레리 페르먀코프가 아르메니아 일반 가정집에 쳐들어가서 7명을 죽이는 참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아르메니아 전역에서 반러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시민단체 Civilitas Foundation[7]가 독일과 스웨덴의 후원으로 2015년 6월경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아르메니아 국민 과반수(55%)는 러시아군 기지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고 그 이유는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첫번째로 꼽혔다. 러시아군의 계속된 비행에 반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안보가 더 중요하기에 러시아군의 존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아예 아르메니아의 안보를 타국에 맡겨야 한다는 응답도 17%나 되었는데 선호하는 안보 보증국으로는 러시아가 58%의 응답을 받아 1위에 올랐고 EU는 10%, 프랑스는 7%, 미국은 4%의 선호율을 보였다. NATO나 CSTO를 선호한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NATO는 그렇다치더라도 CSTO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러시아외 다른 CSTO 국가(카자흐스탄 등)는 아르메니아의 안보에 필요하지 않다는 내부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9월 12일 사상 최초로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한 아르메니아를 보고. 러시아는 이를 비난했다.##


4. 문화 교류[편집]


아르메니아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제국, 20세기 초반 이래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것의 영향으로 현대 아르메니아 문화에는 러시아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은 편이다. 아르메니아 국민 대부분이 일정 수준 이상의 러시아어 구사가 가능하다.

아르메니아는 친러 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어는 아르메니아에서 매우 중요한 언어에 속했다.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에 비해 러시아어의 사용 빈도가 높은 편이다.

예레반에서 러시아 센터가 문을 열었다.#(러시아어) 그리고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 문화-교육 센터가 문을 열었다.#(러시아어)


5. 경제 교류[편집]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러시아 기업들도 아르메니아에 진출해 있다.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경제적인 요소에 있다. 독립 이후 낮은 임금, 높은 실업률 등 불안정한 아르메니아의 경제상황으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노동 이주를 떠났다. 1992년부터 아르메니아에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백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 중 70%가 러시아로 떠났으며 이것은 15만에서 18만 가구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노동이주의 경우로 축약해 보았을 때, 아르메니아 노동이주자들의 94%가 러시아를 기착지로 선택하고 있다. 러시아로 떠나는 아르메니아 노동자가 많은 이유는 몇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덜하다는 점, 소련을 함께 구성했던 국가로서 문화적인 거부감이 적다는 점, 이미 러시아에 정착하거나 일자리를 구한 지인들이 많다는 점, 아르메니아가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기 때문에 러시아 입국 시 별도의 비자가 필요치 않다는 점 등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를 주요 노동이주지로 꼽는 이유이다. 노동 이주로 건너간 사람들은 주로 건설업, 서비스업, 자영업에 종사한다. 이들은 보통 이른 봄에 떠났다가 늦가을이나 겨울이 돼서 다시 모국으로 돌아온다.

러시아 내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형성과 특징


상당수의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러시아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소득을 아르메니아 본국으로 송금하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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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메니아 본토 내 인구는 290만여 명이고 러시아 연방 내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인구는 최소 118만여 명에서 최대 290만여 명이다. 부모나 조부모 중 한 쪽이 아르메니아계인 경우까지 추산하면 더 많아진다.[2] 아르메니아의 한 연구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를 신뢰한다는 아르메니아의 국민의 비율은 2011년 80%에서 2017년 64%로 떨어졌다.[3] 카자르 왕조의 전전전 왕조였던 사파비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을 주요한 세입원으로 여겨 우대하였으나 카자르 왕족들은 이런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특별히 뇌물을 열심히 바치는 가문만 보호해 주는 선에서 끝났다.[4]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말리, 우즈베키스탄[5] 사실 이런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대선 때마다 미국에 대한 갖가지 의견을 표출하는 대선후보가 많지만 어떤 후보든지 실제로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한국이 가지는 지정학적 가치와 역사,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하여 기본적인 친미 스탠스를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대선 후보의 대미관은 한국 대선 당락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 힘들고 대선 결과를 근거로 한국 대중의 친미/반미 정도를 분석하는 것도 넌센스에 가깝다.[6] 아르메니아에 육로로 원조가 이루어지려면 이란이나 러시아를 통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이란과 러시아 모두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7] 아르메니아의 전직 외교부장관 Vartan Oskanian가 창립한 시민단체. Vartan Oskanian는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서 세르지 사르키샨 등의 군부 세력에 비판적이었고 2016년에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성향의 친서방 정당 '통합당(Unity Party)'을 창설하기도 하였다.[8]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침략을 막기 위해 러시아군의 주둔을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