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네 오우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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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 국적의 우측 측면 미드필더. Loc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뛰어난 속도와 드리블을 지녔다. 아르헨티나 역사 상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클럽 경력[편집]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에서 유스 생활을 했지만, 첫 성인 계약은 라이벌이었던 데펜소레스 데 벨그라노와 맺었다. 데뷔 시즌, 아르헨티나 4부 리그인 프리메라 C에서 우승했다. 1973년,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에 의해 CA 우라칸에 영입되었다. 영입 첫 시즌, 메트로폴리타노 챔피언십[1] 에서 우승했다.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 상 최고의 팀으로 뽑히는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의 1973년 팀에서 오우세만은 핵심 자원이었다.
메노티 감독은 오우세만에 대해 마라도나와 가린샤를 섞은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1980년 우라칸을 떠난 뒤, 리버 플레이트에서 1년을 보냈고, 칠레의 콜로-콜로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마줄루 FC에서 1년씩 뛰었다. 1984년에는 인데펜디엔테에서 뛰었지만 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1985년 유스 시절을 보냈었던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로 돌아와서 보카 주니어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1974 FIFA 월드컵 서독에서 3골을 득점했다.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루을 상대로 한 6대0 승리에서의 1골 득점에 그쳤지만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차지했다.
4. 여담[편집]
오우세만은 알코울 중독으로 인해 커리어를 다소 빨리 마무리했다. 오우세만은 리버 플레이트를 상대로 한 득점에 대해, 술에 취한 체 출전했기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17년, 설암을 겪고 있음이 공개되었다.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는 의료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암 투병 도중, 2018년 3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월드컵 동료이자 친구였던 루벤 갈반이 세상을 떠난지 8일만이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최고의 공격수들 중 5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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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7년부터 1984년까지 존재했던 아르헨티나 축구 토너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