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모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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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코레아
레닌 모레노
기예르모 라소
다니엘 노보아

※ 에콰도르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에콰도르 제46대 대통령
레닌 볼타리에 모레노 가르세스
Lenín Boltaire Moreno Garcé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A_Len%C3%ADn_Moreno_%28Transmisi%C3%B3n_del_Mando_Presidencial_Ecuador_2017%29_%28cropped%29.jpg

출생
1953년 3월 19일 (71세)
국적
[[에콰도르|

에콰도르
display: none; display: 에콰도르"
행정구
]]

배우자
로시오 곤살레스 나바스(1953년생 / 1974년 결혼)[1]
자녀
3명
재임기간
제46대 대통령
2017년 5월 24일 ~ 2021년 5월 24일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서명
파일:Firma_Lic.Lenín_Moreno.png
1. 개요
2. 정계에 진출하기까지
3.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
4. 정책과 정계 갈등
5. 부패혐의



1. 개요[편집]


에콰도르의 46대 대통령.

레닌 볼타이레라는 상당히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름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가 태어났을 때 학교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붙여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볼테르를 존경했기에 아들의 이름을 '볼타이레'(볼테르의 스페인식 발음)라고 짓고 싶어했다. 결국 부부는 두 이름을 합쳐서 레닌 볼타이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이 와중에 이름을 기록하던 직원의 실수로 볼타이레(Voltaire)의 철자가 Boltaire로 바뀌어버렸다.[2]

이름과 다르게 레닌주의자는 아니다. 한참 뒤에 정계에 진출해서 지방의원으로 선출되었을때는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고 일반 표풀리즘 성향의 정당에 입당해서 의원직을 지냈다. 성향도 레닌처럼 혁명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전임 대통령인 라파엘 코레아에 비해서 크게 온화하고 말이 잘 통하며 개방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둥글둥글한 편. 다만 좌파 성향의 정치인은 맞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캐나다의 장 크레티앙과 더불어 장애인으로서 국가 최고위직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2. 정계에 진출하기까지[편집]


1953년생으로 에콰도르 남쪽 국경지역에 위치한 누에보 로카푸에르테에서 출생했고, 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졸업한 뒤로는 에콰도르 관광회의소에서 보조교사, 임원으로 일하다가 회사를 차리며 기업가가 되었다, 이후로 관광부로 이직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등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공직자로 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1998년에 쇼핑하러 갔다가 강도를 당했는데 그 강도가 총으로 위협하며 자동차와 지갑을 달라고 하기에 자동차 키와 지갑을 주었지만 그 강도가 레닌의 등에 총을 쏜 다음에 도망쳤다. 빨리 발견되었기에 일단 목숨은 건지기는 했지만 걸을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단순히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를 넘어 의사들도 회복불능이라며 포기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기에 하루 하루 고통속에서 실의에 빠졌지만 웃음치료법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유머책자를 매일같이 보았고 그렇게 자신의 유머감각을 갈고닦으며 장애에 대한 트라우마와 고통을 극복하게 되었다. 여전히 걸을 수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활과정을 거치면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공직에 복귀하면서 웃음치료법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 재단을 설립하였다.


3.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편집]


2005년에 정계진출을 모색하는 김에 라파엘 코레아와 친해지게 되었고,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라파엘 코레아의 러닝메이트로 나서면서 부통령이 되었다. 7년간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장애인의 권리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장애인 관련 인프라 확충에 대대적으로 나섰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나아지게끔하였다. 2013년 선거에서 부통령에 출마하지 않고[3] 그래서 반기문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에 에콰도르 대지진으로[4] 위기에 처한 라파엘 코레아가 레닌 모레노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대통령직에 출마하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고위직에 까지 오르면서 장애인 복지사업에 힘을 쓰는 행보를 보였고, 온화한 성격을 갖추워서 이미지가 매우 좋은 인물이기때문에 당초에 1차에 선거에서 40%를 훌쩍 넘겨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경기침체와 부패 문제로 인해 알리안사 파이스 당에 대한 심판여론이 고조되면서, 간발의 차이로 40%에 달성하지 못하고[5] 1차 선거에서 개표가 늦게 진행되면서 항의시위가 잇따라서 이미지에 다소 타격이 간채로 2차 선거에 진출하게 되었고, 라소와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기예르모 라소와 관련된 의혹들이 연달아 터지며 레닌 모레노가 다소 앞섰다가 선거 막판에 베네수엘라 대법원의 막장판결과 야당후보 피습미수사건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2%차이로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간 여론조사 기관에서 시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결과가 다르게 나왔기 때문에 라소 후보가 선거에 볼복했고 야권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졌지만 민간 시민단체 결과에서도 차이가 별로 없는것으로 나온데다가 미주기구와 남미국가연합에서 야권에게 선거에 승복하라는 투의 성명서를 냈고 미셰우 테메르,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마크리가 당선 축하 전화와 트윗을 날리면서 공인되는 분위기지만 멘붕으로 불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상당한 편이었다. 여담이지만 러시아 등지에서 레닌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SNS상에서 소련 군가와 함께 블라디미르 레닌을 언급하거나 러시아 혁명 같은 것을 언급하는 드립들이 줄을 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4. 정책과 정계 갈등[편집]


여하튼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언론이나 원주민 단체와 대립각을 세워서 관계가 나빴던 전임 라파엘 코레아와는 다르게 야권이나 언론, 원주민 단체와의 대화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있는데다 당초 IMF의 예상과 다르게 에콰도르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통계도 속속 나오는 호재까지 이어지며[6] 선거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나왔음에도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고 2017년 기준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정책에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이러저래 불만을 나타냈고 특히 기행을 일삼다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압달라 부카람과 면담하는것을 대놓고 비판하면서 타 남미국가에서는 한때 한솥밥을 먹었지만 후임자인 산토스가 온건노선을 타자 끝내 결별한 우리베와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처럼[7] 아예 결별수순을 밝는것이 아닌가하는 예상이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회복되기는 커녕 오히려 나빠져서 2017년 8월 들어서는 라파엘 코레아가 레닌 모레노의 대화 정책에 지속적으로 비판을 보내며 아예 알리안사 파이스당을 탈당할수있다는 트윗글을 올리며, 결별이 초읽기에 들어선것이 아닌가하는 관측이 많아졌으며, 관계가 이대로 지속적으로 악화될 경우에는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닌 모레노와 라파엘 코레아가 직접 맞붙는것이 아닌가하는 예상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8] 더군다나 이미 대선 이전부터 브라질 건설회사 관련한 계약으로 말이 많았던 부통령 호르헤 글라스가 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나왔고 이 때문에 레닌 모레노가 호르헤 글라스의 권한을 박탈시켜버리면서 호르헤 글라스와 레닌 모레노간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며, 코레아도 예산감축 문제를 놓고 레닌 모레노를 대놓고 비토하면서 2018년 내로 알리안사 파이스당이 분당될 것이라는 관측도 덩달아 나오고 있다. 2017년 하반기 들어서는 더욱 관계가 악화되어 라파엘 코레아가 자신의 영향력을 손수 이용해서 알리안사 파이스 당수직에서 해임시켰다. 당연히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반발했고 법원에서도 각하되었다.

2018년 개헌투표에서 레닌모레노는 7가지 조항 모두 찬성표가 반대표를 압도하면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처럼 빈민층에 대한 복지혜택을 무자비하게 없애는 일은 하지 않았던 점이 크게 주효했고 이전 정부에 있었던 라파엘 코레아는 레닌 모레노에게 너무 일찍 반격에 나선데다가 상당수 지지층이 레닌 모레노에게 흘려들어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할것을 주장하며 전선에 나섰다가. 정치적으로 4선 시도가 막혀버리는 등 크나큰 패배한 셈이 되었던 것이다. 2021년 대선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올 정도.

이후 4월에 FARC 이탈조직들이 레닌 모레노가 소에콰도르 기자들을 납치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데다가 외채가 급속히 증가할수있다는 에상도 나오면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가 라파엘 코레아 정권에 일어났던 비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다시금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라파엘 코레아가 소환조사 되는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면서 에콰도르 정계가 들썩거리고 있는 중이다. [9]

하지만 유류 보조금 폐지 계기로 일찍 위기가 찾아왔다. 한 때는 수도 대신 지방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결국 부패 의혹,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어려움와 겹치면서 재선을 포기하였으며, 히메나 페냐 의원이 대신 출마했다. 하지만 당 내 기반이 UNES로 다 빠져나갔고, 페냐 또한 무슨 대단한 대권주자도 아닌 그저 일개의 평범한 국회의원이었으며, 조직이 박살난 여당에서 대권주자들이 싸그리 다 탈락하자 얼떨결에 출마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듣보잡 취급을 받다가, 그래도 집권여당 후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1.54%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광탈했으며, 여당도 원외정당으로 기어이 추락했다.


5. 부패혐의[편집]


에콰도르 최대 수력 발전소를 중국 기업인 중국수전에 맡겼는데 댐이 붕괴될 위험에 쳐했고, 이 와중에 일가가 중국측으로부터 990억원대 뇌물을 받은 것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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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스페인어에서 V와 B의 발음은 거의 같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실수라고 한다.[3] 대신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인물은 호르헤 글라스다. 하지만 브라질 건설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거나 부통령임을 이용하여 권한을 남용하거나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사는 등 여러가지로 구린말이 나오기때문에 평은 별로 좋지않다. 어쨌거나 레닌 모레노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서 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레닌 모레노 당선 이후로는 재판에 출두받는 등 여러모로 곤란한 처지가 되었고, 부패에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가 나온 후에 레닌 모레노 대통령에 의해서 권한을 박탈당했다. 일단 부통령직은 유지되었지만 사실상 권한은 없는 반쪽짜리 부통령이 된것.[4] 다만 대선 불출마는 이전부터 선언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간을 보던 상황이기는 했는데 유가폭락으로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완전히 단념해버린것.[5] 정작 알리안사 파이스 당은 39%의 득표율로 국회의석 과반은 달성했다.(74석/137석) 야당들이 위낙에 득표를 잩게잩게 나눠먹은데다가 상위권 정당들에게 의석을 좀 더 몰아주도록 하다보니 소선거구제와 비슷한 효과를 낸것 [6] 당초 IMF에서 에콰도르의 경제성장률이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것으로 예측했고, 여타 민간기관에서도 0% 성장률을 예측했으며 심지어 국립은행인 에콰도르 은행에서조차도 0%대 성장률을 예측하고 있었지만 막상 예상과는 다르게 일단 성장세를 유지는 하고 있고(물론 분기당 2-3% 가량의 수준으로 2016년 하락분을 보충하는 수준이기는 하다.) 실업률도 5%대에서 4%대로 낮아졌고, 그에 따라서 세수도 2016년 대비로 10% 정도 늘어났다. 물론 경제가 크게 성장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 고용비율이 늘어났고, 재정적자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지만.[7] 산토스 대통령 우리베가 대통령직을 지냈을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반군들에게 강경책을 내세우며 반군들의 세를 줄인 덕택에 후임 대통령이 되었지만 막상 취임한 뒤로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반군과의 평화협상에도 돌입하자 우리베가 이를 비난하며 관계가 틀어졌다. 사실 따지고보면 자신을 장관과 총리로 기용해준 은인이라 할수있는 톨레도 전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은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이나(물론 PPK도 부패논란에 휘말려서 물불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때 룰라와 호셰프의 공덕을 톡톡히 봤음에도 끝내 탄핵에 동참해서 대통령직에 등극한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에 비하면 약과다.[8] 2017년 대선에서 48.8%의 득표를 얻은 기에르모 라쏘가 파나마 조세 피난처 재산은닉 문제때문에 사실상 발이 묶였다는 점(총선, 대선 1차 투표와 같이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둔 사람이 공직자 진출을 할수없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과 여타 대권주자들이 하나같이 라파엘 코레아만한 업적과 인지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레닌 모레노가 어느정도의 성과를 올리기만 한다면 2021년 대선에서 이 둘의 양자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9] 비슷한 사례로 우리베는 라파엘 코레아와 마찬가지로 공과 과가 엄청나게 엇갈리는 정치인으로 치안향상과 경제성장에 기쳐했다는 평을듣고 있지만 동시에 인권탄압이나 야당의원 사찰, 언론협박, 민병대 및 조폭들과 연관 성 등 라파엘 코레아보다도 욕을 먹을 거리가 하도 넘치기 때문에 증거를 제대로 잡기만하면 한방에 날려버릴 증거들이 차고 넘치고, 실제로 사례 몇건은 재판받고있는 중이고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구속은 되지 않았는데 물론 안보 프레임이 크게 작용한데다가 이후로도 의원으로 재직하기도 했기 때문에 잡기 힘들었다는 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