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들리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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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들리 킹의 역임 직책


토트넘 홋스퍼 FC 주장

제이미 레드냅
(2003~2004)

레들리 킹
(2004~2012)


마이클 도슨
(2012~2014)


토트넘 홋스퍼 FC 앰버서더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파일:firstteam_staff_ledleyking.png

이름
레들리 킹
Ledley King
본명
레들리 브렌턴 킹
Ledley Brenton King
출생
1980년 10월 12일 (43세)
잉글랜드 런던 타워햄리츠 보우
국적 [1]
[[잉글랜드|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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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앤티가 바부다|

앤티가 바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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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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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8cm / 체중 85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2]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선수
토트넘 홋스퍼 FC (1996~1999 / 유스)
토트넘 홋스퍼 FC (1999~2012)
지도자
토트넘 홋스퍼 FC U-18 (2014~2016 / 코치)
토트넘 홋스퍼 FC (2020~2021 / 코치)
기타
토트넘 홋스퍼 FC 앰버서더 (2012~ )
국가대표
21경기 2골 (잉글랜드 / 2002~2010)
등번호
잉글랜드 대표팀 - 15번[3], 20번[4]
토트넘 홋스퍼 FC - 26번[5]
주발
오른발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은퇴 이후
6. 기록
6.1. 클럽 기록
6.2. 국가대표 기록
6.3. 대회 기록
6.4. 개인 수상
7. 여담
8. 말말말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좋은 신체 조건과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으나,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세계 최상급의 유리몸 수비수라서 가진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선수다.

'재능을 따라가지 못한 신체' 레들리 킹


2. 클럽 경력[편집]


1998년에 토트넘 홋스퍼 FC에 입단, 1999년 더비 카운티 FC와의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날 로리 델랍[6]의 태클을 당하면서 무릎 수술[7]을 하게 되었고,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점차 경기를 늘려가며 경험을 쌓기 시작했으며 2000-01시즌에는 리그 17R 브래드포드와의 경기에서 EPL 최단시간 득점 기록인 9.7초 만에 득점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고 주장 완장까지도 차게 된 킹이지만, 06-07시즌을 기점으로 잦아진 부상과 수술로 결장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으며, 이게 점점 심해지며 완벽한 유리몸이 되어버린 것. 뛰어난 재능에 비해 부상으로 빛을 못 본 안타까운 케이스다.

10-11시즌에는 팀 동료 조너선 우드게이트도 알아주는 유리몸이라서 토트넘은 킹과 우드게이트 외에도 마이클 도슨, 유네스 카불, 윌리엄 갈라스, 세바스티앵 바송까지 4명을 더해 총 6명의 중앙수비수 자원을 구비해놓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킹은 이 시즌에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우드게이트와 함께 주장 완장과 부주장 완장을 차고 병원에서 드러누웠다(...). 그나마 우드게이트는 챔피언스리그 16강 AC 밀란과의 1차전에 부상 회복 후 출전했으나 또 부상당해 FC 호스피탈로 돌아왔다(...).

11-12시즌에도 변함없이 부상 → 복귀 후 경기 → 다시 부상 테크를 반복하며 뛰었는데, 2010년 8월 부터 2011년 12월까지 참여한 경기 16경기중 14승 1무 1패,, 참여하지 않은 경기 37경기 14승 13무 10패라는 전적은 그가 왜 토트넘 수비의 핵심인지 알려주고 있다. 심지어 2011년 12월까지 참여한 최근 10경기에서 9승 1무[8]를 거두며 토트넘 수비의 핵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실이다. 과거 아스널 FC 팬들이 로빈 반 페르시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그 기분을 토트넘 팬들은 레들리 킹을 보면서 느꼈다.

그러나 부상이 계속되면서 킹은 은퇴를 결심, 2012년 6월 32세의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실력 덕분에 잉글랜드 국가대표에도 자주 뽑혔지만 역시 출장 경기 수는 별로 많지 않다. 2002년 3월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에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지만 A매치 통산 기록은 21경기 2골로 낮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에는 최정상급의 라인이라 불리우는 퍼디난드-테리 라인이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에 출전 빈도는 높지 않았다.

커리어 내내 부상으로 꾸준히 뽑히지 못해 UEFA 유로 2004에는 출전했지만 그 이후 2006년 월드컵은 부상으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비오 카펠로 당시 잉글랜드 감독은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제한된 출전만 할 수 있는 킹을 선발해 잉글랜드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 발탁시켰고 미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 출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준수한 신체조건에 빠른 스피드까지 갖췄으며, 여기에 수비 지능도 좋아서 상당히 좋은 기량을 보여줬다. 킹은 수준급 피지컬을 굉장히 잘 활용하다 보니 테크닉과 스피드가 있는 공격수를 잘 잡아냈는데, 아스날 시절 티에리 앙리도 자신의 치달이 먹히지 않는 유일한 선수라며 혀를 내둘렀고 06-07 시즌 첼시 시절의 아르연 로번과의 1:1 경합에서 스피드에서 지지 않고 태클로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리버풀 시절의 루이스 수아레스도 킹과 조우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다. 수비 때 경거망동을 하지 않으며 정확한 태클로 상대의 공을 뺏는 모습을 보이며 선수생활 내내 옐로우 카드 8장이 전부이다. 레드카드는 받은 적이 없다. 런던 라이벌들을 제외한 타팀의 스탭들도 부상이 아니라면 잉글랜드 국대 중앙 수비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거라고 평하는 선수. 토트넘 팬들은 킹이 출전하는 경기는 반드시 승점을 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했던 선수다.

그러나 그놈의 무릎 부상이 문제. 킹은 99-00시즌부터 11-12시즌까지 총 13시즌을 토트넘에서 뛰었음에도 통산 출장 경기 수가 264경기로, 한 시즌 평균 20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한 시즌에 보통 40~50경기 이상[9]을 뛴다고 가정하면 매년 절반 이상을 드러누웠다는 소리인데, 로테이션을 비교적 적게 돌리는 수비수치고 엄청난 결장수가 그가 얼마나 최정상급의 유리몸인지를 증명한다. 특히나 중요한 경기에서 부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머리를 아프게 했다.

킹이 고질적 무릎 부상으로 고생한 이유는 무릎 연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0] 덕분에 뛸 때마다 무릎 뼈끼리 부딪혀 한 경기를 뛰면 무릎이 부어올라 1주일 이상 경기에 뛰기 힘들 정도가 돼버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쫓겨나지 않고 주장 완장까지 꿰차고 있는 이유는 바로 킹의 실력 때문. 한때 토트넘의 센터백 자원이 적었고 킹이 부상당한 시절에 토트넘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부진을 겪었으며, 이러한 몸상태를 가지고도 최대한 아껴가면서 출전을 할 때마다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토트넘의 주장을 달 수 있었다. 당시 감독인 해리 래드냅도 대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도 없는 몸으로 어떻게 실력을 유지하는지 신기하다고 말할 지경이다.


5. 은퇴 이후[편집]


파일:nl_aug25_ledley.jpg

은퇴 이후 토트넘의 앰버서더로 일하고 있다가 2014년 7월 23일 토트넘 U-18팀의 파트 타임 코치에 선임되었다.

최근 스포츠기자 이성모와 레들리 킹의 근황과 선수본인에 대한 이야기, 이영표, 손흥민에 대한 의견을 밝힌 인터뷰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자

파일:led730k.jpg
13/14시즌이 끝난 후에는 현역 시절을 함께 했던 선수들과 함께 이른바 'Ledley King's Guest XI'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려직접 유니폼을 입고 레전드들과 함께 토트넘 현역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하였다. 이날 경기 주심이 하워드 웹이었는데, 현역 선수들의 패스를 가로막고(!!!) 드리블하던 웹에게 홀트비가 태클을 거는 재미있는 장면도 연출하였다. 라인업을 보면 선발 라인업만 해도 킹과 함께 스콧 파커, 에드가 다비즈,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테디 셰링엄, 다비드 지놀라 등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던 레전드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고, 그 외에도 선발과 벤치에 닐 설리번, 테무 타이니오, 폴 로빈슨, 윌손 팔라시오스, 루이 사아, 세바스티앵 바송, 파스칼 심봉다 등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11] 당시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한편 킹의 은퇴 후 15-16시즌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의 지휘 아래 리그 우승에 근접했지만, 시즌 막바지 팀을 응집해주는 베테랑 선수의 부재로 자멸하면서 3위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첼시전에서 손흥민위고 요리스를 제외한 토트넘의 모든 선수가 난폭한 행위로 경고를 받으며 자멸하는 모습이 대표적. 이로 인해 당시 토트넘 팬들은 "레들리 킹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수도없이 했다.

이후 토트넘 U-18 코치도 역임하였다가 U-21 코치였던 맷 웰스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간 토트넘 수비 코치들을 돕고 있었다고 하며 , 무리뉴 감독의 전력분석관 히카르두가 다음시즌 토트넘을 떠나게 되자 무리뉴는 구단 관련인을 데려오겠다고 했다가 킹을 언급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코치직에 부임하였다.

2019-20시즌 38경기 중 클린시트가 6경기 뿐이었던 토트넘은 레들리 킹의 합류 이후 2020년 12월 7일 기준 리그에서만 11경기 중 5경기의 클린시트에 9실점으로 초반에 리그 최소실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8 - 19 시즌에 만족스럽지 못했던 에릭 다이어는 부족했던 예측력이 눈에 띄게 상승해 국가대표에서도 다시 부름을 받았으며, 나이 먹고 폼이 죽었다고 평가받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도 이전 전성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어서 부임한 지 초반에는 레들리 킹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주제 무리뉴 경질 후에도 1군 코치진들중 유일하게 잔류, 라이언 메이슨 감독대행을 보조하였다. 이후 누누 이스피리투 산투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코치직에서 물러났으며, 앰버서더 활동을 하면서 정식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2년 7월 16일, 쿠팡플레이에서 주관한 세비야 FC와의 한국 친선 경기에도 동행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리포터는 신아영.


6. 기록[편집]



6.1. 클럽 기록[편집]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2]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8-99
토트넘 홋스퍼
1
-
-
-
-
-
-
-
-
-
-
-
1
-
-
1999-00
3
-
-
-
-
-
-
-
-
-
-
-
3
-
-
2000-01
18
1
1
3
-
-
-
-
-
-
-
-
21
1
-
2001-02
32
-
-
6
-
-
-
-
-
-
-
-
38
-
-
2002-03
25
-
1
-
-
-
-
-
-
-
-
-
25
-
1
2003-04
29
1
4
4
1
-
-
-
-
-
-
-
33
2
4
2004-05
38
2
-
8
1
-
-
-
-
-
-
-
46
3
-
2005-06
26
3
1
-
-
-
-
-
-
-
-
-
26
3
1
2006-07
21
-
1
-
-
-
6
-
-
-
-
-
27
-
1
2007-08
4
-
-
4
-
-
2
-
-
-
-
-
10
-
-
2008-09
24
1
-
2
-
-
3
-
-
-
-
-
29
1
-
2009-10
20
2
-
1
-
-
-
-
-
-
-
-
21
2
-
2010-11
6
-
-
-
-
-
3
-
-
-
-
-
9
-
-
2011-12
21
-
-
2
-
-
-
-
-
-
-
-
23
-
-
14시즌
통산
268
10
8
30
2
-
14
-
-
-
-
-
312
12
8


6.2. 국가대표 기록[편집]


소속 대표팀 }}}
연도 }}}
경기 }}}
득점 }}}
도움 }}}
잉글랜드
2002
1
-
-
2003
1
-
-
2004
9
-
-
2005
4
-
-
2006
2
-
-
2007
2
-
-
2008
-
-
-
2009
-
-
-
2010
2
1
-
통산
21
1
-


6.3. 대회 기록[편집]




6.4. 개인 수상[편집]




7. 여담[편집]


  • 웨스트햄의 수비수 벤 존슨과 사촌지간이다.
  • 유소년 시절부터 토트넘에서만 뛰었던 레들리 킹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클럽과 영국 길거리 예술 창작자 머월스이 협력하여 25피트의 벽화를 제작했다.
  • 레들리 킹 은퇴 이후 토트넘에서 그의 등번호인 26번을 사용한 선수는 아직 없다.


8. 말말말[편집]


그는 훈련을 할 수 없었음에도 리그내 최고의 수비수였다. 완벽한 괴물이다

해리 레드냅


그는 영국 최고의 센터백이다. 이 나라 최고의 중앙 수비수 혈통을 이어가는 선수

제이미 레드냅


그는 아무런 접촉 없이 경기를 펼친다. 그는 어떤 파울도 하지 않고 공을 얻어낸다.

내 셔츠를 잡지 않고도 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비수이다.

티에리 앙리


의심할 여지없이 킹은 영국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다.

파비오 카펠로


그는 내가 본 최고의 센터백이다

마틴 욜


[1] 부모님이 앤티가 바부다 혈통을 가지고 있다.[2] 데뷔 초창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라이트백으로 많이 뛰었다고 한다. 당시 10대 선수가 주전 센터백을 뛰기에는 너무 경험이 부족한 데다 그 당시 토트넘에는 훗날 희대의 배신자가 될 솔 캠벨이라는 훌륭한 센터백이 있었기 때문.[3] UEFA 유로 2004[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5] 공식적인 영구 결번은 없으나 킹의 은퇴 이후 26번을 받은 선수는 없다.[6] 스토크 시티 FC 시절 인간 투석기로 불렸던 롱스로인의 달인인 그 선수 맞다.[7] 단 이성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킹은 이 수술 이후로도 오랫동안 큰 문제가 없었다며 델랍의 태클은 이후 고질적으로 이어진 무릎 부상과는 무관하다고 했다.[8] 심지어 그 1무도 킹이 부상으로 중간에 빠진 경기였다.[9] EPL은 리그만 해도 38경기이고, 2개의 컵대회와 유럽 대회도 있어서 EPL 정상급 팀은 1년에 60~70경기까지 소화한다.[10] 연골이 없으면 징병검사가 빡세다는 한국 군대에서도 5급 전시근로역, 다시말해 면제 대상이다.[11] 재밌는건 아닐 명단에 있던 토트넘 현역 선수들 가운데 2022년 1월 기준 스쿼드에 남아있는 선수는 당시 만 18세의 꼬꼬마 유스 선수였던 해리 윙크스 단 한명이다. 당시 1군 주전급 선수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거의 전부 다 팀을 떠난 상태. 그리고 그 윙크스도 202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삼프도리아로 임대되면서 2022-23 시즌 기준으로 이 때 명단에 있던 토트넘 선수들은 현재 스퍼스에 아무도 없다.[12]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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