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푸앵카레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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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


Raymond Poincaré (1860년 8월 20일 ~ 1934년 10월 15일)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 총리대통령을 지낸 정치인. 동시대의 유명한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와는 사촌지간이다.

2. 생애


1860년 뫼즈 지역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서 법률을 전공한 뒤, 27세였던 1887년에 국민회의[1]에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소장파 보수주의자들을 지칭하는 '푸앵카레주의'라는 신조어[2] 를 만들 정도로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다가 1912년에 수상으로 취임하며 1913년에는 대통령이 되었다.
유럽의 열강 사이에서 충돌이 격화되던 이 시기에 그는 반독사상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펼친다. 총리로서는 러시아 제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여 삼국 협상을 더욱 굳건히 만들었고,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1914년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마른 전투에서 보이듯이 강한 항전의지를 가지고 독일 제국과 맞서 싸웠다.
1917년 무렵부터 기나긴 참호전에 지쳐 프랑스 내부에서 염전사상이 짙어져 가자[3] 단호한 항전의지를 보여주던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4]를 총리로 임명하여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총리였던 클레망소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모든 실권을 사실상 잃어버린데 이어 베르사유 조약 등의 조건을 놓고 강화에 반대[5]하다가 1920년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된다.
2년 뒤 다시 수상으로 취임한다. 그의 반독일 경향은 여전해서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한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하자 벨기에와 함께 무력을 동원하여 루르 일대를 점령하는 외교적 초강수를 둔다. 그렇지만 이는 독일 내에서 극심한 반발과 더불어 사보타주만을 일으켰을 뿐이고[6] 독일에게 동정적이었던 영국과 미국과도 엄청난 외교적 마찰을 초래하면서[7] 결과적으로는 프랑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뿐이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한 불황까지 더해지면서 1924년 푸앵카레는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후 1926년 다시 한 번 총리직에 오르지만 고령으로 인해 1929년 정계를 은퇴하고 1934년 파리에서 사망한다.
[1]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하원 역할을 하던 의회이다. 상원의 기능을 하던 의회는 원로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2] 다만 이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조르주 클레망소를 위시로 한 푸앵카레의 정적들이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 만든 신조어이다. 수구꼴통 정도의 뉘앙스인건가[3] 최전선 군부대에서부터 폭동이 일어나는 지경이었고, 프랑스 정부는 장병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무의미한 공세를 중단할 것을 약속해야 할 상황이었다.[4] 이 시기 클레망소가 한 유명한 말이 바로 '나는 싸운다.'[5] 당연히 너무 가혹해서가 아니라 너무 유약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서 강화를 반대한 것이었다. 후일 회고록에서 푸앵카레는 자기가 실권을 쥐고 있었으면 라인란트 일대를 점령하는 것은 기본이고 독일 제국 영내로 계속 진격할 것을 명령했을 거라고 밝혔다.[6]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에서부터 이를 갈면서 루르 일대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명령했다. 물론 프랑스는 자국 노동자들을 데려와서 노동력을 메꾸긴 했지만..[7] 어찌나 영불이 이 때 서로 싸웠던지 하마터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동맹이 파기될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