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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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도 영화에 대한 내용은 레바논(영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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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레바논은 서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다. 레반트에 속하며 시리아·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베이루트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아랍어 정식 국호는 루브난 공화국(الْجُمْهُورِيَّة اللُّبْنَانِيَّة / al-Jumhūriyya al-Lubnāniyya)이며 레바논 아랍어 방언으로 [lɪbˈneːn](리브넨)이다. 공용어인 프랑스어 정식 국호는 리방 공화국(République libanaise)이다.
국호인 레바논은 이 나라에 있는 산맥인 레바논 산맥에서 유래했는데, 레바논(Lebanon)이라는 표기는 사실 영어 어휘를 한국어 독음으로 읽은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코이네 그리스어로는 리바노스(Λίβανος / Líbanos)라 표기했으며 프랑스어로는 리방(Liban)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고전 히브리어 표현인 르바논(לְבָנוֹן / ləḇānôn)에서 유래하며 '희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산맥에는 실제로 만년설이 쌓여 있다. 1년 내내 눈이라고는 볼 수 없는 중동에서 흰 산봉우리는 분명 외지인의 눈에 확 띄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기록과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부터 이 지역은 산의 이름으로 불리고 구약성경에서 수십 차례 지역명을 거론한다. 성경에서 레바논을 언급할 때 높고 당당한 이미지로 쓴다. 이 공화국의 민족적 분류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이나 '페니키아'와 비교하면 성경의 '레바논'은 굉장히 좋은 어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다리는 순금받침대 위에 선 대리석 기둥,
그의 모습은 레바논 같아
송백나무처럼 훤칠하다오
2.2. 국기[편집]
국기는 1943년 레바논 공화국 건국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빨강은 희생을 상징하고 하양은 평화와 레바논의 산들을 덮고 있는 흰 눈을 상징한다.
중앙에 있는 나무는 레바논 삼나무(백향목)이며 국목(國木)이다. 성경에서도 언급되는 유명한 목재로 불변·불멸을 상징한다. 생물학적으로 내구성이 높은 삼나무 계열이고 특유의 향기도 있어 장력이 많이 걸리는 현악기에 사용한다. 다윗왕 시절부터 마구 벤 나무라 요새는 복구사업에 집중한다.[3]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에는 프랑스의 삼색 국기 사이에 백향목이 들어간 깃발로 독립 이후 프랑스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로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변경하고 세로형을 가로로 바꿔서 지금의 국기가 된다.
오스트리아 국기와 비슷하나 백향목이 있어서 구분이 되며 빨강과 빨강 사이의 간격도 백향목으로 조금 벌어진 모습이다.
2.3. 국가[편집]

3. 자연[편집]
영토가 정말 작아서 그 소국이라는 이스라엘의 영토의 반이며 경기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지중해에 접한 좋은 위치 덕에 옛부터 좋은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중동의 진주라는 별명도 있다. 고대에는 전국이 백향목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현재 숲은 국토의 약 13.4%만을 차지하며 건조한 여름철에 산불이 잦아 골칫거리다. 오랜 개발로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백향목이 거의 남아나지 않으나 꾸준히 숲을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 레바논 환경부는 숲을 국토 면적의 20%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은 매년 2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중동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브샤리(Bsharri, بشري)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고도가 높아 눈이 많이 오며 백향목이 보존된 유일한 지역이다.
4. 역사[편집]

페니키아의 직계 후손이다. 레바논인들 스스로 그렇게 인식하며 유전적 근거 역시 있다.
5. 정치[편집]

6. 군사[편집]

7. 경제[편집]
1960년대에는 중동 무역과 금융의 허브로 호황을 누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내전의 영향으로 투자가 줄어들고 사회간접자본이 파괴되면서 경제가 몰락한다. 1990년에 내전이 끝나고 경제가 회복하지만 팔레스타인 난민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견제와 미국의 헤즈볼라 제재, 2010년대 시리아 내전의 여파와 난민 대규모 유입, 관광업 침체로 경제사정이 많이 어렵다. 특히 실업률과 정부 부채 문제가 매우 심각한 골칫덩어리다. 레바논의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이유는 전후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꿔서인데 보통은 전후복구를 한 다음에 경제 성장 과정을 거쳐 경제 규모와 세수가 늘어나는 식으로 부채비율이 줄어들어야 되지만 문제는 레바논은 내부 불안이 여전히 심각해서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관광업은 테러 때문에 수시로 타격을 입어 한계가 있고 다른 부문의 투자도 정세가 불안해 투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대체로 시원치 않다.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아랍 국가와 유럽과도 교역을 활발히 한다. 주요 수출품은 보석 가공품, 의류, 농산품, 식품, 직물, 목재가공, 인쇄품이며 중동에서 비교적 세속적이고 역사 유적이 많은 영향으로 관광 사업도 비중이 크다. 레바논을 여행하는 관광객 상당수는 걸프 아랍 왕정국의 사람이다.
아르메니아와 비슷하게 해외 거주 교민은 부유하지만 본국 경제는 중진국 수준이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불리한 지리적 조건이 큰 이유지만 레바논의 경우 상술한 대로 내부의 종파 갈등과 사회 불안정으로 인한 투자 감소가 원인이다.
2020년 들어서 코로나 19와 중동 내전의 불안에 8월 베이루트 폭발까지 겹쳐 3중고 신세가 되면서 레바논 경제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2019년까지만 해도 1인당 GDP가 투르크메니스탄과 비슷한 8천 달러 수준이었지만 2020년엔 2천 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투르크메니스탄은커녕 베트남보다도 못해졌다. 인플레이션은 100%를 넘었고 소비자물가는 치솟으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 베이루트 폭발을 위로하고 원조를 논의하기 위해 레바논을 방문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게 시위대가 다시 레바논을 지배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2022년 현재 레바논은 최악의 상황이다. 첫번째로 화폐가치가 폭락했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2년간 90%가 폭락해버렸다. 레바논은 1997년 이후 고정환율(달러당 1507파운드)을 유지해왔는데 암시장에서는 1달러당 1만 9150파운드로 2만 파운드에 육박한다. 화폐가치가 폭락했으니 연료수입을 못하고 연료수입을 못하니 발전소를 돌리지 못해 하루 22시간이 단전됐다. 연료가 없으니 주유소에 가도 당연히 기름을 넣기 어렵다. 6월 29일에는 휘발류와 경유값이 40%나 인상되었다. 식량인 밀가루도 돈이 없어 수입을 못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나 돈이 없으면 레바논 공군은 군용헬기를 관광용으로 운영해서 기름값이라도 벌어보려 고군분투한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 와중에 2020년 8월 베이루트 폭발사고로 내각이 총 사퇴한 후 2021년 시점에야 내각이 구성되나 2022년 1월까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레바논은 과거 식민지배국이었으며 현재도 레바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프랑스와 국제사회에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하는 중이다. 프랑스가 레바논에 분기별로 한화로 수천억 원가량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보내주는 덕에 레바논 정부가 어떻게든 연료와 식량 보급을 지속한다.
2022년 3월 베이루트에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민간인들은 자가 발전기를 쓰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곡물값이 올라 식량난에 시달린다.# 2022년 4월 사아데 샤미 레바논 부총리가 국가파산 발언을 시사했으나 리아드 살라메흐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가 황급히 진화했다.#
레바논의 주식은 밀이며 95%의 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있어 두 국가의 전쟁으로 인하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8. 사회[편집]
레바논은 수십여 종파가 공존하는 다종교 나라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주된 종파는 마론파(가톨릭 기독교)와 수니파 그리고 시아파이다. 그래서 기독교 축일과 이슬람 축일이 나란히 공휴일이다. 축일이 각 종파별로 날짜가 다를 경우에라도 공휴일로 지정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각각 두 번씩 쉰다. 금요일은 평일이고 일요일은 주말 휴일이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점심시간을 늘려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배려한다. 다양한 종교로 인해 공식적인 인구 조사는 1932년 이후 실시하지 않고 복잡한 종파 구성과 통계 산출의 어려움에도 추정되는 바에 따르면 무슬림 인구 수가 54%으로 과반을 차지하며 기독교도 역시 40%를 넘어 비율상으로 따지면 중동 제1의 기독교 국가다. 이슬람에서 이단 취급받는 소수종파 드루즈교인 역시 20만명 넘게 산다. 종파간 비율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독교는 마론파가 다수인 가톨릭교회가 약 26%, 정교도가 8%,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개신교 등 기타 소수 기독교 분파가 6.5% 정도다. 이슬람의 경우는 수니파가 27% 시아파가 27%로 양분하며 시아파 내부적으로는 알라위파와 기타 분파들로 또 갈라진다. 여기에 일단 레바논 인구에 집계되지 않지만 최근 레바논으로 들어온 대부분이 무슬림인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난민 150만여 명을 포함하면 무슬림 비율은 더 높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은 기본적으로 수니파와 정교회 교도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타 종파에서 위기감이 돈다. 물론 3대 종파에 밀려 세가 약했던 정교회 측에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 원래 오스만 제국 시절인 1913년 레바논의 인구 41만 명의 대부분(79.4%)이 기독교도였고 무슬림은 20.6%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면서 무슬림이 다수인 베카 계곡 등이 레바논에 편입돼 1932년 센서스에서는 기독교인의 비율은 52.4%로 떨어지고 무슬림의 비율이 39%까지 올라갔다. 이후 기독교인들이 대거 해외로 유출[4] 되고 난민을 받는 등의 결과로 기독교-이슬람 인구가 역전된다.
다만 52.4%라는 비율은 기독교도들을 지원해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자 했던 프랑스 위임통치 정부가 1932년 조사 당시 외국에 있는 레바논 기독교도들까지 포함시켜 실상을 조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구 87만 5,252명 중 기독교도가 45만 8,987명으로 여타 집단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은 기독교도와 무슬림 비율이 같거나 후자가 살짝 우세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러한 각색된 결과로 레바논 의회의 의석 배분에 있어 기독교도와 무슬림 비율을 6대 5로 설정하고 이는 독립 후에 그대로 적용되어 사실 5보다는 6에 가까웠던 무슬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내전의 씨앗이 된다. 천년 이상 공존하던 레바논의 아랍인들이 십자군 이후 최초로 종교를 따라 대립하게 된 것이다.
본국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인구가 더 많은 민족으로 흔히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을 꼽지만, 사실 레바논이 저 셋을 뛰어넘는 끝판왕이다. 이스라엘과 아르메니아는 일단 본국 인구가 더 많고 세계 각지의 해외인구를 모두 합쳐야 본국 인구보다 많은 거지만 레바논은 본국이 670만인데 비해 브라질에만 무려 700만 명의 레바논계 브라질인이 산다. 또한 아랍계 아르헨티나인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 아르헨티나에도 130만명의 레바논계 아르헨티나인이 살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이들 아랍계 주민들(물론 시리아계나 팔레스타인계, 알제리계, 모로코계, 이집트계 아랍인 이민자를 다 포함해서)을 투르코(turco)라고 불렀다. 오스만 제국에서 와서다. 이들은 주로 장사를 하며 먹고 살았는데 도심지와 오지를 오가며 몇 배의 이득을 보면서 파는 식으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의외로 대성을 한 경우가 많으며 중남미 정재계에 이들 아랍인이 많이 진출했다. 미셰우 테메르, 압달라 부카람 등이 레바논계로 대통령까지 했으며 이 외에도 거물급 인사 중 레바논계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다 대성을 한 건 아니라 빈민촌에서 어렵게 살거나 마약이나 조폭 등 안 좋은 쪽으로 빠져든 아랍계 주민들도 상당수 있다. 브라질에 유독 많이 살지만 아메리카 다른 국가들에도 많으며[5] 호주 등지에도 레바논계 주민이 다수 있다. 그래서 레바논인 혈통을 가진 사람 중에 무려 75% 정도가 나라 밖에 산다. 또 코트디부아르와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여러 빈곤한 나라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이들 나라가 내전으로 막장화하고 전후에도 산업이 변변치 않은 틈을 타서 여러가지 산업을 선점했다. 그러다보니 이들 나라에서 레바논인들은 부유층으로 이름이 높다. 레바논 본토가 중진국 수준으로 평가받고 산업 기반이 제대로 복구가 되어있지 않아 실업률도 높고 전후재건이 순조롭지 않은 탓에 국채 비중도 높아서 나라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렇게 된 것은 레바논인이 일찍이 페니키아 시대부터 상인으로 유명해서 일찍부터 해외 진출이 많았지만[6] 이미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부터 해외 이민이 많았고 내전으로 나라가 개판이 되면서 외국으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됐다. 게다가 원래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현재도 레바논 인구는 국토에 비하면 많으며[7] 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유입으로 현재 좁은 영토에 인구가 포화상태다.
레바논에도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케냐에서 온 이주노동자 2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레바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2018년 6월 레바논에서는 케냐에서 온 이주노동자 2명이 폭행당하면서 케냐에서 반발했고 레바논 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2020년 4월 23일 SNS에 나이지리아인 가정부를 팔겠다는 글을 올린 레바논 남성이 체포되었다.#

현재 레바논의 종교 분포는 대략 이렇다. 마론파와 시아파가 강성하고 수니파 및 드루즈교가 뒤를 잇는다.
8.1. 치안[편집]
경제가 워낙 힘들기 때문에 부패 범죄가 심하다. 특히 종파별로 무장 민병대들이 많고 치안을 이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범죄조직들과 결합한 경찰들이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베카 계곡에는 각 부족들의 대마초 재배가 성행하고 있으며 레바논 마피아들은 마약 밀수로 악명이 높다. 레바논 내전의 영향으로 레바논 난민이 유럽으로 많이 이민을 갔는데, 레바논 마피아들이 이런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다.
8.2. ISIL[편집]
2010년대 아랍의 겨울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여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가 종파갈등을 매개로 레바논에도 세력을 뻗는다.
2014년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월 레바논에 처음 진입한 ISIL이 같은 수니파 무장 세력인 알누스라 전선과 연계해 레바논군을 공격하고 제2 도시 트리폴리[8] 에서는 거의 매일 밤 교전을 벌일 정도로 충돌이 빈번하다고 보도했다.
아직 레바논 내 ISIL 세력은 당장 주요 도시를 함락시킬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인구의 27%를 차지하는 수니파를 기반으로 위협적인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또한 외신들의 취재에 따르면 레바논 내부에서도 현 정권에 불만이 많은 강경 수니파 거주 지역에서는 아예 ISIL 깃발을 집이나 마을에 대놓고 걸어놓는다던지 공개적으로 ISIL을 지지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레바논 정권은 현재 시아파를 주축으로 하는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장악했으며 이들은 레바논 내의 기독교도 및 같은 시아파인 시리아의 알라위 정권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와 유대관계를 맺는다.. 미 중앙정보국(CIA)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 ISIL 조직원 중 레바논 출신은 다섯 번째로 많은 890명이다.
2013년 파디아 키완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레바논이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으로 ISIL의 위협에 노출된 상황을 지적하며 "레바논은 태풍의 중심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시리아의 내전이 길어지면서 시리아에서 많은 난민들이 들어오는데 이들 대부분은 수니파 무슬림이고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탄압과 전쟁을 피해서 온 기독교인, 드루즈인, 쿠르드인도 상당수를 차지해 레바논에서는 정치혼란이 재현될까봐 이들을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다행히 현재 레바논 정부군이 헤즈볼라에 힘을 실어 ISIL을 토벌하며 ISIL이 암약했던 레바논-시리아 국경지대의 레바논 영토와 시리아 영토 모두 레바논군과 시리아군의 손에 들어감에 따라 레바논 내 ISIL은 거의 사멸했다. 그리고 이라크-시리아 국경지대의 거대한 영토를 구축했던 이라크와 시리아의 ISIL도 2010년대 후반기에 미국 주도의 국제 동맹군과 러시아군, 시리아/이라크군에 의해 모술, 라카, 알카임, 루마나, 라와, 아부카말, 하진, 바구즈 등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의 장악 도시들을 상실하고 토벌되면서 ISIL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잃고 사실상 몰락했다.
9. 문화[편집]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았는데 현대 레바논의 문화에는 아랍, 그리고 프랑스의 문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주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 언어가 있고 사용되는 국가지만 거의 공통된 문화를 공유한다.
9.1. 언어[편집]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다. 레바논에서 쓰는 레바논 아랍어는 아랍어 방언이다. 그러나 해외에 레바논인이 워낙 많이 살아 교육언어도 아랍어와 프랑스어, 영어를 같이 쓰고 세속적인 국가라서 종파 가릴 것없이 문화적으로 서구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레바논 내전도 종파간 경제-정치-사회적 갈등에서 비롯했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의 갈등에서 비롯하지 않았다.[9] PLO도 세속주의 정파다. 식민지 시절 언어인 프랑스어 혹은 영어가 더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 아랍어를 안 쓰고 불어나 영어를 쓰고 아랍어를 쓰더라도 영/불어와 섞어 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고급 아랍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아예 아랍어 보호 운동까지 있다.
9.2. 스포츠[편집]
농구의 인기가 많고 농구 실력은 아랍 최강이다. 엘 사키스같은 자국 리그 농구팀이 아랍 농구 챔피언스리그 대회에서 단골로 우승을 거두며 아랍 지역 농구팀으로 보기 드물게 이스라엘의 강호 마카비 텔아비브와 친선경기를 한다.(반이스라엘 분위기 때문에 반발도 있었다.)
농구 인기는 오래전부터 많아 식민지 시절인 1930년대에 리그가 열렸으며 유로바스켓에 1949년, 1953년 대회에 참가한다. 그 뒤에 내전이라든지 오랜 혼란 속에서 농구 및 다른 스포츠에서 묻히다가 2000년대 와서 대한민국이나 일본을 많이 이기면서 농구로 아시아 강호가 된다. 2001, 2005, 2007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준우승 및 2001~2009년 대회까지 5회 연속 4강에 진출한다. 2009년 대회에선 준우승국인 중국(우승은 이란이 중국을 18점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대회가 중국에서 열려서 중국에겐 충격이었다.)에게 3점차 아쉬운 패배를 기록하며 한국도 이 대회에서 레바논에게 68-65로 지면서 8강에서 탈락해 2010년 터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가 좌절됐다. 이 대회에서 레바논은 캐나다를 이겼으나 다른 조 예선은 패하면서 16강에 아쉽게 탈락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란은 물론 대한민국에게 반격당하고 대만에게까지 뒤쳐진다.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이란에게 조 예선서 패하고 약체라던 대만에게 58-60 눈물겨운 분패를 당하며 6회 연속 대회 4강진출에 실패하며 통합 6위로 대회를 끝냈다. 2013년 필리핀 대회는 자국 내부 문제로 불참한다. 2015년 중국 대회 조예선에서 대만을 92-87로 이기며 4년전 패배를 설욕했다. 그러나 8강에서 필리핀에게 70-82로 지면서 4강 진출은 실패했다. 2017년 국제농구연맹 랭킹에서도 30위 한국보다 뒤쳐진 43위다.
그런데 8월 9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한국을 72-66으로 이겼다. 이 승리로 한국전 6승 4패를 기록 중이다.
레바논 출신 유명선수로는 한때 NBA 마이애미 히트, 올랜도 매직에서 활약했던 센터 로니 세이칼리,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천적인 아시아 최고의 스몰포워드 파디 엘 카티브가 있다.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다. 자세한 것은 레바논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다만 로다 안타르와 유수프 무하마드 두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다. 이 둘의 활약으로 200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경기 결과는 2:0으로 한국이 이겼다.
다만 축구의 경우 경기장 시설과 잔디 상태가 열악하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도 레바논이 여행자제국가고 국내 치안 문제 때문에 2013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때에는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바로 옆에 탱크를 갖다 놓고 경기를 치렀다.쿠웨이트와 레바논이 축구경기를 레바논과 가졌는데 경기가 격렬해져 두 나라 선수들이 집단 싸움을 벌이자 경기장 보호를 하느라 대기하던 레바논 군인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해 기관총으로 경고 사격을 하기도 하여 싸우던 선수들이 기겁하고 물러난 적 있다. 레바논의 축구 관련 매너에 관한 건 레바논 쇼크 관련 내용과 이 문서에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상황과 별개로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을 개최했다.
레바논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메달을 하나도 못 땄다. 그나마 메달을 따던 시절에도 노골드였다.
9.3. 결혼[편집]

레바논에서는 부모 동의가 있으면 9살부터 결혼이 가능하다. 심지어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14세 이상이면 결혼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고 극소수 집안에서 조혼 문화 때문에 강제적으로 한다. 레바논 현지인에게 물어본 바로는 보통 18세 이상부터 결혼을 한다고 한다. 저런 조혼 문화를 따르는 집은 도시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유니세프에 의하면 2013년 레바논에서 1.2%의 여성이 15세 이하에 결혼했고 18세 이하에 결혼한 비율은 6.1%다.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 많은 시리아인들이 온 것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더 오른다. 이러한 조혼 문화를 없애려 사회단체에서 실험한 영상도 있다.
2017년 8월 16일 레바논 의회는 성폭행범이 결혼하면 처벌을 면제받는 조항을 폐지했다. #
9.4. 대중 문화[편집]
한국에는 잘 안알려져 있지만 레바논은 이집트, 터키와 함께 중동 대중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 강국이다. 비아랍권인 터키를 제외하고 인구가 1억명에 육박하는 이집트에 이어 레바논이 뮤직비디오와 오락 프로그램 제작으로 아랍권을 양분한다. 특히 중동 가요계에서 레바논 가수들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아랍 팝스타 다수가 레바논 출신이거나 레바논에서 활동한다. 더 보이스의 아랍 버전인 The Voice Ahla Sawt도 레바논에서 판권을 사가서 만들어 아랍 전역에서 참가하고 전파를 탄다. 아랍 전역에서 인기 많은 대표적인 레바논 팝스타로는 낸시 아즈람(نانسي عجرم, 유튜브 공식 계정), 하이파 와흐비(هيفاء وهبي), 와엘 쿠푸리(وائل كفوري), 마야 디아브 등이 있다. 나딘 나시브 니에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레바논 가수와 배우들의 패션이나 화장은 아랍 국가들과 이란에서 선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의 보수적인 이슬람 이맘, 종교학자들에게는 비난의 대상) 중동권의 유행을 이끄는 트랜드세터다.
이는 레바논의 세속적인 분위기와 관련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덕이고 아랍권과 페르시아권 나라에서 위성방송이 널리 보급되먀 상대적으로 방송규제가 덜 엄한 레바논 방송이 대세를 탄 것이다.
심지어 중동에서 매우 개방적인 나라답게 마쉬루아 레일라(Mashrou' Leila)라는 보컬이 동성애자인 록그룹도 있다. 2017년 5월에는 아랍권 국가 최초로 퀴어퍼레이드를 했다. 또한 다른 중동 나라들과 달리 여성들이 히잡이나 차도르를 안 쓰고 돌아다니기도 하며 심지어는 알 마자나 베이루트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도 있다. 맥주 등 이슬람교에서 금기하는 술도 생산하거나 사서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레바논은 종교적으로 다양하고 패션이 자유로워 # 여경들이 반바지를 입는다.
다만 개방적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중동에서 비교적 개방적이고 무슬림도 절반 가량이라[10] 동성 성교를 3년 징역에 처한다.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반대 80%, 찬성 18% 그래도 중동에서 이 정도 찬성 비율이 있다는 게 말 그대로 기적이다.
현지인에 의하면 이곳에서도 한류는 나름대로 문화 장르로 자리잡았다. 사실 다른 아랍 국가에 비해 개방적인 레바논에서 먼저 한국 드라마와 영화, 노래가 인기를 끌며 다른 아랍 지역에도 영향을 줬다.
9.5. 영화[편집]

영화 산업도 있으며 1920년대부터 약 500편의 영화를 만들어 이집트와 함께 중동에서 영화 산업이 가장 크다. 나딘 라바키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레바논 배우다.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며 가버나움으로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얻는 등 레바논 영화계의 주목받는 신예다.
10. 외교[편집]

11. 대중매체에서[편집]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벌어진 사브라 샤틸라 학살(제목의 바시르는 이 시절 암살당한 레바논의 대통령 바시르 게마엘을 상징한다)을 다룬다. 그런데 학살 자체는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기독교도 민병대인 팔랑헤 당이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랑헤 당을 막기는커녕 밤에 조명까지 켜주면서 옆에서 도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호혈사일족의 등장인물인 사하드 아스란 류토가 이 나라 출신이다.
드니 빌뇌브가 감독한 영화 그을린 사랑이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레바논 내전을 다뤘다.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가 무역 항구로 등장한다. 대항해시대 4에서는 이슬람교 특성상 베이루트에 술집이 없어 선원모집이 불가능하므로 이 부근 해역에서 전투를 할 경우 유의한다.
스너프 필름이자 절대 검색해서는 안 될 단어로 유명한 레바논 다이빙 사건 사고가 있다.
유명 성인물 배우인 미아 칼리파가 레바논 출신 미국인이다.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에서 여성 주역으로 나오는 살터 대위가 레바논 출신이다.

[1] al-Jumhūriyya al-Lubnāniyya[2] 국기에 그려져 있는 나무가 이것이며, 백향목이라고도 부른다.[3] 구약성서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 건설을 위해 당시 페니키아 국왕인 히람에게 밀과 향유를 줄 테니 백향목을 달라고 해서 3만 그루를 베어갔다고 한다.[4] 아무래도 무슬림보다 기독교인이 해외 정착이 쉬웠다. 이민을 받는 나라의 종교와 믿는 종교가 같아서다. 물론 무슬림 중에서도 이슬람교 소수종파를 믿는 이들은 다수인 수니파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수니파 무슬림 이민자에 비하면 해외에 적극적으로 정착했다.[5] 멕시코의 통신재벌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중 한명인 카를로스 슬림도 레바논계 2세고 미국 영화배우인 토니 샬호브와 콜롬비아 출신의 팝스타 샤키라 또한 레바논계 이민자다.[6] 사실 중남미로의 이민 붐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세기 중순부터 20세기 중반까지도 이 시기에 원주민 인구가 많았던 볼리비아조차도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을 정도로 백인우월주의적이었고 이 와중에 유럽계로만 이민자 수를 채우기 곤란해 일단 외형상으로는 남유럽계와 비슷한 아랍계 이민자도 상당수 받아들인 거다. 그래서 중남미 지역에 사는 아랍인이 의외로 많다. 물론 이들 아랍인 중 대다수는 종교가 같은 기독교도라 스페인계나 포르투갈계에 동화되는 것이 쉬웠고 고로 문화적 충돌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7] 국토가 10,000km²이상인 주요 국가 중 2022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와 대만에 이어 3위다. 즉 대한민국이나 아이티, 르완다, 네덜란드, 이스라엘보다 높다. 무엇보다 레바논은 영토가 척박해서 전체 국토의 5%만 거주에 적합해 인구 밀도가 높다.[8]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와 다르다. 이 도시는 레바논 북부의 해안 도시다.[9]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기독교 내에서도 좌익인 정교회가 이슬람교 내에서는 우익인 수니파가 각각 마론파 기독교도, 시아파 이슬람교들과 전투를 했다. 즉 종파별 경제력 차이로 인한 좌파vs우파 구도다. 유사한 사례로 벨기에가 있는데 프랑스어권과 네덜란드어권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난한 프랑스어권이 좌익, 부유한 네덜란드어권이 우익이다.[10] 기독교 또한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도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이다. 라트비아의 경우 개신교나 가톨릭을 믿는 토착 라트비아인,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계 주민들, 이슬람교를 믿는 타타르인이 한 목소리로 동성애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