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고보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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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의 포병 지휘관.
2. 생애[편집]
2.1. 출생부터 독소전쟁까지[편집]
러시아 키로프 주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옐라부가의 기술고교를 졸업하고 페트로그라드 종합기술학교에서 조선학을 전공한다. 여기까지 가면 그냥 해군감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1916년 포병 학교로 전학하여 1917년 포병장교로 입대했으나 10월 혁명으로 인해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러시아 내전 시기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백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영해 적군에 가담하였으며 바실리 블류헤르 휘하에서 싸웠다. 이때 2번의 부상을 입고 레닌훈장을 받는다.
그 후 고보로프는 포병 지휘관을 맡았고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붉은 군대 총참모주 아카데미를 졸업한다. 그후 키예프 군관구의 포병사령관을 역임하였고, 1938년에는 제르진스키 포병 아카데미의 교관이 되었다. 이때 블류헤르의 부하라는 점과 한때 백군에 징집되었었던 경력으로 인해 이오시프 스탈린의 의심을 사 대숙청에 휘말릴 뻔하나 다행히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와 미하일 칼리닌이 적극적으로 변호하여 가까스로 생존한다.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고보로프는 7군의 포병사령관이 되어 뛰어난 포병을 다량으로 굴리는 전술로 만네르헤임 선을 뚫는데 공헌을 한다. 이 때 적기훈장을 받으며 붉은 군대 포병총감 대리에 오른다.
2.2. 독소전쟁[편집]
독소전이 발발하자 고보로프는 벨라루스와 폴란드에 주둔한 서부전선군의 포병감이 된다. 고보로프는 독일에게 박살난 소련 포병을 재건하는 동안
2.2.1. 레닌그라드 공방전[편집]
1942년 4월 고보로프는 레닌그라드 수비사령관에 임명된다. 레닌그라드는 이미 41년 11월부터 포위상태였으며 독일 국방군은 지속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고보로프는 뼈속까지 포병인 장교 답게 적절한 방어선 배치선정과 적 포병 위치 파악에 능했기에 적합한 자리였다. 그리고 1943년 1월에 실리셀부르크를 점령하여 레닌그라드 포위망에 구멍을 뚫는다. 1년 뒤인 1944년에는 레닌그라드 일대의 독일군을 일소하고 레닌그라드를 해방시켰으며 노브고로드도 탈환한다. 뒤이어 계속전쟁 때 원수로 진급하며 이때 소비에트연방원수 칭호를 수여받는다.
2.3. 냉전[편집]
전후 고보로프는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1952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53년 3월, 육군총감, 1954년 5월, 차후 방공군 사령관을 역임하며 소련군의 방공능력 신장에 큰 기여를 하나 1955년에 만성질환이던 심장병으로 사망한다.[1] 사후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며 아들인 블라디미르는 대장까지 진급해 발트 군관구사령관, 모스크바 군관구사령관, 극동전략방면군사령관, 국방부 감찰감, 시민방위군사령관을 역임한다.
3. 기타[편집]
고보로프의 아들, 손자들 모두 군인이었는데 고보로프를 제외한 모두가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4. 진급 이력[편집]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같은 원수이자 포장인 코네프, 주코프에게 묻혀서 보통 소련군 포장 서열 2-3위정도에 위치한다.
- 이지테크의 장영1에서는 유일한 4성급 포병장군이지만 준장이라 세심하게 다뤄야한다. 장영3에서는 1티어 포장으로서의 위엄을 널리 떨치고 있다.
- 세계정복자 3에서는 5성급에 가성비가 좋아서 1티어 포장이지만 세계정복자 4에서는 애매한 스킬셋으로 함정카드가 되었다.
- Hearts of Iron IV에서는 소련군 장군진에 소속되어 있다. 유명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백군이 승리한 러시아 공화국의 장군으로 등장하는데, 니콜라이 바투틴,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마르키안 포포프, 보리스 샤포시니코프와 함께 실제 역사에서는 적군이었던 장군 중 한 명이다. 아마도 잠시 백군에 징집되었던 경력 때문에 백군으로 등장한 듯하다. 물론 사회주의 내전이 발발하면 적군 소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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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게 다른 원수들과 비교하면 요절에 가까운 편이나 거의 60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요절이라 하기에는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