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티 그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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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티 그로브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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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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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레프티 그로브
Lefty Grove

포지션
투수
득표수
142,169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29
1930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레프티그로브전당.png
레프티 그로브
헌액 연도
1947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6.40% (3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미키 코크런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지미 폭스
(필라델피아 에슬레틱스)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네터스, 1924년)
대지 밴스
(브루클린 로빈스, 1924년)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0년)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1년)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0년)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1년)


레프티 고메즈
(뉴욕 양키스, 1934년)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웨이트 호이트
(뉴욕 양키스)
테드 라이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조지 피그라스
(뉴욕 양키스)

조지 언쇼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0년 ~ 193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조지 언쇼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앨빈 크라우더
(워싱턴 세네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앨빈 크라우더
(워싱턴 세네터스)

앨빈 크라우더
(워싱턴 세네터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레프티 고메즈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스탠 코벨레스키
(워싱턴 세네터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윌시 무어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9년 ~ 193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갈랜드 브랙스턴
(워싱턴 세네터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멜 하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5년 ~ 193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레프티 고메즈
(뉴욕 양키스)

레프티 그로브
(보스턴 레드삭스)


레프티 고메즈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8년 ~ 193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레프티 고메즈
(뉴욕 양키스)

레프티 그로브
(보스턴 레드삭스)


밥 펠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5년 ~ 193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네터스)

레프티 그로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레드 러핑
(뉴욕 양키스)

보유 기록
최다 ERA 1위 시즌
9회
최다 ERA+ 1위 시즌
7회
최다 승률 1위 시즌
9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등번호 10번
결번

레프티 그로브
(1931~1933)


찰리 모스
(1934)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0번
밥 시즈
(1933)

레프티 그로브
(1934~1941)


켄 체이스
(1942~1943)




파일:Robert Moses Grove.png

로버트 모지스 "레프티" 그로브
Robert Moses "Lefty" Grove

출생
1900년 3월 6일
사망
1975년 5월 22일 (향년 75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메릴랜드 주 로나코닝
학력
센트럴 고등학교
신체
190cm, 86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25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소속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25~1933)
보스턴 레드삭스 (1934~1941)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생애
4. 세이버매트릭스로 바라본 레프티 그로브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연도별 성적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리그의 투수.

통산 17시즌 616경기 457선발 3,940.2이닝 300승 141패 298완투/35완봉 3.06ERA/148ERA+ 54세이브 2,266K/1,187BB 3.20FIP 1.278WHIP 113.3bWAR.[1] 1930년(10.4)-1931년(10.4)-1936년(11.2)에 10을 넘는 bWAR을 기록했다. 그로브는 1931년에 41경기(30선발) 288.2이닝 31승 4패 2.06ERA/217ERA+ 27완투/4완봉 175K/62BB 1.077WHIP로 트리플 크라운+MVP를 수상했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그의 투구폼. 대단히 역동적이다.

그가 던지는 공은 패스트볼 하나였다. 하지만 어떤 공이 들어올지 알고 있어도 하나도 도움되지 않았다.

닥 크레이머(Doc Cramer)[2]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을 했지만 패스트볼의 구위가 너무 좋아서 삼진을 아주 많이 잡아냈다고 하는데, 현대 야구로 치면 디그롬이나 게릿 콜처럼 패스트볼의 스터프를 이용한 피칭에 가깝다. 그 시대 맞춰잡는 피칭이 유행[3]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다른 투수들에 비하면 훨씬 높은 탈삼진 개수와 비율을 자랑하였다. 당시 200K는 오늘날로 치면 대충 280~300K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보면 된다. 또한 그런 막장 타고투저 시대였던 1928년에는 두번이나 한 이닝 9구 3K(Striking out the side on nine pitches)라는 대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4] 게다가 당시에는 스트라이크 존이 이후의 투고타저 시대에 비해 꽤 좁았기 때문에 볼넷도 많았던 단점이 있지만, 이는 당대 평균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였다. 또한 지금의 웬만한 에이스들도 그가 기록한 9이닝당 볼넷 2~3개 정도의 수치는 심심치않게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강속구를 던지면서도 그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꽂아넣는 컨트롤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3. 생애[편집]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돌멩이를 던지며 재능을 보였던[5] 그는 너무 강하게 던지는 송구능력 때문에 포수가 공을 받지 못해서 광부 야구단에서는 1루로만 줄곧 뛰었다. 하지만 1920년 중순 인터내셔널 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6]에 입단하였고 투수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4년 반 동안 121승을 거두고 2년차부터는 매년 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했으며 매년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그렇게 투수로서 너무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서 과거 최강의 좌완 베이브 루스도 팔아넘겼던 잭 던 구단주가 그로브만큼은 절대 안팔려고 했고, 덕분에 빅리그 데뷔가 너무 늦어졌다.[7] 그럼에도 기량은 수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비시즌 시범경기에서 만난 베이브 루스를 9K로 처리했을 정도.


3.1.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시절[편집]


결국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코니 맥 구단주(겸 감독)가 과거 잭 던 구단주가 루스를 레드삭스에 팔때 받은 몸값 10만불[8]을 뛰어넘는 10만 6천불[9]을 지불하며 그로브를 데려갔다. 그렇게 데뷔한 25세 시즌엔 부상 때문에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탈삼진 1위 타이틀을 따냈다. 이듬해부터는 탈삼진 ERA 1위를 따내더니 3번째 시즌부터 매년 20승을 따내고 평균자책 1위와 탈삼진 리그 선두권을 질주했다. 특히 1930년에는 28승을 올리고 2.54, 209K를 따내며 트리플 크라운 달성. 이 때에는 마무리 투수의 개념이 희미해서 세이브라는 기록의 가치도 그냥저냥이었지만, 그로브는 세이브 1위도 달성하면서 트리플 크라운 + 세이브 1위라는 엽기적인 기록을 남겼다. 1931년에는 최초의 기자단 MVP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당시 그에게 밀린 선수는 .341 46홈런 184타점을 날린 루 게릭.[10]

에이스 시절에는 5년간 109승 36패의 인터내셔널리그 시절을 뛰어넘어, 그야말로 시대만 잘 타고났으면 사이 영 상을 독점했을 페이스를 보여줬다. 그야말로 필라델피아 에이스였다. 27년부터 탈삼진왕을 7연패했고, 다승왕 4번, 4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고, 30~31년엔 2년 연속 트리플크라운에 MVP를 따냈다. 게다가 종종 불펜 알바도 뛰어서, 51세이브를 기록하였다. 베이브 루스-루 게릭-밥 뮤젤을 10구 3K로 잡기도 했다. 양키스가 가진 역사상 가장 긴 연속 득점 기록을 308경기에서 마감시키고 참으로 오랫만에 영봉패를 선사한 주인공도 그로브였다. 동시대에 양키스에서 뛰었던 HoFer 레프티 고메즈보다 더 뛰어난 당대 최고의 "레프티"로 군림했다.[11]


3.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편집]


하지만, 그런 필라델피아 에이스 시절도 끝이 보였다. 1932년 이후 대공황이 터지며 코니 맥주력 선수들을 전부 팔기 시작했다. 결국 1933년 24승을 마지막으로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는데, 첫 시즌에는 부상으로 그간 20승이나 거두던 투수의 위엄에 걸맞지 않는 8승 6.50에 그쳤다. 이 때부터 그는 중대한 변화를 시작하는데, 바로 패스트볼 일변도의 투구에서 탈피하여 리그 최고 수준의 커브볼을 익히기 시작한 것.

보스턴 시절은 엄밀히 말해, 과거 리그를 개발살내던 괴수의 모습에서는 다소 떨어져있었다. 아무래도 부상과 노화로 인해 패스트볼의 위력이 감소한 것이 원인인듯 하다. 하지만 그 떨어진 것도 평균자책점 1위 4번이었으니... 답이 없다.[12] 하지만 선수생활 말년에는 결국 하향세가 심화되었고, 통산 300승을 채운 뒤 다시는 승수를 채우지 못했다.[13]

4. 세이버매트릭스로 바라본 레프티 그로브[편집]


예전부터 전설적인 대투수로 평가받았으나, 그의 진정한 가치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그의 사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월터 존슨, 그 다음으로 그를 뽑았으며, 본인도 "내가 데드볼시대에 뛰었으면 500승은 했을껴"라고 했는데 그 말에 대해 딱히 태클을 거는 전문가가 없다. 시대와 구장의 차이를 감안하여 투수의 기량을 평가하는 조정 평균자책점(ERA+)[14]에서 그는 커리어 통산 148이라는 엽기적인 수치를 기록하였다.[15] 이 수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16] 이전까지 라이브볼시대 규정 1000이닝 투수 중 최고였고 지금도 좌완 중엔 최고다. 뭐 마리아노 리베라마무리 투수로서 롱런하다보니 1000이닝을 돌파하여 200대의 초월적인 점수를 찍은 후엔 묻혀버렸다만, 역대 300승 투수만으로 기준을 높인다면 역시 그로브는 넘사벽의 존재. WHIP 1위도 5회, 승률을 계산하면 역대 300승 투수 가운데 최고인 .680. 각종 복잡한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한 시대를 대표했던 좌완투수들인 좌완투수로서는 역대 최다 363승의 워렌 스판이나 팔이 돌아가도록 스크루볼을 던진 칼 허벨, 짧고 굵게 던진 샌디 코팩스, 필리스의 만패 달성을 본인의 힘으로 몇년 늦췄다고 볼 수 있는 스티브 칼튼, 우리 시대의 빅 유닛, 클레이튼 커쇼 등과는 달리 1920~30년대의 선수인데다 그 시기는 워낙 타자들의 시대였다는 점에서 그 시대 투수들이 살짝 잊히는 점, 또한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이 되지 않은 점[17]에서 은근히 잊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에이스였다는 점만으로도 그는 MLB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투수라 할 수 있다. 사이영상이 최고 투수의 기준이 된 오늘날, 당시에도 사이영상이 있었다면 그는 못해도 7번은 수상했을 것이라 회자된다.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레프티 그로브
111
319
232
62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8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레프티 그로브
103.6
63.6
83.6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6.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레프티 그로브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25
PHA
45
10
12
1
1
197
4.75
207
11
131
5
116
1.716
98
1.2
2.1
1926
45
13
13
6
0
258
2.51
227
6
101
6
194
1.271
165
5.9
7.5
1927
51
20
13
9
1
262⅓
3.19
251
6
79
2
174
1.258
132
6.2
5.7
1928
39
24
8
3
1
261⅔
2.58
228
10
64
1
183
1.116
155
6.5
7.1
1929
42
20
6
4
0
275⅓
2.81
278
8
81
3
170
1.304
149
6.4
7.3
1930
50
28
5
9
0
291
2.54
273
8
60
5
209
1.144
185
8.3
10.4
1931
41
31
4
5
0
288⅔
2.06
249
10
62
1
175
1.077
217
7.3
10.4
1932
44
25
10
7
0
291⅔
2.84
269
13
79
1
188
1.193
160
7.0
9.5
1933
45
24
8
6
0
275⅓
3.20
280
12
83
4
144
1.318
134
4.7
8.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34
BOS
22
8
8
0
0
109⅓
6.50
149
5
32
1
43
1.655
73
2.0
-0.5
1935
35
20
12
1
0
273
2.70
269
6
65
3
121
1.223
175
7.1
9.4
1936
35
17
12
2
0
253⅓
2.81
237
14
65
4
130
1.192
189
5.9
11.2
1937
32
17
9
0
0
262
3.02
269
9
83
1
153
1.344
159
6.9
9.8
1938
24
14
4
1
0
163⅔
3.08
169
8
52
1
99
1.350
160
4.3
5.1
1939
23
15
4
0
0
191
2.54
180
8
58
1
81
1.246
246
4.2
7.1
1940
22
7
6
0
0
153⅓
3.99
159
20
50
1
62
1.363
112
1.3
2.9
1941
21
7
7
0
0
134
4.37
155
8
42
2
54
1.470
95
2.4
-0.1
MLB 통산
(17시즌)
616
300
141
54
3
3940⅔
3.50
3849
162
1187
42
2266
1.278
148
87.4
113.3

7. 여담[편집]


  • 그는 불같은 강속구와 뛰어난 실력 뿐만 아니라 불같은 성질머리로도 유명했다.[18] 성깔 하면 어디 가서 지지 않는 전설의 타자 테드 윌리엄스조차 학을 뗐다고 한다. 실책을 한 내야수는 매번 무서운 눈총을 샀으며, 득점지원 잘 안되거나 그로브가 지는 날이면 덕아웃과 라커룸은 그야말로 개발살이 났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받아서 기물을 박살낼 때 절대 자신의 밥줄인 왼손만은 쓰지 않았다. 이는 이후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어 어린 선수들의 인성교육에서도 중요하게 일컬어진다.[19]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는 이런 괴팍한 성격은 많이 누그러져 철이 들었다는 평을 들었고, 옛 스승 코니 맥 역시 "이제 투수가 되었다"[20][21]면서 칭찬한 바 있다.

  • 그가 활동을 시작한 20년대부터는 라이브볼 시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드볼 시대 투수들에 뒤지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 그는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에이스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으로 인한 언론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말년의 급격한 몰락[22], 당시 기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그의 위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등의 요인으로 명예의 전당은 3번째 투표에서야 76.4%라는 턱걸이 득표율로 입성했다. 모자는 전성기를 보낸 애슬레틱스가 아닌 보스턴 모자를 쓰고 갔다.

  • 역대 최고 좌완의 계보를 잇는 투수들의 계보는 레프티 그로브의 은퇴 다음 해에 데뷔한 워렌 스판, 스판의 마지막 해에 데뷔한 스티브 칼튼, 칼튼의 마지막 해에 데뷔한 랜디 존슨으로 이어진다. 이후 이 계보는 랜디 존슨이 은퇴한 2009년에 각성하기 시작한 클레이튼 커쇼로 이어지고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투수 bWAR이 113.3이고 타격이 -6.5라서 투타를 합치면 106.8로 나온다.[2] 통산 0.296의 타율과 2705개의 안타를 기록한 타자로, 염소의 저주로 유명한 1945년 월드 시리즈에서 행크 그린버그와 함께 맹활약하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3] 좋든 싫든 맞춰잡지 않으면 답이 없던 시절이었다. 볼넷이 삼진보다 많을정도였으니까.(스트라이크 존이 지금에 비교하면 심하게 좁았다고 한다.) 예를들어 1930년에는 AL 8팀 중 3팀이 팀 타율 3할을 찍었다. 1932년엔 리그 평균 삼진과 볼넷이 9이닝당 3.3삼진/3.6볼넷이었지만 그로브는 5.8삼진/2.4볼넷이다. 그냥 보기만 해서는 영 아니올시다지만 동시대 투수들에 비하면 넘사벽으로 뛰어났다는 것. 2010년 클리프 리와 비슷한 모습이라 보면 된다.[4] 이 기록을 커리어 내내 두번 해본 선수는 그로브와 샌디 코팩스, 놀란 라이언 뿐이다. 하지만 이 기록을 한 시즌에 2번 한 선수는 그로브 뿐. 이걸 해본 선수 중엔 애리조나 디백스 시절의 김병현도 있다.[5] 다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여 평생 문맹으로 살았다. 이는 역시 광부의 집안에 태어났던 맨발의 조 잭슨과 유사한 점이다. [6]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가 옮겨와 지금에 이르는 그 오리올스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팀은 메이저리그 팀과의 제휴가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팀.[7] 오늘날에도 25세에 데뷔하는 선수들은 대졸투수 중에서도 4~5년을 마이너리그에서 지낸 케이스로서 대부분 장수하지 못한다. 랜디 존슨은 24세에 데뷔하여 300승까지 따냈으니 정말 이례적이었던 것이다.[8] 이것도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몸값이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이는 아마 일본프로야구에서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의 이적료와 맞먹을 것.[9] 2012년 기준으로 당시보다 미국 물가는 1,199.9%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므로 이는 2012년의 137만 달러 정도에 해당한다...지만 이조차 기실 엄밀한 비교는 아니다. 당시의 야구인기와 지금의 야구인기가 같지 않기 때문. 즉 야구시장의 규모가 시대별로 상대적 유사성을 보여야 이자율에 근거한 단순 비교가 가능. 17년 기준 그로브 같은 선수는 총액 3억불 계약도 가능할 선수다. 애초에 다저스도 클레이튼 커쇼에게 10년 3억불 계약을 제시한 바 있다.[10] 이때 게릭이 세운 184타점은 지금도 아메리칸 리그 역대 한시즌 최다타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메이저리그 전체 기록은 시카고 컵스의 핵 윌슨이 세운 191타점.[11] 게다가 고메즈는 그로브와 달리 루스와 게릭을 상대하지 않았다.[12] 역대 평균자책점왕 9회로 최다 수상. 2위는 7회의 로저 클레멘스.[13] 네이버 칼럼 레전드 스토리나 여러 사이트들의 소개글에 의하면 그는 300승을 채운 후 다신 등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록을 찾아보면 그해 9월까지는 등판하였다. 마지막 경기는 친정 필라델피아 원정이었고, 1이닝 3실점으로 무너지며 패전하였다. 아마 그런 소개글이 작성된 이후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어 업데이트가 안된 것일지도.[14] 이 수치에서 리그 기본이 100점으로 계산되며, 120이 넘어가면 준수한 선발로 평가하며, 140을 넘어가면 사이영상급 에이스로 평가한다. 150을 넘기면 그냥 인간이 아닌거다.[15] 우완 본좌라는 월터 존슨 역시 146으로 그보다는 살짝 떨어지며(하지만 근소한데다 승수는 훨씬 높다), 레프티 그로브 이전에는 19세기 단 3년간 1405이닝을 던져 규정이닝을 인정받아 151이 나온 짐 데블린이라는 투수만이 그보다 나은 성적을 찍었다.[16] 154의 페드로도 말년에 굉장히 하락한거다. 빨간 양말 시절 페드로는 그야말로 역대 유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전대미문의 7년이었다. 레프티 그로브의 필라델피아 에이스 시절 통산 ERA+ 161보다 훨씬 더한 레드삭스 통산 191에 1997년~2003년 7년간 ERA+ 216을 기록했다. [17] 그가 처음 10번을 단 때는 1931년인데, 그는 그 번호를 3년만 달고 필라델피아를 떠난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활약이 조금 떨어졌다고 해도 그의 위업을 생각하면 영구결번이 당연하긴 하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하고 레드삭스에서 은퇴까지 했음에도 7년만 뛰었기에 10년을 뛰어야 하는 조건을 맞추지 못했다. 게다가 서부로 옮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워낙 오래 전에 던졌던 옛날 선수라 기억이 희미한 듯 하다.[18] 별명이 High Strung 이었다.[19] 물론 다른 손으로 쌈박질하고 때려부순다는 게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윤석민데빈 윌리엄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던지는 손으로 험한 짓 하면 안 된다.[20] 저 녀석 예전에는 던지는 것만(Throwing) 할 줄 알더니 이제야 투구를 할 줄(Pitching)도 아는구만.[21] 물론 힘으로만 윽박지르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고쳐 컨트롤로 맞춰잡는 습관을 들인 것에 대한 칭찬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도 이제 투수가 되었다는 말의 의미가 엇나가는 게 아니니깐...[22]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거로 못 뛸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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