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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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벤슨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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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3
2014









파일:로드 벤슨.jpg

로드리크 지소리온 벤슨
Rodrique Zsorryon Benson

출생
1984년 10월 10일 (39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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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206.7cm, 114.6kg
포지션
센터
출신학교
UC 버클리 (정치학)
현역시절 등번호
5번 - 동부
2번 - 동부 / LG / 모비스
6번 - 동부 / DB
소속팀
원주 동부 프로미 (2010~2012)
창원 LG 세이커스 (2012~2013)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3~2014)
원주 동부-DB 프로미 (2015~2018)

1. 개요
2. KBL 입성 전
3. 한국에서의 선수생활
3.1. 원주 동부 프로미 시절 (2010-2012)
3.2. 창원 LG 세이커스 시절 (2012-2013)
3.3. 울산 모비스 피버스 시절 (2013-2014)
3.4.1. 2016-17 시즌
3.4.2. 2017-18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농구인.

2010-11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 무려 8시즌 동안 KBL에서 활약한 장수 외국인 선수이다. 포지션은 센터.


2. KBL 입성 전[편집]


샌디에이고에 있는 토레이파인스 고교 재학시절 지역에서 나름 유망한 센터로 꼽혔던 벤슨은, 동시에 배구에도 재능을 드러내며 졸업반 시절 학교 배구대표팀에게 우승컵을 안겨 줄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대학시절 기록

UC 버클리 입학 첫해, 벤슨은 시즌의 절반 정도인 16경기에만 출전하는데 그쳤지만, 에이스였던 4학년 조셉 쉽[1]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NCAA 토너먼트 2회전(32강)에 올랐고, 신입생 벤슨은 32강전에서 4분간 코트를 밟으며 파울 1개만 기록한다.

2학년 때도 벤슨은 슈퍼 신입생 리온 포우[2]와 이스라엘 출신 센터 아밋 타미르(210cm)에 밀려 여전히 벤치만 지켰고, 팀도 하위권으로 추락한다.

파일:로드 벤슨_대학.jpg

3학년이던 04-05 시즌, 팀의 에이스였던 리온 포우가 무릎 수술을 받으며 시즌아웃되면서 벤슨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주전센터로 등극한 벤슨은 시즌 전경기를 출전하며 평균 13.3점-6.3리바운드(컨퍼런스 8위)를 기록, 팀내 득점-리바운드 1위를 석권하지만, 이 시즌 전력이 급격히 추락한 UC 버클리는 컨퍼런스 10개팀 중 8위로 떨어지는 부진을 겪고 만다.

05-06 시즌, 팀의 에이스 리온 포우가 재활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4학년 벤슨은 다시 벤치로 물러난다. 팀은 리온 포우의 맹활약 속에 벤슨이 1학년때 이후 3년만에 NCAA 토너먼트에 복귀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와의 1회전에서 벤슨은 벤치에서 출전했음에도 불구 무려 13득점을 올렸으나 포우의 부진속에 아쉽게 패하면서 그렇게 로드 벤슨의 대학시절은 끝났다.

졸업 후 NBA D리그 오스틴 토로스에 입단한 벤슨은, 이후 D리그에서 총 4시즌을 보내지만 특출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NBA 콜업은 언감생심이었다. D리그 비시즌마다 프랑스, 푸에르토리코 리그 등에서 단기알바를 뛰기도 했던 벤슨은, 2010년 KBL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지원,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김주성의 파트너를 찾던 원주 동부 프로미의 선택을 받는다.[3]


3. 한국에서의 선수생활[편집]



3.1. 원주 동부 프로미 시절 (2010-201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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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역사에 남을 역대급 트리플 타워

2010-11 시즌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여 전체 1라운드 8순위로 원주 동부에 지명되었다. 당시 동부는 득점왕 출신이었던 마퀸 챈들러가 골밑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돌출 행동을 일삼는 등 팀 내의 분위기를 망치는 플레이를 보인데다 같이 데려온 조나단 존스나 게리 윌킨슨은 말 그대로 식물이었기 때문에, 김주성이 시즌 내내 고생했으며, 팀도 2위에서 5위로 떨어진 것이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 시즌에는 김주성의 부담을 덜고 높이와 수비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통 센터 용병이 필요했고, 이런 계산 속에 뽑힌 외국인 선수가 로드 벤슨이었다.

당초 중위권 정도로 평가받던 원주 동부였지만, 벤슨은 말 그대로 정통 센터 외국인으로서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벤슨의 높이와 이타적인 플레이로 리바운드와 수비가 작년보다 크게 개선되었고, 김주성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상대편의 골밑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였다. 이타적인 플레이와 적극적인 골밑 공략과 다른 센터들이 쉽게 뚫지 못하는 수비를 보여준 로드 벤슨은 동부가 작년보다 무뎌진 득점력이었지만 리바운드와 실점 허용 문제를 개선하며 4위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벤슨과 김주성, 윤호영이 이끄는 트리플 타워의 위력은 강력했고, 이 트리플 타워는 동부의 새로운 팀의 상징이 되었다. 이해 로드 벤슨의 성적은 평균 27분 22초 출장, 17.4득점 9.7리바운드에 1.3 블락슛이었다.

동부는 이런 좋은 활약을 보여준 로드 벤슨을 1인 자유계약제도로 바뀐 외국인 선수 제도에도 불구하고 재계약하기로 선택했다. 자유계약으로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좋은 용병을 지명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정규시즌에 들어서자 그 말은 입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2011-12 시즌의 로드 벤슨은 전 시즌보다 더 한국의 농구에 적응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벤슨과 김주성윤호영이 각성한 트리플 타워는 엄청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선수는 역시 로드 벤슨이었다. 결국 동부가 8할을 넘는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공신 중 한 명이 되었고, 한국 프로농구의 실력파 외국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평균 37분 24초를 출장하며 19.6득점 12.9 리바운드와 1.2블락슛을 기록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에서 동부는 안양 KGC인삼공사에 2승 4패로 밀리면서 우승을 내주어 4년만의 통합우승이 좌절되었고, 벤슨 또한 심판판정에 격분하여 웃통을 벗는 등 흥분하여 퇴장당하기도 했다.

당연히 동부의 팬들은 벤슨의 파워풀한 덩크와 강력한 수비를 계속 보고 싶어 했으나, KBL 외국인 선수 제도의 변화로 다음 시즌에는 동부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2012-13 시즌과 2013-14 시즌까지도 동부의 골밑은 벤슨이 있던 시절에 비해 확연히 약해졌다.

3.2. 창원 LG 세이커스 시절 (2012-2013)[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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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에서의 활약 덕에 LG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벤슨을 2순위로 지명했다. 이 시즌부터 수비자 3초룰의 폐지도 있었고, 동부의 김주성이나 윤호영에 비해 송창무와는 큰 시너지 효과를 내지는 못했지만[4] 무엇보다 국내선수들만으로는 부족한 골밑을 보강할 수 없었기에 LG에서 벤슨은 나름 버팀목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이런 활약 속에 LG는 그래도 시즌 전 약체로 평가받은 것에 비해서 5위까지 약진할 수 있었다. 의외의 선수들의 약진 속에서 낸 좋은 성적이었으나, 올스타전 이전까지는 8위까지 내려앉아버린 LG였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중위권과의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오프도 노려볼 수 있었던 LG지만... 1월 29일 모비스의 외국인 선수 커티스 위더스와 로드 벤슨의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물론 그냥 바꾼 건 아니었고, 모비스의 가드 김시래 또는 향후 3년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하나를 LG가 선택한 트레이드였다.[5] 결국 이 트레이드 이후 LG는 고의 패배라는 의혹까지 받으며 8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시즌을 마감했다.


3.3. 울산 모비스 피버스 시절 (2013-2014)[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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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모비스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이던 라건아와 경쟁해야만 했는데, 처음에는 밀리는 듯 했으나 점점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모비스 선수들과 함께 좋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모비스는 벤슨의 활약 속에 41승 13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후 SK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활약하며 모비스의 우승에 공헌했다.

2013-14 시즌 역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모비스의 골밑 라인의 핵이 되었다. 이제 라틀리프를 완전히 밀어내고 1옵션 용병으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14-15 시즌을 앞두고 몸 관리 부실로 팀에서 퇴출되면서 모비스에 비상이 걸렸다. 하나 몸 관리 부실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뒷돈을 요구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유재학 감독이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는 필요없다고 인터뷰했는데 몸 관리 부실이 자기관리는 몰라도 팀 분위기를 해치는데 영향을 끼치는지는 의문이 들기 때문. 실제로 로드 벤슨은 뒷돈을 요구한 건 사실인데 진짜 그 돈을 받기 위해 요구한 게 아닌 모비스를 떠나기 위해 그랬다. KBL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소속팀의 재계약을 거절하면 5년간 자격정지라는 이상한 룰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퇴출을 당해야 다른 팀에서라도 뛸 수 있기 때문이다.


3.4. 원주 동부 프로미 복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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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에서 퇴출된 이후 대만, 필리핀, 도미니카 공화국 등에서 짧게 뛰다가 2015-16 시즌 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1라운드 9순위로 원주 동부 프로미에 지명되었다. 원조 동부산성의 재결합을 이뤄냄으로써 팬들의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만큼의 위엄은 보여주지 못했고[6] 대체 선수로 영입된 웬델 맥키네스에게 1옵션 자리까지 빼앗기는 지경이었으며 2, 3쿼터에 출전[7]하긴 했어도 위압감이 들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예전같지 못한 활동량과 보드장악력, 득점력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광탈에 협조했다. 그렇게 벤슨과 동부의 인연은 끝나는 것 같았으나 김영만 감독은 맥키네스와 벤슨 모두 재계약하는 걸 선택했다. 맥키네스야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벤슨은 예전만 못한 기량을 선보여 의외의 선택, 동부의 실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차기 트라이아웃 지원자들 수준이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고, 하위픽으로 뽑을 장신 선수들이 다 고만고만하다는 평판이라 오히려 숨은 승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러 잔부상을 털어내고 몸 관리에 성공하며 일단 개막 전까지는 타 구단 외국인 선수와 연습경기 매치업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4.1. 2016-17 시즌[편집]


파일:벤슨1617.jpg

돌아온 리플 타워

전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벤슨은 처참한 슛 실력과 트래블링을 거듭하면서 다음 시즌 재계약은 물건너간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영만 감독이 재계약을 결정하면서 웬델 맥키네스와 함께 다시 한번 뛰게 되었다.[8]

하지만 2016-17 시즌 개막전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에서 23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화려한 복귀. 게다가 전시즌 부상으로 고전한 윤호영, 김주성, 전시즌 중반 합류부터 활약하는 웬델 맥키네스와 산성을 이루었다. 특히 2011-12 시즌 무릇 팀들이라면 높이에서 밀릴 수 밖에 없던 트리플 타워를 재건하는데 성공했다.[9]

게다가 11월 27일 기준으로 리그 리바운드 1위, 자유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평균 득점이 20점대로 전시즌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1-12 시즌에도 17점대였다. 여담으로 자유투 성공률이 팀내 2번 포지션 허웅보다 높고, 맥키네스보다도 높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득점력 저하와 웬델 맥키네스와의 궁합 문제로 성적이 떨어졌고, 결국 시즌 후에 재계약하지 못하였으나 이상범 감독이 다시 벤슨을 가승인 신청했다.

3.4.2. 2017-18 시즌[편집]


등번호를 2번에서 6번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2017-10-15 8득점 12리바운드를 하며 아쉽게 더블더블은 실패했지만, 개막전 승리를 하는데 공헌했다.

2라운드~3라운드 기간까지 버튼의 서브 용병으로 길지 않은 시간을 출장하고 있지만, 나올 때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고, 필요할 때 득점을 성공시키거나 블록슛을 작렬하여 자신이 왜 베테랑인지를 증명하는 소금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2월 14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KBL 데뷔 후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3점슛 2개를 성공했다. 2018~2019 시즌에는 장신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선 200cm를 초과하므로 더 이상 KBL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버논 맥클린, 데이비드 사이먼도 마찬가지. 다만, 이와는 별개로 34세라는 많은 나이와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즌 종료 후 은퇴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정환 기자에 의하면 은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유재학 감독이라 밝혔단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정통 센터. 206cm의 큰 키와 긴 윙스팬을 가져 수비력이 좋고, 높이를 활용한 공격력이 일품이다. 주로 하는 공격 패턴은 45도 지점에서의 페이스업 후 뱅크슛이나 포스트업을 활용한 훅슛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오직 이 공격만으로 계속 득점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 스피드도 좋고, 탄력도 나름 괜찮은 편. 또한 마른 몸에 비해서 힘까지 좋지만 다만 자유투가 굉장히 좋지 못한 것은 흠이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에게 크게 약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코트니 심스에게 약한 편이었다. 코트니 심스가 나오면 말리는 것이 표정에서도 보일 정도다.


5.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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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덩크 이후 거수경례 세리머니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 원주 동부가 한창 날리던 2011-12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김주성개그콘서트에 출연했다. 불편한 진실 코너에 등장했는데, 황현희남자가 키가 크면 비호감이라는 말에 김주성과 등장하여, 황현희에게 영어로 솰라솰라 하다가[10] 한국어로 "신발 벗어!"라고 해주고, 나가는 길에 깔창 굴비를 주면서 "그래야 쌤쌤"이라는 주옥같은 대사를 남기며 국내 농빠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영상. 피해자 황현희는 이에 대한 보답인지 며칠 후 후배들인 서태훈, 유민상, 정은선과 함께 두 사람을 응원하러 잠실실내체육관을 방문하였다.


  • 시즌이 끝나고 서정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KBL은 외국인 선수에게 불공평한 리그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승진의 팔꿈치 강타는 벌금 100만원인데, 유니폼 찢은 자신에게 500만원을 때린 것에 대해 항상 외국인 선수들에게 벌금을 메기고 징계하려 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에 대한 규정에 대해서도 신장제한이나, 3년 제한[11]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유재학 감독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였다.


  • 현재는 예술가로 대변신해 할리우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흑인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을 작품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기사 이후 2019년 10월달에 3X3 대회를 위해 방한했을때 10월 25일 하루동안 신사동 모 카페에서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짧은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기사

  • 한국에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자유투 성공률이 50%가 안 될 정도로 극악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은퇴할 때 즈음 성공률이 눈에 띄게 상승하게 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05-06 시즌 KBL 원주 동부에서 뛴적있다. 6강 플옵에서 독불장군 플레이만 일삼다 6위팀 대구 오리온스에 업셋 당하는 원흉이 되었다.[2] 203cm의 단신 파워포워드지만, 03-04시즌 PAC-10 컨퍼런스 올해의 신입생, 05-06시즌 PAC-10 컨퍼런스 토너먼트 MVP를 석권한 대학무대 최고의 빅맨이었다. 2006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9순위로 덴버 너겟츠에 지명된 후 곧바로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보스턴의 New Big-3(케빈 가넷-폴 피어스-레이 앨런)가 결성된 2007-08시즌 팀의 키식스맨으로 활약하며 보스턴이 07-08 시즌 우승 트로피를 따내는데 기여한다. 특히 홈에서 열린 챔프전 2차전에서 포우는 겨우 14분 38초 출전에 무려 21점을 올리며 시리즈를 2:0으로 가져가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 결국 재기에 실패, 5시즌만에 NBA를 떠나 곧 은퇴했다.[3] 2010년 드래프트 당시 다른 팀들 관계자들 모두 벤슨의 마른 몸과 초라한 대학시절 기록, 해외리그 경력 등을 보고 벤슨의 기량을 낮게 평가했었다.[4] 득점이 줄기는 했어도 외국인 선수 2인 보유 1인 출전으로 출장시간이 동부때에 비해 줄어든 영향도 있었다.[5] 다만 당시에는 김시래가 트레이드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6] 벤슨도 벤슨이지만 김주성, 윤호영이 그때의 몸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문제.[7] 2, 3쿼터는 외국인 선수 공동출전이었다.[8] 대부분의 농구팬들이 의아해 했으나, 당시 드래프트에서 좋은 외인을 픽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벤슨과 맥키네스 모두 이미 KBL에서 검증되어 있는 외인이므로 다시 신뢰할 만 하다.[9] 무엇보다 자유투, 뱅크샷 등 슛 성공률이 다시 좋아진 것에 더불어 포스트업 연계 플레이도 잘 이뤄지는 편이다.[10] 해석하자면 '왜 신발 속에 깔창 깔았냐'고 물은 것이다.[11] KBL에서 외국인 선수는 한 팀에서 3년 이상 뛸 수 없다. 3년이 지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드래프트를 통해 지명되는 방식으로 계약된다. 한 팀에 오래 머무르며 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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