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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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커류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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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Carew%20Rod%20Plaque%2096_NBL_0.png
로드 커류
헌액 연도
1991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0.51%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7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서먼 먼슨
(뉴욕 양키스)

로드 커류
(미네소타 트윈스)


짐 라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토미 에이지
(시카고 화이트삭스)

로드 커류
(미네소타 트윈스)


스탠 반슨
(뉴욕 양키스)


파일:MLB 로고.svg 1977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피트 로즈
(신시내티 레즈)

로드 커류
(미네소타 트윈스)


그레그 러진스키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Carew-2teams.jpg

미네소타 트윈스 No.29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No.29

로드니 클라인 "로드" 커류
Rodney Cline "Rod" Carew

생년월일
1945년 10월 1일 (78세)
국적
[[파나마|

파나마
display: none; display: 파나마"
행정구
]]
|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1]
출신지
파나마 운하
포지션
2루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신체
183cm, 77kg
프로입단
1964년 미네소타 트윈스 자유계약
소속팀
미네소타 트윈스 (1967~1978)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9~1985)

1. 개요
2. 선수 시절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이모저모
5. 연도별 성적



1. 개요[편집]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소속 야구 선수.

토니 그윈 이전 가장 정교한 컨택을 보여줬던 타자 중 한 명이다. 또한, 파나마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다.

2. 선수 시절[편집]


파일:1967-0921-Rod-Carew-001300233.jpg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해병대 예비군에서 복무한 뒤 1964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맺은 커류는 1967년 신인왕에 올랐고 1969년부터 .332의 타율로 첫 타격왕에 올랐다. 그렇게 커류는 주전 2루수로서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비록 똑딱이로서 그리 좋은 장타력을 지니진 못해 선수 시절 통산 홈런은 100개 미만이었지만, 적극적인 타격과 좋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정교함을 발휘하였다. 그의 타격의 비밀은 배트를 완전히 옆구리 근처로 눕혀 어떠한 공에도 대처할 수 있었고, 오직 손목힘과 공의 반발력만으로 내야를 뚫으며 좌/우/중앙에 이르는 고른 방향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는 그만의 타격기술에 있었다. 1969년부터 1983년까지 15년 연속 타율 3할타이 콥, 스탠 뮤지얼, 호너스 와그너, 토니 그윈만이 이룩한 대기록이며, 그중에는 1972~75년의 4년 연속 타격왕 기록, 3번의 최다안타 1위, 4번의 출루율 1위가 포함되어 있다. 1977년에는 타율 .388 출루율 .449 장타율 .570 14홈런 100타점을 비롯하여 선수로서 최고의 해를 기록했으며,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되었다.[2]

그러나 미네소타에서 그는 구단주 캘빈 그리피스와 마찰을 빚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3] 캘리포니아로 떠난 그는 주로 1루수로 나서며 5년 더 3할 시즌을 만들어냈고, 6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어 통산 18회의 올스타 출전 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앤젤스에서의 7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인 1985년 8월, 친정팀 트윈스의 프랭크 비올라를 상대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 쿠퍼스타운에 자신의 자리를 예약하며 그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4] 통산 3,053안타에 .328의 타율을 기록했다.

199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 90.5%의 지지율로 헌액되었고, 미네소타 트윈스의 모자를 쓰고 쿠퍼스타운에 입성했다. 헌액에 앞선 1986년과 87년에는 각각 앤젤스와 트윈스에서 일찌감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은퇴 후에는 에인절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타격코치로 일했으며, 개럿 앤더슨, 짐 에드몬즈, 팀 새먼 등을 길러냈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wFScJ9JjL._SL500_.jpg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교타자답게, 타격 이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 <주간야구>란 잡지에서 '타격왕이 되는 길'이란 제목으로 번역 연재한 바 있다. 책의 표지 사진은 1985년의 3,000번째 안타를 치는 모습이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로드 커류
42
148
242
55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econd Base (6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로드 커류
81.1
49.7
65.4
2루수 HOF 입성자 평균
69.4
44.5
56.9


4. 이모저모[편집]


  • 첫 아내가 유대인인데,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유대교 신자이다. 그런데 막내 딸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파나마-유대인 혈통이라는 특수한 혈통 때문에 골수 이식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96년 세상을 떠났다.

  • 선수생활 내내 씹는 담배를 애용하였으며 이 때문에 은퇴 후 이 치료에다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고 한다. 현재는 금연 중이라고 한다.[5]

  • 2016년 12월 12일, 29살의 젊은 나이로 뇌종양으로 요절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뛰었던 타이트엔드 콘래드 로이랜드의 유족이 그에게 심장 기증 의사를 밝혔다.[6] 커류 본인은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았었는데, 새로이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회를 표현했다. 그리고 매년 세상을 떠난 콘래드의 기일을 챙기게 되었다.[7]

  • 파나마 최고의 야구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간단히 생각하자면 한국 야구팬들이 장훈에 대해 갖는 존경심, 경외감과 비슷한 셈. 커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4년엔 파나마 시티에 있는 국립 경기장의 이름을 로드 커류 스타디움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이 경기장은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예선 라운드 개최 장소 중 하나다.

  • MVP 베이스볼 시리즈의 최종작인 MVP 베이스볼 2005에 그의 타격폼이 묘사되어 있는데, 상당히 독특하다. 배트가 등 뒤로 넘어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땅과 수직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뒤로 눕혀서 쳤다. 여기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미네소타의 홈구장인 타깃 필드 야외에도 그의 타격폼을 묘사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 201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6년부터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타이틀을 로드 커류 상이라고 명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내셔널리그도 동일하게 적용하며 토니 그윈 상으로 명명.

  •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타자지만 아쉽게도 월드시리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아메리칸 챔피언쉽 시리즈는 총 4회 진출했다. (미네소타 2회(1969, 1970), 에인절스 2회(1979, 1982))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로드 커류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7
MIN
137
561
150
22
7
8
66
51
5
37
91
.292
.341
.409
.750
2.9
2.8
1968
127
492
126
27
2
1
46
42
12
26
71
.273
.312
.347
.659
1.7
1.8
1969
123
504
152
30
4
8
79
56
19
37
72
.332
.386
.467
.853
5.0
5.5
1970
51
204
70
12
3
4
27
28
4
11
28
.366
.407
.524
.930
2.0
2.1
1971
147
632
177
16
10
2
88
48
6
45
81
.307
.356
.380
.736
1.8
2.4
1972
142
591
170
21
6
0
61
51
12
43
60
.318
.369
.379
.749
4.3
5.4
1973
149
657
203
30
11
6
98
62
41
62
55
.350
.411
.471
.881
6.3
7.0
1974
153
690
218
30
5
3
86
55
38
74
49
.364
.433
.446
.879
6.6
7.5
1975
143
617
192
24
4
14
89
80
35
64
40
.359
.421
.497
.919
7.1
7.9
1976
156
687
200
29
12
9
97
90
49
67
52
.331
.395
.463
.858
6.4
6.8
1977
155
694
239
38
16
14
128
100
23
69
55
.388
.449
.570
1.019
8.6
9.7
1978
152
651
188
26
10
5
85
70
27
78
62
.333
.411
.441
.853
4.4
5.0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79
CAL
110
493
130
15
3
3
78
44
18
73
46
.318
.419
.391
.810
2.2
2.6
1980
144
612
179
34
7
3
74
59
23
59
38
.331
.396
.437
.833
3.0
3.4
1981
93
421
111
17
1
2
57
21
16
45
45
.305
.380
.374
.753
2.6
3.0
1982
138
612
167
25
5
3
88
44
10
67
49
.319
.396
.403
.799
4.3
4.7
1983
129
536
160
24
2
2
66
44
6
57
48
.339
.409
.411
.820
2.2
2.3
1984
93
378
97
8
1
3
42
31
4
40
39
.296
.367
.353
.720
1.0
0.9
1985
127
518
124
17
3
2
69
39
5
64
47
.280
.371
.345
.717
0.1
0.5
MLB 통산
(19시즌)

2469
10550
3053
445
112
92
1424
1015
353
1018
1028
.328
.393
.429
.822
72.3
81.2

[1]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2] 이 해에 그가 기록한 .388의 타율은 테드 윌리엄스가 4할을 친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 타율이었는데, 아깝게도 3년 후인 1980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조지 브렛이 .390을 치면서 밀려났다.[3] 커류가 미네소타를 떠난 데에는 캘빈 구단주의 인종차별도 한몫했다는 견해도 있는데, 1978년 와세카의 라이온스 클럽 연설에서 커류를 두고 "멍청해서 훨씬 돈을 적게 받고 뛰고 있다"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했다. 다만 커류 본인은 2020년 캘빈 그리피스 전 구단주의 동상이 철거될 당시 그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캘빈이 구단주로 있던 때는 물론 1991년 커류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적 캘빈이 먼저 전화를 건 일 등으로 보아 그 사람의 인종차별적인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4] 흥미롭게도 이날 뉴욕에서는 1969년 뉴욕 메츠의 첫 우승(일명 '어메이징 메츠')을 이끌었던 명투수 톰 시버도 양키즈와의 원정경기에 승리하여 통산 300승을 기록, 야구팬들의 환호를 동시에 받았다.[5] 그나마 의료보험이 적용되니 다행.[6] 생전에 그는 미식축구 생활을 하면서 장기기증 의사를 꾸준히 밝혔던 터라 어찌보면 사망자의 뜻을 존중한 셈이다.[7] 2023년 기준 77세의 고령이긴 하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동안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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