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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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 공군 원수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FM Robert Ritter von Greim
파일: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jpg}}}
이름
Robert Ritter von Greim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1]
출생
1892년 6월 22일,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바이로이트
사망
1945년 5월 24일,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복무
독일 제국군(1911년 ~ 1919년)
독일 국방군(1933년 ~ 1945년)
최종 계급
파일:LGFME.png 공군 원수(Generalfeldmarschall)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영국 본토 항공전
독소전쟁
바르바로사 작전
베를린 전투
신장
182cm
주요 서훈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푸르 르 메리트

1. 개요
2. 생애
2.1. 1차 세계대전
2.2. 전간기
2.4. 사망
3. 주요 서훈 내역
4. 매체에서




1. 개요[편집]



내가 루프트바페의 수장이오. 하지만 루프트바페는 없지.

-1945년 5월 8일 미군에게 항복하면서


독일 국방군 공군 원수. 국방군 전체를 통틀어 제일 마지막에 원수가 된 사람이다.[2]


2. 생애[편집]



2.1. 1차 세계대전[편집]


어린 나이에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20살의 나이로 포병 장교로 임관한다. 1915년 새로이 생긴 공군에 지원하여 공군 조종사가 되었다. 이후 전쟁이 끝날때까지 조종사로 활약했다. 총 전과는 28대 격추. 최초로 전차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공으로 푸르 르 메리트와 막스 요제프 훈장을 서훈받았고 막스 요제프 훈장을 받으면서 "리터 폰" 즉 기사 작위도 함께 수여받았다.[3]


2.2. 전간기[편집]


베르사유 조약으로 공군이 해체되면서 대위 계급으로 전역한다. 이후 직업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뮌헨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잠시 은행원 일을 했다.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새로이 창설되는 중화민국 공군 창설을 감독한 것을 제외하면 공군과 큰 연을 맺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 그러다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1934년 괴링의 초대로 새로이 창설된 공군에서 공군 소령 계급을 받고 창립 멤버가 된다. 이후 내각의 항공부에서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1938년 공군 중장까지 진급한다.

2.3. 2차 세계대전[편집]


1939년 2차대전이 터지며 폴란드가 점령된 후 그라임은 공군 중장으로써 공군의 군단을 이끌고 프랑스 전선에서 지휘한다. 뛰어난 지휘력으로 영국 공군과 싸워 승리를 계속 거두어 냈으며 1940년에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받는다.

이후 1941년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됨에 따라 그라임은 동부전선 최고 공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동부전선에 파견된 공군을 이끌며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의 진격에 큰 도움을 준다. 동부전선에서의 전공으로 1943년에 백엽 기사 십자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으며 이듬해인 1944년엔 백엽 검 기사 십자 철십자 훈장까지 수여 받는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는 그와는 반대로 동부전선의 전세는 악화되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겨우 50대의 전투기로 지휘에 임하게 되지만 상황이 악화된 만큼 여타 독일군들처럼 중과부적으로 퇴각을 한다. 그러던 중 베를린이 포위되자 애인인 한나 라이치[4]와 함께 베를린에 비상 착륙한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의 포격에 의해 다리에 큰 부상을 입는다. 그라임은 히틀러에게 탈출을 하라고 설득하지만 히틀러는 거절하며 그라임을 제3제국의 마지막 원수로 임명한다. 더불어서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이 히틀러에게 총통에 후임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편지 사건으로 4월 24일 전격 해임되고 대신 루프트바페의 최고사령관 자리에 그라임을 임명한다.

그라임은 임명 직후 히틀러의 권고에 따라 베를린을 탈출하여 해군총사령관 카를 되니츠 원수를 잠깐 만난 후 오스트리아로 간다. 되니츠는 이 마지막 만남에 대해, 1958년 펴낸 그의 전쟁 회고록 <10년 20일>에서 "우리는 매우 깊은 감정으로 헤어졌다"라고 술회했다.


2.4. 사망[편집]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함에 따라 미군에 의해 생포되고 오스트리아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여기서 그는 소련과 미군의 포로교환 프로그램을 듣고 자신이 소련에 가면 죽거나 오랫동안 고문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결국 1945년 5월 24일 오스트리아의 연합군 주둔지에 있는 병원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3. 주요 서훈 내역[편집]


  • 1914. 11. 26. - 1914년 제정 2급 철십자 훈장
  • 1915. 10. 10. - 1914년 제정 1급 철십자 훈장
  • 1918. 10. 08. - 푸르 르 메리트 훈장
  • 1918. 10. 08. - 막스 요제프 훈장
  • 1940. 06. 24. -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1943. 04. 02. -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1944. 08. 27. - 곡엽 검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4. 매체에서[편집]


영화 다운폴에 등장한다. 독일 배우 디트리히 홀린데르봐우머가 분했다. 조종사 한나 라이치와 함께 베를린에 착륙하여 히틀러를 피신시키려 하지만 히틀러는 거절하고 그라임을 공군 총사령관으로 승진시키며 수백대의 제트전투기를 지휘하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라임은 아직까지 이런 소리를 하다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또한 히틀러가 힘러가 배신했다는 소리를 듣자 이성을 잃어서 소리를 지르다가 조금 진정되니 자신의 반격계획을 설명해주는데 사실 연합군을 함정에 빠뜨리기위해 연합군에게 져준척한거고 이제 칼 되니츠가 북쪽에서 공격하고 자신은 프라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연합군을 포위하고 뒤를 칠 거라는 망상을 하자 "아직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예비군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라면서 비꼰다. 째려보는 괴벨스와 비꼬는 걸 모르는건지 화낼 힘도 없는건지 최신예 전투기를 배치할태니 루프트바페가 다시 하늘을 지배할거라고 하는 히틀러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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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리터 폰그라임'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두 번째는 육군원수 페르디난트 쇠르너이다.[3] 비슷한 사례로 육군 원수 빌헬름 리터 폰 레프가 있다.[4] 나치 독일의 유명한 여성 조종사로, 각종 선전물이나 테스트 기체 파일럿으로 활약하였다. 참고로 그녀는 자신의 애기 Fi 156 슈토르히를 몰고 베를린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