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알파케스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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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알파케스 참사
El accidente del camping de Los Alfaques
Los Alfaques disaster

파일:2019071023310864966.jpg




발생일
1978년 7월 11일
발생 위치
스페인 타라고나
유형
폭발, 교통사고
원인
트럭 전복
인명피해
사망
217
부상
200명 이상
1. 개요
2. 재앙의 전조
3. 사고 당시 상황
4. 피해
5.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로스 알파케스 참사(Accidente de Los Alfaques/Los Alfaques disaster)는 1978년 7월 11일 스페인 타라고나 주 알카나르에 위치한 캠핑장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최악의 교통사고[1]이다. 세계 교통사고 사망자수로는 4위[2]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스페인에서 일어난 참사 중, 테네리페 참사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인재다.


2. 재앙의 전조[편집]


1978년 7월 11일, 당시 기온은 최저 20도 ~ 최고 35도, 바다를 끼고있는 로스 알파케스 캠핑장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밀집된 상태였다. 원래 법적 수용 가능 인원은 260명이었으나, 당시 프랑스, 벨기에, 독일[3], 영국을 비롯한 다른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합해 전부 800여명의 관광객이 모여있었다. 관광객들은 캠핑장 내에 모여 돗자리를 깔거나, 트레일러 트럭에 모여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12시 5분, Enpetrol factory서 LPG 약 23톤을 실은 Cisternas Reunidas사 소속의 트레일러 트럭[4]카탈루냐 지역에서 출발했다. 운전수는 50세의 Francisco Imbernón Villena. 원래대로라면 6시간을 달려 푸에르토야노에 도착해야 했다. 1973년에 만들어진 이 트럭엔 안전 밸브가 없었는데, 당시 규정상 불법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원래는 이 트럭은 액화 가스를 담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으나 이를 무시한 상황이었고, 원래라면 이 트럭 탱크로리의 제한 용량은 약 19톤이라 4톤을 초과한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선 늘 하던 일이라 신경쓰지 않았다.[5] 전에 암모니아를 담은 적이 있어서 트럭의 탱크로리에는 균열이 생긴 상태였고, 통행료를 피하려고 다른 길을 택했는데, 하필 당시 이 길에는 바람이 불었다.

3. 사고 당시 상황[편집]


트럭은 105km 정도를 달리다 14시 35분 경, 캠핑장 근처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6] 트럭에서 23톤의 액화 프로판 가스가 새어나와 하얀 구름을 형성하고, 동북풍을 타고 퍼진 가스 구름은 캠핑장을 뒤엎고 캠핑장 내의 클럽 건물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생긴 하얀 구름에 호기심이 생겨 다가갔고, 가스가 건물 안의 점화원에 접촉해 새어나온 가스에 불이 붙으며 폭발, 불길이 다시 탱크로리에 닿으며 탱크로리마저 폭발했다. 당시 시각은 14시 36분, 트럭 운전수의 시계가 폭발의 충격으로 고장나 그 시간대에 멈춰 알수 있었다.


4. 피해[편집]


폭발로 인해 103명이 즉사, 300여명이 큰 화상을 입었다. 반경 300m 자리의 모든 것이 타버렸고, 폭발의 충격으로 탱크로리 트레일러와 연결되어 있던 트랙터 헤드가 분리됐는데, 차량은 불에 붙은채로 200m를 미끄러지다 한 식당과 충돌, 탱크로리가 있던 자리엔 깊이 2m, 반경 10m의 크레이터가 생겼다. 관광객들이 주차한 차량들에 불이 옮겨붙어 폭발했고, 캠핑장의 바베큐용 부탄가스들 마저 폭발했다. 사람들은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었으나, 폭발로 인한 열기가 바닷물마저 뜨겁게 데워놓은지라 오히려 피해가 더 커졌다.

생존자와 인근 주민들은 자신의 차량으로 부상자들을 이송시켰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지역 구급차들로는 모자라 인근 국가의 구급대와 군대까지 동원됐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인근 병원은 금방 만원이 돼서 인근 성당까지 빌려 환자들을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환자를 돌볼 의사와 간호사는 더 부족했고, 성당에 있던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탱크로리 잔해가 도로를 막은 터라 환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북쪽 병원과 남쪽 병원으로 이송됐다. 북쪽의 경우 환자들은 Amposta나 Tortosa의 병원에 이송됐고, 58명의 환자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병원에 이송됐다. 남쪽으로는 82명의 심각한 화상 환자가 발렌시아의 La Fe 병원에 이송됐다. 바르셀로나 지역의 병원에 이송된 환자들은 즉각적으로 화상 치료를 받았으나 발렌시아 지역으로 이송된 환자들은 받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지역으로 이송 된 환자의 93%는 살아남았으나, 발렌시아 지역으로 이송 된 환자는 45%만 살아남았고, 31명은 목숨을 잃었다. 해외 관광객 피해자들은 사고가 발생한 다음 주에 그들의 국가로 돌아갔다.

사망자 대부분은 독일인, 벨기에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이었다. 당시 캠핑장은 사람이 누가 왔는지 기록해둔 장부가 그 장부가 있던 건물째로 불타버려 캠핑 관리인의 기억과, 기타 물품등을 토대로 사망자의 신원을 조회해야 했는데, 폭발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서 당시 캠핑장에 있던 수박, 사람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고# 희생자 대부분이 수영복 차림이어서 의상이나 소지하고 있던 지갑으로 신원을 파악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거기다 차량 내 시신을 꺼냈는데 어느 차량에서 꺼냈는지를 기록하지 않는 등의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치열로 피해자의 신원을 전부 확인하는데 1년이나 걸렸다. 2명은 시신이 너무 훼손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신원 파악을 하지 못했다.[7]

차량 34대가 불탔고, 캠핑장 내에 있던 클럽을 비롯해 피해지역의 건물들은 전부 무너져내렸다.

5. 사고 이후[편집]


  • Cisternas Reunidas 측은 사고에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 인정했으나, 인화성 물질을 실은 트럭이 왜 인구 밀집지역으로 갔는지에 대해선 트럭운전사들이 통행료를 피하려고 길을 우회하곤 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트럭운전수 잘못으로 돌렸다.

  • 사고와 관련해 6명이 법정에 섰다. 트럭의 소유 회사였던 Cisternas Reunidas 회사서 4명, 트럭이 가스를 주입했던 Enpetrol Factory서 2명. Enpetrol Factory의 2명은 과실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Cisternas Reunidas의 4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 희생자들에겐 총 25억 페세타, 현재 가치로 약 1억6백만 달러가 지급됐다.

  • 사고 이후 스페인서 인구 밀집 지역 인근으로 위험물질을 싣고 가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위험물질 운반은 오로지 밤에만 가능하도록 지정됐다.

  • 로스 알파케스 캠핑장은 보수가 끝나고 6개월 뒤 재개장 했다. 캠핑장 건물 한쪽 벽면엔 추모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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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고의 원인이 도로에서 일어났으므로 엄연한 교통사고이다.[2] 1위는 1982년 아프가니스탄의 살롱터널에서 탱크로리 충돌로 발생한 살롱 터널 화재사고로 약 2,700명 2위는 2010년 콩고민주공화국 남 키부 주에서 230명, 3위는 2017년 파키스탄 바하왈푸르서 219명이다. 1위 ~ 4위 모두 탱크로리 관련 사고로, 2위와 3위는 탱크로리가 사고가 나서 안의 기름이 새자 주민들이 달려와 기름을 훔치려다가 사고가 발생했다.[3] 당시 서독[4]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트랙터는 페가소(Pegaso, 현 이베코) 1083 모델.[5] 애초에 회사에 가스 용량을 측정하는 기구가 없었다. 거기다 일정량 이상 차면 자동으로 밸브가 잠기는 기능도 없어서 상당수의 탱크가 과적인 상태로 운용됐다.[6] 사고가 어떻게 벌어진 것인가 에 대해선 목격자들 사이서 아직까지도 진술이 엇갈린다. 이미 탱크로리에서 가스가 새는 상태였다, 트럭이 캠핑장 근처를 지나가다 터지는 소리가 들려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세워보니 가스가 새고 있었다, 터지는 소리는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였고 타이어가 터지면서 트럭 운전수가 트럭을 운전하지 못해 결국 캠핑장 벽을 들이받고 전복 됐다 등으로 의견이 나뉘었다.[7] 해당 사고를 구글에 검색 시 불에 탄 희생자들의 시신이 여과없이 이미지로 뜨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