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오스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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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오스왈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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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44번
크리스 홀트
(1999~2000)

로이 오스왈트
(2001~2010)


저스틴 맥스웰
(2012~2013)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44번
넬슨 피게로아
(2010)

로이 오스왈트
(2010~2011)


마이클 슈와이머
(2012)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44번
마이클 커크먼
(2011~2012)

로이 오스왈트
(2012)


제이슨 프레이저
(2013~2014)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4번
후안 니카시오
(2011~2013)

로이 오스왈트
(2013)


라이언 휠러
(2014)




파일:Roy_Oswalt_Houston_Astros.webp

로이 에드워드 오스왈트
Roy Edward Oswalt

생년월일
1977년 8월 29일 (46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미시시피 주 코시우스코
학력
홈스 커뮤니티 대학교
신체
183cm / 86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23라운드 전체 684번 (HOU)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1~2010)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0~2011)
텍사스 레인저스 (2012)
콜로라도 로키스 (2013)
기록
Pitched a no-hitter (2003.6.11)

1. 개요
2. 커리어
3. 은퇴
4. 피칭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우완 투수.


2. 커리어[편집]



2.1. 휴스턴 애스트로스[편집]


1996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오스왈트를 자기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뒤로 남겨뒀고 결국 23라운드에서 오스왈트를 지명했다. 휴스턴에 입단한 오스왈트는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으며 마이크 매덕스[1]에게 여러가지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그 가능성을 높여갔다. 99년 시즌까지는 고질적인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였으나 시즌이 끝난 후 자기 집에서 트럭을 고치다가 감전, 그 이후로 어깨 통증이 없어져서 마이너를 정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결과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2] 대한민국을 누르며(...) 미국이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일등 공신이 된다. 한국과의 두 경기 모두 정대현과 맞대결을 벌였는데 두 선수 모두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명품 투수전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2001년 메이저에 콜업되어 141.2이닝 14승 3패 ERA 2.73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메이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3]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20승을 달성하기도 하였고 2006년에는 2점대 ERA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04년 시즌 전에 휴스턴이 로저 클레멘스앤디 페티트라는 거물들을 영입했으나 개막전 선발로 오스왈트를 낙점할 정도였고, 05년에는 팀의 내셔널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클레멘스가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오스왈트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을 맹비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여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컨디션 난조로 4강전이었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WBC 이후 부상등 으로 후반에 시즌 아웃, 데뷔 시즌부터 이어져오던 연속 10승 기록도 8년에서 멈추고 만다. 그냥 2009 시즌 자체를 말아먹었다.

별명은 데뷔 시즌의 임팩트있는 활약과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생각나게 하는 투구폼으로 화이트 페드로라고 불리었지만[4] 2003 시즌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 이후에는 투구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리고 페드로처럼 빈약한 하드웨어 때문에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페드로처럼 30대 중반으로 넘어갈 때 쯤 하락세를 겪고 은퇴하였다.

휴스턴에서의 말년은 팀 자체가 몰락하면서 불운의 대명사로 떠올랐지만, 그 커리어 전체로 따지자면 휴스턴 타선의 빵빵한 도움을 받으며 20승을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꾸준히 A급 투수로써 군림해왔지만 한 시즌 리그 전체를 지배하는 장악력을 보이지 못했고,[5] 그렇다 보니 사이 영 상 등의 수상 실적은 명성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2010 시즌 지난 시즌의 부진은 WBC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며 준수한 성적을 보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로이 할러데이, 콜 해멀스등과 일명 H2O로 불리는 막강한 선발진을 구상했으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밀리며 2010 NLCS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프시즌에 필라델피아가 또다른 에이스급 투수 클리프 리를 영입하면서 판타스틱 4라는 막강 선발진을 구축, 메이저리그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2011년에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골골대는 사이 트리오에 추가된 루키 밴스 월리에게 판타스틱4의 자리를 내줬고 사실상의 커리어 로우를 찍는 등 부진을 보였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도 패했고, 탈락한 필리스는 오스왈트의 2012년 $16M 옵션을 거부했다.


2.3. 텍사스 레인저스[편집]


2011년 종료 후 FA 시장에서 오스왈트는 보스턴 레드삭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많은 팀들과 염문설을 뿌렸음에도 실제로는 외면당했다. 결국 풀시즌 계약을 포기하고 과거 로저 클레멘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그랬듯이 시즌 중 계약을 추진했고 2012년 5월 말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5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첫 등판해서는 6⅔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경기에서는 부진을 거듭, 불펜으로 강등되었고 한번은 등판을 거부하기까지 해서 많이 까였다.

결국 2013년 초에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평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오스왈트 본인은 여지껏 겪어본 적이 없는 최상의 몸상태라면서 필리스행을 기원하고 있었지만, 결국 2013년 5월이 되어서야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면서 현역에 복귀하였다.

2.4. 콜로라도 로키스[편집]


드디어 2013년 6월 20일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첫 등판을 하였다. 5이닝동안 삼진을 11개나 잡아냈지만 안타도 9개를 내줘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폭풍 4연패하고 마이너리그로 강등, 9월에 다시 콜업되었지만 또 여지없이 쳐맞았다. 결국 시즌 스탯은 0승 6패 ERA 8.63의 초라한 결말.[6] 별다른 반전이 없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인 수준으로 추락했다.



3. 은퇴[편집]


결국 2014 시즌을 앞두고 팀들이 더 이상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은퇴 선언을 했다. 2014년 2월 중순이 되어서야 은퇴 선언을 한 것을 보면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본인도 나름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팀이 없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후 같은 시기에 은퇴한 랜스 버크먼과 함께 친정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일 계약을 맺고 4월 6일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동반 은퇴식을 하기로 했다. 안그래도 팀이 몇년새 좋지 않았는데 2000년대 중반의 전성기를 주도한 투타 에이스 선수들이 떠나는걸 보면서 팬들은 울상을 지었다.


4. 피칭 스타일[편집]


파일:오스왈트투구폼.gif

오스왈트의 주 무기는 90마일 초중반의 패스트볼[7]과 메이저 최고로 평가받는 커브[8]를 주무기로 하며 다른 변화구들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비슷하게 쓰리쿼터에 가까우며 스타일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투구스타일을 많이 고쳤기에 선수 생활 후반기의 투구는 그다지 공격적이라고 할 순 없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1
HOU
28
14
3
0
0
143⅔
2.73
126
13
24
6
144
1.059
170
4.3
4.8
2002
35
19
9
0
0
233
3.01
215
17
62
5
208
1.189
144
6.1
6.9
2003
21
10
5
0
0
127⅓
2.97
116
15
29
8
108
1.139
148
2.7
2.9
2004
35
20
10
0
0
237
3.49
233
17
62
11
206
1.245
124
6.4
3.8
2005
35
20
12
0
0
241⅔
2.94
243
18
48
8
184
1.204
144
6.2
6.0
2006
33
15
8
0
0
220⅔
2.98
220
18
38
6
166
1.169
150
6.3
6.0
2007
33
14
7
0
1
212
3.18
221
14
60
7
154
1.325
140
4.8
6.6
2008
32
17
10
0
0
208⅔
3.54
199
23
47
10
165
1.179
119
3.9
4.2
2009
30
8
6
0
0
181⅓
4.12
183
19
42
8
138
1.241
100
3.4
2.4
2010
20
6
12
0
0
129
3.42
109
13
34
2
120
1.109
116
2.4
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0
PHI
13
7
1
0
0
82⅔
1.74
53
6
21
3
73
0.895
234
1.5
3.2
2010 시즌 합계
33
13
13
0
0
211⅔
2.76
162
19
55
5
193
1.025
145
3.9
5.8
2011
PHI
23
9
10
0
0
139
3.69
153
10
33
5
93
1.338
104
2.7
1.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2
TEX
17
4
3
0
0
59
5.80
79
11
11
3
59
1.525
76
0.7
-0.3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3
COL
9
0
6
0
1
32⅓
8.63
49
3
9
1
34
1.794
52
1.0
-0.8
MLB 통산
(13시즌)
365
163
102
0
2
2245⅓
3.36
2199
197
520
80
1852
1.211
127
52.3
50.1


6. 기타[편집]


  • 2005 NLCS에서 맹활약하고 구단주가 오스왈트에게 불도저를 선물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휴스턴 소속이었던 헌터 펜스는 인터뷰에서 그 불도저 타 봤냐는 질문을 받았다.

  • 한때 은퇴설이 있었다. 근데 이건 마크 벌리도 그렇고 카를로스 잠브라노도 그렇고... 이 나이대 에이스 종특 그도 그럴 것이, 오스왈트는 어릴 때 벌목공이었던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울 정도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오스왈트를 야구의 길로 인도 한 것도 바로 아버지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2014년 2월 11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가족과 좀더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9]

  • 2019년 명예의 전당 후보로 등장하게 되는데 8년 연속을 포함해 9번의 10승 시즌을 기록하는 등 약물의 도움없이 2000년대 가장 꾸준한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으나 누적 스탯과 수상 기록이 부족한 탓에 입성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이버 매트릭스의 확산으로 누적 스텟이 부족해도 세이버만 좋으면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나 이것도 미달나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 그리고 첫해부터 꼴랑 4표를 받으며 그대로 광탈.


  • 바비 발렌타인 때문에 포스팅 시스템에서 메이저리그 입단을 하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랑 동급으로 취급 당해 버렸다. 오히려 통산 성적에서만 봐도 로이 오스왈트가 비교가 안되게 높다.[10] 그만큼 MLB 입성 당시 마쓰자카의 기대치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 로이 할러데이와 외모가 비슷하게 생겨서 종종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도 Roy로 같지만 할러데이의 경우 Roy가 본명은 아니다. 둘 모두 필리스에 오기 전 소속팀에서 10여년간 몸담으며 에이스로 활동한 바 있다. 그런 인연인지 오스왈트가 필리스로 트레이드 되었을때 둘은 2년간 함께 있던 적이 있었다. 당초 예상에 비해 일찍 은퇴하게 된 점도 같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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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생 그렉 매덕스에 비해 통산 커리어는 많이 뒤쳐지지만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투수코치로 손꼽힌다. [2] 이때 김재박 감독이 오스왈트를 탐낸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3] 보통 이정도 성적이면 신인왕 수상이 당연시 되는 성적이었지만 같은 해 데뷔한 알버트 푸홀스가 MVP급 성적을 찍어버렸다. 하여튼 헌터 펜스도 그렇고 휴스턴은 신인왕 복이 없다. [4] 다만 물건너 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별명이다. [5] 한시즌 오스왈트와 비슷한 성적이나 그 이상의 성적을 찍은 선수를 뽑자면 리그에서 5~10명 정도는 뽑을 수 있다. [6] 다만 FIP는 3.08로 매우 준수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7] 한때 시즌 평속 94마일을 찍을정도였고, 투심 비중을 높인 후에도 포심의 평균 구속은 93마일대를 유지했다. [8] 일반적인 커브와 자신만의 그립으로 구사하는 커브 이렇게 2가지가 있다. 특히 오스왈트 특유의 커브는 벌목공인 그의 아버지가 몸 담았던 벌목공 야구팀의 동료가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 [9] 은퇴식에는 타자는 킬러.B의 막내였던 랜스 버크먼이 였다. 에드 웨이드 단장에게 휴사구팽을 당한 것 때문에 팬들이 많이 아쉽고도 떠나보내기 안타까웠던 원 클럽 플레이어 투타 기둥들이였다. [10] 아마도 립서비스일지는 모르지만 그걸 듣던 로이는 덤덤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