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게라 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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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ürstentum Reuß-Gera / Reuß jüngerer Linie

표어 : Ich Bau Auf Gott ("나는 신에 의해 지어졌다")

1. 개요
2. 약사
3. 왕사(王史)
3.1. 공위요구자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령(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게라(Gera)였다. 독일어 이름 Reuß jüngerer Linie을 따서 소로이스 공령이라고도 하는데 로이스 가문의 작은집 격이었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827 km², 인구 14만 5천 가량.


2. 약사[편집]


한 뿌리였던 로이스그라이츠 공령과 함께, 하인리히 6세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공가의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다. 로이스 백작가가 다스려온 백국이었으나, 1806년에 로이스게라, 로이스로벤슈타인, 로이스슐라이츠, 로이스에베르스도르프, 로이스쾨스트리츠 백작들이 각각 공작(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48년까지 이들 공들이 다스리던 영토는 슐라이츠 계통으로 통합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로이스그라이츠와 합쳐져 1919년 로이스 자유국이 되었고, 튀링겐에 흡수되었다.


3. 왕사(王史)[편집]


로이스 공가는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는데, 로이스-게라의 경우에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 그 때부터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넘버링을 다시 1세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재위한 왕의 순서대로 1세, 2세라고 칭하는데, 로이스 게라 가문은 모든 구성원에게 '~세'를 붙였다.

  • 하인리히 42세 (1806-1818)
  • 하인리히 62세 (1818-1854)
1785~1854. 1848년 혁명으로 퇴위한 로이스-로벤슈타인 및 에베르스도르프의 하인리히 72세의 영토를 흡수했다. 미혼으로 사망했다.
  • 하인리히 67세 (1854-1867)
1789~1867.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고 프로이센 왕국과 가깝게 지냈다. 지성적이었으며 노련한 상업적 경험으로 많은 인기를 받았다.
  • 하인리히 14세 (1867-1913)
1832~1913. 1913년에 로이스그라이츠 공령의 섭정을 맡았다.
  • 하인리히 27세 (1913-1918)
1858~1928. 1918년 퇴위했다.


3.1. 공위요구자[편집]


  • 슐라이츠 계통
    • 하인리히 27세 (1918-1928)
1927년 로이스-그라이츠 가문의 마지막 수장이 사망하자 로이스 공가의 통합 수장이 되었다.
  • 하인리히 45세(1895~1945)
나치당원이었다. 미혼인 채로 소련군에 납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1962년 법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으면서 슐라이츠 계통이 단절되었다.
  • 쾨스트리츠 계통[1]
    • 하인리히 4세(1919~2012) - 하인리히 45세의 15촌 조카.
    • 하인리히 14세 (1955~) - 하인리히 29세를 포함 슬하 2남 2녀
      • 하인리히 29세 (1997~)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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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작 이 가문의 본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게다가 로이스 가문이 다스리던 영지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