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스 혼스비

최근 편집일시 :

로저스 혼스비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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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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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저스 혼스비
Rogers Hornsby

포지션
2루수
득표수
630,761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1922~1926).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26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1922~1926).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감독

1926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Hornsby%20Rogers%20Plaque_NBL_0.png
로저스 혼스비
헌액 연도
1942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8.1% (5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대지 밴스
(브루클린 로빈스)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밥 오패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짐 보텀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저스 혼스비
(시카고 컵스)


프랭키 프리시[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타자 트리플 크라운

하이니 짐머맨
(시카고 컵스, 1912년)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2년)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5년)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타자 트리플 크라운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2년)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5년)


지미 폭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3년)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1933년)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0년 ~ 192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에드 로시
(신시내티 레즈)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버블스 하그레이브
(신시내티 레즈)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폴 워너
(피츠버그 파이리츠)

로저스 혼스비
(보스턴 브레이브스)


레프티 오돌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사이 윌리엄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잭 포니어
(브루클린 로빈스)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핵 윌슨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하이 마이어스
(브루클린 로빈스)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1년 ~ 192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아이리시 뮤젤
(뉴욕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짐 보텀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보유 기록
최다 4할 타율 시즌
3회[2]
최다 타격 트리플 크라운 시즌
2회[3]













시카고 컵스 등번호 9번
결번

로저스 혼스비
(1932)


마크 코에닉
(193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4번
짐 보텀리
(1932)

로저스 혼스비
(1933)


키도 데이비스
(1934)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등번호 16번
칼 피셔
(1932)

로저스 혼스비
(1933)


딕 코프먼
(1935)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등번호 11번
결번

로저스 혼스비
(1934~1935)


롤리 헴슬리
(1936~1937)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등번호 4번
조니 버넷
(1935)

로저스 혼스비
(1936~1937)


샘 하섀니
(1938)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등번호 42번
짐 슈체키
(1951)

로저스 혼스비
(1952)


고디 선딘
(1956)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50번
윌라드 헤시버거
(1938)

로저스 혼스비
(1952~1953)


데이브 콘셉시온
(1970)



파일:Rogers Hornsby.jpg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 헌액자
시카고 컵스 명예의 전당 헌액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 SL
로저스 혼스비 시니어
Rogers Hornsby Sr.

출생
1896년 4월 27일
텍사스 주 윈터스
사망
1963년 1월 5일 (향년 66세)
일리노이 주 시카고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노스사이드 고등학교
신체
180cm / 79kg
포지션
2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15년 현금 트레이드 (STL)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15~1926)
뉴욕 자이언츠 (1927)
보스턴 브레이브스 (1928)
시카고 컵스 (1929~193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33)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1933~1937)
지도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1925~1926)
뉴욕 자이언츠 감독 (1927)
보스턴 브레이브스 감독 (1928)
시카고 컵스 감독 (1930~1932)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감독 (1933~1937, 1952)
신시내티 레즈 감독 (1952~1953)

1. 개요
2. 평가
3. 비판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성적
6. 기타



1. 개요[편집]


메이저리그의 前 야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2루수이다.

우타자임에도 전성기 내내 좌타자들을 제치고 장타와 교타[2] 두 분야 모두 두각을 나타냈으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7명뿐인 통산 OPS 1을 초과한 기록도 있다.[3]

2. 평가[편집]


통산 타율이 무려 .358(홈 .359, 원정 .358)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3위[4]다. 혼스비의 위에는 2명, 그 유명한 최초의 5인이자 당대 야구 황제였던 타이 콥(.366)과 니그로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는 오스카 찰스턴(.364)[5] 뿐이다. 타이 콥, 에드 델라한티, 조시 깁슨, 오스카 찰스턴과 함께 세계프로야구 역사에서 3시즌 4할을 기록한 대타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4할 타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물.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타율 10위권에 들어가는 야수들 중 우타자는 혼스비와 에드 델라한티 뿐이다. 또한 콥(11회)과 토니 그윈-호너스 와그너(8회) 다음으로 많은 7번의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6회 이상 수상자 7명 중에서 우타자는 그와 와그너 단 두 명 뿐이다.

그럼 단순한 똑딱이였는가하면 그것도 아닌게 통산 장타율 .577, 순장타율 218, OPS는 1.010이다. 2루수 중 메이저리그 최초로 300홈런을 기록한 사람[6]이 로저스 혼스비다. 즉, 장타와 교타 양쪽 다 원톱 수준인 타격 달인이었다.[7] 배리 본즈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자이언츠의 살인타선을 이끌었던 역대급 공격형 2루수 제프 켄트의 커리어하이 성적과 통산성적이 비슷하다. 게다가 타율, 출루율 같은 건 제프 켄트 커리어하이조차 혼스비의 통산 성적에 비교도 못한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

다만 초창기에는 장타 생산과는 거리가 있던 선수였다. 마른 체구에 몸쪽에 약점이 있었던 혼스비는 극단적으로 웅크린 채 타격을 했고 이로 인해 장타는 좀 적었다. 근데 이는 데드볼시대라 교타에 집중하는게 효율적이었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체구가 붙으면서 몸을 편 채로 타격하고, 몸쪽 약점을 해결하면서 장타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혼스비가 몸쪽 약점을 해결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는데 배터 박스 바깥 쪽에 자리잡고서 마치 타격 의지가 없는 것처럼 있다가 몸쪽 공이 들어오면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럼 바깥쪽은 어떻게 하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원래 바깥쪽 코스를 좋아한데다, 팔도 긴 편이고, 더군다나 초창기 웅크린 타격 폼과 달리 넓은 존을 커버할 수 있는 펴진 폼으로 바꿨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타자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열 다섯명[8]인데,[9] 이걸 두 번 해낸 사람은 테드 윌리엄스와 혼스비 뿐이다.[10] 또한 4할 타율을 3번이나 달성해내면서[11] 1920년대의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최고의 타자었다. 또한 한 시즌 4할 타격왕 겸 홈런왕을 2번이나 한 건 이 사람뿐이니, 그야말로 유일무이하다.[12] 그것도 이 사람은 우타자인데, 그 미친 타율을 해낸 것이다.

프로 정신도 상당했는데, 몸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신문, 책, 영화도 보지않고 하루 12시간을 잤다. 눈을 보호해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에게도 있다고 알려진)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신인 투수가 3연속 볼 판정을 받고 항의하자 심판이 "공이 스트라이크였으면 혼스비가 말해줬을걸?"이라고 일축해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치지 않으면 볼. 어느 정도의 선구안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13] 특이한 타격폼 또한 그 선구안에 한몫했는데, 홈플레이트 정 반대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공을 기다렸다가 바깥쪽으로 공이 들어오는 족족 왼발을 앞으로 당겨버리며 모두 공략해냈다. 홈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덕에 몸쪽 높은 공에 삼진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공을 힘껏 잡아 당겨 장타를 양산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감독 겸 선수로도 뛰었는데 선수로만 뛸 때보다는 본인 성적은 안 나왔지만[14] 팀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기는 등 활약하였다. 이 우승이 피트 알렉산더의 마지막 질주이자 베이브 루스의 그 유명한 끝내기 도루자가 나온 우승이었다.


3. 비판[편집]


혼스비는 순수 실력과 기록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야구장 바깥의 인간으로써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 시작한 이후로, 연봉 문제로 떼쓰기[15]나 프런트 무시하기, 독단적인 작전에 황소고집에 기자들과는 언제나 최악의 사이였다. 이것 때문에 그토록 화려한 기록, 성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저평가를 받았으며,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에서도 밀려난 것이었다.[16] 게다가 뛰어난 성적에 어울리지 않게 팀을 자주 옮길 정도로 동료들과 마찰을 빚었다.

또한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똑같이 거칠기로 유명했던 타이 콥[17]과는 또 다르게 이 사람은 가족에게조차 폭력적이었으며,[18] 은퇴 후 투자 실패와 알콜중독으로 본인과 가족의 인생을 망쳤다. 그 뿐만 아니라 도박중독으로 선수 은퇴시점에 이미 빚을 엄청나게 지고 있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타이 콥은 선수시절 경기장 안에서는 거칠긴 했어도 인종차별은 커녕 다른 인종에게 관대[19]했으며, 은퇴 후 속옷 사업, 껌 사업, 주식투자 등으로 준재벌[20]이 되었을만큼 엄청난 재산을 벌었고, 기부나 자선사업 등의 사회기여를 많이 한데다가 야구 후배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적도 있고, 너무 기대가 높아 엄하게 대했던 아들과의 갈등을 제외하면 가족들에게 늘 자상했으니 참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였냐면 오랜 시간이 흘러 알버트 푸홀스가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해 혼스비 같은 타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저런 미친 기록을 남겼던데다가, 은퇴하는 해에 명예의 전당이 생겨서 기자들 내 인지도가 가장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4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5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21]되었다. 다만 영구 결번의 경우 혼스비가 카디널스에 재적하던 시기엔 마지막 1년을 제외하고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영구결번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실력과 성격이 한국의 우타자였던 김동주와 비슷한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성적으로는 김동주와는 비교가 안 되긴 한다. 김동주는 3루수나, 소속팀 등 특정 기준 안에서만 최고였던 것이지 전성기조차 KBO 타자 전체 원톱[22] 도 아니고 트리플 크라운도 아닌데, 혼스비는 전성기 기준 2루수나 우타자라는 조건에 국한되지 않고 MLB 좌타자에 투수들까지 다 합쳐도 명백한 전체 1등 선수였다. 정 KBO 선수로 치자면 성적은 이대호가 교타 능력을 더 늘린 느낌이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로저스 혼스비
125
329
350
76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econd Base (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로저스 혼스비
127.0
73.5
100.2
2루수 HOF 입성자 평균
69.4
44.5
56.9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로저스 혼스비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15
STL
18
61
14
2
0
0
5
4
0
2
6
.246
.271
.281
.552
-0.3
-0.4
1916
139
550
155
17
15
6
63
65
17
40
63
.313
.369
.444
.814
5.3
4.9
1917
145
589
171
24
17
8
86
66
17
45
34
.327
.385
.484
.868
9.5
9.9
1918
115
466
117
19
11
5
51
60
8
40
43
.281
.349
.416
.764
5.1
5.4
1919
138
577
163
15
9
8
68
71
17
48
41
.318
.384
.430
.814
6.3
6.7
1920
149
660
218
44
20
9
96
94
12
60
50
.370
.431
.559
.990
9.8
9.6
1921
154
674
235
44
18
21
131
126
13
60
48
.397
.458
.639
1.097
11.2
10.8
1922
154
704
250
46
14
42
141
152
17
65
50
.401
.459
.722
1.181
10.6
10.1
1923
107
487
163
32
10
17
89
83
3
55
29
.384
.459
.627
1.086
7.1
6.8
1924
143
642
227
43
14
25
121
94
5
89
32
.424
.507
.696
1.203
12.5
12.1
1925
138
606
203
41
10
39
133
143
5
83
39
.403
.489
.756
1.245
10.8
10.2
1926
134
604
167
34
5
11
96
93
3
61
39
0.317
.388
.463
.851
4.6
4.4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27
NYG
155
684
205
32
9
26
133
125
9
86
38
.361
.448
.586
1.035
10.4
10.2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28
BSN
140
621
188
42
7
21
99
94
5
107
41
.387
.498
.632
1.130
9.0
8.9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29
CHC
156
712
229
47
8
39
156
149
2
87
65
.380
.459
.679
1.139
11.1
10.6
1930
42
120
32
5
1
2
15
18
0
12
12
.308
.385
.433
.817
0.4
0.4
1931
100
419
118
37
1
16
64
90
1
56
23
.331
.421
.574
.996
5.2
5.2
1932
19
70
13
2
0
1
10
7
0
10
4
.224
.357
.310
.667
0.1
0.0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33
STL/STB
57
108
30
7
0
3
11
23
1
14
7
.326
.426
.500
.926
1.2
0.9
1934
STB
24
31
7
2
0
1
2
11
0
7
4
.304
.484
.522
1.006
0.3
0.3
1935
10
27
5
3
0
0
1
3
0
3
6
.208
.296
.333
.630
-0.1
-0.1
1936
2
6
2
0
0
0
1
2
0
1
0
.400
.500
.400
.900
0.0
0.1
1937
20
63
18
3
0
1
7
11
0
7
5
.321
.397
.429
.825
0.1
0.1
MLB 통산
(23시즌)

2259
9481
2930
541
169
301
1579
1584
135
1038
679
.358
.434
.577
1.010
130.3
127.1


6. 기타[편집]


  • 신인 시절의 테드 윌리엄스를 만나 타격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타격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투수와의 수싸움과 심리전에 대한 가르침을 줬다고.

  • 누군가가 자신의 타구를 쫓아가는 것을 좋아한 듯하다. 공을 쳐도 쫓아가는 사람이 없는 골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고. 반대로 타이 콥은 골프를 좋아해서 은퇴 후에도 골프를 자주 치러 다녔다. 단 타이콥은 상술된대로 미국 남동부의 대지주(부동산 재벌)인 상류층 출신이라 어릴때부터 골프를 배웠던 거라, 사실 골프를 본인이 선택했다기보다 어릴때부터 집안 어른들의 환경에 따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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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뷔 초 2년 정도는 유격수였다.[2] 막상 발이 빠른건 아니라 도루 많던 시대에 도루가 현저히 적다.(커리어에서 1시즌 평균 도루가 6도루, 시즌 최다도루가 17도루. 참고로 동시대에 느린 이미지로 유명한 베이브 루스가 17도루 시즌이 있다.) 그러니 빗맞은 내야안타나 당시 흔했던 번트안타도 극히 적을 유형인데, 달리기도 느린 우타자가 라이브볼 시대에 4할을 3시즌이나 쳤다. 즉 완벽한 안타만 쳤는데도 내야안타가 많이 포함된 최고의 좌타자들보다 훨씬 높은 4할을 치거나 타격 1등을 꾸준히 했던 것이니, 정타를 치는 능력이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었던 것이다. 홈런 최상위권도 유지하면서 이런 초월적인 교타 능력을 가진 사례는 프로야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는게 불가능에 가깝다. [3] 나머지 6인은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루 게릭, 배리 본즈, 지미 폭스, 행크 그린버그이다. 나머지 6명은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와 코너 외야수 출신이고 혼스비는 이들보다 수비 부담도 많은 2루수에 교타에 불리한 우타자였다.(나머지 중 우타자는 지미 폭스와 행크 그린버그 뿐이다.) 게다가 장타율에 극히 불리한 데드볼을 쓰던 시대에도 5년이나 활동해서 OPS를 깎였던 유일한 타자(베이브 루스는 데드볼 시대에는 투수였다)이다.[4] 우타자로는 2위. 니그로리그 선수들을 제외하면 역대 우타자 1위.[5] 이사람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아니다.[6] 물론 2루수로 출전하지 않고 다른 포지션 출전 경기에서의 홈런도 포함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2루수 출전이다. 또한 그렇게 2루수로 분류되는 선수 중에 후대에 로저스 혼스비의 홈런 기록을 넘은 건, 제프 켄트로빈슨 카노 단 둘 뿐이다. 데드볼 시대에 데뷔하여 전성기 시작 후에야 라이브볼로 넘어간 그가 아직도 2루수 통산 홈런 3위라는 사실은 라이브볼 시대 후배들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라 거의 공포 수준. 그야말로 2루수 세계의 괴물이라고 보면 된다. 로빈슨 카노는 약쟁이고, 로저스 혼스비가 데드볼 시대에 데뷔하지 않고 라이브볼 시대에 데뷔해서 타격 스타일을 중간에 바꾸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장타 타격을 연마했다면 제프 켄트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은 야만없도 아닐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데드볼시대와 라이브볼시대 모두에서 장타력을 보여줬기 때문. 사실상 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 슬러거이다. [7] 오히려 진짜 약점은 주루였다. 2루수치고는 체격이 컸고 달리기가 매우 느린 편이었다. 타격은 약점은 커녕, 강점이 없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8] 폴 히네스, 팁 오닐(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휴 더피, 냅 라조이, 타이 콥, 하이니 짐머맨, 로저스 혼스비, 지미 폭스, 척 클라인, 루 게릭, 조 메드윅,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프랭크 로빈슨, 칼 야스트렘스키, 미겔 카브레라까지 16명이지만, 팁 오닐이 아메리칸 리그 전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선수라 빼서 15명인 것이다. 단, 내셔널 리그 출범 이후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기록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아닐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측 19세기 기록 관리에서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넣기도 한다.[9] 1967시즌 칼 야스트렘스키이후 45년간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었으나 2012시즌 미겔 카브레라가 역대 15번째 3관왕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10] 그것도 혼스비는 3할대인 테드와 달리 두번 다 4할이었다.[11] 이건 에드 델라헌티,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 단 3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12] 1번 한 것도 휴 더피 한명 뿐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4할 시즌이 홈런왕이 아니다. 트리플 크라운은 다 4할이 아닐때만 한 것이다.[13] 우리나라 버전으론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 이 있다. 장효조 역시 KBO 역대 타격 1위[14] 일단 타석 자체가 지나치게 적어졌다. 당대 다른 레전드들은 30대에 감독을 해도 선수쪽에 더 집중한 경우도 많은데(타이 콥은 감독일때도 4할 200안타를 쳤었다. 혼스비도 감독 초반에는 그랬지만 팀을 옮기면서 출전수를 점점 확 줄여나갔다.), 혼스비는 감독 쪽에만 집중한게 누적 성적이 동급 레전드들보다 줄어드는데 영향을 주었고, 4000안타를 칠거라 예상되던 타격 천재였음에도 3000안타조차 안타깝게 못 쳤다.[15] 사실 구단이 잘못한 부분이 더 크긴 하다만... 그는 감독이다. 감독이란 사람이 연봉 협상 질질 끄니 팀케미는 뭐...[16] 심지어 그 다음해 투표에서도 밀렸다. 당시 로저스 혼스비는 은퇴를 바로 앞둔 시기라 주목받던 시기였는데도 은퇴한 선배들에게 밀렸다. 당시 투표자들이던 기자들 중 상당수가 야구하는 걸 직접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냥 전설로만 불리던 사이 영조차 뽑힌 해였다. 투수와 야수로 포지션이 다르지만 로저스 혼스비의 야구 선수로의 업적은 사이 영에 확실히 뒤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타이 콥이나 베이브 루스에 동급 비교되는 타격 성적에, 외야수를 하면서 말년에 좌익수나 1루수로 수비부담을 줄여온 좌타자였던 그들과 달리 2루수라는 수비부담이 항상 강하게 있는 포지션을 우타자로 유지했기에, 역대 최고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에게도 부족할게 전혀 없는 선수였다. 수비부담은 와그너가 강하지만, 타격에서 혼스비가 확실히 우위다. 야구 역사상 최고의 우투수가 월터존슨이라면, 최고의 우타자는 명백하게 혼스비다. 간단히 말해 최초의 5인 누구에게도 동급 비교가 가능할만큼 성적이 부족할 게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중 크리스티 매튜슨과 비교하면 (투수와 타자 비교임을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압도적 우위다. [17] 하지만 타이 콥은 인종차별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는 한 백인 노동자나 흑인 노동자들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했고, 반대로 술을 쳐먹거나 악질적인 장난기가 발동한 상태로 자신을 건드리는(당시 신문 기록상 경기 전 훈련시간에 신발끈 정리하는데 주취자인 관객이 장난으로 떠밀어서 넘어질뻔하거나 진짜 넘어지고 그래서 두들겨 패고 경찰서 간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많았는데 다 공평하게(?) 폭행했다.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의 남아있는 기록상 백인이라고 덜 때렸거나 흑인이라고 더 때렸던 적이 전혀 없다. [18] 사실 이건 콥에게도 어느 정도는 있었으나 콥은 첫째 아들에게만 유독 엄했지 다른 자식, 손자들에겐 유순한 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선수들에게만큼은 거칠지 않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야구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가 사건을 더 파고들지 않고 덮으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신고한 증인이 갑자기 신고 직후 청문회와 증언을 모두 거부하여 증거가 없던 것이 더 컸다.[19] 신문인터뷰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태도의 발언도 공식적으로 했었다. 콥 가문은 조상들이 조지아 영국계 귀족이었으면서도 인종차별을 반대하다가 다른 백인 지주 귀족들과 다툰 적도 있을 정도의 특별한 집안이었다. 조지아는 미국 건국 13주이자 정통 영국 식민지(현재 미국의 대다수 주는 원래 영국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나 멕시코 땅이었다)로서, 영국인들이 농업 귀족, 흑인들이 노예를 하던 미국 정통보수 지역인데, 콥 가문만 조상들이 매우 진보적 태도를 취한 것.[20] 타이콥은 혼스비와 달리 흔치않은 상류층 출신의 금수저 야구 선수로, 대지주 자손이라 농업지역인 조지아 주에서는 귀족이었다. 본가에 하녀랑 집사 같은거 여러명 잔뜩 있는 진짜 그런 환경이었다. 타이 콥 자서전에도 약간 나온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대학을 안 가긴 했지만, 야구 안했으면 충분히 쉽게 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고등학교때까지 야구 외의 시간에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즉 경제학적 개념이 머리에 있던 사람이고 친척들도 부자 위주이다 보니, 지주 뿐 아니라 사업가가 꽤 많던 조건이라 은퇴 후 사업도 쉽게 시작한 것. 사실 감독이나 코치 시절에도 주식투자는 이미 하고 있었다.[21] 지금도 가장 저평가받는 동급 레전드 선배 에디 콜린스조차 4수로는 들어갔다. 역대 내셔널리그 최고의 2루수가 혼스비,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2루수가 콜린스다. 그나마 혼스비가 헌액되던 해는 혼스비 혼자 헌액되어서 나름 주목을 받긴 했다.[22] 김동주의 신인시절은 이승엽이 톱을 차지했었고, 그들이 해외로 떠나자 이대호가 톱을 차지했었기에 본인이 원톱으로 불린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