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산성명

덤프버전 :

파일:廬山聲明을 발표하는 장제스.jpg
파일:루산담화.jpg
루산의 총사령부에서 담화를 발표하는 장제스

1. 개요
2. 배경
3. 원문
4. 번역
5. 반응
6. 참고문헌
7. 관련문서



1. 개요[편집]


1937년 7월 17일, 중화민국 장시성 루산에서 중화민국 행정원장 겸 군사위원장 장제스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촉발된 중일 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발표한 성명이다. 중화민국은 끝까지 평화를 추구할 것이나, 전쟁이 피할 길이 없으면 끝까지 항전할 것임을 밝혔다. 루산담화라고도 한다.


2. 배경[편집]


1937년 7월 7일, 베이핑 인근의 루거우차오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의 교전이 발생하였다. 기찰정무위원장 쑹저위안이 저자세를 취함에 따라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하였지만 장제스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앙군을 북상시키자 일본은 이를 두고 장제스의 도전이라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3개 사단을 중국에 증파하였다.

역시 일본의 증파에 자극을 받은 장제스는 왕징웨이와 함께 7월 15일부터 7월 20일까지 강서성 루산에서 중국 각 당파, 단체, 학계, 재계 등 150여명의 실력자와 명사들을 소집하여 루산회의를 개최하여 중국의 단결을 꾀하였다.[1] 7월 16일 장제스는 쑹저위안친더춘에게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하여 대일교섭을 오판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전보를 보냈고 7월 17일, 성명을 발표하여 중국은 평화를 원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고도 싸울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 원문[편집]


廬山聲明 蔣中正
民國廿六年 7月17日
中國正在外求和平、內求統一的時候,突然發生了蘆溝橋事變,不但我舉國民眾悲憤不止,世界輿論也都異常震驚.
此事發展結果,不僅是中國存亡的問題,而將是世界人類禍福之所繫。諸位關心國難,對此事件,當然是特別關切。茲將關於此事件之幾點要義,為諸君坦白說明之.
第一、中國民族本是酷愛和平。國民政府的外交政策,向來主張對內求自存、對外求共存;本年2月三中全會宣言,於此更有明確的宣示。近兩年來的對日外交,一秉此旨,向前努力;希望把過去各種軌外的亂態,統統納入外交的正軌,去謀正當解決。這種苦心與事實,國內大都可共見。我常覺得:我們要應付國難,首先要認識自己國家的地位。我們是弱國,對自己國家力量要有忠實估計。國家為進行建設,絕對的需要和平;過去數年中,不惜委曲忍痛,對外保持和平,即是此理。前年五全大會,本人外交報告所謂:“和平未到根本絕望時期,決不放棄和平;犧牲未到最後關頭,決不輕言犧牲.”
跟著今年二月中全會對於「最後關頭」的解釋,充分表示我們對於和平的愛護。我們既是一個弱國,如果臨到最後關頭,便只有拚全民族的生命,以求國家生存;那時節再不容許我們中途妥協。須知:中途妥協的條件,便是整個投降、整個滅亡的條件。全國國民最要認清:所謂最後關頭的意義,最後關頭一到,我們只有犧牲到底、抗戰到底;唯有“犧牲到底”的決心,才能搏得最後的勝利。若是徬徨不定、妄想茍安,便會陷民族于萬劫不復之地!
第二、這次蘆溝橋事件發生以後,或有人以為是偶然突發的;但一月來對方輿論,或外交上直接間接的表示,都使我們覺到事變發生的徵兆。而且在事變發生的前後,還傳播著種種的新聞,說是什麼要擴大塘沽協定的範圍,要擴大冀東偽組織,要驅逐第二十九軍,要逼迫宋哲元離開;諸如此類的傳聞,不勝枚舉。可想見:這一次事件,並不是偶然。從這次事變的經過,知道人家處心積慮的謀我之亟,和平已非輕易可以求得;眼前如果要求平安無事,只有讓人家軍隊無限制的出入于我們的國土;而我們本國軍隊反要忍受限制,不能在本國土地內自由駐在;或是人家向中國軍隊開槍,而我們不能還槍。換言之,就是「人為刀俎,我為魚肉」!我們已快要臨到這極人世悲慘之境地。這在世界上稍有人格的民族,都無法忍受的。我們的東四省失陷已有了6年之久;繼之以塘沽協定,現在衝突地點已到了北平門口的蘆溝橋。如果蘆溝橋可以受人壓迫強佔,那末我們百年故都、北方政治文化的中心與軍事重鎮的北平,就要變成瀋陽第二!今日的北平若果變成昔日的瀋陽,今日的冀察亦將成為昔日的東四省;北平若可變成瀋陽,南京又何嘗不可變成北平!所以蘆溝橋事變的推演,是關係中國國家整個的問題;此事能否結束,就是最後關頭的境界.
第三、萬一真到了無可避免的最後關頭,我們當然只有犧牲,只有抗戰!但我們的態度只是應戰,而不是求戰;應戰,是應付最後關頭,逼不得已的辦法。我們全國國民必能信任政府已在整個的準備中,因為我們是弱國,又因為擁護和平是我們的國策,所以不可求戰;我們固然是一個弱國,但不能不保持我們民族的生命,不能不負起祖宗先民所遺留給我們歷史上的責任,所以到了必不得已時,我們不能不應戰.
至於戰爭既開之後,則因為我們是弱國,再沒有妥協的機會,如果放棄尺寸土地與主權,便是中華民族的千古罪人!那時便只有拼民族的生命,求我們最後的勝利.
第四、蘆溝橋事件能否不擴大為中日戰爭,全繫於日本政府的態度,和平希望絕續之關鍵,全繫於日本軍隊之行動,在和平根本絕望之前一秒鐘,我們還是希望和平的,希望由和平的外交方法,求得蘆事的解決。但是我們的立場有極明顯的四點:(一)任何解決,不得侵害中國主權與領土之完整;(二)冀察行政組織,不容任何不合法之改變;(三)中央政府所派地方官吏,如冀察政務委員會委員長宋哲元等,不能任人要求撤換;(四)第二十九軍現在所駐地區,不能受任何的約束。這四點立場,是弱國外交最低限度,如果對方猶能設身處地為東方民族作一個遠大的打算,不想促成兩國關係達于最後關頭,不願造成中日兩國世代永遠的仇恨,對於我們這最低限度之立場,應該不致于漠視.
總之,政府對於蘆溝橋事件,已確定始終一貫的方針和立場,且必以全力固守這個立場。我們希望和平,而不求茍安;準備應戰,而決不求戰。我們知道全國應戰以後之局勢,就只有犧牲到底,無絲毫僥倖求免之理。如果戰端一開,那就是地無分南北,年無分老幼,無論何人,皆有守土抗戰之責任,皆應抱定犧牲一切之決心。所以政府必特別謹慎,以臨此大事;全國國民亦必須嚴肅沉著,準備自衛。在此安危絕續之交,唯賴舉國一致,服從紀律,嚴守秩序。希望各位回到各地,將此意轉達于社會,俾咸能明瞭局勢,效忠國家,這是兄弟所懇切期待的.


4. 번역[편집]


루산성명 장중정
민국 26년 7월 17일
중국이 밖으로는 평화를 구하고, 안으로는 통일을 구하는 있는 이때, 느닷없이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 우리 국민들이 비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여론도 진경(震驚:크게 놀람)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중국의 존망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화복으로 이어지는 문제이다. 여러분들이 국난에 관심을 기울이니, 당연히 이 사건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사건에 관한 몇가지 요의를 제군에게 탄백(坦白)하게 설명할 것이다.
첫째, 중국민족은 본래 평화를 사랑한다. 국민정부의 외교정책은 줄곧 대내적 자존과 대외적 공존을 주장하였고, 올해 2월의 3중전회의 선언를 통해 더욱 명확히 표명하였다. 최근 양년의 대일외교는 이 같은 취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하며, 과거의 각종 난맥상을 외교의 본궤도에 통합하여 정당한 해결을 도모하기 바란다. 이러한 고심과 사실을 국내에서 대체로 공견(共見: 추리하다)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항상 깨우치고 있다. 국난에 대처하려면 먼저 내 나라의 지위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약소한 국가이므로, 자신의 국가의 역량에 대해 충실히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건설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화평이 필요하다. 본인의 외교보고는 다음과 같다.
"평화가 근본적으로 절망적인 순간이 될 때까지 결코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금년의 2월 중전회에서 '최후의 관두'의 해석을 보면 우리들의 평화에 대한 애정이 충분히 표시된다. 허나 우리가 일개 약소국이긴 하나 만일 '최후의 관두'에 달했을 때에는 전민족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국가의 생존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에 가면 중도타협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도타협은 전체의 항복, 전체의 멸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국의 국민들은 최후의 관두의 의미를 가장 잘 알아야 한다. 만일 피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여 최후의 관두에 서게 되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최후의 희생과 응전이 있을 뿐이다. 오직 '희생도저'의 결심과 재주만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만약 방황하고 주저하며 구차한 망상을 가졌다간 민족을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재난으로 빠뜨리게 될 것이다!
둘째, 이번 루거우차오 사건의 발생 이후, 이를 우발적인 일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나 지난 1월에 일본의 여론과 일본의 외교적 측면의 간접적인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사변의 징조를 느끼게 했다. 또 사변을 전후하여 당고정전협정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거나 기동의 괴뢰정부를 확대하겠다거나 29군을 몰아내고 쑹저위안을 핍박하여 떠나게 하겠다는 둥의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뜬소문들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이를 볼때 이번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변의 경과로부터 사람들은 내가 누누이 마음 속에 생각해왔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평화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눈 앞의 무사안일만을 바란다면, 다른 나라 군대가 무제한적으로 우리 국토를 드나들게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군은 오히려 규제를 감내해야 하며, 우리 땅에서도 자유롭게 주둔할 수가 없다. 만약 그들이 우리에게 발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따라 발포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자면, 곧 '다른 사람들은 칼과 도마가 되었고, 우리는 물고기가 되었다'[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가장 비참한 지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격적인 민족들도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동4성을 잃게 된 지 어언 6년이 흘렀다. 당고협정에 이어서, 지금 충돌점이 북평성 문 앞의 노구교까지 이르렀다. 만약 노구교가 다른 이들의 압박과 강점을 당하게 된다면, 우리의 백년고도, 북방 정치문화의 중심이자 군사상 주요 거점인 북평마저도 심양에 이어 두 번째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의 북평이 어제의 심양이 된다면, 오늘의 기찰 또한 장차 어제의 동4성처럼 될 것이다. 북평이 만약 심양처럼 된다면, 남경 또한 어찌 북평처럼 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노구교 사변의 추이는 곧 중국 국가 전체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일이 끝을 맺을지 아닐지의 여부가 마지막 고비의 경계가 된다.
셋째, 만약 진정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고비에 도달하게 된다면, 우리에겐 마땅히 희생과 항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는 남이 걸어온 전쟁에 응하는 것이지, 우리가 전쟁을 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응전은 마지막 고비에 대응하기 위한 부득이한 방법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가 이미 전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리는 약소국이며, 평화를 옹호하는 것이 곧 우리의 국가적 시책이기 때문에 전쟁을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고 있다. 허나 우리가 비록 약소국이지만, 우리 민족의 생명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할 경우 우리는 응전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약소국이므로 더 이상 타협의 기회란 없으며, 만약 한 치의 땅과 주권이라도 포기하게 된다면 곧 중화민족 천고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때에는 민족의 생명을 걸고 최후의 승리를 구해야만 한다.
넷째, 노구교 사건이 중일전쟁으로 확대될지 아닐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달려있고, 평화 희망의 단절과 연속의 관건은 전적으로 일본 군대의 행동에 달려있다. 평화가 근본적으로 좌절되기 1초 전까지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평화적 외교방안으로 사건의 해결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이) 명확한 네 가지 입장이 있다. (1) 어떠한 해결 방안도,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침해할 수 없다. (2) 기찰의 행정조직에 대한 어떠한 비합법적인 변화도 용납할 수 없다. (3) 기찰정무위원회 위원장인 쑹저위안과 같이, 중앙정부가 파견한 지방관에 대한 경질은 요구될 수 없다. (4) 제29군이 현재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네 가지 입장은 약소국 외교의 최저한도이며, 만약 상대방이 여전히 동양 민족을 위해 처신할 수 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양국 관계를 마지막 고비에 이르게 하여 중·일 양국 세대에 영원한 원한을 조성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의 최소한의 입장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노구교 사건에 대해 일관된 방침과 입장을 정했으며 이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평화를 바라지만, 구차한 안정을 바라지는 않는다. 응전은 준비하지만, 전쟁의 개시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전국적인 응전의 국면 이후에는 최후까지 희생만이 있을 뿐, 결코 조그만한 요행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전쟁이 시작된다면 남북도, 노소도 없이, 누구든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항전할 책임이 있으며 모든 것을 희생할 결심을 굳혀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 일을 각별히 신중하게 임하고 있다. 온 국민도 엄숙하게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해야 한다. 국가의 안위는 오직 거국적인 일치, 규율에 대한 복종, 질서의 엄수에 의지할 뿐이다. 각자 각지로 돌아가 그 뜻을 사회에 전달하고, 그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며, 나라에 굳게 충성할 것을 간곡하게 청할 따름이다.


5. 반응[편집]


루산성명의 발표에 그동안 국민당에 적대적이었던 쑹칭링까지도 크게 환영하는 등 중국은 항전분위기에 고무되었다. 장제스는 항일의 결의뿐만 아니라 평화가 다하기 1초 전까지 평화를 희망할 것이라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의지 역시 표명하였으나, 일본은 7월 17일 일본 대사관을 통해 각서를 보내 중국정부의 태도가 도전적이라고 비난하며 화북의 지방당국이 해결조건을 실행하는 것을 중앙이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에 국민정부 외교부는 지방에서 해결할수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중앙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고 반박했다. 동일, 군정부장 허잉친은 주중 일본대사관 부무관 키타의 방문을 받아서 다음과 같은 위협을 받았다.

"지금 중국은 30, 29, 102, 10사단 그밖의 부대를 합하여 5,6개 사단을 바오딩, 스좌장에 진입시키고 있다. 일본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다시 하북에 들어온 이들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정세는 반드시 급변하여 일중 양국은 전면 충돌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정어린 최후의 충고이다.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다."


이에 허잉친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중국 군대의 이동은 모두 자위를 위한 것이다. 일본이 증원한 군대를 철수시키면 중국 측도 증원군의 철수를 생각해보겠다. 사태의 확대 여부는 일본군에게 달려 있다."


그러자 키타는 "일본은 이미 중대한 결의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떠나버렸고 7월 20일 일본 제국 참모본부는 무력 사용을 결의하였다. 이날 루산에서 난징으로 돌아온 장제스는 군사, 정치 책임자들을 소집하여 대책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날 주중 일본대사관 참사관 히다카가 외교부장 왕충후이를 만나 2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 1. 난징은 화북의 모든 현지협정을 승인하라.

  • 2. 반일선동을 즉시 중지하고 중앙군의 북상을 정지하라.

하지만 왕충후이는 모든 협정은 중앙의 승인이 필요하며 중국은 충돌 확대의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확인할 뿐이었다. 일본이 이를 중국이 '반성'하지 않는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군사적 대립을 강화함으로 중일간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6. 참고문헌[편집]


  • 중일전쟁, 권성욱, 미지북스.
  •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민음사.
  • 다큐멘터리 중국 현대사, 서문당 편집실, 서문당.
  • 중일전쟁과 중국의 대일군사전략(1937~1945), 기세찬, 경인문화사.
  • 장제스 일기를 읽다, 레이 황, 푸른역사.
  • 중국어 위키피디아 루산성명 문서.


7. 관련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1:26:52에 나무위키 루산성명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때 저우언라이, 진방헌, 임백함 등도 루산에 파견되어 <국공합작을 공포하기 위한 중공중앙의 선언>등을 교부하는 활동을 했으나 국민정부의 견제로 장제스, 사오리쯔 등과 비밀협상을 하는 정도로 활동이 그쳤다.[2] 사기 항우본기에 있는 구절이다. 유방이 홍문연에서 범증의 계략에 죽기 직전까지 몰리자, 밖에서 번쾌가 들이닥쳐 유방을 끌고 나가, 사태가 위급하니 빨리 몸을 피할 것을 권하며 한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