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올 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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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올 뎅의 수상 이력




파일:루올뎅.jpg

루올 아주 뎅
Luol Ajou Deng

출생
1985년 4월 16일 (38세)
남수단 와우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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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남수단|

남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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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학교
듀크 대학교
신장
206cm (6' 9")
체중
108kg (237 lbs)
윙스팬
215cm (7' 0.5")
포지션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2004 NBA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피닉스 선즈 지명

소속 팀
시카고 불스 (2004~201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4)
마이애미 히트 (2014~2016)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6~2018)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018~2019)
등번호
9번 - 영국 농구 국가대표팀 / 시카고 / 클리블랜드 / 마이애미 / 레이커스 / 미네소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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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년기 및 선수 이전
3. 선수 경력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1. 개요[편집]


루올 뎅은 영국 국적의 농구 코치이다.


2. 유년기 및 선수 이전[편집]


수단 공화국[1]의 와우에서 태어난 딩카족으로, 어릴 때 제2차 수단 내전을 피해 이집트로 망명했다. 이집트에서 형과 농구를 배우며 딩카족인 마누트 볼을 만나기도 했다.

망명 신청이 허가된 후, 영국 런던으로 이민갔다. 영국에서 축구농구를 병행하던 와중에 축구와 농구 모두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됐으나 농구를 선택하고 14살에 미국으로 유학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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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이 되던 해에 미국 뉴저지 주로 이사를 갔으며 블레어 아카데미 3학년 때 전미 고등학생 중 르브론 제임스를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명문 듀크 대학교에 입학해 주전 포워드로 37경기를 출전해 30.1분을 뛰고 15.1득점을 기록하였으며 1년만 보내다가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킴 카다시안과 악연(?)으로 유명한 전 NBA선수 크리스 험프리스와 이와 관련된 인연이 있다. 험프리스와 뎅은 둘 다 200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클래스로, 이 클래스의 독보적인 전미 랭킹 1위인 르브론 제임스는 졸업 직후 NBA에 직행할 것이 확실시되었으므로 사실상 대학들 입장에선 뎅이 클래스 최고의 유망주나 다름없었다. (험프리스는 전미 랭킹 11~15위권이었다)

험프리스는 3학년이던 2002년 5월에 듀크 대학의 리크루팅에 응해 입학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이후 듀크는 뎅이나 은두니 에비 등 다른 신입생 리크루팅에 집중했는데, 이 해 11월에 4학년 시즌을 보내던 뎅이 듀크에 입학하겠다고 한 다. 이를 두고 "듀크가 험프리스를 리크루팅해놓고 뎅을 얻자 험프리스를 버렸다"는 설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이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뎅이 듀크를 선택했다는 기사가 나온게 11월 5일, 험프리스가 입학 서약서(letter of intent)에 서명한게 11월 20일이다. 즉 험프리스는 뎅이 입학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듀크에 입학하겠다고 한 것. 험프리스 가족들이 밝힌 이유는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뛰고 싶다"였다. (실제로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했다) 험프리스는 미네소타 주 최고의 선수였고 뎅이 있어도 듀크에서 충분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선수였다. 물론 둘은 비슷한 사이즈의 포워드인만큼 (플레이스타일은 다르다) 자신보다 뛰어난 유망주인 뎅이 입학하면 기회를 덜 얻겠다 싶어서 마음을 바꿨을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듀크대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험프리스와 뎅은 둘 다 훌륭한 1학년 시즌을 보낸 후 2004년에 동시에 드래프트에 뛰어들었다.

3. 선수 경력[편집]



3.1. 시카고 불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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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7순위로 피닉스 선즈에 지명됐지만
곧바로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됐다.

신인 시절에는 시즌 종반에 손목 부상을 당했지만 NBA All-Rookie First Team에도 뽑히는 등 암흑기였던 불스를 7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끌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61경기에 출전해 평균당 11.7득점을 기록하였고,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첫 더블 더블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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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부터는 전보다 발전한 실력으로 평균 78경기에 출전해 14.3득점, 6.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을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이끌었다. 또 2월 28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열린 4경기에서 모두 더블-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6-07시즌에는 82경기를 모두 선발로 나가 평균 출전시간 37.5분과 야투율 51.7%에 평균 18.8득점, 7.1리바운드를 기록하였으며 시즌 종료 후 스포츠맨쉽 어워즈에도 선출되었다. 그러나 선출되기 전에 하술할 사건이 터진다.


12월 27일에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 경기에서 손목으로 뎅의 팔을 쳐 다치게 한 제임스 포지에게 플레그런트 파울을 지적하였고, 이 사건으로 1경기 출전금지 조치가 내려지게 되었다.

2007-08시즌 초반에 불스와 계약 교섭을 진행하였고, 결국 5년 5700만달러로 연장계약을 맺는다. 그 시즌에는 63경기에 출장하였으나 왼쪽 아킬레스 건염으로 19경기를 빠지게 되었다. 뎅을 포함해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평균 17.0 득점과 6.3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을 지탱했다. 특히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에서는 커리어하이인 32점을 기록하여 팀을 151-135로 승리를 이끌었다.

한편 2008-09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존 팩슨[2]의 제안으로 6년 7100만달러에 연장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해에 뎅은 48경기에 출전해서 평균 14.1 득점과 6.0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2009-10시즌에는 70경기에 출전해 평균 17.6 득점과 7.3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지만,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13경기를 결장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상대로 평균 18.8 득점과 5.0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리즈 5차전에서는 26점을 기록하는 분전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 진출은 실패해,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만 했다.

2010-11시즌은 11월 1일에 열린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와의 홈 경기에서 야투 19개 가운데 14개를 넣었고, 자유투 11개 가운데 9개를 넣었을 뿐만 아니라 득점에서도 커리어하이인 40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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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에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 경기에서는 경기시간 16초를 남기고 3점 슛을 넣으며 92-89로 3점차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20득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불스에서 두 번째로 플레이오프 기간 득점 리더를 기록한 뎅은 1라운드부터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까지 뚫고 결승전에서 다시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게 된다. 당시 히트의 주장이었던 르브론 제임스는 뎅의 수비에 대한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히트에게 탈락하여 파이널은 이번에도 다음을 기약했다. 뎅은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평균 43분을 뛰며 16.9 득점과 6.6 리바운드, 2.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1-12시즌은 1월 21일에 열린 샬럿 밥캐츠와의 경기에서 4쿼터에서 팔목을 다치고 말았다. 처음엔 가벼운 부상인 줄 알았다가 다음 날 MRI 결과에선 왼쪽 팔목인대가 찢어졌다고 판명되어 복귀가 길어졌다. 2월 4일에 열린 밀워키 벅스 전에 스타팅으로 다시 돌아온 뒤부터는 득점 21개에 9개의 리바운드, 스틸과 블록은 각각 1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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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에는 팀 메이트인 데릭 로즈와 함께 NBA 올스타 동부 컨퍼런스팀에 발탁되었다. 이는 1997년 NBA 올스타에 발탁되었던 마이클 조던스카티 피펜이후 15년 만이다.


같은 해 2월 24일에 열린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연장전 접전 끝에 102-101로 버저비터 역전승을 거두었다. 시즌이 끝난 뒤, 뎅은 NBA All-Defensive Second Team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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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에 열린 2013 NBA 올스타에 조아킴 노아와 함께 발탁된 루올 뎅.

2012-13시즌에는 정규시즌에서 가장 높은 평균 점수인 16.5개의 득점과 6.3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게다가 자유투 성공률도 최고 기록인 81.6%로 남겼다. 같은 해 불스는 45승37패로 동부 컨퍼런스 5위와 팀의 두번째 센트럴 디비젼을 얻게된다. 불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브루클린 네츠를 만나 7차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준결승에서 마이애미 히트에게 패하여 결승전 진출은 좌절되었다.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44분동안 평균 득점 13.8개와 리바운드 7.6개를 기록하였고 3.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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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시즌에서는 부상으로 빠진 데릭 로즈를 대신하여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 또 다시 각각 27점을 넣었다. 그 밖에 피스톤즈전에서는 6개의 리바운드, 캐벌리어스전에서는 1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이로써 1월과 2월에는 19점과 3.7개의 어시스트 그리고 6.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3.2.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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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오피셜이 떴다.
CLE get: F 루올 뎅
CHI] get: C 앤드루 바이넘, 2015 POR 2라운드 지명권, 2016 POR 2라운드 지명권, 2014 SAC 보호 1라운드 지명권[3], 2015 CLE 보호 1라운드 스왑권
21분만에 득점 10개를 넣어 1개의 리바운드, 1개의 스틸 그리고 4개의 턴오버를 기록했다. 두 경기 뒤에는 27점에 5개 리바운드, 4개 어시스트, 블록 1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캐벌리어스에서 평균당 최고 기록인 14.1개의 득점과 2.5개의 어시스트를 남기고 시즌을 마치게 된다.


3.3. 마이애미 히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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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시즌에는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을 체결하여 평균 14득점과 5.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3.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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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7200만 달러라는 거액으로 리빌딩중인 팀에 합류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하락하는 생산력, 해당 포지션에 키워야할 유망주도 많은 팀이 덥석 노장에게 장기계약을 안겨주며 논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폭망했다.

과거의 에너지 레벨이 하락하고 수비력도 감소하여 출장시간이 줄었고, 17-18 시즌 들어서는 유망주 성장을 위해 거의 출장하지 못함에도 매일 열심히 훈련하고 기회를 원했으나 결국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고 스트레치 프로비전으로 방출되었다. 바이아웃과는 다른 것인데, 바이아웃이 합의 하에 연봉의 일부를 지급하는 대신 계약 해지하는 것이라면, 스트레치 프로비전은 남은 연봉을 남은 기간 +2년간 분할 지급하는 방식이다. 구단 입장에선 스트레치 프로비전이 더 안 좋은 것인데, 어떻게든 선수를 방출하고 자리를 비우고 싶을 때 쓰는 최후의 수단이나 마찬가지 방식이기 때문.

결국 레이커스는 루올 뎅이 팀을 떠난 뒤로 네 시즌, 뎅이 은퇴한 뒤 세 시즌이 지난 21-22시즌까지도 그에게 꼬박꼬박 연봉을 지급하였다. 뎅과 레이커스 간의 계약은 짐 버스와 미치 컵첵 시대에 벌어진 대참사였는데, 이 계약의 실패는 짐 버스가 구단에서 쫓겨나 그의 여동생 지니 버스가 구단을 장악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3.5. 미네소타 팀버울브스[편집]


2018년 9월 10일에는 팀버울브스와 계약을 체결해 불스 시절 팀 메이트였던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 타지 깁슨, 그리고 은사였던 톰 티보도 감독과 다시 뭉쳤다.

파일:시카고 불스와 1일 계약을 맺은 루올 뎅 은퇴.jpg
그리고 2019년 10월 17일, 친정팀 불스와 1일 계약을 맺고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2021 아프로바스켓 예선전을 위해 남수단 농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했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성기 당시에는 대부분의 팀에서 2옵션이 가능할 정도로 준수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볼핸들링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돌파 옵션이 있었고 특히 미드레인지 점퍼가 아주 정확했다. 커리어 초에는 3점 옵션이 거의 없었으나 갈수록 시도수와 정확도를 높여 나갔다. 주로 스몰 포워드를 수비하지만, 길다란 키와 윙스팬 덕분에 상대 4번까지 수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6cm의 신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림프로텍팅에 능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적극성과 손질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즈에 비해서 퍼리미터 수비에 매우 능숙했다. 전반적으로 아주 에이스 롤을 맡기기는 힘들지만, 괜찮은 득점력과 함께 견실한 수비 덕분에 어느 팀에도 어울리는 조각으로 뛸 수 있던 선수다.

선수 말년에 레이커스와의 계약이 참혹한 실패로 끝나면서 레이커스 팬들에겐 이미지가 영 안 좋은 편인데, 사실 뎅의 잘못은 아니고 은퇴기로에 선 선수에게 덜컥 거액을 떠안겨 준 레이커스 구단 측의 잘못이었을 뿐이다. 결국 이 계약 실패로 구단 수뇌부 여럿의 모가지가 날라갔다.


6. 여담[편집]


축구 종주국인 영국에서 자란 덕에 축구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 실제로 U-15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적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스날 FC의 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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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수단 독립 이전[2] 현역 때 불스의 쓰리핏 멤버 중 한 명 이었고, 현재 단장직을 맡고 있다.[3] 보호되면서 2017 2라운드 지명권으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