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판할/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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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럽
2.1. 아약스
2.2. 바르셀로나 1기
2.3. 바르셀로나 2기
2.4. AZ
2.5. 바이에른 뮌헨
2.5.1. 2009-2010 시즌
2.5.2. 2010-2011 시즌
2.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6.1. 2014-15 시즌
2.6.2. 2015-16 시즌
2.6.2.1. 인성 논란
3. 대표팀
3.1. 네덜란드 대표팀 (2000~2002)
3.2. 네덜란드 대표팀 2기 (2012~2014)
4. 맨유 이후
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선수
5.1.2. 감독


1. 개요[편집]


루이 판할의 감독 경력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클럽[편집]



2.1. 아약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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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은 안습했지만 전술 이해도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판할은 체육교사 일과 선수를 병행하며 감독직을 준비해 오다가 1988-89 시즌 아약스의 수석코치로 임명. 프로 데뷔 팀으로 복귀하고 세 시즌 동안 수석코치로서 당시 아약스 감독 레오 베인하커르를 보좌한다.

이후 1991-92 시즌 아약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1996-97 시즌까지 6시즌 동안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마르크 오베르마스, 데니스 베르캄프, 프랑크 더 부르, 로날트 더 부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빈 판데르사르, 마이클 레이저허르, 은완코 카누 같은 당시 네덜란드와 아약스를 이끌던 황금 멤버를 이끌고, 3차례의 에레디비시 우승, 1번의 KNVB컵 우승을 차지했다. 1991-92 시즌에는 토리노를 상대로 UEFA컵 우승을, 1994-95 시즌에는 파비오 카펠로감독이 이끌던 AC 밀란을 상대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특히 이 시즌은 시즌 전체를 통틀어 단 1패밖에 하지 않았던(37승 11무 1패) 무시무시한 시즌이었다. 그 1패가 하필 KNVB컵 8강에서 나온 거라 트레블에 실패하긴 했지만... 그러나 다시 말하면, 이것은 유럽 프로축구 유일의 무패 더블(리그/UEFA 챔피언스리그)을 달성한 것이기도 하다. 무패 리그 우승도 쉽지 않은데 더블이라니...

그 다음 시즌 1995-96 시즌에도 2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이끈 유벤투스 FC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그 다음 시즌이자 반할의 커리어 마지막 아약스시즌인 1996-97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리피의 유벤투스를 만나 합계 2-6으로 대패하여 탈락하고 무관에 그치고 만다. 다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빅 리그와 중소리그의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이런 판할의 성공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가 유럽 대항전에서 거둔 거의 최후의 성공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고[1] 그가 아약스 시절 이끌었던 선수들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각종 빅 리그 클럽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그는 아약스 2군 선수 시절에 크루이프의 경기를 지켜보았고, 지도자 경력 초기에 크루이프의 유산이 남은 아약스를 경험하면서 그가 만든 '토탈 풋볼'을 이상으로 삼아 자신의 지도 철학의 기반이 된 것이다.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축구를 지향했고, 크루이프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을 지도 철학으로 삼았다. 그리고 유소년 육성이 토탈 풋볼의 진정한 완성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에도 공감했다.


2.2. 바르셀로나 1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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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에 찍힌 인물 세 명이 모두 바르사의 주장을 역임한 인물들이다. 시대 순으로 펩 과르디올라(1997~2001), 루이스 엔리케(2002~2004), 카를레스 푸욜(2004~2014). 그리고 저 중 둘은 바르사의 감독을 지냈으며, 가장 최근에 은퇴한 푸욜은 바르사에서 코칭 스태프 커리어를 시작했었다.[2] 호불호는 굉장히 크게 갈렸지만 카를레스 푸욜, 차비 에르난데스 등 추후 월드클래스로 성장하게 되는 유망주들을 발굴한 인물.

사실 아약스 감독 재직 중인 1996년에 요한 크루이프 감독에 이은 바르사의 새 감독으로 주젭 유이스 누녜스 회장이 점찍어 두었으나, 판할 본인의 아약스 감독 계약 기간이 1997년까지로 정해진 탓에 바비 롭슨이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1997년에 롭슨이 총감독으로 승진하고 판할 역시 마침 아약스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비로소 바르사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바르사 감독으로 처음 맞은 1997/98 시즌에 라 리가-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룬 뒤 "선수단 전체가 칸데라(유소년) 출신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고 챔스에서 우승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아약스 때처럼 바르사에서도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빅토르 발데스, 그리고 카를레스 푸욜을 1군에 투입시킨 이가 바로 판할이다. 현재의 바르사는 판할의 꿈을 따라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판할은 아약스 출신 선수들도 영입했다. 1997년에 미카엘 라이지거가 판할을 따라 바르사로 들어왔고, 1998년에는 파트릭 클라위버르트프랑크 더 부르가 영입되었다. 게다가 네덜란드 국대의 유틸리티 선수 필립 코쿠도 오렌지 커넥션의 일원으로 들어왔다. 자연히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스팀 출신보다 네덜란드 출신 선수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판할은 아약스와 같은 축구를 하려고 했지만 실상은 '유니폼만 바꿔 입은 아약스'인 셈이었다.

1997년부터 판할호의 출발은 화려했다. 당년도 챔스 우승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하여 상쾌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판할이 처음으로 치룬 두 번의 엘 클라시코에서 원정 3-2승, 홈 3-0 완승이라는 성과도 냈다. 호나우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세한 또 다른 브라질 스타 히바우두, 소니 안데르손, 지오바니 실바 드 올리베이라는 두 번의 엘 클라시코에서 나란히 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팀이 창단 100주년을 맞은 1998/99 시즌까지 라 리가 연속 우승을 이루며 누녜스 회장이 택한 판할 카드는 완벽해 보였다. 1999년 2월 14일 엘 클라시코 홈 경기에서는 루이스 엔리케의 멀티골과 히바우두의 골로 3-0 완승을 거두면서 '제2의 크루이프'가 될 것 같은 인상을 줬고, 1999/2000 시즌 들어 바르사는 라 리가-코파 델 레이-챔스 트레블 후보로서 전 유럽 언론이 크게 주목했고, 2000년 3월까지는 유럽 무대를 제패할 것 같은 전력을 지녔다.

다만 시즌 후반 들어 선수단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에이스 히바우두가 항명을 한 게 세간에 드러나면서 팬들과 전문가 사이에서 '선수 장악 실패' 얘기가 나왔다. 당시 판할은 히바우두를 레프트 윙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히바우두는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을 선호하면서[3]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실질적으로 선수단을 무너뜨린 것은 판할 감독이 작성하여 누녜스 회장에게 건넨 문서가 유출된 사건 때문이다. 해당 문서에는 시즌 마감 이후 방출될 선수들의 명단이 해당 선수들의 에이전트 정보까지 조목조목 작성돼 있었다. '장차 바르사 1군 감독직을 원하는 선수' 등 선수들에 대한 각종 개인정보가 정리된 문서 역시 선수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방출 대상 선수들과 개인정보를 유출당한 선수들은 팀에 헌신할 수 없었고,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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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선수단이 분열된 바르사는 정규시즌 막판에 삐걱거리며 승점 5점 차이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 우승 타이틀을 내주었고, 챔스 4강전에서는 발렌시아 CF에 무기력하게 1-4 참패를 당했고, 코파 델 레이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0-3 완패를 당한 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몰수패를 당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바르사는 코파 델 레이 일정이 하필 챔스 경기 일정과 겹쳐 1군 선수가 7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당시 코파 델 레이 규정상 유스팀 선수는 단 3명만 출전이 가능해 10명의 선수로 2차전을 치러야 했다. 일정 조정과 유스 선수 등록조차 거부한 스페인축구협회의 결정에 대한 항의로 이 10명의 선수들은 시합에 나가지 않았고, 결국 팀은 그대로 몰수패를 당해 탈락했다.

엘 클라시코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9년 10월 13일 홈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2000년 2월 26일 마드리드 원정에서 0-3으로 깨졌다. 스포츠 일간지인 <스포르트>는 이 경기의 헤드라인을 '레알 마드리드 3, 판할 0'으로 내걸며 이 패배는 바르사의 패배가 아니라 판할의 패배라고 규정해 그를 외부인 취급했다. 이 경기에서 유스팀 출신의 프란세스크 아르나우를 과감하게 기용했는데 이 역시 패착이 되어 판할을 더 흔들어놓았다.

이렇게 시즌이 무관으로 끝나자 누녜스 회장은 노령과 팬들의 사퇴 압박에 따라 사퇴했고, 그 후임으로 조안 가스파르트가 회장이 됐다. 가스파르트 신임 회장은 선거 때 공약으로 '판할 경질'을 내세웠는데, 이 때문인지 판할은 "나를 데려온 분과 함께 떠나게 됐다"며 누녜스와 동반 사임했다.

임기 말에는 꾸레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1군으로 출전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며 1군에 자리잡게 해준 유망주들이 있었는데, 그 선수들이 바로 푸욜과 차비. 비록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하지 못하고 당시 고참 선수들과 불화를 겪긴 했지만 판할은 어떻게 보면 바르셀로나에게 큰 선물을 한 셈이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엘 클라시코를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를 3-0으로 개발살내어 한 명감독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쫓아버리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그가 바로 히딩크. 아약스의 레전드격인 판할과 마찬가지로 히딩크 역시 PSV의 비슷한 위상이었고, 라이벌인 두 팀과 함께 둘도 상징적인 라이벌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4] 그리 고 훗날 엘 클라시코 양팀 감독으로서 라이벌이 확정된 셈이었다.[5] 후술할 내용에도 포함될 것이지만, 그 뒤로의 판할의 행보는 히딩크와 비슷하기도 하다. 초반의 영예와 두 팀에 걸친 삽질, 그리고 약체팀의 성공적인 지도와 재기 등... 의외로 캄프 누에서의 3-0으로 이긴 그 경기를 빼고는 두 사람 감독 대결에서 판할이 이긴 적이 없다. 심지어 히딩크 커리어의 흑역사 중 하나인 베티스 감독 시절에 리그에서 딱 한 번 이긴 경기가 판할의 바르셀로나에게 2-1로 이겼던 거다. 그리고 이 패배가 바르셀로나를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어 최종적으로는 승점 5점 차이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 밀려 리그 우승에 실패한다. 결과적으로는 경질되긴 했지만 히딩크가 복수하긴 한 셈.


2.3. 바르셀로나 2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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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 시즌을 앞두고 조안 가스파르트 바르사 회장은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지난 시즌에 챔스 출전권을 획득시킨 카를레스 렉사흐 감독을 자르고, 2년 전에 자신이 자른 판할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마침 월드컵 지역예선 광탈을 겪은 판할은 당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려고 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은퇴 의사를 철회하면서 길을 잃었고, 결국 바르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번 깨진 신뢰라는 거울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법, 그 전에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하던 당시 판할과 불화를 겪었던 히바우두는 판할의 복귀 소식에 바르셀로나와 재계약 하지 않고 AC 밀란으로 자유계약 신분으로 팀을 옮겼으며 역시 판할을 좋아하지 않았던 좌측 윙백인 세르히도 AT마드리드로 팀을 옮긴다. 히바우두의 이적은 바르셀로나가 큰 기대를 하고 데려온 리켈메의 영입으로 공백을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세르히의 이적은 판할에게도 타격이었다. 2000-01 시즌 바르셀로나의 왼쪽 윙백 자리는 세르히와 AC 밀란에서 임대 영입한 프란체스코 코코[6] 이 2명이었지만, 코코가 임대 복귀하고 세르히는 판할이 온다는 소식에 재빨리 자유계약으로 AT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왼쪽 윙백 자리를 맡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라 리가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지만 당시 20살도 안됐던 페르난도 나바로를 1군으로 승격시켰지만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코쿠 같은 선수가 땜빵으로 왼쪽 윙백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변칙 스리백을 가동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했다. 반면 최전방에서 클라이버르트와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최선을 다했으나 미드필드진이 취약했다.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본선에서 6경기 전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한 거랑 달리, 리그에서는 챔스만큼 열성적이지 못한 탓에 여러 중하위권 팀들에게 일격을 당해 선수들의 사기가 점차 떨어졌다. 이것 때문에 19라운드까지 6승밖에 챙기지 못해 16위로 밀려나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막장 행태를 보이면서도 제대로 해법조차 내놓지 못하는 안습한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히바우두 때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가 야심차게 영입한 리켈메를 본 포지션이 아닌 좌측 미드필더로 활용하면서 제대로 활약도 못한다고 출전조차 시키지 않기도 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판할은 전 코칭스태프를 동원해 팀을 뒤흔든 내부자를 찾기 위해 팀 경비원부터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온종일 검문에 들어갔으나 팀 식구들과의 관계만 악화되었고, 결국 그해 1월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짐을 쌌다. 그를 불러온 가스파르트 회장 역시 판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2월에 퇴진했다. 바르셀로나는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결국 시즌 6위에 머물며 2003-04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유망주 정책은 이때도 계속되었는데 1기시절 1군으로 투입한 사비와 푸욜을 완전 1군에 정착하게 했고 1군 콜업으로 불러온 이니에스타와 발데스에게도 1군경기 투입을 해서 경험을 더욱 쌓게 해주었다. 결과론적으로 바르셀로나 2기시절에도 향후 바르셀로나 레전드 오브 레전드가 되는 푸욜과 사비를 1군에 정착 시켜주고 이니에스타와 발데스도 1군에 정착하게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몇년뒤....펩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바르셀로나는 티키타카로 불리는 전술로 지구정복을 하게되는데....어찌보면 판할의 유망주 정책은 바르셀로나가 위대한 업적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큰 기여를 하게되었으며 유소년 출신들로 구성된 팀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고싶다던 판할의 목표가 달성된 셈이기도 하다.


2.4. AZ[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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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이후, 휴식을 취하며 아약스의 기술고문 자격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판할은[7] 2005-06 시즌 AZ 알크마르에 감독으로 복귀한다. 전임 감독인 코 아드리안세는 중위권에 머물던 AZ 알크마르를 2003-04 시즌 5위, 2004-05 시즌 3위에 올려 놓고 2004-05 시즌 유로파리그 4강에 이름을 올리는 등 에레디비시의 강호 수준으로 키워냈고, 판할은 그렇게 코 아드리안세가 잘 다져놓은 기반을 물려받으며 AZ를 이끌기 시작했다.

부임한 첫 해인 2005-06 시즌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아약스와의 유럽대항전 플레이오프에 패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듬해인 2006-07 시즌에는 골득실은 앞섰으나 승점 3점 차이로 3위에 머물러야 했던 판할은 그 다음 시즌 AZ 알크마르가 11위로 추락하며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강력한 반발로 사임 의사를 접은 판할은 2008-09 시즌을 2연패로 시작했지만 곧 질주를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리그 무패 행진을 달리는 등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극적인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이는 AZ 알크마르의 통산 2번째 우승으로, AFC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페예노르트라는 빅 3 클럽이 우승을 독차지하던 에레디비시에 새로운 바람을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결과를 통해 판할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의 실패와 FC 바르셀로나에서의 경질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2.5. 바이에른 뮌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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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009-2010 시즌[편집]


2009-10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불구하고 리그 초반엔 4경기 중 1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빅리그에서의 실패를 맛보는가 했는데, 그 이후 성적이 급상승하며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차지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트레블을 눈앞에 둔다. 당시 상대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끌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인테르 역시 2009-10 시즌에 세리에 A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며 2009-10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며 무리뉴 역시 트레블을 눈 앞에 두었다.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말 그대로 트레블 대결. 결국 무리뉴가 이끌던 인테르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 대결은 무리뉴의 승으로 끝났다.
보드진이 반대하던 아르옌 로번을 영입했는데 보드진이 로번을 반대한 이유는 로번이 유리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번은 뮌헨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로번 영입 또한 반할이 뮌헨에 남긴 유산이다.

2.5.2. 2010-2011 시즌[편집]


성공적이었던 2009-10 시즌과는 달리 그 다음 시즌에는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이 계속되며 리그 3위로 밀렸다.[8] 이에 전 시즌 더블을 이루는 등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임됐다. 후임 감독은 유프 하인케스. 판할 본인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트레블에 실패했지만 후임 감독인 유프 하인케스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토마스 뮐러, 홀거 바트슈투버 같은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윙어 자리에서 어정쩡하던 슈바인슈타이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경시키며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등 바이에른 뮌헨 뿐만 아니라 독일 대표팀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특히 토마스 뮐러가 독일 축구의 한축으로 성장하게끔 이끈건 큰 업적이다.


2.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편집]



2.6.1. 2014-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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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나고 예정된 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정식부임 하였고 곧바로 프리시즌 미국투어에 돌입하였다. 미국투어 훈련에서의 모습을 보면 독불장군 같은 모습을 많이 누그러뜨리고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면서 선수단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8월 16일 8시 30분에 킥오프한 2014-15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인 스완지 시티와의 안방경기에서 기성용에게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첫 아시아 선수 리그 개막골을 넘기며 1-2로 패했다. 맨유가 안방 개막전에서 패한 것은 42년 만이며 더불어 스완지 시티 역사상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이긴 첫 경기였기에, 판할의 첫 올드 트래포드 데뷔 경기는 패배와 함께 좋지 않은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경기 선덜랜드와 비기고 리그컵에서는 3부 리그 팀 MK 돈스0-4로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시절에도 판할은 초반에 부진을 겪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더블을 달성했었고, 모예스 때와는 달리 맨유가 어마어마한 선수영입을 했기에 팬들은 벌써부터 낙담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또 원래부터 판할의 커리어가 안정감이 없고 롤코의 연속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 개막 후 1달이 지났는데 리그 5경기에서 1승 2무 2패로 매우 부진하며 평가가 매우 나빠졌다. 물론 스쿼드가 크게 개편되어 서로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라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상대한 5팀이 모두 반드시 승리를 챙겨야 할 양민팀이라는 게 문제.
공격진에는 세계 최고의 3톱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로빈 반 페르시, 웨인 루니, 라다멜 팔카오를 보유한 데다가 공격을 전개할 미드필더진도 앙헬 디 마리아, 안데르 에레라, 후안 마타로 리그 최고 수준이다. 다만 갈락티코 시절 레알만큼이나 이들이 공격을 마음껏 펼치게끔 해줄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과 수비진의 두께가 심하게 부족하고[9] 위의 선수들이 모두 상당한 이적료와 주급으로 영입된지라 주전으로 안쓰기도 애매해서 이 공격에 특화된 6명을 전부 스쿼드에 넣어 공격력이 리그 최강 수준으로 돌아가는 만큼 수비와 수미에서 상당한 약점을 보이는 중이다.

그리고 결국 뇌관이 터지고 말았다. 리그 5라운드에서 이번 시즌 승격팀인 레스터 시티 FC에게 3:1로 앞서다가 후반전 20분 정도의 시간동안 무려 4골을 실점하며 우려했던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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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예스와 판할의 비교

판할이 월드컵에서 보여준 게 있었기에 팬들은 기대를 많이 했지만.. 리그 10라운드까지 맨유는 3승 4무 3패로 10위에 머물러 있었다. 1억 5천만 파운드라는 어마무지한 이적료를 투자했음에도 목표로 잡은 4위권 진입은 어림도 없어보인다, 이래선 유로파라도 가겠냐며 언론에게 대차게 까였었다. 리그컵은 일찌감치 탈락했고 챔스도 없이 널널한 일정을 소화중인데도 졸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더더욱 까였다.

하지만 자그마치 10명의 선수가 부상 중인 어이없는 상황에서 홈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게 진땀승을 거뒀고,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아스날을 원정에서 잡으며 4위권은 지켰다.

위 설명이 다소 가혹한 평가인 것이, 모예스는 선수단 장악에 완전히 실패하여 뒤숭숭한 라커룸 분위기를 만들었고, 감독의 부족한 선수 이해도 때문에 전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여 이것이 경기력에서 드러났었다. 반면 판할은 뮌헨에서처럼 시작이 좋지 않았으나, 소멸된 수비진에다가 끊임없이 부상선수가 나왔음에도 (12월 기준) 팀을 3위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강팀과의 경기에서 모예스 감독처럼 완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맨유가 시즌 초반 고행길을 걸을 때, 판할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만드는 데는 3개월이 필요하다"고 단언했었는데, 이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3개월이 지난 11월, 거짓말처럼 맨유는 되살아났고 리버풀전까지 6연승을 이어갔다. 헐 시티전은 에이스 디 마리아, 스토크 시티전은 루니와 디 마리아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였다. 이는 맨유가 더이상 한명의 선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돌아가며 활약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할 감독에 대한 의심의 시선은 점점 걷히는듯 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수들의 부상과 (쓰리백·포백을 번갈아 쓰는 등) 전술 실험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판할의 베스트 11을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18라운드 까지 치룬 시점에서는 상당히 좋은 모습이다. 툭하면 부상당하는 이 안습적인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승점을 따내고, 3위를 유지하고 있기때문. 그리고 애슐리영과 펠라이니를 살려내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전반적인 선수단의 분위기도 좋은편.

그러나 21라운드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저번 시즌 모예스가 21라운드까지 딴 승점과 판할이 이번 시즌 21라운드까지 딴 승점이 37점으로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욕을 먹고 있다.

무엇보다 판할은 모예스 때보다 더 많은 영입을 했고 챔스도 안 나가고 리그컵에서도 탈락했다. 그럼에도 승점이 같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런데 약 2539억을 들여 선수들을 영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높은 수준의 선수를 영입하겠단다.

2015년 1월 24일에 열린 잉글랜드 4부리그(풋볼리그2) 클럽 캠브리지와의 FA컵(잉글랜드) 4라운드 경기에서 주전을 기용함에도 불구하고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3백 전술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판할은 전술적 문제가 아니며 선수들의 부진한 경기력이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기사

그 후 강등권 팀인 퀸즈파크 레인저스와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손쉽게 승점을 쌓았으나, 2015년 2월 9일 열린 웨스트햄과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장담 못 하는 상황.
경기 후 웨스트햄 감독인 샘 알라다이스가 "맨유의 롱볼축구를 막지 못한게 동점골을 준 원인이다"라고 놀렸는데 그게 상처가 되었는지 다음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아예 인쇄해온 A4 자료까지 배포하며 롱볼축구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고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있다.##[10][11]

3월 10일,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맨유 유스 웰백에게 결승골을 허락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그 후 3월 16일 리그 29라운드 토트넘전은 챔스권 사수를 위해서라도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였는데 33분만에 3골을 넣고 3-0으로 이기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전처럼 존못에 데헤아 하드캐리가 아닌, 미드필더진부터 완전히 압도했고,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이겼기 때문에 맨유팬들은 다시 기대하는중.

30라운드 리버풀전에는 퇴장징계에서 복귀한 디마리아를 벤치에 두고 마타를 오른쪽 윙어로 선발출전시키는 모험아닌 모험을 걸었는데[12], 제대로 먹혔다. 마타가 두골을 넣으며 2-1승리에 크게 공헌한 것. 안필드 원정이라는 어려운 길에서 리버풀을 압도하면서 승리하면서 다시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31라운드 아스톤 빌라전도 3-1 승리로 거두고 대망의 32라운드 맨체스터 더비는 2년동안 이기지 못해 5연패중이었던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선 4-2로 이겼다.

33라운드 첼시전에서는 점유율상으로는 32대 68으로 높았지만 에덴 아자르의 일격에 1-0으로 패했다. 주마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여 펠라이니를 봉쇄한 무리뉴의 전략에 말렸다는 평.

4월 22일 현재 3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5위인 리버풀이 한 경기 덜 치른 상태이긴 하지만 승점 7점 차이로 맨유 보드진들이 데려오면서 원했던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후 암걸리는 2연패로 첼시전 포함 3연패를 달성, 리버풀과 맨시티가 같이 삽질 중인 상황에서 사이좋게 아랫방향을 향하며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판할 감독의 스타일이 잘할 때는 정말 잘하고 강팀을 상대로 선전해주지만 약팀을 상대로 의외의 뜬금패도 많다 보니 만에 하나 리버풀에 밀려 챔스 진출을 못하면 당장 잘라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평가가 갈리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경기에서 전반에만 쇼와 루니가 부상당하는 악재속에서 펠라이니의 골로 꾸역꾸역 2-1로 이기면서 다시 리버풀과의 승점차를 벌렸고, 리버풀이 첼시하고 비기면서 남은 두경기에서 승점을 1점만 챙겨도 챔스를 갈수있는 상황이 되었다.

우선 결과만 보자면 리그 4위로 챔스 진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여름 이적시장때 들인 돈과 프리한 편이던 일정에 비하면 한심한 성과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긴하나 이건 일반인이나 타팀팬들의 의견이고, 당장 13-14 시즌만 봐도 말도 안되는 영입 추진과 어정쩡한 영입으로 7위로 폭망한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비판이다. 물론 판할 본인의 전술이나 행동은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퍼거슨에서 모예스로 이어지는 과정에 펠라이니와 마타를 제외한 영입이 없던 맨유는 그저 B급 수준이었다. 루니와 데 헤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몫을 해줄 선수가 없었고 당시 영입한 펠라이니와 마타를 살려낸 건 오히려 모예스가 아닌 판할이다. 클레버리와 똥 싸던 시절의 영, 노쇠해가던 수비라인 등의 B급 스쿼드를 단 한 시즌만에 다 갈아치워서 우승까지 간다?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주장이다.[13]

그러나 이땐 아무도 앞날을 예상 못했는데...


2.6.2. 2015-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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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선수를 제대로 못 산 것이 불만인양 미국으로 떠나는 투어 전날인 한국 기준 7월 13일날까지 멤피스 데파이, 모르간 슈네데를랭,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마테오 다르미안, 그리고 앙토니 마샬까지 일찌감치 영입하는 등 선수 영입에 감독 이름값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보이고있다.

시즌 개막전 라모스랑 링크가 지속적으로 됐는데 라모스가 맨유를 이용해 먹었다. 여기에 대해 판할은 되도 않는 말을 하면서 혼자 화를 냈는데[14] 실제로 라모스는 이렇게 링크를 지으면서 레알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였고 결과적으론 자신이 원하는 급료&다른 추가적 이득을 얻었다. 심지어 라모스가 어느 경기에서 골넣고 페페랑 같이 환호하는 장면에선 어떤 해축빠가 같이 이용해 먹자고 아예 댓글에다 이런 식으로 써놨다.

프리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이제서야 훈련장 보수를 하며 잔디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고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이적시장에서 공격진 영입이 계속 실패하자 펠라이니를 최전방으로 올리겠다는 인터뷰를 했다.[15]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쓴다.

그리고 결국은 이번 여름 시장에서 패닉 영입은 없을 거라 선언했다. 이젠 공격수가 루니랑 치차리토밖에 없는데 치차리토도 이적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루니가 애초에 섀도우 스트라이커인지라 솔(sole) 스트라이커로서는 OME. 이 2명(혹은 1명)의 스트라이커로 리그, 컵 대회, 챔스를 병행해야 되고 웨인 루니가 부상이나 징계라도 나와 버리면 진짜로 스트라이커 없이 축구 해야 된다. 그리고 치차리토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루니가 부상, 혹은 징계를 받기라도 한다면 맨유에는 스트라이커가 없다.

그러나 하루만에 말을 뒤집어 역사에 남을 패닉 바이를 단행하고야 말았다. 이적 시장 종료일인 9월 1일 AS 모나코의 유망주 앙토니 마샬에 옵션 포함시 £58m이라는 믿기지 않는 거액을 지르고 만 것.

이와중에 빅토르 발데스와는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고, 세르히오 로메로를 신용하며 다비드 데 헤아의 레알 이적[16]이 유력했는데, 서류가 늦게 도착해 이적이 무산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리고 9월 초, 우승은 어렵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7라운드가 끝난 시점에 5승 1무 1패로 부진하고 있는 첼시, 리버풀, 맨시티 등을 제치고 리그 1위를 차지 했다. 멤피스 데파이와 루니가 부진하긴 하지만, 떠나지 못한 데 헤아와 각성한 스몰링을 필두로 한 리그 최고의 수비진의 선전과 과한 투자라고 여겨졌던 마샬이 금액이 아깝지 않은 맹활약을 보이고 있으며, 많은 선수를 산 만큼 로테이션 역시 적절하게 이루어져 시즌 초반 제기되었던 득점력 문제도 해결되고 팀이 구색이 갖추어져 가는 모양이다.

챔스에서도 분데스리가의 강호인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2대1 역전을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여전히 루니와 데파이는 똥을 쌌지만 수비진과 마타 마샬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게다가 로테이션으로는 영과 에레라, 펠라이니등이 대기하는 등 후보 자원도 좋은지라 기세가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숙적 아스날에게 20분동안 3골을 먹히는 등 완패하면서 선발 로테이션 운영에 의문을 남겼다. 에버튼전 승리로 재반전을 꾀하는 듯 했으나 홈에서 열린 맨체스터 더비에서 실바와 아구에로가 부상으로 빠진 맨시티를 상대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0대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후 리그컵 보로와의 홈경기에서 연장전 및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고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도 유효슈팅 1개를 기록하며 3경기 연속 0대0을 기록했다. 점유율이 너무 무의미하게 높고 득점보다는 무실점에 무게를 둔 경기 운영에 팬들도 지쳐 가고 있다. 물론 한국 성인 국대 전 감독 슈틸리케 처럼 효율적으로 무실점-점유율 축구를 하면서 효과적인 역습 한방으로 골을 넣는 일명 '늪 축구'를 한다면 모를까, 결정적인 찬스도 못살리는 판할 축구엔 그딴거 없다.

그런데!!! 맨유 수뇌부는 판할을 신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맨유 수뇌부, 판할에게 만족 '재계약 고려'

그러나 12월 8일 챔스에서 볼프스부르크에게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을 하고 만다. 이후 인터뷰에서 특유의 부족한 언플스킬로연달아 망언을 제조중인 덕에 평가가 추락중.

또 하필이면 이 시기에 치차리토가 레버쿠젠 이적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덕에 더 까이고 있다. 그리고 치차리토와 하파엘의 판할 관련 기사가 뜨면서 큰 논란 중이다.치차리토, “판할이 ‘1%의 기회’만 준다기에 떠났다” 하파엘의 고백, "판할 밑에서 경기 즐기지 못했다"

팬들과 퍼디난드, 스콜스같은 전직 맨유 선수들의 비판과 달리 보드진과 맨유 선수단은 판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펠라이니, “맨유 선수단, 판할을 지지한다” 데헤아, '판할-선수단' 불화설에 정면 반박

루머이고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보드진의 경우 판할을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인듯하다. 英 언론, "판할, TOP3 안에 못 들면 경질" 상기한 전술 문제든 챔스 탈락이든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어찌됐건 12월 현재 챔스권에 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고전 끝에 경질당한 무리뉴보다는 적어도 이번 시즌 말까지 기회가 주어질듯 하다. 심혈을 기울여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모셔온 감독이고 섣부른 경질은 맨유의 위상에 그리 좋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렇긴 해도 일부 언론이 맨유에서 무리뉴를 새로운 감독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But 애드워즈가 경질은 뜯어 말리는 모양새.

무리뉴 경질 이후 벌어진 17라운드에서 노리치시티에 1:2로 패했는데 1989년 이후 홈에서 처음 패한 것이라고 한다. 노리치의 역습에 두골을 먹혔다. 이후 종료직전까지 스몰링을 루니와 함께 투톱으로 올려 크로스를 날리는 등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전술을 펼치고 말았다. 경기 막판에는 카메라가 관중석을 향했는데 관중 한 명이 하품을 길게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전술이 경직되고 무딘 공격력과 무기력한 플레이가 극에 달한 경기였다. 이때 맨유 팬들은 정말로 빡쳤었다.

경기가 끝나자 언론 및 팬들에게 집중포격을 당하고 있다. 지난 시즌의 경우 모예스가 망쳐 놓은 맨유를 재건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두 번째 시즌인 이번 시즌부터는 그런 변명도 소용없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모예스가 재평가되어야 하는게, 모예스의 시즌은 국내 대회에다가 챔스조별예선+16강+8강=10경기를 더했고 판할의 첫 시즌은 챔스없이 국내대회만 치른 것이다. 두번째 시즌인 이번 시즌부터 진정한 평가대에 올랐는데 돈은 돈대로 썼고 치차리토와 디마리아등 나간 선수들은 리턴하지도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경기내용 면에서 심각하게 비판받을 만하다. 더군다나 똑같은 상황에서 모예스는 챔스 8강까지 갔는데 판할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해서 유로파리그로 떨어졌다. 그리고 맨유는 토트넘보다도 뒤쳐진 5위에 머무르게 되었고 우승경쟁은 커녕 챔스권 사수에 전력을 다해야 할 판이다.

박싱데이를 앞둔 현재 15-16시즌 17라운드 현재 승점 29점으로 1위 레스터와는 9점 차이다. 문제는 지난 시즌과 모예스의 13-14시즌은 별반 차이가 없다. 간단히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맨유의 최근 3시즌동안 프리미어리그 초반 17라운드까지의 결과 비교
시즌
감독
승점
당시(현재)리그순위
당시(현재) 1위와의 승점차이
리그 최종 성적
챔피언스리그
13-14
모예스
28점
8위
당시 1위인 리버풀과 8점차
승점 64점, 리그 7위
8강
14-15
판할
32점
3위
당시 1위인 첼시와 10점차
승점 70점, 리그 4위
불참
15-16
판할
29점
5위
현재 1위인 레스터와 9점차
승점 66점, 리그 5위[17]
조별리그 3위
모예스가 맡았던 시즌이 수아레즈의 리버풀을 비롯해 에버튼 등도 선전했을 때이다. 하필이면 선두권 경쟁이 치열했던 시즌이었으니 얼마나 불운했던 시즌인지 알 수 있다.

앞으로 3경기 동안의 박싱데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보드진은 판할을 유임하려 하나 박싱데이 결과가 좋지 못하면 경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EPL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인 박싱데이를 믿고 맡길지는 의문. 박싱데이 순위가 리그 최종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부임 초부터 논란이 계속 되어 왔던 판할은 주구장창 벤치에만 앉아서 직접 지시하지 않고, 수석 코치인 긱스가 대신 지시를 해왔다. 위기 상황이나 전술 수정 및 작전 지시를 위해 감독들은 터치라인 가까이까지 가서 지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판할은 맨유 부임 이후로 그런 모습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된다.

이후 판할은 흔들리는 위기상황에 대한 자신의 좁아지는 입지를 제대로 느꼈는지 선수들에게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각오를 다졌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이어진 스토크 원정에서 최근 모습과 비슷한 일관된 경기력을 보이며 0-2로 완패하면서 맨유는 13년만에 박싱데이에서 패배까지 기록하게 된다. 1996년 이후 처음으로 4연패를 하게 된 건 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맨유 감독직 사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경질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보드진은 전혀 판할을 내칠 생각이 없다. 판할은 이미 노리치 전 패배 직후에 보드진 측에 사임할 의사를 전달했으나 우드워드가 나서서 뜯어말렸다고.. 아마 판할 성격상 첼시전 마저 패배한다면 보드진 만류에도 사임할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보드진 차원에서 경질을 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첼시전을 무득점으로 비긴 이후 나는 사임할 이유가 없다는 멘탈킹 인터뷰를 남기면서 맨유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19라운드 동안 EPL역사상 최소 승점인 30점을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쳤다.[18]

다만 지금까지의 서술만 보면 판할이 무리뉴가 첼시를 말아먹은 만큼이나 맨유를 말아먹은 것으로 편향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 판할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많다. 첼시가 부진하면 선수들이 태업한 탓이고 맨유가 부진하면 선수는 아무 잘못 없이 감독의 탓인가? 어찌됐건 시즌은 끝나봐야 아는 것이고 현재 챔스권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잠깐 부진하다고 경질을 쉽게 한다면 아무도 맨유 감독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맨유라는 팀은 다른 팀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상을 가지고 있는 팀이며 클럽의 운영 철학 역시 EPL 중소클럽들과 매우 다르다. 중하위권팀들이 강등권 탈출을 위해 감독을 경질한다고 맨유 역시 그러한 모습을 따르면 안 된다. 현재 부진한 모습 및 팬들의 바람과는 별개로 보드진은 그를 내칠 생각이 없어보인다. 또한 무리뉴를 데려올 의향 역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싱데이즈음만 해도 판할의 맨유생활은 끝장난 것으로 보였고 무리뉴가 부임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으나 이 것은 어디까지나 팬들의 의견 및 언론이 유난을 떤 것이지 실제 상황과는 매우 괴리감이 있다. 보드진이 무리뉴를 선호하지 않는 몇가지 원인이 있는데 일단 무리뉴가 단기간에 우승을 이룰 수 있는 능력자이긴 하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무리뉴는 다른 팀 감독과 신경전을 자주해서 구단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적을 많이 만들며 이점이 맨유의 이미지와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점이 크다. 그리고 맨유는 다른 EPL 클럽보다도 유스팀에 심혈을 쏟는 편인데 무리뉴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팀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스 활용보다는 전성기즈음의 선수를 통해 즉각적인 전력보강에 중점을 두는 편이며 이것이 보드진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무리뉴 오면 당장 우승은 할 수 있는데 어차피 오래 못가고 또 리빌딩 해야 한다.

그리고 판할을 내치면 우드워드를 비롯한 보드진의 실패를 시인하는 꼴이 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판할을 유임시키려 한다는 영국 언론의 분석도 나온 상태. 어쨌든 판할에게 원한 것은 리빌딩이자 챔스권이지 당장의 우승은 요원한 것이다. 판할이 챔스 조별예선에서 탈락해 유로파리그로 간 것은 무조건 비판 받아야하나 리그에서는 아직 챔스권이 가시권에 있다. 판할은 이미 지난 시즌에도 챔스권에 팀을 올려 놓았고 올 시즌도 12월에만 부진했지 그 이전에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팀도 문제인 게 이미 퍼거슨 말년에도 맨유는 우승을 했었으나 스쿼드의 리빌딩은 시급한 상황이었고 그 짐을 모예스와 판할이 다 떠안고 있다. 한 마디로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인게 지금의 맨유감독 자리이다.

보드진의 의견은 그렇긴 하나, 팬들은 우선 경기가 너무 심각하게 루즈한데다가 결과까지 따라주지 않으니 이 또한 '맨유답지 않다'는 의견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 무리뉴의 맨유에서의 활약이 맨유의 신조에 맞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나 판할이 보여주는 맨유의 모습도 전혀 맨유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해도 보드진들은 판할에 대한 신임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사실상 무리뉴, 나아가 감독 교체도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팬들의 끊임없는 지지에 감사한다고 인터뷰를 해서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감독에 이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감독이 되었다.
FA컵에서 3부리그와 쩔쩔매다가 간신히 PK로 이겼더니그래서 뭐? 어쨌든 이겼잖아 라고 철판 시전 중.
경기 끝나고 맨유카페상황.JPG

그러나 다음 경기인 리그 뉴캐슬 원정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무승부도 문제지만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뚱보(fat man)'이라는 표현을 써서 논란 중이다.


문제의 영상

모욕을 당한 더 선의 기자는 자신이 뚱뚱한 것은 사실이나 누구와는 달리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줄 안다고 받아쳤으며, 한술 더 떠서 자기가 체중 감량(28파운드, 약 13 Kg)에 힘쓰는 동안 남은 경기에서 승점(28점, 17경기 중 최소 6승)이나 쌓아 오라며 맞도발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 발데스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임대 이적하려 했었지만, 판할 감독이 거절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맨유 팬과 발데스 팬은 '심하다', '이제 좀 놔줘라' 등 까일꺼리가 계속 생긴다. [19]

뉴캐슬전 이후 치러진 리그 22R 리버풀 전, 팬들 사이엔 '맨더빅아 vs 리빅아' 매치였고 몇몇 맨유 팬은 판할이 경질되길 원하면서 '리버풀 정의구현!'을 외쳤지만 결과는 빽돼지의 골로 1:0 맨유의 승리로 끝났다. 또 한 번 판할의 생명이 연장되는 듯 싶었으나...

23R 사우스햄튼 전에서 오스틴한테 한골 처맞고 1:0으로 발려서 생명줄이 간당간당하다. 심지어 지금 5위. 잘못하면 또 유로파 신세.

그리고 맨체스터에 집을 구하고 2017년까지 맨유에 남는다는 기사가 떴다.

여태까지 판할이 사임을 여러 번 고려했었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런 적이 없다면서 화를 낼뿐이다.출처

이러한 판할의 태도때문에 질린 일부 팬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출처
만약 모든 맨유 팬들이 단합을 해 보이콧을 한다면, 맨유에게는 어느 정도 타격을 받는 셈이다.

FA컵 더비 카운티 전에서는 웨인 루니블린트, 마타가 각각 골을 넣어서 3-1로 승리했다. 그런데 네이버 응원 코멘트 가면 손흥민이 더비로 언제 임대(?!)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자세한건 들어가서 보시길 출처

24R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선 어쩐 일로 3-0으로 관광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마샬은 이경기도 캐리했었고 지속적인 부진을 겪던 웨인 루니도 골을 넣었다. 린가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화제의 광고
스브스 광고 센스로 화제가 되었던 25R 첼시전. 경기 결과는 1-1. 린가드가 또 골 넣었다. 물론 데 헤아가 맨유 먹여살리는 세이브를 오늘도 어김없이 보여줬지만 맨유 수비 특유의 바보짓으로 판할은 또 맨유 팬들뿐만이 아니라 해축빠들에게도 신명나게 까이는 중이다.

그리고 결국엔....영 언론 '맨유-무리뉴 감독, 3년 연봉 260억원 합의' [20]

26R 선덜랜드전에서 패배함으로써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망언을 생성했다.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네이버 악플러들도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저 어이없는 인터뷰 태도가 현 여론의 최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네이버 악플러들을 감독의 망언을 미리 예측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카더라.

그리고 유로파에 집중한다 해놓고 미트윌란에게 2-1로 역전패 당하면서 16강 진출에도 적신호가 걸렸다. 거기에 데 헤아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팬들의 반응은 아이고 이제 망했어. 그리고 덴마크 중상위권 팀한테 털려놓고 머피의 법칙 드립을 쳤다. 핑계를 예측한 악플러들은 승리했고 '원정골이니 우리가 유리' 드립을 예상한 악플러들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그러나 거짓말 처럼 이어지는 2차전에서 5-1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유로파 16강을 결정지었고 이 과정에서 18세의 신성 래쉬포드를 발굴해냈다.

이어지는 프리미어리그 27R에서 아스날을 유스 멤버만으로 3-2로 꺾었다!
2골 1도움을 기록한 래쉬포드는 미트윌란 데뷔전에서 2골,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인 아스날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는등 맨유의 미래로 기대받는 중이다.
즉 판할은 유스를 중용한다는 맨유 방침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이 자신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덤으로 이 경기에서

눕반할을 시전해 밤사이 큰 웃음 주셨다. 이는 결국 이 되어가는중...

파일:external/img.thesun.co.uk/VanGaal_2713948a.jpg

노망원이 또 하나의 망언을 생성했다.[21]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28R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원정 경기에서 마타의 퇴장으로 또 졌다. 그것까지는 마타의 개인의 잘못이나
후반에 선수가 한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할수 없는 교체를 선보였다. 여담으로 경기끝나고 퍼거슨경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예전의 리버풀전 처럼 넋나가고 화난 표정이 잡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망언을 제조하셨다. 이쯤되면 정말 노망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

그뒤 유로파리그 16강전 1차전에서 리버풀 원정경기에서 시종일관 압도당한뒤에 2대0으로 완패했다.그나마도 데 헤아의 선방덕에 2대0으로 끝낼수 있었다. 얼마나 노답이었으면 맨유의 유효슈팅이 1개 그나마 밥값하던 마샬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데열사께서는 쓸데없이 PK를 허용하여 리버풀의 선제골에 기여했다.

그리고 역시나 경기후 망언을 시전하였다.

이러한 판할 감독의 여러 번의 망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비슷했다고 생각됐는지, 싸줄에선 주옥같은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띵언을 제목으로 쓴 드립 글이 올라왔고, 유저들의 기막힌 드립 댓글들로 유머 글을 완성시켜 댓글 베스트에 올렸다. 판할 씨가 너무 불쌍해.. 딱 3년만 했으면 좋겠어

리버풀과의 유로파리그 2차전을 앞두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리곤 결국 홈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어서 유로파리그에서 탈락했다. 안 그래도 현재 리그 순위는 6위[22]인데 유로파는 탈락했고 FA컵에서는 웨스트햄에게 홈에서 겨우 비겨서 다음경기 승리를 장담할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다음경기는 하필 맨체스터 시티. 만약 이 경기 마저 패한다면 챔스는 물건너간거나 다름없다.안 그래도 리버풀에 밀려 유로파에서 탈락해 팬들의 분노는 엄청난데 이 경기 마저 패한다면?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역시 귀신같이 맨체스터 더비에서 승리하였다. 경기 이후 인터뷰로 아니나 다를까 팬들의 속을 긁는 인터뷰를 하였다.

맨시티-에버튼전 승리로 잠시나마 챔스권을 기대하게 했으나 토트넘원정에서 패했다. 애슐리 영을 원톱으로 투입하는 당혹스런 용병술이 화제가 되었고 다르미안 투입후 6분동안 3골을 먹히며 참패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도 대등했던 경기였으나 수비실수가 문제였다며 책임을 회피했고 맨유는 토트넘보다 빅클럽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토트넘에게 오늘 승리를 스스로 즐기라고 망언을 내뱉었다.

한편, 최근 PSG와 계약이 만료되는 즐라탄의 향후 거취가 이슈인데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내뱉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판할 曰 "즐라탄? 그는 이미 34세" 즐라탄의 주급은 높고 챔스권인 팀에 갈 전망이 유력한데 세리에나 라리가는 이미 경험도 했고 갈 팀도 적으며 안첼로티가 부임하는 바이에른 역시 그를 노리지 않을 시점이라 결국 남은 행선지는 EPL의 맨시티, 첼시나 맨유, 아스날정도가 유력한 상황이다. 여기서 사이가 좋지않은 펩의 맨시티도 제외하고 다음 시즌 챔스탈락이 확정인 첼시도 제외하면 결국 맨유나 아스날만 남는다. 맨유의 경우 경기력이 다소 불안하지만 아직 챔스권에 충분히 진입 가능한 상황이고 즐라탄 역시 챔스만 간다면 안 갈 이유가 없는 곳이 맨유인데, 쓸데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본인의 맨유 커리어만 앞당기게 되었다.맨유행 원하는 즐라탄, 조건은 '판할 OUT'

에버튼과의 FA컵 4강전에서 앙토니 마시알의 극적인 골로 승리하며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다. 상대는 크리스탈 팰리스이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 우승을 하게 되면 다시 생명연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이 그를 버리지 않았는지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이 비기며 자력 4위로 챔스 진출 가능성이 생기나 했더니 웨스트 햄에게 지며 챔피언리그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맨시티가 38R 스완지전을 무승부로 마무리 하면서 결국 다음 시즌도 유로파리그를 진출하게 되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FA컵 결승전에서 후반전 선제골을 내주며 패하는 듯 싶었으나 루니의 드리블 이후 마타의 동점골로 연장에 돌입, 마타와 교체투입되었던 린가드가 결승골을 넣으며 맨유에 12년만의 FA컵 우승을 안겼다. 사실상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는 점에서 유종의 미는 거둔듯.
그리고 우승하자마자 BBC, 스카이 스포츠 등에서 무리뉴가 다음 주에 부임한다는 뉴스들을 보도했다.

그리고 숙소를 떠나면서 만난 기자들에게 "이제 끝났다"라고 말했다는 걸로 보아 본인도 이젠 이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리고 5월 23일, BBC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판할 감독의 경질을 일제히 속보로 보도했다. 곧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측의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현지 시간으로 5월 23일,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대략 팬들의 반응은 드디어 무리뉴가 온다! 풍악을 울려라! 인 반면 맨유의 레전드들은 그의 경질 뒤 무리뉴가 오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반응, 꺼림직한 반응으로 갈리는 듯 하다. 무리뉴의 선수비 후역습으로 이어지는 안티 풋볼에 대한 반발이나 무리뉴 본인의 화려한 어록과 언플이 맨유의 이미지에 피해를 입힌다는 것[23]이 대체로 꺼림칙해하는 의견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판할 경질엔 찬성했다는 것.

하지만 판할은 FA결승전까지 자기 자신이 경질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오히려 맨유와 무리뉴에게 배신감이 쌓였다고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수 밖에...

다음은 작별문 전문

: "It has been an honour to manage such a magnificent club as Manchester United FC, and in doing so, I have fulfilled a long-held ambition.

I am immensely proud to have helped United win the FA Cup for the 12th time in the club's history. I have been privileged during my management career to have won 20 trophies but winning the FA Cup, which is steeped in so much history, will always be one of the most special achievements of my career.

I am very disappointed to be unable to complete our intended three-year plan. I believe that the foundations are firmly in place to enable the club to move forward and achieve even greater success.

I hope that winning the FA Cup will give the club a platform to build upon next season to restore the success that this passionate set of fans desire.

Having managed in Holland, Spain and Germany, I had always hoped for the opportunity to manage in English football and be part of English culture. Both of these experiences have lived up to expectations and been fantastic.

I thank my players and wish them well for next season. It has been a pleasure to work with them and it has been particularly rewarding to see so many young players take their chance to break into the first team and excel. I look forward to watching the continued development of these young players next season.

Thank you to the owners and board of Manchester United for giving me the opportunity to manage this great club.

I would also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the amazing United supporters. They are truly the best fans in the world.

I am indebted to my support and coaching staff, who have given me their all during their time at the club.

I am deeply grateful to each and every member of the club’s staff - the sports science team, the medical team, the kit and laundry department, club administration, the press office, the manager's team, the Academy team, ground staff and the catering team, both at Old Trafford and the Aon Training Complex, all of whom have given me their unwavering support in my time at United. Never in my 25 years as a manager have I been so well supported in my role.

Finally, my special thanks go to Sir Alex Ferguson and Sir Bobby Charlton for always making me and my family feel so welcome throughout my time as Manchester United manage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거대한 클럽을 감독하게 된 것은 영광이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제 오랜 야망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클럽 역사상 12번째의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느낍니다. 제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2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깊은 역사가 담겨있는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경험은 제 커리어 중 가장 특별한 업적들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 기존에 약속되었던 3년의 계획을 마치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클럽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기반이 확고하게 구축되었다고 믿습니다.

전 FA컵 우승이 다음 시즌 클럽이 다시 우승을 노리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을 희망합니다. 이 클럽의 열정적인 팬들이 열망하는 우승 말입니다.

축구 감독으로써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독일에서 경험을 쌓은 뒤, 저는 항상 영국에서 감독을 할 수 있고 영국 문화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었습니다. 영국에서 축구 감독으로써의 삶과 영국 문화의 한 일원이 되는 기회는 제 기대를 실망 시키지 않았고, 환상적이였습니다.

맨유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고, 그들이 내년 시즌에 성공 하길 바랍니다. 선수들과 보낸 시간은 즐거웠으며, 특히나 많은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기회를 잡고 1군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게 아주 보람있는 일이였습니다. 다음 시즌에도 어린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를 기대 합니다.

저에게 이 위대한 구단을 감독 할 수 있게 해준 맨유의 구단주와 이사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멋있는 맨유의 팬들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진실로 세계최고의 팬들입니다.

저는 클럽에 있는 동안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친 저의 후원자들과 제 코칭 스텝에게 빚을 졌습니다.

저는 이 클럽에 모든 스텝들 - 올드 트래포드와 에이온 트레이닝 컴플렉스의 스포츠 과학 팀, 의료팀, 키트와 세탁부서, 경영팀, 언론 팀, 감독 팀, 유스 팀, 그라운드 팀, 그리고 음식팀 - 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스텝들은 제가 맨유에 있는 동안 제게 변하지 않는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제 25년 동안의 감독 생활 동안 이렇게 지원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맨유에서의 감독 생활 동안 저와 제 가족을 환영해준 퍼거슨 경과 찰튼 경에게 제 특별히 감사드리기 원합니다.


2.6.2.1. 인성 논란[편집]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등 언론사에선 그의 경질에 맞춰 일제히 판할의 맨유 부임 이후 훈육방식을 질타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퍼거슨과 모예스 체제하에서 일요일 경기를 뛴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월요일에 휴식을 부여받았는데 판할은 이 전통을 무시하고 월요일에 선수들을 소집하고 지난경기에 대한 비디오 분석을 실시했다. 그것만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때 선수 평가를 하며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를 한 선수가 있으면 다른 선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줬다. 결국 고참인 루니와 캐릭이 총대를 매고 선수들을 덜 엄격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관련기사 가디언 기사 가디언 기사 번역

그러자 판할은 방법을 바꿔 선수들 개개인에게 전술 분석(맘에 안드는 부분들)을 담은 이메일 파일들을 전송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수들은 판할이 보낸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이에 수신 확인 기능으로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선수들은 이메일을 클릭했다고 한다, 물론 클릭만 했을 뿐 대다수의 선수들은 내용물을 읽지 않았고 영상을 켜놓은 채 폰을 던져 놓았다.

선수들 대우와 팀 스피릿 유지 뿐 아니라 전술에서도 최악이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팀 전체에 원터치 슈팅을 금지하고 공격수들에게 '볼을 컨트롤하고, 공은 밖에 두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릴 것. 윙어는 돌파하지 말고 풀백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러니 팀 스피드가 전체적으로 느려지고 패널티 박스 침투도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클럽 레코드 갱신하고 데려온 앙헬 디 마리아가 맨유에서 실패한데는 이 전술 문제도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어기면 길길이 날뛸게 뻔하니 선수들의 창의성과 의욕이 죽는건 덤.

또한 뮌헨 시절 애제자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편애해서 그에게만 눈에 띌 정도로 많은 휴식과 자유를 보장했다. 설상가상으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부상이 잦았고, 치료를 목적으로 자주 고국인 독일로 떠나곤 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경기를 뛰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잉글랜드로 왔는데, 이때가 아니면 클럽에 잘 나오지도 않아 고참급 선수들의 불만을 샀다.

결국 판할은 래쉬포드, 린가드, 포수멘사 등 자신이 중용한 유스 자원들을 제외한 대다수 중견급, 이적생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그 상황에서 라커룸을 이끌고 전술을 분석하며 팀 붕괴를 막은건 라이언 긱스였다고 한다. 상기한 진술이 사실이라면 시즌 말미까지 버틴 게 요행이다.

경질 이후에도, 전 소속팀 선수들에게 이름이 언급되곤 하는데 하나같이 다 좋지 못한 얘기들이 대부분이다. 전 맨유 소속이었던 하파엘 다 실바 는 판할에게 개인 미팅이랍시고 사무실로 불러 자신의 계획에 없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또 하파엘이 가벼운 머리 부상을 입었을때 구단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아픈 머리를 만지고 있었는데 판할 감독이 다가왔다. 판할은 하파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뜸 "너는 왜 내 말을 듣지 않는거냐?"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파엘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판할에게 따졌다고 한다. 하파엘의 말에 판할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팀 동료인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걱정이 되었는지 옆에서 슬쩍 "감독님은 널 더 이상 기용하지 않을거야"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그 후, 하파엘은 판할의 출전 명단에 거의 들지 못했고 결국 이적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판할은 이런 몰인정하고 고압적인 태도로만 대부분의 선수들을 대해서 그들에게서 빠르게 신임을 잃었고, 지지 기반이 없어지자 쫓겨나듯 경질당했다. 클럽의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순전히 본인의 자업자득으로 쫓겨난 셈이다.

3. 대표팀[편집]



3.1. 네덜란드 대표팀 (2000~200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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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믹 매카시 감독.

유로 2000이 끝난 직후,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후임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며 2002 월드컵 지역 예선을 치렀다. 당시 네덜란드는 지역예선에 포르투갈,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안도라와 같은 B조에 편성되었다.

유로 2000 이후 승승장구하던 포르투갈은 어려운 상대일지는 몰라도 네덜란드가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실패한다는 건 거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정작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아일랜드에까지 밀리며 조 3위로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 진출도 못하며 탈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아일랜드와의 홈경기에서는 먼저 2골을 실점하고 겨우 따라잡아 비겼다. 그 다음 포르투갈과의 홈경기에선 전반에 두 골이나 실점하며 무기력하게 2-0으로 완패하여 월드컵 진출에 불안함이 예견되었다. 포르투갈 원정에선 먼저 두 골을 넣고도 종료 10분을 앞두고 한 골 실점한 다음 마지막 추가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무승부를 기록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아일랜드 원정에서는 마음이 급해진 탓인지 아일랜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와 심리전에 말려들면서 한 명이 퇴장 당한 아일랜드에게 오히려 0:1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사실 네덜란드보다 아래 수준으로 여겨지긴 했으나 당시 아일랜드는 로이 킨과 스턴튼 등 베테랑을 필두로 로비 킨, 셰이 기븐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괜찮게 활약을 하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었고 조직력이 꽤 좋은 팀이라서 쉽지 않은 상대이긴 했다.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한 포르투갈도 아일랜드 상대로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만 기록했으니깐. 차라리 두 팀의 승부가 갈렸으면 네덜란드가 본선에 갈 가능성도 있긴 했을 것이다. 물론 이 네 경기를 제외하고도 에스토니아 원정에선 상대팀이 자책골을 넣고 막판 몰아치기로 겨우 이기는 등 뭔가 팀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명확했다.

어쨌거나 앞서 설명한 아약스의 황금 멤버는 물론이고 1998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대표팀 멤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24]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조차 조 3위를 기록한 판할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25] 마침 유로 2000부터 유럽 축구를 안방에서 즐기게 되던 국내 축구팬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판할은 능력없고 자기 고집 강한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지게 된다.


3.2. 네덜란드 대표팀 2기 (2012~2014)[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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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리버풀 FC의 기술고문 자리에 취임할 거란 말이 있었으나, 자신의 감독 권한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한[26] 브렌던 로저스의 반대로 결국 취임하지 못했으며, 친정팀 아약스의 사장(제너럴 디렉터) 자리에 추대되었다. 하지만 팀내 파벌 갈등[27]으로 인해 취임하지 못했다.

1년간의 휴식을 취하던 판할은 언론과 여론, 축구인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2012년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임명되며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광탈로 불명예스럽게 종료한 국가대표팀 커리어를 재개했다. 12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긴 했지만, 어수선한 팀 분위기로 최악의 졸전을 치른 유로 2012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세대 교체를 이뤄내며 일단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조 1위로서 수월하게 진출은 했지만 벨기에, 우루과이, 스위스에게 밀려 톱시드에서 탈락했다.

데이비드 모예스가 경질된 뒤 차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강력하게 후보에 올랐다가 결국 2014년 5월 19일 맨유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으며, 월드컵이 끝난 이후 감독으로 공식 부임하게 되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별리그에서 4년 전 월드컵 결승전 네덜란드에 패배를 선사했던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기어다니게 만들며 스페인5:1로 캐관광 보내고 복수에 성공하여 전세계 축구팬들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기묘한 용병술은 토너먼트에서도 이어져, 8강전에선 대회 최고의 돌풍을 이어가던 코스타리카를 맞이하여 공격수 디르크 카윗의 연이은 포지션 변경 및 풀백 기용과 연장 후반 15분 골키퍼를 팀 크룰로 교체한 끝에 승부차기에서 케일러 나바스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에서 연장전 안에 승부를 보려는 것이 판단미스가 되어 결국 교체카드를 다 써버렸고 PK에 상당한 약점을 가진 야스퍼 실러선을 승부차기에 그대로 투입하고 말았다. 결국 AZ 알크마르시절의 애제자였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의 연이은 선방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해 개최국 브라질과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벌집을 쑤셔 놓았던 분위기의 브라질을 맞아 3:0으로 다시 한 번 관광을 보내며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또 골키퍼를 교체하는 여유를 보이며 23인 엔트리 전원을 출전시키는 기록을 썼다.[28]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이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었고, 더불어 12년 전의 흑역사도 만회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후임 감독들의 거한 삽질로 불과 1년 전 월드컵 3위의 팀이 유로 2016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예선 탈락이라는 네덜란드의 엄청난 흑역사를 추가하면서 판할의 네덜란드가 다시 한 번 재평가되고 있다.


4. 맨유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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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본인은 16-17 시즌이 안식 년이고 곧 다시 복귀할 것이라 밝혔고, 실제로 중국의 클럽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고, 16-17 시즌 성적이 부진한 파리 생제르맹의 차기 감독 후보로도 이름이 언급 되었지만, 결국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은퇴를 선언하였다. 최근에 겪은 사위의 죽음이 그가 은퇴를 선언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의 커리어는 반등과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채 이대로 종료되고 말았다. 다만 같은 네덜란드 출신 감독인 딕 아드보카트가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경우를 보면 판할도 은퇴를 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여담으로 자신이 꼽은 최고의 업적으로는 아약스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아닌, 맨유 시절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전 우승을 꼽았다. 판할은 "FA컵 우승이 최고의 업적이며 맨유에서 보낸 마지막 6개월동안 나는 단두대에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수단을 독려하며 FA컵 우승컵을 획득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전형적인 립서비스 멘트로 보인다.

그러나 1월 18일 단 하루만에 은퇴한게 아니라며 은퇴 선언을 부인하였다.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판할은 발렌시아에서도 감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3월 18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축구계를 완전히 떠난다고 밝혔다. 해설위원, 혹은 구단 관계자등 어떠한 것이든 완전한 은퇴이며 사실은 55세에 은퇴를 계획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떠난다고 말했다. 그의 발표에 마커스 래쉬포드와 앙토니 마샬은 나란히 그에게 감사의 메세지를 남겼고 바이에른 뮌헨의 울리 회네스 회장도 그가 바이에른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었다며 그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해주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1.1. 선수[편집]



5.1.2.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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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름없다고 쓴 이유는 2001-02시즌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이끌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UEFA컵 우승을 한 바도 있고, 2004-05시즌에는 거스 히딩크PSV 에인트호번이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한 적도 있기 때문.[2] 현재 푸욜은 에이전트로 활동중이다[3] 최전방 및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최고의 선수반열에 올랐다. 훗날 AC밀란에서 좌측면에 묶이면서 추락을 거듭하고 만다.[4] 하지만 둘이 각 팀의 감독을 맡은 시기는 빗겨나가서 현임 감독으로서 만난 적은 없었다.[5] 여담이지만 둘의 사이 역시 좋지 않은 듯하다. 판할이 삽질을 거듭할 때마다 히딩크 쪽에서 신랄한 비난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2 월드컵 탈락 때 히딩크의 비난이 있다. 하지만, 판할 측에서는 딱히 되갚음하지 않는 모양.[6] 한일월드컵 16강 한국전에서 팔꿈치에 부딪히는 부상을 당해 붕대를 감고 뛰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7] 이 때 감독 로날드 쿠만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다가 대판 싸운 뒤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그리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도 갈등이 있었다.[8] 토마스 크라프트의 호러쇼도 한몫했다.[9] 스몰링 각성 전이다[10] 극성스러운 영국 언론들 탓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11] 매치 오브 데이 같은 가십을 잘 다루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도 나올만큼 현지에선 정말 뮌헨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을 이런 감독이 어떻게 이끌었는지 의문을 표했다.[12] 이 경기 한정 맞춤전술이 아니라 이전 라운드인 토트넘전부터 마타가 징계결장인 디마리아를 대신해 오른쪽에 배치되었고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13] 그러나 판할은 정작 뮌헨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더블을 달성했다. 주전 수비수인 루시우를 팔고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인 제 호베르투와도 재계약 실패하고 주전 윙백인 윌리 사뇰이 은퇴했지만 뮐러와 바트슈트버와 알라바, 콘텐토를 발굴하고 슈슈를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하고 로벤과 올리치와 고메즈 등을 영입해서 오히려 성공했다. 이 시즌 정작 비싸게 사고 제 값 한 건 로벤 밖에 없고 올리치는 싸게 땜빵 영입이었는데 커리어 정점을 찍어준 걸 보면 판할은 비싼 선수 사주기보다는 포텐셜 충만한 유망주를 얼마나 제공해주느냐에 따라 효율이 갈림을 알 수 있다.[14] 이 사건으로 해축빠들은 '맨유 이용하기 딱이야' 라는 뜻을 가진 맨이딱이란 말을 만든다. 평소 맨유의 별명인 '맹구' 를 붙여 맹이딱이라고도 한다.[15] 실제로 FM2015에서 펠라이니는 최전방 포지션 훈련을 시키면 준수한 타켓형 스트라이커로 써먹을 수 있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16] 케일러 나바스와의 스왑딜 [17] 맨시티와 승점이 같으나 득실차 열세로 5위 확정[18] 이 기록은 훗날 19-20시즌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전반기를 역대급으로 망치면서 19라운드에 승점 28점...으로 갱신한다. 더 웃긴건 이 시즌 맨유는 후반기에 엄청나게 반등해서 최종순위 3위로 챔스에 진출했다는 것.[19] 사실 이건 맨유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뉴캐슬이 아무리 중하위권 팀이라 할지라도 어쨌거나 같은 PL에서 뛰는 팀이고, 발데스는 계약기간이 1년이 채 안남은 상황인데 굳이 지금 상황에서 같은 PL팀으로 임대를 보내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뉴캐슬 임대이적 거부가 발데스에 대한 징계성 행보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그 이후에 결국 발데스는 벨기에 리그로 임대이적을 떠났다. 발데스가 판할에게, 맨유에게 단단히 밉보인건 사실이지만 뉴캐슬 임대이적 거부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한 셈.[20] 단, 출처는 미러다....는 무슨 스카이스포츠에도 떴다![21] 얼핏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막을 모르는 팬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주전 줄부상에 임대복귀한 윌 킨까지 부상당해서 억지로 쓴 것이지 중장기적인 혜안으로 기용한 것과는 억만광년 떨어져 있다.[22] 4위 맨시티와 4점 차. 참고로 한 경기 덜치른 리버풀과는 3점차[23] 이미 판할이 수없이 많은 개드립으로 깎아먹긴 했지만 무리뉴가 더 깎아 먹을 수 있다는 것[24] 데니스 베르캄프의 대표팀 은퇴, 에드가 다비즈프랑크 더 부르의 도핑 적발로 인한 출장 정지로 인해 약간의 전력 누수가 있긴 했었다. 그래도 월드컵 우승을 노려볼 만큼 강력한 스쿼드였긴 했다. 그리고 마냥 기존 베테랑 선수들에 의존한 건 아니고 에레디비시에에서 나름 활약했으나 유명하지는 않던 중견급 선수인 제프리 탈란, 유망주인 빌프레트 보우마와 케빈 호플란트 등의 선수들을 새롭게 대표팀에 발탁하며 변화와 세대교체를 시도했으나 이들의 기량이 당장 대표팀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었다.[25] 아일랜드와의 마지막 경기서 경기 막판의 5포워드 투입으로 인해 특히 미친 듯이 까였지만, 한 골을 못 넣으면 탈락이 확정되는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서 그런 식의 교체가 전혀 터무니 없는건 아니다. 당장 2002년 월드컵의 이탈리아전에서 히딩크가 사용한 교체 카드를 생각해 보자.[26] 실제로 판할이 아약스의 기술고문으로 재직할 당시 감독이었던 로날드 쿠만은 판할의 간섭을 심하게 받았었다.[27] 당시 아약스는 요한 크루이프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서 팀 내 알력 다툼이 있었고, 크루이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판할을 반대파 측에서 사장 자리에 옹립한 것이었다. 이후 법정다툼까지 벌인 끝에 지지파가 결국 승리하여 반대파를 숙청하였고, 판할의 사장 취임도 없던 일이 되고 만것이다.[28] 이걸 기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3~4위전은 다른 경기에 비해 이벤트전 성격이 강하며, 판할 감독 자신도 이 경기의 불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승리가 확정적인 경기에서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는 비교적 흔한 편이다. 예를 들어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때는 그전까지 이천수와 차두리에 밀려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최태욱이 교체멤버로 월드컵 데뷔전을 치뤘고 2006년 독일 월드컵 3-4위전때는 옌스 레만에게 주전을 내준 올리버 칸이 출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