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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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Wain[1]
1860년 8월 5일 -1939년 7월 4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uis_wain_cats.png
[2][3]

1. 개요
2. 일생
2.1. 유년기~화가 커리어 초기
2.2. 조현병 발병 이후
2.3. 사망
3. 영화화
4. 기타



1. 개요[편집]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영국화가.


2. 일생[편집]



2.1. 유년기~화가 커리어 초기[편집]


런던 출신으로, 어렸을 적엔 구순구개열 때문에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4]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으며 막내 여동생 또한 정신병으로 인해 입원한 경력이 있다. 20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는 어린 나이에 일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서런던 미술학교에서 잠시 교사로 일하다가 얼마 못가 프리랜서 화가가 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었다. 활동 초창기에는 주로 잡지의 삽화로 동물이나 전원 풍경을 그렸으며, 뛰어난 그림 솜씨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23살에 10살 연상의 에밀리 리처드슨(Emily Richardson)과 결혼하였으나, 그녀는 유방암에 걸리게 되어 결혼 생활 3년 후 자식도 없이 사망하고 만다. 그의 아내는 옛날 길에서 구조해 기르던 고양이 '피터'로부터 안정감을 얻었는데, 루이스는 그런 아내를 위해 피터를 자주 그려주었고 이 뒤부터 그는 주로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6년에 처음으로 의인화된 고양이를 발표하였고, 아기자기하고 풍자적인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1907년에는 미국 뉴욕으로 이동하여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웨인의 그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곧 당대 미술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역시 손이 빠르고 다작하는 스타일이라 수백 장의 작품을 남겼다. 웨인의 고양이 사랑은 단순히 그림에만 그치지 않았고 고양이 애호가 클럽의 회장직을 맡거나 동물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세와는 달리 그는 가족을 보살피느라고 재정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사업 감각이 없어서 잘못된 투자를 해 거액을 날리기도 했고 저작권을 획득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그림을 헐값에 팔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품은 무단 복제, 판매되어 그림을 팔아도 수익이 될 리가 없었다.[5]


2.2. 조현병 발병 이후[편집]



조현병이 발병하기 직전인 1921년의 루이스 웨인. 그가 기르던 고양이도 등장한다.

결국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그는 정신병을 얻게 된다. 웨인의 망상과 폭력성이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악화되자, 가족들의 판단으로 1924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당시에도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이 시기 그림 스타일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귀여운 모습의 고양이 그림에서 점점 추상화되어, 결국에는 고양이의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태가 완전히 분해되어 버렸다. 이 때 그리게 된 그림은 그의 조현병 증세의 전개과정을 잘 보여주며, 실제로 그의 그림은 심리학의 교재로도 쓰인다.

조현병으로 인한 그의 그림은 상태가 심해지는 후기로 갈수록 아라베스크나 프렉탈과 유사한 패턴화가 두드러지며, 과도기의 그림에서는 일종의 에너지 등이 방출되는 듯한 형태의 표현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주제는 항상 고양이였다.

정작 그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고양이들을 그릴 수 있었던 유일한 때는 조현병에 걸려 입원하였을 때 뿐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일부 학자들은 고양이 때문에 루이스 웨인이 조현병에 걸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가 중간 숙주인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었고, 이 톡소포자충이 조현병을 일으켰다는 것. 서프라이즈에서는 이를 근거로 조현병에 걸린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에 대한 공포에 질려 기괴한 화풍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확실한 정설은 아니며, 색의 사용이나 그림의 세부 디테일 등이 조현병 환자가 하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일관적이라는 것을 근거로 그의 병이 조현병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또한 웨인이 조현병 때문에 히스테릭에 빠져 기괴한 화풍으로 변했다는 것은 웨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로, 기괴하다고 알려진 일부 작품들은 실제로 고양이의 그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카펫 무늬 패턴을 그림에 실험적으로 접목한 패턴화를 그린 것이다. 실제로 웨인의 후기 작품들이라 알려진 것들 중에는 앞서 언급한 기괴하고 사이키델릭한 화풍 이외에 널리 알려진 밝고 익살스러운 화풍의 그림도 많이 존재한다.


2.3. 사망[편집]


이후 가난으로 인해 병원을 여러 번 옮겨다녔는데 그의 이러한 사정은 뒤늦게야 세간에 알려졌다. 당대의 유명 화가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각계의 탄원과 스탠리 볼드윈 당시 영국 총리, 허버트 조지 웰즈의 후원으로 그는 좋은 시설을 갖춘 냅스버리 병원으로 옮겨가, 그 곳에서 평화로이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병원 안의 정원과,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고양이들로 그는 안정을 되찾았으며, 그림을 계속해서 그렸다.

사망 이후에는 아버지와 같이 묻혔다고 한다.


3. 영화화[편집]


2022년 그의 전기영화인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가 개봉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루이스 웨인 역을 맡았으며, 타이카 와이티티도 단역으로 등장했다.


4. 기타[편집]



일명 '너는 파멸할 것이다.'라는 짤방이 유행한 적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루이스 웨인 편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은 그가 망상에 빠지기 시작하며 미쳐가는 심각한 장면이지만, 상황과는 달리 귀여운 고양이가 나온 덕분에 짤로 남게 되었다.

메이드인뷰에서 2022년 06월 09일부터 동년 08월 21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에서 관련 전시회를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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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Louis의 영국식 발음은 '루이'다. 뒤에 S 발음을 생략한 것. 그러므로 영국식으로 읽으면 '루이 웨인'이 될 것이다.[2] 가면 갈수록 사이키델릭 아트와 유사하다. 이는 조현병이 환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3]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웨인이 제작 연대를 명시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들이 예시의 순서대로 그려졌는지 알수없는데도 불구하고 8종의 관련 그림들을 발견했던 정신과 의사가 임의로 보다 화려하고 추상적인 그림들을 나중에 그린것으로 간주해 웨인의 정신 상태를 나타냈다는 것. 게다가 사이키델릭 아트와 유사했던 것들은 애초에 고양이 그림을 그렸던게 아니라 카펫 무늬 패턴을 만들거나 카펫 무늬 패턴을 그림에 실험적으로 접목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웨인의 어머니는 카펫 디자이너였으며, 유년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한다.[4] 이 때문에 평생 콧수염을 기르고 다녔다.[5] 작가들이 저작권 사수에 혈안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