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의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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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그리스어
Κατὰ Λουκᾶν εὐαγγέλιον
라틴어
Evangelium secundum Lucam
영어
Gospel of Luke
한자
가톨릭: 루카 福音(書)
개신교: 누가福音
중국어
간체자: 路加福音
정체자: 路加福音
일본어
ルカによる福音書(ふくいんしょ
기본 정보
전승되는 저자
루가[1]
기록 연대
AD 80-140년
분량
24장
주요인물
예수

1. 개요
2. 저자 및 형성과정
3. 집필 이유
4. 주요 내용
5. 특징
6. 주요 구절
6.1. 1장 26-38절(성모 영보)
6.2. 2장 41-50절(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6.3. 4장 1-13절(광야 시험)
6.4. 5장 1-11절(제자들을 부르는 예수)
6.5. 5장 33-39절(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6.7. 8장 4-15절(네 가지 씨 비유)
6.8. 8장 26-39절(마귀와 돼지떼)
6.9. 8장 49-56절(야이로의 딸을 살리다)
6.10. 9장 10절-17절(오병이어 기적)
6.11. 9장 26-27절(이 사람들 중에 살아서 재림을 볼 자가 있다)
6.12. 9장 59-62절(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6.13. 10장 25-37절(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
6.15. 11장 5-13절(구하면 받을 것이다)
6.16. 12장 10절(성령훼방죄)
6.17. 12장 13-21절(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6.18. 12장 49-50절(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6.19. 14장 15-24절(큰 잔치 비유)
6.20. 14장 25-33절(망대의 비유&화친을 청하는 임금의 비유)
6.21. 15장(15장의 3가지 비유)
6.22. 16장 1-13절(불의한 청지기)
6.23. 16장 19-31절(부자와 라자로)
6.24. 17장 7-10절(무익한 종)
6.25. 17장 11-19절(돌아와 감사한 한센병 환자)
6.26. 17장 20-21절(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6.27. 17장 37절(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든다)
6.28. 18장 1-8절(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6.29. 19장 1-10절(자캐오)
6.30. 19장 45-48절(성전 정화)
6.31. 21장 1-4절(가난한 과부헌금)
6.33. 23장 39-43절(회개한 죄인)



1. 개요[편집]


1 존경하는 데오필로님[2]

,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3] 2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3 저 역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서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루가의 복음서 1장 1-4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49번째/42번째 권.

사도 바울로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자 의사였던 루가(Λουκᾶς, 루카스)가 집필한 복음서.[4][5] 기독교 성경에서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쓴 책이다. 정경으로 인정받는 4복음서 가운데 세 번째이며, 3권의 공관복음 중 하나다. 가톨릭에서는 '루카 복음서' 또는 '루카 복음', 정교회와 성공회,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루가의 복음서,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에서는 '누가복음'이라고 한다.

한국에 번역된 최초의 성경이다. 번역 당시의 표제는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 선교사와 만상 출신인 서상륜 등과 함께 심양의 문광서원에서 간행했다. 당시 한문 번역을 통해 중역한 이 성경이 나온 시점은 1882년.

복음사가의 상징은 인간으로서 사람인 예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루가의 복음서는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4대 복음서 중 가장 포괄적으로 예수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6].


2. 저자 및 형성과정[편집]


신약성경/형성 문서 참조.


3. 집필 이유[편집]


시간과 공간적으로 예수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 쓰여진 복음서이다. 특히 헬라계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특히 서문에서 밝히듯 테오필로스(Θεόφιλος)를 중심으로 한 가정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언행을 바탕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게끔 권장하기 위하여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4. 주요 내용[편집]


  • 예수의 탄생(1장 1절-4장 13절) (개역)
기록 목적
예수 탄생 이전 사건 (성모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 1장 46절-55절)
탄생과 어린 시절
예수의 족보(3장 34절-38절)
  • 예수의 사역(4장 14절-9장 50절)
갈릴래아 전도 시작
각종 이적과 가르침
제자를 부르심과 양육
  • 예수가 배척당함(9장 51절-19장 27절)
사마리아인의 배척
종교 지도자의 배척
배척 후 베푼 교훈
  • 예수의 죽음과 부활(19장 28절-24장 53절)
예루살렘 입성과 사역
수난과 믿음
부활과 생사, 승천


5. 특징[편집]


저자와 수신자가 헬레니즘 세계에 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 중 가장 우아한 희랍어를 구사하며 아주 코스모폴리탄하다.[7] 4권의 복음서 중 가장 내용이 길다. 장 수는 마태오 복음서보다 적지만 분량은 더 길다.

다른 복음서와 비교시, 루가 복음서의 예수는 특별히 예언자적 모습이 부각된다. 가영 "마태오 복음서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오 5,3)이라고 지혜문학처럼 인용한 예수의 행복 선언을 루가 복음서는 마치 예언자처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가 6,20) 그리고 복음서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24장 19절, 공동 번역) 또한 저자는 유난히 사회적 약자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다. 단순히 약자로 타자화되지도 않으며 매우 생동감이 넘치고 가끔은 익살스럽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부자에게 경고하는 루가의 복음서의 수신자가 부자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가난의 가치를 높이고 부의 위험을 경고하는 복음서가 부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복음서가 부자를 대상으로 쓰였다는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철저한 무소유가 예수 추종에 맞갖은 유일한 자세라는 것은 14,33의 예수 말씀(루가 고유 자료다)에서 단호히 확언되며, 또한 18,18-27의 어떤 부자(23절 참조) 권력가(ἄρχων)를 부르신(헛일이었다) 이야기를 통해 생생히 예시된다. 루가가 원본문인 마르코 구절(마르 10,17)에 끼워 넣은 이 낱말('권력가')을 통해, 새삼 테오필로스[8]

를 겨냥하고 있다고 추측해도 되겠다.는 예수 추종을 방해한다. 예수 추종자들의 자발적 가난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동시에 숙명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루가 12,33; 18,22)

-마르틴 에브너 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이종한 옮김. 301쪽


루가는 두 주제가 상호 연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보다 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더 많이 언급한다. 루가 복음서에만 나오는 다음 대목들은 모두 그의 고유 자료에서 유래한다: 부자들에 대한 불행 선언(루가 6,24),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가 12,16-21), 식사 초대에 관한 말씀(루가 14,12-14),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가 16,19-31), 세관장 자캐오 이야기(루가 19,1-10).

......가난과 재산 문제에 대해 루가가 강조하려는 바를 이해하려면, 루가 시대의 교회도 함께 살펴야 한다. 루가는 바로 이 교회를 위해 복음서를 썼기 때문이다. 그 교회는 가난했을까, 부유했을까? 그 교회가 빈민으로 구성된 가난한 교회였다면, 새로운 세상에서는 현세의 상황이 뒤바뀔 거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루가 16,25 참조). 그러나 사회사적으로, 루가가 접한 공동체들이 빈민의 교회였다고는 볼 수 없다. 사도행전에는 새로 설립된 교회의 부유한 그리스도인들 이야기가 나온다. ...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다에 사는 형제들을 돕기 위해 형편에 따라 구호 헌금을 보냈다(사도 11,27-30). 헬레니즘계 교회에는 저명인사와 부자들이 있었고, 또 그들이 필리피 교회에서처럼 사도를 도왔다는 사실이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필리 4,10-20). ...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루가는 자신의 사회적 메시지를 부유하고 명망 있는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그는 '부자들의 복음서 저자'로까지 불리게 되었다.[9]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Rudolf Schnackenburg.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us im Spiegel der vier Evangelien. 김병학 옮김. 328-332쪽


마태오처럼 루가도 어록 전승을 사용하기에,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10]"는 가르침, 그리고 위에서 말한 행복 선언을 공유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악령에서 루가의 복음서 8장 32절-36절을 인용한다.

흥미로운 점으로 당대의 로마인들에 대한 언급이 많다. 2장의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퀴리니우스/구레뇨[11], 3장의 티베리우스/디베료 등. 이는 루가가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비교해서 헬레니즘 세계에 속한 엘리트 계층 독자들을 더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썼기 때문이며, 특히 예수의 생애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보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Henry Wansborough, Introducing the New Testament)

여담으로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 부활 승천까지를 기록한 4개의 복음서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의 복음서 중에서 예수의 어떠한 행적이나 말씀 가르침 그가 행한 기적 등등과 그의 모든 생애 이야기에 관한 여러 디테일적인 스토리들 중 어떤 특정 말씀이나 사건들 행적들은 4권 중 딱 하나에만 기록되있고 다른곳에는 적혀 있지 경우들이 종종 있지만 루가의 복음서만은 누락된 내용이 단 한 개도 없으며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 여관의 방들이 하나도 없어서 마구간에서 낳았다라는 내용이나, 예수가 죽기전에 했던 가장 위대한 어록인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같은 중요한 말씀들이 마태오, 마르코, 요한 복음엔 전혀 없고 오직 루가의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6. 주요 구절[편집]



6.1. 1장 26-38절(성모 영보)[편집]


성모 영보 문서 참조.


6.2. 2장 41-50절(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편집]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일반적인 아이가 이랬다면 크게 혼났을 테지만, 유년시절의 예수의 일화라서 논란이 있는 일화이다. 이 일화는 유년 시절의 예수께서 성전에 더 머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거기에 순종했지만, 부모가 걱정되어 예수를 찾자, 유년시절의 예수가 부모에게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알면서 왜 자신의 행적을 의심했냐고 반문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6.3. 4장 1-13절(광야 시험)[편집]


광야의 유혹 문서 참조.


6.4. 5장 1-11절(제자들을 부르는 예수)[편집]


사람을 낚는 어부 문서 참조.


6.5. 5장 33-39절(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편집]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 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구약시대(낡은 가죽 부대, 낡은 옷)가 끝날 무렵에 드디어 메시아가 와서 기뻐해야 할 시기인데 금식(새 포도주, 생베 조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신약시대(새 가죽 부대)가 시작되면 금식(새 포도주)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는 루가 복음에만 있는 구절인데, 사람들이 묵은 포도주(메시아를 기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를 새 포도주(금식)보다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좀 더 일반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새 포도주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신자들의 고난을 상징하고, 묵은 포도주는 그것이 결실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기쁨을 상징한다.


6.6. 7장 36-50절(향유를 부은 여인)[편집]


향유를 부은 여인 문서 참조.


6.7. 8장 4-15절(네 가지 씨 비유)[편집]


예수 그리스도는 동네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자 그 사람들에게 땅에 떨어진 네 가지 씨에 대한 비유를 말한다. 그리고 그 뜻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나중에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6장 10절[12]을 인용하여 일부러 무리들이 못 알아듣게 말했다고 하며[13]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설명한다.[14] 자세한 내용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문서 참조.


6.8. 8장 26-39절(마귀와 돼지떼)[편집]


레기온 문서 참조.


6.9. 8장 49-56절(야이로의 딸을 살리다)[편집]


탈리타 쿰 문서 참조.


6.10. 9장 10절-17절(오병이어 기적)[편집]


오병이어의 기적 문서 참조.


6.11. 9장 26-27절(이 사람들 중에 살아서 재림을 볼 자가 있다)[편집]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 사도 요한이 환시를 보고 요한 묵시록을 쓴 것 같이, 살아서 재림을 환상으로 볼 자들이 있다.
  • 미래에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말이다.
  •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현재 2000년 넘게 살아있는 자가 있다.


6.12. 9장 59-62절(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편집]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일반적인 윤리관과 상충되어 논란이 많은 구절 중 하나이다. 루가 복음에서는 이 구절 바로 뒤에 예수께서 곧바로 제자 70명을 여러 동네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는 제자가 장례를 다 치르기까지 기다려 줄 수 없는 상황인 것이 나타난다. 즉, 예수를 따르는 것과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을 둘 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을 포기하고서라도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19장 29절[15]에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가족을 버린 자를 칭찬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가족을 버리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16], 가족들이 자신이 예수를 믿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우, 가족을 떠나는 일이 있더라도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6.13. 10장 25-37절(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편집]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문서 참조.


6.14. 11장 1-4절(주기도문/주님의 기도)[편집]


주기도문/주님의 기도 문서 참조.


6.15. 11장 5-13절(구하면 받을 것이다)[편집]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한 사람에게 어떤 친구가 있다고 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내 친구 하나가 먼 길을 가다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내어놓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사정을 한다면 그 친구는 안에서 '귀찮게 굴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도 나도 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줄 수가 없네.' 하고 거절할 것이다.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가의 복음서 11:5-13 (공동번역성서)


하느님은 하늘의 은혜에 갈급한 사람에게 반드시 성령을 주신다는 의미의 비유이다.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 이 비유를 로또 복권 당첨을 두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 등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애초에 이는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를 부모가 자식 아끼는 마음에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사위굴리기 요행이나 마찬가지인 복권 당첨은 당연히 이와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6.16. 12장 10절(성령훼방죄)[편집]


성령훼방죄 문서 참조.


6.17. 12장 13-21절(모든 탐심을 물리치라)[편집]


13.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14. 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대답하셨다.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

16.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17.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18.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셨다.

21.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루가의 복음서 12장 (공동번역성서)


이 비유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기 때문에, 사람이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땅의 것들이 아닌 자신의 구원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또한 부자가 자신의 안정적인 상황에 안주하여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볼 때, 이 비유는 안정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고도 할 수 있다.[17][18]

6.18. 12장 49-50절(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편집]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루가의 복음서 12장 49-50절 (공동번역성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것은,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불을 주기 위함임을 의미하는 구절들이다.


6.19. 14장 15-24절(큰 잔치 비유)[편집]


큰 잔치 비유 문서 참조.


6.20. 14장 25-33절(망대의 비유&화친을 청하는 임금의 비유)[편집]


루가의 복음서 14장 (공동번역성서)

25. 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29.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30. '저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낼 수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

33.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중간한 믿음으로는 자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면서 두 가지 비유를 말한다. 어설픈 돈을 가지고 망대를 지으려다가는 망대를 완성하지 못하고, 어설픈 군사력을 가지고는 적국과 화친을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어설픈 신앙을 가지고는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고 죄와 타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6.21. 15장(15장의 3가지 비유)[편집]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동전을 찾은 여인, 돌아온 탕아 문서 참조.


6.22. 16장 1-13절(불의한 청지기)[편집]


루가의 복음서 16장 (공동번역성서)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놓아야겠다.'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8.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9.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니 잘 들어라.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

11.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의 몫을 내어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이 본문은 상당히 난해한 비유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에 하나하나 세세하게 비유적인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본문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 중에 이 본문은 세세히 의미를 분석해야 할 비유가 아니라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예화일 뿐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략 다음과 같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재산을 청지기한테 배임당한 부자가 그 청지기를 칭찬할 정도로 기가막히게 지혜로운데, 성도들은 자신의 영생이 달린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지혜롭지가 않다.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듯이, 성도들도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나누어야 한다. 사람이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고, 성도들에게 주어진 재물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어진 것인데,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재물을 하느님의 뜻대로 다루는 것에도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의 영생이라는 큰 재물을 다루는 데에도 충실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 사람을 천국에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6.23. 16장 19-31절(부자와 라자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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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의 복음서 16장 (공동번역성서)

19.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20.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21.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22.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23.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게 나오는 대목 중 하나이다. 라자로는 병이 들어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나 배를 채우는 저주받고 버려진 인생 같이 보였으나, 사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던 믿음의 사람이었고 결국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유대인이었지만 세상에서 호의호식 하며 잘난 맛에 살던 부자는 물 한방울의 자비조차 허용되지 않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고, 정말로 저주받은 존재는 라자로가 아닌 부자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 예화는 이 땅에서 아무리 비참한 인생을 산다고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 인생은 축복받은 인생이지만, 이 땅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살아도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인생은 더 없이 비참한 인생이라는 교훈을 준다.


6.24. 17장 7-10절(무익한 종)[편집]


루가의 복음서 17장 (공동번역성서)

7.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8. 오히려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으쓱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늘 믿음으로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가질 것을 말하는 비유이다. 바울로 역시 갈라디아서에서 마음껏 죄를 짓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 비유는 갈라디아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6.25. 17장 11-19절(돌아와 감사한 한센병 환자)[편집]


예수 그리스도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 치유를 해주었지만 다만 한 사람만이 엎드려 감사를 하였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한 사람만을 축복하였다.


6.26. 17장 20-21절(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편집]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루가의 복음서 17장 20-21절


종종 이 구절을 들며 천국은 그저 마음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4복음서 곳곳에 여러번 나오는 재림, 심판, 부활 등에 대한 메시지와 맞지 않는다. 성경에서 종종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의미 말고도 살면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을 말하기도 하는데,[19] 해당 구절의 경우 문맥 상으로 봤을 때 재림의 때에 대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하여 바리새인들에게 약점을 잡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의 의미로 해석하여 명쾌하게 설명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27. 17장 37절(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든다)[편집]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주님,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7장 37절 (공동번역성서)


이 구절 바로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때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이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이해했는지 그런 일이 어디서 일어날 것인지 묻는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죄가 있는 곳에는 악한 사람들이 모여드니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든지 심판 대상 지역이라는 뜻으로 저 말이 나온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6.28. 18장 1-8절(불의한 재판관의 비유)[편집]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가의 복음서 18:1-8 (공동번역성서)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간청으로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데, 의로우신 재판관인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당연히 재림 때에 악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의 비유이다. 재림의 때에는 세상에서 진실한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6.29. 19장 1-10절(자캐오)[편집]


자캐오 문서 참조.


6.30. 19장 45-48절(성전 정화)[편집]


예수의 성전 정화 문서 참조.


6.31. 21장 1-4절(가난한 과부헌금)[편집]


가난한 과부의 헌금 문서 참조.


6.32. 21장 5-36절(성전의 파괴와 마지막 때의 징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전의 파괴와 마지막 때의 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3. 23장 39-43절(회개한 죄인)[편집]


회개한 도둑 문서 참조. 유일하게 루가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어째서 이 이야기가 루가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구원 여부가 의심스러운 고인의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예화로 쓰이기도 한다. 만약 루가의 복음서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두 십자가 강도가 모두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루가의 복음서가 그 중에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구원받았던 사람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지옥에 갔을 거 같은 사람도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회개하고 천국에 갔을지도 모르는 것이기에 이 예화가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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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행전의 저자이기도 하다.[2]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고위직 이방인으로 추정된다.[3]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복음서를 썼다. 지금은 네 복음서만이 하느님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받아 성경에 포함되었다.[4] 루가가 의사(Ἰατρὸς)라는 것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된다.[5] 기원후 2세기 말엽, 리옹의 이레네오의 증언 및 무라토리아 파편 기록 인용.[6] 사복음서 가운데 마태오의 복음서와 같이 예수의 족보를 서술하고 있는데 왕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한 마태오와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한것으로서 차이가 있다.[7] 바울로의 동료 루가가 저자라는 전승이 있는데, 바울로 신학의 국제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 복음서는 정말로 바울로 계통 교회에서 저술되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러한 전승이 생길법도 하다는 건 실로 납득이 간다.[8] (발췌자 주석) 루가 1장 1절에 명시된 복음서 수신자.[9] (책 속 주석) L. SCHOTTROFF/W. STEGEMANN, Jesus von nazareth 1
[
각주 127
]
127-176. 혼인 잔치의 비유(루가 14,15-24)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가 16,19-31)에서 도출한 결론이 전부 납득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혼인 잔치의 비유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유복한 사람들이 경고를 받았다는 견해는 옳다(132).
[10]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 저항>에 의하면 당시에 오른뺨을 친다는 것은 오른손등으로 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노예를 대하는 모욕의 표현이다. 왼뺨을 내밀라는 것은 노예임을 거부하는 비폭력 저항을 의미한다.[11] 당시의 시리아 속주 총독.[12]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13]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1절)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길 바래서 그랬다기보다는, 성령이 성도 개개인에게 내주하지 않던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많이 말해줘봐야,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율법주의적 종교생활을 하던 바리새인들처럼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직 그 사람들의 때가 아니라서 그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순히 율법의 인도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던 동네사람들은, 네 가지 씨 비유 같이 사람들의 종류에 대해 분류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회개의 분량을 가지기 힘들기에, 그 사람들에게는 일단 속뜻을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비유의 이야기를 각인시켜 놓고, 나중에라도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이야기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고린도전서 8장 1절대로 지식은 교만을 일으키는데, 상대방이 감당하지 못할 지식은 주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14] 다만 복음서에 일반적인 사람들도 알아들을만 했던 비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15]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16]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고 비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장 8절)[17]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어찌저찌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런 삶은 믿음을 발휘할 일이 적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보았을 때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천국에 갔을 경우 천국에서 받을 상이 작아지는 것은 확정적이다.[18] 심지어 좋은 환경 덕분에 믿음 좋아보이고 선해 보이는 삶을 수월하게 살고 있을지라도, 그럴수록 그러한 행위는 단순히 습관이 되어버려 마음의 중심이 하느님을 떠나기 쉽기 때문에, 영혼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힘든 환경 때문에 자주 넘어져 하느님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 축복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한데다가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도 않고 주변에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없어서 남들보다 온화한 마음으로 선행을 많이 베푸는 삶을 산다고 해도 그런 삶일수록 알아차리기 힘든 교묘한 교만이 틈타기 쉬우므로, 차라리 힘든 문제들에 부딛혀 죄를 자꾸 짓게 되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회개하면서 사는 삶이 나을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유대인들이 우상숭배자들 치하에서 살아야 했던 바벨론 포로기를 거친 후에 신앙이 바로잡힌 것을 들 수 있다.[19]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