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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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로, 관제야당인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06년 1월 5일,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졸업 이후 농사일을 하다가 18세에 도일, 고학을 하면서 와세다 대학과 리츠메이칸 대학 야간 전문부를 1년씩 다녔으나 학비가 부족하여 중퇴하였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수차례 체포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연맹 시즈오카현 본부위원장에 선출, 1951년 1월, 재일조선민주통일전선 창설에 참여했으며 민전중앙 서기장, 의장 등으로 재직하다가 1955년 5월 조총련이 창설되면서 총련 중앙사무국장에 선출되었다. 1956년 6월 조총련 오사카부 본부위원장, 1958년 5월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재일교포 북송 사업 등에 참여했으며 수차례 방북하여 김일성을 접견하였다. 1960년 8월 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로력훈장을 받았다. 1961년에는 한덕수의 개인숭배를 못마땅하게 여긴 북한의 지시로 조총련 학습자료 집필 감독을 맡았으나 한덕수의 격렬한 항의로 도로 물러야 했다.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72년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6년에는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늘그막인 1989년 4월에 북한으로 영구귀국하여 1983년 강량욱 사망 이후 공석이었던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89년 11월, 최덕신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 1차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991년 5월, 허담 장의위원, 1991년 6월, 허정숙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1993년 1월 23일에 병환으로 사망했다. 김일성이 직접 빈소에 나타나서 조문하고 사망소식이 1면에 실리는 등 꽤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중앙인민위원회,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리계백 선생의 생애는 심장의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편단심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주석께 무한히 충실하여 온 애국자의 한생이였다."라고 그를 칭송하였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자리는 역시 재일교포 출신인 김병식이 차지한다.

3. 장의위원회 구성[편집]



4.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8권(평양: 백과사전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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