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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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를 보면 1928년 혹은 1929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초기 이력은 거의 추적이 되지 않는데, 젊어서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원래는 군 출신으로 인민무력부 작전국장을 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김정일을 모시면서 그의 측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6년, 대외정보조사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87년 8월, 리진수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권희경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1993년 6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93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2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다. 1994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하여 군 문제를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6년 즈음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고 한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99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미국 특사 페리와 면담하였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환송행사에도 참석하였다. 2003년 9월, 11기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04년에 지나치게 세도를 부리던 장성택을 조진 것이 다름아닌 리용철이라고 한다. 2005년 10월, 연형묵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고령 때문인지 2008년 이후로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불분명한 시기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그러다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재직 중이던 2010년 4월 26일 0시 20분, 81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리용철동지는 1970년대 당의 기초축성시기부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충직한 전우로서 전군을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력사적위업수행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리용철동지는 오랜 기간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선군령도를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온갖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 (...) 리용철동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선군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후하게 칭찬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조선로동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충직한 혁명동지'의 한 사람으로 허담, 연형묵, 김중린, 허정숙, 김국태, 김용순, 김양건, 전병호, 박송봉, 리찬선, 리제강, 강량욱, 리종옥, 김락희, 안달수와 함께 리용철을 언급하였다.

3. 여담[편집]


김일성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비서를 지낸 리용철(2007~2012 재임)과는 동명이인이다. 박성철, 홍성남, 김중린,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낸 리용철도 이 리용철이다.

4. 참고문헌[편집]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 2019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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