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원범

덤프버전 :



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6년 12월 23일, 황해남도 삼천군 련평리 빈농가에서 출생하여 농사 및 막노동을 하며 먹고 살았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1월, 북조선민주청년동맹 황해도 송화군 장양면위원회 위원장에 선출, 송화군 위원장으로 승진하였다. 1951년 12월, 조선민주청년동맹 황해도위원회 조직부장,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거쳐 1956년 10월 조선민주청년동맹 황해남도위원장, 중앙위원회 조직부장,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65년 11월, 자강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73년 2월, 주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하였다. 귀국 후 1978년 10월, 평안북도 행정위원장에 임명되었고 1979년 12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이한영의 증언에 따르면 사회안전부와 보위부 담당 부부장이라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중에서도 권세가 가장 막강하였으며, 이한영의 재일교포 친구가 수용소에 끌려가자 이한영의 부탁으로 한번 구해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때도 김정일 비준까지 났으니 안된다면서 이한영을 피해서 달아나기까지 하다가 딸인 리경숙이 체코 대사 임기가 끝났음에도 게속 병 치료 핑계로 체코에 남아있는 것을 이한영이 협박까지 해서 겨우 들어줬다고 한다. 그외에 성혜림, 김정남 일가를 돌봐주기도 하여 성혜림이 리원범을 좋게 봐서 김정일에게 리원범 칭찬을 했고 덕분에 출세가도를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고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소식이 끊기더니 1990년 7월 1일에 부고도 없이 조용하게 사망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8권.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9:58:01에 나무위키 리원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