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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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로버트 월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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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로버트 월폴
스펜서 컴프턴
헨리 펠럼
토머스 펠럼홀리스
제5대
제6대

윌리엄 캐번디시
토머스 펠럼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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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존 스튜어트
조지 그렌빌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0대
제11대
제12대
제13대
대 윌리엄 피트
오거스트 피츠로이
프레더릭 노스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윌리엄 페티
윌리엄 캐번디시벤딩크
윌리엄 피트
헨리 에딩턴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윌리엄 피트
윌리엄 윈덤 그렌빌
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
스펜서 퍼시벌
제22대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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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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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
조지 캐닝
프레더릭 존 로빈슨
아서 웰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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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아서 웰즐리
찰스 그레이
윌리엄 램
아서 웰즐리
제29대
제30대

로버트 필
윌리엄 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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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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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윌리엄 램
로버트 필
존 러셀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제34대
제35대
제36대
제37대
조지 해밀턴고든
헨리 존 템플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헨리 존 템플
제38대
제39대
제40대
제41대
존 러셀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벤저민 디즈레일리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벤저민 디즈레일리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아치볼드 프림로즈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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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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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아서 밸푸어
헨리 캠벨배너먼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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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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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앤드루 보너 로
스탠리 볼드윈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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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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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대
스탠리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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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대
제60대
제61대
제62대
스탠리 볼드윈
네빌 체임벌린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제63대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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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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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대
제64대
제65대
제66대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 흄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해럴드 윌슨
제임스 캘러헌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제75대
제76대
제77대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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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78대 총리
리즈 트러스
Rt Hon. Liz Truss


MP[1]


파일:Mary_Elizabeth_Truss.jpg

본명
Mary Elizabeth Truss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
출생
1975년 7월 26일 (48세)
잉글랜드 옥스퍼드셔 옥스퍼드
재임기간
제78대 총리
2022년 9월 6일 ~ 2022년 10월 25일
서명
파일:리즈 트러스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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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존 케네스 트러스
어머니 프리실라 메리 트러스
배우자
휴 오리어리[1]
자녀
장녀 프란시스 오리어리
차녀 리버티 오리어리
학력
라운드헤이 학교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컬리지 (PPE / 학사)
종교
개신교 (성공회)
소속 정당

지역구
사우스 웨스트 노퍽
의원 선수
4 (서민원)
의원 대수
55, 56, 57, 58

1. 개요
2. 상세
3. 생애
3.2.1. 최단명 총리가 되다
3.3. 총리직 이후
4. 논란
4.1. 감세로 인한 시장 위기
4.2. 의용군 참여 독려 논란
4.3. 브렉시트 관련 오락가락 행보 논란
4.4. 불륜
5. 여담
5.1. 사임 관련 여담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영국의 제78대 총리이자 현재 보수당 하원의원.


2. 상세[편집]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찰스 3세 시대의 첫 총리다. 또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이다.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갖고있으며, 자유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브렉시트에 반대하기도 했으나 이후 보리스 존슨 총리의 성향에 맞춰 온건한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보수당 선거를 앞두고 중도 자유주의 성향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 지는 "스테로이드 맞은 대처(Thatcherism on steroids)", 진보주의 성향 신문 더 가디언 지는 "스테로이드 맞은 존슨(Johnson on steroids)"이라는 하마평을 실었다. 전자는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후자는 보리스 존슨 총리보다도 극단적인 행보를 압축해서 한 표현.

테레사 메이 퇴임 이후 보리스 존슨 총리를 거쳐 3년 만에 등장한 영국 역사상 3번째[2] 그리고 40대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총리이다. 또한 첫 1970년대생 영국 총리이기도 하다.[3]

30대 중반부터 12년에 걸쳐 환경장관, 재무차관, 교육장관, 국제통상장관, 법무장관, 외무장관 등 내각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결국 40대에 총리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국가의 정치인, 관료가 불과 40대에 이런 직위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을 포함한 서구권 정치인 중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정치인으로서 트러스 본인의 실무 능력, 보수당의 장기집권 등의 요인도 이런 출세 가도에 한 몫 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처음 내놓은 감세 정책이 시장에서 역풍을 맞으면서 영국발 재정위기 설이 터져나왔다. 파운드화 환율이 근 40년 만에 1파운드=1달러 환율에 근접할 정도로 약세가 되자 취임 6주만에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감세를 하면 정부에 돈이 없으니 정부의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트러스 내각의 첫 미니 예산안 발표인 감세정책과 관련해서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기존의 정부지출규모를 유지하려면 줄인 세금만큼 국채를 발행하여 나라가 빚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럼 통화량이 늘어나는 수순이 뒤따르기에 고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가 당시 2022년 말에 고물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했던 상황이라 금리인상으로 통화를 긴축함이 대세였었다. 고인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면 물가가 오를 테고, 금리가 인상되면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금리도 오르기 마련이니 정부가 감당해야 할 국채의 이자도 늘어난다. 이미 영국정부가 부담하는 재정부채비율은 총GDP의 100%를 육박하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재정위기가 닥친다는 예상이 있었다. 감세를 하면서 고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재정긴축을 해야 하는데, 트러스 내각의 이번 미니예산안 발표인 감세정책과 관련해서 파운드 가치가 약세로 폭락하자, 영란은행은 긴축과 정반대인 양적 완화를 선언하여 시장에 혼란을 더 크게 일으켰다.[4]

2022년 10월 20일 45일 만에 퇴진을 선언하였고, 결국 10월 25일 취임 50일 만에 사임하면서 종전에 조지 캐닝이 기록한 영국 총리 최단임 기록 119일을 경신했다. 게다가 이전에 최단임 총리 타이틀을 보유한 총리들은 재임 중 사망하거나 임시로 맡은 경우가 많았는데, 트러스는 건강상 문제도 전혀 없었을 뿐더러 임시가 아니라 공식 당수로서 총리직에 올랐는데 최단임 총리 기록을 압도적으로 갈아치우게 됐다. 다른 나라의 정치사와 비교해보아도, 2004년 당시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62일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총리보다도 재임기간이 짧으며[5]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에 재임한 일본 총리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이 54일간 재임한 기록보다도 더 짧다.[6][7] 현대 영연방 주요국과 비교하면 호주의 존 맥윈 전 총리의 22일 재임 기록과 아서 파든 전 총리의 39일 재임 기록에 버금가는 최단명 총리로 남았다.

영국보수당의 난맥상은 뱅상 오리올 프랑스 대통령 치하 당시의 정국 혼란에 준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오리올 대통령 재임기의 프랑스도 지도부 난맥상으로 프랑스 총리[8]직이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까지 통상 1개월~11개월 주기로 계속 교체되었던 사례가 있다.

총리로서 수행한 일이라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을 치른 것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극히 짧게 재임했다. 하지만 최단임 총리라는 불명예와는 별개로 70년 넘게 이어졌던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끝과 찰스 3세 시대의 시작을 함께 한 총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상징적인 총리이기도 하다. 허나 영국 정치와 경제의 난맥상을 제대로 구현시키고,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총리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3. 생애[편집]


1975년 7월 26일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리즈 대학교 수학과 교수이며, 어머니는 간호사 겸 교사[9]이다. 캐나다에서 잠시 거주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퍼스트네임 '메리'가 아닌 미들네임 '엘리자베스'로 불렸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컬리지에서 PPE[10] 전공으로 1996년 학사를 받았다. 이 후 로열 더치 쉘과 'Cable & Wireless'라는 통신 회사에서 경영 매니저로 근무하였다.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10대엔 부모와 함께 핵무기 폐지 및 반 대처 집회에 참여하고 20대엔 왕정 폐지론자였을 정도로 강력한 진보 성향이었다.

그러나 정계에는 1996년부터 보수당에서 활동하였고 2001년, 2005년 총선에 모두 보수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은 노동당 텃밭이었기 때문에 낙선하였다.

이 후 보수당 내에서 경력이 쌓이자, 제55회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 강세 지역인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노퍽에 위치한 노퍽 남서부 지역구에 공천받아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초선의원으로서 트러스는 도미닉 랍, 프리티 파텔 등과 함께 자유기업 그룹이라는 대처리즘 우파 성향 초선 의원들의 모임을 주도했다.[11] 이런 행적 때문에 트러스는 우파 자유지상주의 내지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트러스는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을 맡았고,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캐머런이 물러나 테레사 메이가 총리로 선출되자 법무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브렉시트에 대해선 반대론을 외쳤지만 브렉시트가 통과되자 재빠르게 찬성파로 돌아서기도 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재무부 차관으로 좌천되었으나, 메이가 물러나고 보리스 존슨이 총리로 선출되자 다시 국제통상부와 무역대표부의 수장으로서 장관직을 맡았다. 이후 앰버 러드 노동연금장관 겸 여성평등장관이 사임하자 여성평등장관직을 겸임하였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태 당시 조기 귀국하지 않고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 섬에서 휴가를 보내 논란이 된 도미닉 랍 장관의 후임으로 9월 15일 개각에서 외무·영연방개발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2월 19일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브렉시트 이행·방역조치 등을 두고 존슨 총리의 정책에 사실상 반기를 들며 사퇴하자, 트러스가 브렉시트 협상대표로 임명되었다.#


3.1. 2022년 보수당 대표 선거 출마[편집]


LIZ FOR LEADER

경선 공식 슬로건


2022년 7월에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 사퇴를 발표하자 당수 선거에 출마했다.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무역부 부장관에 이어 경선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낙선이 유력했지만, 결선 진출을 위한 마지막 투표에서 줄곧 2위를 차지하던 페니 모돈트 후보를 8표 차이로 겨우 제치면서 리시 수낙과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이로써 보수당 차기 당수 결선은 3번째 여성 총리 후보 최초의 유색인종과 최연소 총리 후보의 구도로 치러지게 되었다.

8월 초 기준 보수당 당원 여론조사에서 리시 수낙과의 양자대결에서 58% 대 26%로 2배 넘는 차이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국의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5일 열린 결선 투표에서도 81,326표를 득표해 57.4%를 차지하고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보리스 존슨의 뒤를 잇는 새로운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관례에 따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알현한 뒤 9월 6일 제78대 영국 총리가 될 예정이다.#

그녀의 승리 요인은 대처 전 총리와 비슷한 강한 보수주의가 보수당원들의 마음에 들었으며,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게이트-성추행 전력자 발탁이라는 2연타 위기에 가장 먼저 사임을 해서 총리 사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이 꼽힌다. 존슨과 가까운 의원들과 당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이다.[12] 존슨 본인도 재무장관 발탁을 해줬는데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난 차기 총리가 수낙만 아니면 된다', '운전할 때는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봐야 한다(=수낙 같이 뒤통수 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등 공공연하게 수낙을 저격하고 다녔는데, 이 덕도 컸다.[13]

흥미롭게도 영국 국왕, 총리의 이름이 모두 '엘리자베스'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14] 국왕과 총리의 이름이 같은 경우는 윌리엄 4세 시절 총리직을 수행했던 윌리엄 램 이후로 185년만이다.[15]

또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 후 맞이하는 무려 열다섯 번째 총리[16]이며, 왕실 사정으로[17] 137년 만에 버킹엄 궁전이 아닌 장소에서 임명되는 연합왕국 총리가 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취임 이틀만에 여왕이 별세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지막으로 임명한 영국 총리이자 찰스 3세 국왕의 첫 총리[18]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3.2. 총리 재임 시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리즈 트러스 내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1. 최단명 총리가 되다[편집]



2022년 10월 20일, 취임 45일만에 불명예스러운 일로 총리직에서 사퇴를 선언하여 영국 역사상 최단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되었다. 이로써 영국은 공교롭게도 최장기 재임 국왕의 임종과 장례를 최단기 재임 총리가 맡고야 말았다.

사퇴 사유는 재무장관 쿼지 콰텡과 함께 발표했던 감세 정책이 불러온 역효과[19]와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부터 이어져 온 보수당 정권의 낮은 지지율로 인한 당 내의 압박으로 보인다. 10월 17일 BBC 인터뷰에서 '실수에 대해 사과하지만 다음 총선까지 계속 당을 이끌겠다'고 밝힌 지 사흘만의 일이다. 결국, 재임기간동안 '엘리자베스 2세 장례위원장" 같은 칭호만 얻으면서 일한것 빼고는 아무것도 못했다는 별명을 얻으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고 만다.

다우닝가 10번지 현관에서 트러스 총리는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 나는 보수당에 의해 선출된 나의 권한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달았고 그러므로 국왕 폐하께 알리기 위해 보수당 대표직을 사임한다고 말씀드렸다. 오늘 아침 나는 1922 위원회[20] 위원장을 만나 새 지도부 선거는 다음 주 안으로 완료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국토계획의 이행과 나라의 경제적 안정과 국가 안보를 유지하는 길에 남아있을 것임을 공고히 하였다. 나는 후임자가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라고 전했다.


3.3. 총리직 이후[편집]


2023년 5월에 대만을 방문했다.#

4. 논란[편집]



4.1. 감세로 인한 시장 위기[편집]


이 사건은 정치적 이념이 시장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이 사건으로 기록적인 단명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안그래도 민심이 떠나간 영국 보수당은 제대로 망가져버렸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2022년 10월 450억 파운드, 한국 돈 약 70조 이상의 감세안을 발표했다. '복지를 덜 하되 세금도 덜 걷는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수십년이래 최대 규모의 감세안이었다. 문제는 당시 영국의 물가 상황이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의 영향으로 7월 한 달에만 10.1%라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긴축이 필요한 시기에 돈을 푸는 '미친 짓거리'였다. 또 이 감세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70조원에 다다르는 세수 공백을 국채로 해결해야만 했다. 파운드화는 폭락하고 국채 금리는 치솟았다. 영국 금융 전체가 개박살나는 것을 막기위해 영란은행은 다급히 국채 매입을 해야만 했다.

국제통화기금(IMF)까지 나서 "영국 정부가 감세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결국 2022년 영국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각종 시위가 발생했으며, 경제성장률은 그 러시아보다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이 모양이 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다음 서민원 선거에서 노동당의 압도적인 집권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4.2. 의용군 참여 독려 논란[편집]


외무장관을 역임 중이던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가기로 한 영국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자원자들이 트러스 장관의 말에 고무돼 참전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강대국인 러시아가 교전 상대국이라서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때문에 같은 내각 장관인 벤 월러스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방법은 참전 말고도 있을 것"[21]이라고 리즈 트러스의 의용군 지지 주장을 비판했다. #

결국 일부 영국인들이 의용군(우크라이나 국제군단)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면서 논란이 되었다.


4.3. 브렉시트 관련 오락가락 행보 논란[편집]


2016년 국민투표 실시 전에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다가 정작 투표 결과 찬성률이 더 높게 나오자 잽싸게 브렉시트 지지론으로 입장을 바꿨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리즈 트러스를 보고 ‘철의 풍향계(Weathercock)’(이미지)란 조롱 섞인 표현으로 부른다.#

영국 가디언은 “변신에 능한 사람(shapeshifter)”이라고 평했으며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시소를 타듯 이랬다저랬다 하는 트러스의 정치적 성향은 그의 믿음이 진실한지, 아니면 매번 편리함을 따른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4.4. 불륜[편집]


휴 오리어리(Hugh O'Leary)[22]라는 남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동료 남성 국회의원과 불륜을 저지른 전적이 있다. 상대는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시티즈 오브 런던&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을 지낸 1964년생 마크 필드.

필드 의원은 트러스보다 9년 일찍 2001년에 의회에 입성했고, 당시 원외인사였던 트러스의 정치 멘토 역할을 당에서 맡겼던 상황이었다. 두 사람 다 각자의 배우자가 있었으며, 트러스는 어찌저찌 이혼을 피했지만 필드는 2006년에 아내와 이혼한 뒤 선을 봐서 2007년에 재혼했다.[23]

실제로 보수당 당수 경선 당시에도 이 부분이 언론으로부터 재조명되어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찰스 3세가 즉위함에 따라 군주와 총리가 모두 기혼자인 상태에서 또 다른 기혼자와 불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기록을 채웠다. 어린 시절부터 필립 공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했던 동명의 엘리자베스 2세와 대비되는 부분.[24]


5. 여담[편집]


  • 원래 이름은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중간 이름인 엘리자베스를 줄인 리즈를 이름으로 써왔다.
  • 총리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은 부유층 감세, 에너지 가격 동결,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을 내세워 보수당 당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 트러스 내각이 들어서면서 보수당 정권임에도 4대 고위관리직(총리, 외무장관, 재무장관, 내무장관)이 모두 백인 남성이 아닌 사람로 구성되었다.[25] 그러나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40일도 못 채운 채 경질되고 백인 남성인 제러미 헌트가 신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 기록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26] 그리고 트러스 본인마저도 취임 50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 어린 시절 리즈 지역의 요크셔에서 살다가 노퍽 지역으로 이사를 간 이후 노리치 시티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 총리에 취임 후 다음 날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났지만 이틀 뒤 여왕이 사망함에 따라 여왕 치세의 마지막 총리가 되었고 새 국왕 시대의 첫 총리가 되었다.
  •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보리스 존슨 전임 총리에 비교해서 리즈 트러스는 연설에 그다지 능하지 않고 다소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총리 취임 전후로 어색한 제스쳐는 어느 정도 개선이 됐다#... 지만 45일만에 쫓겨나게 되어서 더이상 그녀의 개선된 모습은 보기 힘들듯하다.
  • 영국 여성 총리 중에 최초로 성을 바꾸지 않은 총리이다. 마거릿 대처의 원래 성은 로버츠, 테레사 메이의 원래 성은 브레이저.
  • 외무장관 시절 러시아 요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가 해킹을 당했다.#

5.1. 사임 관련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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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스타의 유튜브 생방송
다우닝 가 10번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영국 시민의 모습[27]

  • 임기 내내 바닥인 지지율을 보인만큼 오래 재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여론이 드물었다. 이에 영국의 타블로이드 매체인 데일리 스타가 2022년 10월 14일부터 유통기한 10일짜리 양상추가 트러스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으로 캐삭빵을 시전했고, 이 양상추 생중계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해당 내기는 트러스 총리 본인에게도 알려졌으며 데일리 스타와 '자신이 양상추보다 오래 재임할 것'이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내기는 결국 불과 7일차만에 현실이 되었다. 데일리 스타는 리즈 트러스의 총리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양상추 주위를 파티 분위기로 장식하고 양상추에다간 웃는 입꼬리를 붙인 모습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송출하며 신나게 풍자했다. NYT

  • 재임기간 초에 터진 추모 정국이 지나간 후로 해외 여론조사 기관인 모닝 컨설트에서 진행하는 국가 수반 지지율을 조사할 때마다 꼴찌 자리를 장식해왔다. 종전에는 윤석열 대통령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28]와 함께 셋업맨 경쟁을 펼쳤으나, 문제의 감세정책 발표 이후 트러스가 마무리를 꿰차며 독보적인 꼴찌로 자리잡았다.

  • 역대 영국 총리 중 최단기 재임이라는 타이틀을 195년 만에 갱신하게 되었다. 직전 타이틀 보유자는 1827년 4월에서 8월까지 재임한 조지 캐닝 전 총리로, 119일간 재임하다 사망하며 최단기 기록을 보유했다. 그나마 조지 캐닝은 병으로 사망한 거라 비웃음거리는 전혀 아니지만, 리즈 트러스는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 역대 최단명 총리 기록을 갱신한거라 더더욱 조롱거리가 되었다.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리즈 트러스의 사임을 두고 트위터로 양배추가 이겼다며 조롱했으나, 일론 머스크가 러시아군은 바흐무트는 언제 점령하냐는 식으로 조롱했다.

  • 리즈 트러스 역시 어찌됐든 총리직을 거쳤으니 다른 퇴임 총리와 마찬가지로 공공 직무 비용 수당을 받는다. 다만 그녀의 능력이나 임기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굳이 11만 5천 파운드(약 2억원)의 연금을 주는 것이 말이 되냐는 불만이 영국 전역에서 제기되었다. 이 수당은 마가렛 대처가 퇴임한 전 총리들이 공적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을 보태기 위해 만든 것인데, 리즈 트러스의 공적 가치라고 해봤자 거의 100년만의 장례식, 그것도 여왕만을 따지면 수백년 만에 실행된 장례식을 실행한 총리였다는 점을 빼면 사실상 반면교사 밖에 안 될 사람이라 '흑역사 총리'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재임 기간이라도 길었으면 그동안 수고했으니 답례로 주는 연금 개념으로라도 여길 수 있겠는데 리즈 트러스의 재임 기간은 고작 45일 밖에 안된다.

  • 사임과 동시에 전후 영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총리로 앤서니 이든, 테레사 메이와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나마 이든은 1차 대전 참전용사인 동시에 체임벌린 내각과 처칠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크게 활약한 바 있고 최악이라고 평가받던 메이도 3년은 했지만[29] 트러스는 45일간 있으면서 수행한 공무라고는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이 전부이다.

  •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 2일전 임명했던 터라 엘리자베스 2세와 비교당하며 나노단위로 까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70년 동안 왕위 계승추정 신분이던 1947년 남아프리카에서 영연방 국민들에게 맹세한 평생을 당신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를 성실히 지켰기 때문에 정말 강경한 공화주의자 영국인들 정도를 제외하곤[30]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여왕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임명한 총리가 딸랑 여왕의 장례식만 겨우 치르고 엉망진창으로 정책을 펼치다 경제도 말아먹고 45일만에 사임했으니, 비교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을 것이다.

  • 사임 연설에서까지 본인의 실책에 대한 일말의 사과 없이 정신승리만 일삼다가 떠나는 추태를 보였다.

  • 사임 이후로는 의회에서도 별다른 돌출발언 없이 있는듯 없는듯 잠행만 반복하다 2023년 2월 The Spectator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여전히 총리 재임기간의 행보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YouTube) 이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희생자 추모 분위기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깜짝 방영 및 의회 연설을 앞두고 평소답지 않게[31] 분위기가 엄숙하고 진지하고 다정다감(?)하던 8일 PMQs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 스티븐 플린 원내대표에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깜짝 부관참시를 당했다. 대략 "전직 총리님께서 인터뷰를 하셨다길래 봤더니 총리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네요? 혹시 현직 총리님께서는 전임 총리의 임기를 후회하지 않으실까요?" 하는 질문이었는데, 이 질문을 듣고 여야가 하나되어 의장까지 한목소리로 폭소를 터뜨렸다.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선거구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
비고
2001
제53회 영국 총선
헴스워스


7,400 (21.01%)
낙선 (2위)

2005
제54회 영국 총선
칼더 밸리
17,059 (35.71%)

2010
제55회 영국 총선
사우스 웨스트 노퍽
23,753 (48.33%)
당선 (1위)
초선
2015
제56회 영국 총선
25,515 (50.92%)
재선
2017
제57회 영국 총선
32,894 (62.76%)
3선
2019
제58회 영국 총선
35,507 (68.99%)
4선


7.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 - 1996
정계 입문


1996 - 현재
입당


8. 둘러보기[편집]





파일:보수당(영국) 흰색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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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당의 서민원 의원 수는 300명을 넘어가므로, 가독성을 위하여 나무위키 내 문서가 존재하는 의원만 작성한다.
총리
리치먼드
리시 수낙
서민원 원내대표
포츠머스 노스
페니 모돈트
일반 서민원 의원
사우스 스태포드셔
개빈 윌리엄슨
에셔 월튼
도미닉 랍
사우스 스윈든
로버트 벅랜드
노퍽 사우스 웨스트
리즈 트러스
억스브리지&사우스 라이슬립
보리스 존슨
서리 히스
마이클 고브
와이어&프레스턴 노스
벤 월러스
브롬스그로브
사지드 자비드
롬포드
앤드루 로신델
칭포드&우드포드 그린
이언 덩컨 스미스
메이든헤드
테레사 메이
위섬
프리티 파텔
노스 이스트 서머싯
제이콥 리스모그
사우스웨스트 서리
제러미 헌트
스펠손
쿼지 콰텡
서퍽 코스털
테리즈 코피
브레인트리
제임스 클레벌리
페어햄
수엘라 브레이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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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직 하원의원[2] 각각 마거릿 대처, 테레사 메이, 리즈 트러스[3] 그런데 차대 총리가 된 리시 수낙은 80년생이라서 최초의 70년대생 직후 최초의 80년대생 영국 총리가 배출되며 세대가 낮아졌다. 또한 전임자이던 보리스 존슨은 60년대생 총리. 즉, 보리스 존슨(60년대생)-리즈 트러스(70년대생)-리시 수낙(80년대생) 순으로 연령대가 연이어 낮아진 것이다.[4] 가디언은 지나치게 우파 이념에 매몰된 행보를 보였다가 역풍을 맞았다며 민주주의 진영에선 부유한 이들이 더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하고 더욱 부유해지는 저세금·저규제 사회라는 이상이 우파의 동력이 돼 왔는데, 트러스 총리는 이런 '꿈'의 진실성을 '아마도 영원히' 실추시켜버렸다는 평을 내렸다. #가디언지 원문 [5] 제6공화국국무총리가 국가원수를 대행한 역사는 과거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44대 총리의 사례도 있는데 황교안 대행의 재임 기간은 5개월로서 리즈 트러스 총리의 재임보다 훨씬 길다. 황교안 총리는 한국 헌정사에 있어 가장 길게 국가원수를 대행했던 인물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실각한 상황에서 탄핵이 확정되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기까지 국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6] 참고로 세계 최단명 총리는 1945년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고작 2일간 재임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이다. 그러나 괴벨스는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재임 중이었음을, 그리고 이마저도 재임 도중 자살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리즈 트러스는 어떤 대외적 문제도 없이 순수하게 내치를 못 해서 퇴진당한 최단임 총리라는,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를 기록하였다.[7] 누룰 아민 전 파키스탄 총리의 경우 재위기간이 불과 13일로서 리즈 트러스보다도 훨씬 짧다. 총리로 국한하지 않는다면 전세계 역사상 최단명 정부 지도자는 페드로 라스쿠라인멕시코 대통령으로서 약 45분간 재임했다. 아민의 경우 동파키스탄 독립이라는 정치적 혼란 상황이었고, 라스쿠라인 역시 군사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 승계 서열 앞순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망한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재임한 것이다. 전제군주까지 포함하면 프랑스의 명목상 국왕인 루이 19세약 20분간 재위한 사례가 있기는 한데, 그것도 7월 혁명이라는 정치 격변으로 인해 생긴 과도기에 임시로 즉위한 거라서 평시에 정상적으로 집권했다가 최단임으로 끝난 트러스와 1:1로 비교하기 어렵다.[8] 당시는 프랑스도 의원내각제였다.[9] 보건 교사로 추정[10] PPE는 정치, 경제, 철학을 모두 공부하는 융합 학과인데, 수학과, 물리학과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 중 하나이며 특히 정치 엘리트들이 많이 전공한다. 영국 정가에선 최고 명문 학벌로 꼽히는데, 후임 총리인 리시 수낙도 옥스퍼드 PPE 전공 출신이다.[11] 이들 중 트러스를 포함한 5명은 영국 경제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촉구하는 브리타니아 언체인드라는 저서를 저술한 바 있다.[12] 영국 재무장관은 총리 다음으로 영향력 있고 위상이 높은데 사퇴를 하니 존슨의 거취에 큰 압박이 되었다.[13] 아무리 존슨이 불명예 퇴진을 했다고 하지만 보수당 내에서는 아직도 존슨의 인기가 높으며 심지어 절반에 가까운 보수당원들이 존슨이 당수 선거에 나온다면 존슨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여론조사도 있어서 존슨의 배신자로 낙인 찍힌 수낙이 경선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14] '리즈'는 엘리자베스의 줄임말 및 애칭이며, 트러스 총리의 법적 이름(legal name)은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가 맞다. 실제로 싸인도 'Elizabeth Truss'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풀네임이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였던 고로, 이름이 둘이나 겹친다.[15] 그러나 해당 기록은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한 지 고작 만 이틀 만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숨을 거두면서 최단명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16] 최고 기록은 20번의 총리를 맞이한 빅토리아 여왕이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인물이 선거 결과에 따라 대를 건너 뛰어 취임한 경우가 많아 사람 수로는 10명에 불과, 이 부분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17]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 머무르는 중에 여당의 신임 대표로 당선되었기 때문. 여왕이 96세의 고령임을 감안해 여왕이 런던에 행차하는 것이 아닌, 트러스 총리가 밸모럴에 찾아가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결국 여왕은 밸모럴 성을 떠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18] 선대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별세 전 여왕의 권한으로 트러스에 대해 총리로 이미 임명을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후임 국왕인 찰스 3세에게 또 다시 임명받을 필요는 없다.[19] 파운드화 대폭락과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하락으로 인해 국가의 신용도가 대폭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영국을 향한 투자 철회가 이뤄졌다. 이로 인해 쿼지 쿼탱이 해임되고 후임 제레미 헌트가 전임자가 진행하던 대부분의 정책을 철회했다.[20] 18명으로 구성된 1922 위원회의 집행위원회는 당 대표 선출이나 대표 신임 투표 진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위원회 재적 의원의 15%가 당대표(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면 실제 투표도 가능해진다.[21] 러시아는 외국인의 우크라이나편 참전과 국제 의용군 출신등에 대해 전쟁 포로로 인정하지 않고 전부 용병으로 취급할 것이라고 했었다. (제네바 협약의 제 1의정서 47조에서는 용병은 전투원 또는 전쟁포로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용병은 정당한 교전권을 가진 전투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포로로써의 처우등에 대한 인도주의적 원칙의 적용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가려는 자국인들을 막았다.[22] # 정치인을 꿈꿨으나 실패했고 런던에서 크게 성공한 회계사로 활동 중이다.[23] 필드의 경우 애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불륜 대상자들이 결국 해피 앤딩으로 끝난 사례.[24] 여왕은 소녀 시절 필립 공에게 첫눈에 반한 것으로 전해지며, 필립 공의 바람기를 어느 정도 용인해주기도 하면서 70년 가까이 해로했다.[25] 트러스가 보수당 내에서도 강경파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영국 중도우파 보수주의자들의 소수자 친화적인 성향을 알 수 있다.[26] 쿼지 콰텡 전 장관의 기록은 에드워드 히스 총리 시절이던 1970년 아인 매클레우드 전 장관의 30일 기록에 이은 최단명 재무장관 2위 기록이다. 다만 매클레우드 전 장관은 퇴진한 게 아니라 멀쩡히 근무하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최단기 불명예 퇴진으로 보면 콰텡 전 장관이 1위인 셈이다.[27] 'Lettuce in'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직역하면 '양상추 안에'란 뜻이 되지만, 다른 뜻으로는 Let us in의미한다. 즉 당신 관저에 쳐들어가겠다” 또는 “당신 얼굴 좀 보자”라는 뜻.[28] 13년의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과 전기 난방료 급등 및 네덜란드 경제 악화, 수차례 반복되는 스캔들로 부정평가가 급증한 상태이다.[29] 캐머런의 내무장관으로서는 상당한 강단을 보여주었지만, 경찰 인원을 지나치게 감축하여 여러 치안불안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 역시 받는다. 나아가 윈드러시 세대의 국외추방을 책임진 내무장관이기도 한 탓에 이 건으로도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30] 심지어 이쪽도 군주제는 반대하지만 여왕의 헌신 자체에는 존경을 표했다.[31] 영국 하원의 PMQ의 경우 야당에서 총리를 살발하게 영국식 블랙유머로 비아냥 거리면서 까는 (...)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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