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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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태어난 은하수관현악단의 드러머로, 한국에서 유명한 드러머 겸 보컬.

리진혁이 남한에서 유명해진 것은 깜찍한 외모와 대단한 가창력뿐만 아니라 꽹과리면 꽹과리, 장고면 장고, 드럼이면 드럼 등 거의 웬만한 타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재주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래 리진혁이 12살 무렵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으면서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자 무대에 서는 횟수가 점점 적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리진혁은 “노래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 그를 지도하던 선생들은 목소리가 나을 때까지 타악기를 하나라도 더 배우자며 리진혁을 일으켜 세웠고 그는 단 6개월만에 타악기 독주가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낭랑한 목소리까지 다시 찾았음은 물론이다.

그의 이런 급속한 성장에는 ‘남에겐 지고 못사는’ 자존심도 한 몫 했다.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

어느 날 리진혁은 같은 학생이었던 전설미(현 삼지연관현악단 연주가)와 함께 목금(마림바)을 연주하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마림바가 전문가인 전설미는 그가 실수로 음을 몇 개 잘못 짚자 불같이 화를 냈으며, 이에 자존심이 상한 리진혁은 열흘 동안 밤을 지새다시피 해 마침내 목금을 완벽히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사연 많은’ 곡이 바로 지난 2000년 공연 때 남한의 박수 갈채를 받은 〈유격대 말파리〉다.

그리고 평양학생소년예술단 방문 외에도 인천남북 청년학생 협력단 일원으로 한국에 한번 더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금성학원에 대해 밝혔는데, 그는 금성학원에 대해 "신문을 통해 보면 금성학원은 부잣집 자식들이나 다니는 학교로 나온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다"고 잘라 말한 뒤, "학교에 오는 학생은 부잣집 자식들이 아니고, 재능이 있으면 추천해 국가에서 뽑아 받아들여서 공부를 시킨다"고 강조했다.

남쪽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에 대해 "아직 배우는 학생으로 그저 높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는데도, 그것을 칭찬 해 줬으니 앞으로 더 잘해 달라는 기대로 알고 열심히 하겠다"고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리진혁은 같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공연에 함께했으며, 현재 삼지연관현악단 마림바 연주자인 전설미와 부부의 연을 맺고 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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