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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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8) 문서 참고하십시오.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던 나라. 수도는 빌뉴스.
1918년 소비에트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설립하고 이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지나, 제대로 역할도 못 하고 쫓겨난다.
그 후 1918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던 리투아니아는 1940년 6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소련에 점령되었고,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된다. 같은 해 8월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흡수된다. 1990년 3월 11일에 독립을 되찾았다.
1941년 6월에 나치 독일이 리투아니아 전역을 차지하고 이후 발트 3국 전역 및 벨라루스 일부 지역을 점령해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를 세워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능이 정지되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1944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탈환해 다시 효력이 시작되었다.
이 나라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같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보고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을 계승하는 입장이다.
리투아니아 SSR은 소련의 구성국들 중에서 가장 독립의 열기가 강했다.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지하세계에선 카톨릭 문학이 발행되었으며, 1972년엔 한 고등학생이 소련에 반대하며 분신자살까지 하기도했다.
2차대전 직후 칼리닌그라드주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흡수될 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전략적 거점 지역으로 간주하여 소련 영토로 흡수하게 되는데, 러시아와 직접 접해있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독일인들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발트족들이 거주했던 땅이었으니까 인근에 위치한 구성국인 리투아니아에 흡수시키려 했던 것.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공산당 지도자인 안타나스 스녜츠쿠스(Antanas Sniečkus)가 거절해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월경지가 되었다. 정확히는 독립국이었던 전간기에 점유하고 있다가 히틀러의 강압으로 독일에 넘겨줬던 클라이페다만 다시 넘겨받았고 나머지(동프로이센의 거의 전부)를 받지 않았다. 칼리닌그라드 주는 독일인들을 추방하고 소련군의 다수를 이루는 러시아계가 이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는데, 스녜츠쿠스가 리투아니아 안에 러시아계가 늘어나는 것을 꺼려서 거절했다고 한다.# 만약 칼리닌그라드주를 받았다면 소련 해체 시 칼리닌그라드주가 리투아니아의 일부 지방으로서 독립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러시아인들의 인구가 리투아니아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해 국정운영에서 러시아계 주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인들의 비중이 높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처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1918년에 세워진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한 내용은 1. 개요[편집]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던 나라. 수도는 빌뉴스.
2. 역사[편집]
1918년 소비에트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설립하고 이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지나, 제대로 역할도 못 하고 쫓겨난다.
그 후 1918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던 리투아니아는 1940년 6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소련에 점령되었고,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된다. 같은 해 8월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흡수된다. 1990년 3월 11일에 독립을 되찾았다.
1941년 6월에 나치 독일이 리투아니아 전역을 차지하고 이후 발트 3국 전역 및 벨라루스 일부 지역을 점령해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를 세워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능이 정지되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1944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탈환해 다시 효력이 시작되었다.
이 나라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같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보고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을 계승하는 입장이다.
리투아니아 SSR은 소련의 구성국들 중에서 가장 독립의 열기가 강했다.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지하세계에선 카톨릭 문학이 발행되었으며, 1972년엔 한 고등학생이 소련에 반대하며 분신자살까지 하기도했다.
2차대전 직후 칼리닌그라드주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흡수될 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전략적 거점 지역으로 간주하여 소련 영토로 흡수하게 되는데, 러시아와 직접 접해있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독일인들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발트족들이 거주했던 땅이었으니까 인근에 위치한 구성국인 리투아니아에 흡수시키려 했던 것.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공산당 지도자인 안타나스 스녜츠쿠스(Antanas Sniečkus)가 거절해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월경지가 되었다. 정확히는 독립국이었던 전간기에 점유하고 있다가 히틀러의 강압으로 독일에 넘겨줬던 클라이페다만 다시 넘겨받았고 나머지(동프로이센의 거의 전부)를 받지 않았다. 칼리닌그라드 주는 독일인들을 추방하고 소련군의 다수를 이루는 러시아계가 이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는데, 스녜츠쿠스가 리투아니아 안에 러시아계가 늘어나는 것을 꺼려서 거절했다고 한다.# 만약 칼리닌그라드주를 받았다면 소련 해체 시 칼리닌그라드주가 리투아니아의 일부 지방으로서 독립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러시아인들의 인구가 리투아니아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해 국정운영에서 러시아계 주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인들의 비중이 높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처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